국방의 의무를 다하기 위해 입대한 전·의경들이 뜻하지 않게 생존권을 부르짖는 농민들과 대치하고 있다. 20대 초반의 피로에 지친 젊은이들이 폭력이 난무하는 상황에 내몰리고 있는 것이다. 직업경찰을 보조하는 것이 이들의 임무지만 어렵고 힘든 시위현장에서는 오히려 전·의경이 직업경찰을 대신하고 있다.
이 때문에 전문가들은 집회경비는 정규경찰이 맡고 전·의경은 집회경비 보조업무만 맡아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편집자 주
서울시 종로구 창신동에 있는 서울경찰청 기동단 특수기동대 창신지구대는 3개 중대 350여명이 생활하는 곳이다.
기자가 현장체험을 위해 찾아간 20일 오후 창신지구대는 이미 텅 비어 있었다. 시위현장으로 출동 나가서다. 서둘러 기동복으로 갈아입고 종로구 미근동 경찰청 앞 시위현장으로 달려가니 이미 수많은 전·의경들과 시위대들이 북새통을 이루고 있다.
◆하루 평균 노동시간 11시간 52분 = 시위대와 전경대가 대치하는 지점 제일 앞이 기자가 배치 받은 78중대다. 어깨를 비집고 들어가 대열에 자리를 잡자마자 시위대의 눈길이 따갑게 느껴졌다. 대학시절 학생운동 경험으로 이런 풍경이야 익숙했지만 시위대가 아닌 전·의경 입장에서 서니 느낌이 새롭다.
다행히 시위는 고성이 오고가고 가벼운 몸싸움 정도로 정리됐다.
부대로 복귀해 저녁점호를 마치고 잠자리에 누운 시간은 11시 15분. 집회가 늦게 마쳐 부대 복귀 이후 청소 등 간단한 주변정리만 하고 잠자리에 들었는데도 벌써 시간이 이렇게 흘렀다. 옆자리에 누운 구본형 이경에게 말이라도 붙여볼 생각으로 돌아누우니 이미 잠이 든 상태. 하루 동안 찬바람에 시달린 구 이경의 볼이 달아올라 있다.
특수기동대 78중대는 지난 11월 한달 동안 하루평균 11시간 52분을 근무했다. 하루도 출동을 하지 않은 날이 없다. 출동 지역도 전국구다. 지난 5월 울산 플랜트노조 시위를 필두로 11월 부산 에이펙에도 출동했다. ‘좀 한다’는 집회현장은 서울청기동대의 몫이다.
78중대장 박영희 경감은 “24시간 시설근무를 마치고 돌아와 휴식을 취하지도 못한 채 출동한 적도 있다”며 “나이 어린 대원들에 대해 미안할 때가 많다”고 말했다.
◆기동대 내무반은 ‘기대마’= 전·의경이 타는 경찰버스를 ‘닭장차’라고 부르는 사람들이 많다. 버스에 철망을 둘러친 모습이 닭장과 비슷하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하지만 이들은 이 버스를 ‘기대마’라고 부른다. 기동대가 타고 다니는 말, 즉 버스라는 것이다.
버스라고 하지만 기대마는 사실상 기동대원의 ‘내무반’이나 마찬가지다. 기대마에서 보내는 시간이 내무반에서 보내는 시간보다 훨씬 많기 때문이다. 시위현장에 나가 대기할 때나 시설보호 근무에서도 근거지가 되는 것은 기대마다.
78중대 우지현 상경은 “기대마는 우리의 보금자리나 마찬가지”라며 “24시간 철야근무 때는 ‘기대마’에서 대기하는 시간이 죽을 맛”이라고 말했다.
◆살 속으로 파고드는 칼바람에 덜덜덜 = 체험 이틀째인 21일 기상은 아침 6시. 기동대원들은 어제 저녁 늦게 상황이 끝났지만 아침부터 부산하게 움직였다. 오늘의 임무는 시설경비. 오전 8시에 시작해 저녁 8시까지 꼬박 12시간 근무다.
제주도 출신 홍제호 상경과 두달전 입대한 이정훈 이경과 함께 무궁화동산 유동근무(걸으며 수행하는 경계근무)를 나섰다. 방패를 들고 길목을 지키는 것 보다는 걸으며 순찰하는 것이 덜 추울 것 같아 서다.
하지만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방한털모자까지 뒤집어썼지만 30분 만에 코끝이 시려오기 시작했다. 자하문터널에서 내려오는 겨울 칼바람은 철원 군복무 시절 추위 저리가라였다. ‘덜덜덜’ 이빨이 부딪히고 온몸에 힘이 잔뜩 들어갔지만 추위를 이기기에는 역부족이었다.
