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과 사회생활, 둘 중 하나는 포기”

주 100시간 일하는 소방 공무원들의 하소연

지역내일 2005-12-14
24시간 맞교대 몸 지키기도 힘든 실정
예산 없어 1일 3교대 도입은 어려워

24시간 일하고 24시간 쉰다. 비번일에도 각종 검사와 조사 등으로 불려 나오기 일쑤다. 법정근로 시간 40시간은 오래 전에 초과해 보충·비상근무로 많게는 1주에 100시간을 일터에서 보내야 하는 공무원이다. 소방관을 두고 하는 말이다.
서울 중부소방서 한 소방관은아침 9시에 시작한 근무가 다음날 아침 9시에 끝난다. 매년 10월에 잡혀 있는 장비검열을 위해 비번에도 장비를 챙기는 일이 허다하다. 하룻동안 유사휘발유단속 2건, 화재출동 7건, 날이 밝아 퇴근 대신 오후 4시까지 소화전 40여곳의 맨홀을 열고 소방용수시설을 점검해야 했다.
그는 ‘화재현장에 뛰어들었을 때 스스로를 지킬 자신이 없다는 느낌이 들었다’고 고백했다.
너무나 당연한 듯한 ‘8시간 근무 1일 3교대’가 이들에게는 지상 목표가 돼 있었다.
12일 오후 서울 중부소방서 휴게실에 둘러 앉은 소방관들이 전하는 대한민국 119의 현실은 여느 직장인의 모습과 판이하게 달랐다. 근무여건에 대한 이런저런 얘기가 오고 갔지만 결국은 살인적인 24시간 맞교대 근무방식에 맞춰져 있었다.
정년을 얼마 남기지 않았다는 한 소방교는 “예산 때문에 3교대 못한다는 것을 20여년 전에도 들었는데 아직도 듣고 있다”면서 “문제의 원인도 알고 해결책도 알고 있는데 제자리 걸음만 걷고 있으니 답답할 노릇”이라고 말했다.
구조업무를 맞고 있는 소방장은 “자식 노릇, 아빠 노릇 제대로 할 날이 올지 모르겠다”면서 “가정과 사회생활 중 하나는 포기해야 살아 남을 수 있는 직업”이라고 말했다. 낮밤을 거꾸로 사는 통에 가족과의 소통은 물론 세상물정을 몰라 곤혹스런 일도 종종 있다고 한다.
현장근무조를 중심으로 3교대 근무를 시범실시하고 있지만 현장 체감도는 크게 떨어진다. 심지어 격무를 고려해 순번제로 월2회 이상 쉬는 순번휴무를 권장하고 있지만 쉽지 않다. 화재진압을 담당하는 한 소방장은 “순번휴무가 있지만 예비인력이 없는 걸 뻔히 알면서 쉰다는 말을 쉽게 할 수가 없다”며 “정상적인 휴무일에도 마음의 빚을 담고 살아야 한다”고 털어 놨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책임져야 하는 119가 자기 몸을 챙기는 것도 힘든 상황에 있다는 말이다. 구조진압과 관계자는 “직업의식이라는 게 무서워서 안에 사람 있다고 하면 일단 뛰어들고 보는 게 소방관”이라며 “체력이 정상이 아니라는 점을 알면서도 대원들을 현장에 투입할 때는 입술이 바짝 마른다”고 말했다.
현장의 이런 상황을 기획부서가 모를 리 없다. 그러나 이를 쉽게 해결할 수 없는 것 또한 현실이다. 서울시 소방관들의 1일 3교대를 위해서는 1700여명의 인력이 추가되어야 한다. 매년 680억원의 인건비가 들어가야 한다. 이는 전체 공무원 수를 정해 놓은 표준정원제 하에서 1만7000여명인 서울시 공무원의 10%를 소방관으로 바꿔야 가능한 일이다.
서울소방방재본부 기획예산팀 관계자는 “기존 부서를 통폐합해야 신설이 가능한 현재 구조로는 소방파출소 1개 신설도 하늘에서 별 따기”라며 “특단의 대책이 나오기 전에는 힘든 상황”이라고 말했다.
13일 새벽 4시, 다시 찾아간 중부소방서는 밤새 4건의 출동이 있었으나 다행히 큰 사고는 없었다. 상황실 근무자가 “취재 하러 오면 출동이 없더라”며 “자주 찾아오라”며 반겼다. 대기실에서는 언제 울릴 지 모를 출동 벨에 온 신경을 곤두세운 채 소방관들이 쉬고 있었다.
술에 취한 아주머니가 ‘내 마음속에 불을 꺼 달라’며 119를 찾는 현실에서, 국민의 소방 119발등에 떨어진 불은 누가 꺼줄 수 있을지 의문이다.
“지난 10월에 경북에서 소방관 2명이 사망했을 때 ‘의로운 죽음’ ‘영웅’ 이런 식으로 추켜세우던데, 비번 업무 줄이고 24시간 맞교대 방식 바꾸면 죽음을 피할 수 있지 않았을까요. 뜨거운 열기가 사방에서 몰려오는데 몸은 뜻대로 안 움직여 질 때 ‘그만 눕고 싶다’는 생각이 굴뚝 같다는 걸 왜 모를까요.”
한 소방관의 독백이 찬 새벽바람에도 떠나질 않는다.

/이명환 기자 mhan@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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