홍제호 상경은 “올해는 유난히 추운 것 같다”며 “지급해 주는 장비 이외에 집에서 부쳐온 내복을 껴입어도 견디기 힘들 때가 많다”고 말했다.
◆일본대사관 경비는 싫어 = 시설근무 중에서도 각국 대사관은 기동대원들이 싫어하는 근무지다. 복잡한 도심에 위치해 근무여건도 열악하다. 화장실을 가기위해 500여 미터 이상을 걸어가야 할 때도 있다. 그나마 빌딩 화장실을 섭외해 사용하더라도 100여명에 이르는 대원들이 사용하다 보면 건물 관리인들로부터 싫은 소리도 들어야 한다.
특히 일본대사관은 기피 근무지 1호. 우지현 상경은 “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리는 시위를 막다보면 오히려 ‘이 사람들이 애국자’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고 말했다. 어떤 때는 시위대에 뛰어들어 함께 구호를 외치고 싶은 경우도 있다.
◆정규경찰 투입해 상황대처능력 높여야 = 기동대원들은 요즘 사기가 많이 떨어져 있다. 고 전용철 홍덕표 농민의 죽음으로 인해 자신들에 대한 국민들의 시선이 곱지 않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의 “시위대와 경찰이 접촉하는 지점에는 정규경찰을 투입해 상황대처 능력을 높여야 한다”는 지적이 실감나게 다가왔다. 집회경비의 개념이 진압과 해산이 아니라 보호라는 점을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기동대원들은 올해 들어 부쩍 지휘관들로부터 인권에 대한 교육을 많이 받고 있다. 안전하게 시위대 보호하는 게 기동대의 임무라는 사실도 귀에 못이 박히듯 들었다. 지난달 15일 여의도 농민시위 때 기동대원들에게 부담이 없었던 것도 아니다. 집회 참가자 대부분이 기동대원들의 아버지나 할아버지뻘이 되는 사람들이었던 데다 왜 집회를 하게 됐는지 잘 알기 때문이다.
하지만 과격한 행동을 하는 시위대에게서 위협을 느끼는 경우도 있다. 국방의 의무를 다하기 위해 복무하고 있을 뿐인데도 모욕을 주는 경우가 허다하다.
전역을 1개월 앞두고 있는 김세호 수경은 “과격한 시위는 한 해에 몇 차례 안 되지만 그때마다 아찔아찔하다”며 “시위대가 침을 뱉거나 심한 욕설 등을 듣게 될 때는 심한 모욕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고성수 기자 ssgo@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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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때문에 전문가들은 집회경비는 정규경찰이 맡고 전·의경은 집회경비 보조업무만 맡아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편집자 주
서울시 종로구 창신동에 있는 서울경찰청 기동단 특수기동대 창신지구대는 3개 중대 350여명이 생활하는 곳이다.
기자가 현장체험을 위해 찾아간 20일 오후 창신지구대는 이미 텅 비어 있었다. 시위현장으로 출동 나가서다. 서둘러 기동복으로 갈아입고 종로구 미근동 경찰청 앞 시위현장으로 달려가니 이미 수많은 전·의경들과 시위대들이 북새통을 이루고 있다.
◆하루 평균 노동시간 11시간 52분 = 시위대와 전경대가 대치하는 지점 제일 앞이 기자가 배치 받은 78중대다. 어깨를 비집고 들어가 대열에 자리를 잡자마자 시위대의 눈길이 따갑게 느껴졌다. 대학시절 학생운동 경험으로 이런 풍경이야 익숙했지만 시위대가 아닌 전·의경 입장에서 서니 느낌이 새롭다.
다행히 시위는 고성이 오고가고 가벼운 몸싸움 정도로 정리됐다.
부대로 복귀해 저녁점호를 마치고 잠자리에 누운 시간은 11시 15분. 집회가 늦게 마쳐 부대 복귀 이후 청소 등 간단한 주변정리만 하고 잠자리에 들었는데도 벌써 시간이 이렇게 흘렀다. 옆자리에 누운 구본형 이경에게 말이라도 붙여볼 생각으로 돌아누우니 이미 잠이 든 상태. 하루 동안 찬바람에 시달린 구 이경의 볼이 달아올라 있다.
특수기동대 78중대는 지난 11월 한달 동안 하루평균 11시간 52분을 근무했다. 하루도 출동을 하지 않은 날이 없다. 출동 지역도 전국구다. 지난 5월 울산 플랜트노조 시위를 필두로 11월 부산 에이펙에도 출동했다. ‘좀 한다’는 집회현장은 서울청기동대의 몫이다.
78중대장 박영희 경감은 “24시간 시설근무를 마치고 돌아와 휴식을 취하지도 못한 채 출동한 적도 있다”며 “나이 어린 대원들에 대해 미안할 때가 많다”고 말했다.
◆기동대 내무반은 ‘기대마’= 전·의경이 타는 경찰버스를 ‘닭장차’라고 부르는 사람들이 많다. 버스에 철망을 둘러친 모습이 닭장과 비슷하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하지만 이들은 이 버스를 ‘기대마’라고 부른다. 기동대가 타고 다니는 말, 즉 버스라는 것이다.
버스라고 하지만 기대마는 사실상 기동대원의 ‘내무반’이나 마찬가지다. 기대마에서 보내는 시간이 내무반에서 보내는 시간보다 훨씬 많기 때문이다. 시위현장에 나가 대기할 때나 시설보호 근무에서도 근거지가 되는 것은 기대마다.
78중대 우지현 상경은 “기대마는 우리의 보금자리나 마찬가지”라며 “24시간 철야근무 때는 ‘기대마’에서 대기하는 시간이 죽을 맛”이라고 말했다.
◆살 속으로 파고드는 칼바람에 덜덜덜 = 체험 이틀째인 21일 기상은 아침 6시. 기동대원들은 어제 저녁 늦게 상황이 끝났지만 아침부터 부산하게 움직였다. 오늘의 임무는 시설경비. 오전 8시에 시작해 저녁 8시까지 꼬박 12시간 근무다.
제주도 출신 홍제호 상경과 두달전 입대한 이정훈 이경과 함께 무궁화동산 유동근무(걸으며 수행하는 경계근무)를 나섰다. 방패를 들고 길목을 지키는 것 보다는 걸으며 순찰하는 것이 덜 추울 것 같아 서다.
하지만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방한털모자까지 뒤집어썼지만 30분 만에 코끝이 시려오기 시작했다. 자하문터널에서 내려오는 겨울 칼바람은 철원 군복무 시절 추위 저리가라였다. ‘덜덜덜’ 이빨이 부딪히고 온몸에 힘이 잔뜩 들어갔지만 추위를 이기기에는 역부족이었다.
홍제호 상경은 “올해는 유난히 추운 것 같다”며 “지급해 주는 장비 이외에 집에서 부쳐온 내복을 껴입어도 견디기 힘들 때가 많다”고 말했다.
◆일본대사관 경비는 싫어 = 시설근무 중에서도 각국 대사관은 기동대원들이 싫어하는 근무지다. 복잡한 도심에 위치해 근무여건도 열악하다. 화장실을 가기위해 500여 미터 이상을 걸어가야 할 때도 있다. 그나마 빌딩 화장실을 섭외해 사용하더라도 100여명에 이르는 대원들이 사용하다 보면 건물 관리인들로부터 싫은 소리도 들어야 한다.
특히 일본대사관은 기피 근무지 1호. 우지현 상경은 “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리는 시위를 막다보면 오히려 ‘이 사람들이 애국자’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고 말했다. 어떤 때는 시위대에 뛰어들어 함께 구호를 외치고 싶은 경우도 있다.
◆정규경찰 투입해 상황대처능력 높여야 = 기동대원들은 요즘 사기가 많이 떨어져 있다. 고 전용철 홍덕표 농민의 죽음으로 인해 자신들에 대한 국민들의 시선이 곱지 않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의 “시위대와 경찰이 접촉하는 지점에는 정규경찰을 투입해 상황대처 능력을 높여야 한다”는 지적이 실감나게 다가왔다. 집회경비의 개념이 진압과 해산이 아니라 보호라는 점을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기동대원들은 올해 들어 부쩍 지휘관들로부터 인권에 대한 교육을 많이 받고 있다. 안전하게 시위대 보호하는 게 기동대의 임무라는 사실도 귀에 못이 박히듯 들었다. 지난달 15일 여의도 농민시위 때 기동대원들에게 부담이 없었던 것도 아니다. 집회 참가자 대부분이 기동대원들의 아버지나 할아버지뻘이 되는 사람들이었던 데다 왜 집회를 하게 됐는지 잘 알기 때문이다.
하지만 과격한 행동을 하는 시위대에게서 위협을 느끼는 경우도 있다. 국방의 의무를 다하기 위해 복무하고 있을 뿐인데도 모욕을 주는 경우가 허다하다.
전역을 1개월 앞두고 있는 김세호 수경은 “과격한 시위는 한 해에 몇 차례 안 되지만 그때마다 아찔아찔하다”며 “시위대가 침을 뱉거나 심한 욕설 등을 듣게 될 때는 심한 모욕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고성수 기자 ssgo@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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