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병찬 칼럼>‘1974년 겨울’(2005.12.16)

지역내일 2005-12-15
‘1974년 겨울’
안 병 찬 경원대학교 초빙교수·언론학


2005년 겨울이 되어서야 책으로 엮은 ‘1974년 겨울’이 나왔다. 유신치하에서 태동한 한국일보 ‘원년노조’의 7년 투쟁사를 정리한 것이다. ‘한국일보 74노조 출판위원회’가 기획하고 출판사 ‘미디어집’이 펴냈다. 31명의 한국일보 젊은 기자들이 발기하여 전국출판노동조합 한국일보지부를 결성한 것은 31년 전 한겨울인 12월 10일이다. 그로부터 1981년 신군부 집권 시기까지 이어진 7년 투쟁사는 유신체제와 정면으로 맞서는 외로운 도전이었고, 달걀로 바위 치기 같은 고난의 역정이었다.

31년 전 31명이 발기한 ‘원년노조’
‘1974년 겨울’의 출판회기념회가 열린 것은 강추위가 엄습한 지난 월요일(12월 10일) 저녁이다. 이 책이름은 홍성우 변호사가 한국일보 노조에 얽힌 단상을 쓰면서 김승옥의 소설 제목 ‘서울 1964년 겨울’을 본 따서 ‘1974년 겨울’이라고 붙인 데 연유한다.
내빈들의 인사말이 이어졌다. 동아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회 위원장은 뜨거운 마음으로 엄동 시대를 이겨낸 소회를 말한 뒤 주류언론인 조·중·동의 젊은 기자들은 그 시절의 투쟁을 이해하지 못한 다고 비판했다. 전국언론노동조합위원장은 자유언론투쟁 전사(前史)를 후배들이 정리하지 못해 가시방석에 앉은 것 같다고 사과하고 “중앙일보와 삼성이 신문시장을 초토화하고 있다”고 다른 쪽으로 화살을 날렸다. ‘1974년 겨울’의 선배정신을 표절하겠다고 인사한 것은 한국기자협회장이다.
온몸으로 포복하며 고난의 역정을 돌파해낸 주인공들의 감회는 남달랐다. 수임료를 한 푼도 받지 않고 한국일보 원년노조의 법정투쟁 7년 동안 무료 변론을 한 홍성우 변호사는 이 사건을 맡게 된 일은 변호사로서 행복한 일이었다고 회상했다. 이를 계기로 그는 실정을 모르던 노동문제에 눈을 뜨게 되었다고 한다. 그는 요즘 노동운동을 하는 사람이 보면 낡은 유행가로 여겨질지 모르지만 당시는 절대절명의 명제였다면서 이렇게 덧붙였다. “젊은 날에 뜨거운 연애를 한 것 같아 아련한 그리움을 느낍니다.”
이 날 ‘74 한국일보노조 대표 이창숙은 예상외로 담담해 보였다. 그러나 그녀도 옛 동지들을 다시 만나니 아련하게 그리운 정이 되살아나서 마음이 푸근하다고 실토했다. “나는 모든 것과 화해했으므로 여한 같은 것은 남아있지 않다.” 그녀의 이런 달관은 고뇌를 거쳐 눈을 떠서 얻은 게 분명하다. 81년 이후 법정으로 갈 일도 없어지고 사십대 초반으로 접어든 나이에 하루하루를 보내던 때 학교에 가서 불교 공부를 정식으로 해보라는 주변의 권유를 받았다. 스님한테 찾아가 의논했더니 “10년 후의 보살님을 생각해 보십시오. 공부를 한 보살님과 공부를 안 한 보살님이 같겠습니까?”하고 대답하는 거였다. 그 말 한마디에 걸려 동국대 대학원 불교학과 석사과정에 입학하여 94년에 박사학위를 받고, 몇 년 간 시간강사로 강의를 했다. 기자로서 시작한 그녀의 직업인생은 시간강사로 끝을 맺은 셈이다.
이창숙은 노동운동은 아이들의 땅뺏기놀이처럼 되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올바른 본성에서 울어 나오는 원칙에 의한 것이어야 하며, 서로 살리는 상생의 운동이 되어야지, 한쪽을 망하게 하거나 핍박하는 것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한다. 이런 생각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고 하니 ‘1974년 겨울’이 과거에서 걸어 나와 2005년 겨울에 되살아나는 까닭은 자명해진다.

모든 것과 화해한 대표 이창숙
나는 ‘1974년 겨울’의 소용돌이 한복판에 있었다. 핵심의 하나였다. 공사 간에 아끼던 외신부와 다른 부서 후배들이 편집국을 나가 이창숙을 필두로 31인 발기인으로 똘똘 뭉쳐 가시밭길을 갈 때, 외신부 차장이라는 어중간한 직책에 매어 심정적으로 동조했을 뿐 그들과 생사를 같이하지 못한 것은 나의 크나큰 부채이다. 31년이 지나갔다. 노조를 주도했던 기자들과 발기인들은 대부분 나이가 들어 신문사를 떠났다. 이미 고인이 된 사람도 여럿이다. 이창숙은 “우리가 투쟁했던 그 사연도 희미한 추억의 그림자로 잊혀져 가고 있다. 심지어는 언론의 역사 속에서도 미미한 존재로 기록되었다”고 쓰고 있다.
그러나 유신체제에 맞서 언론자유를 되찾기 위해 전개한 그들의 갚진 투쟁은 1987년 10월 29일, 한국일보 후배기자들이 한국 최초로 언론노동조합을 결성하는 모태가 됐다. 한국일보 노동조합의 탄생은 전국언론노동조합 결성으로 이어진다. 다행이 신인령 교수(현 이대총장)는 논문 ‘한국일보 노동조합의 법정투쟁 사례연구’를 써서 한신대출판부 논문집(1983년)과 풀빛 발행의 ‘여성·노동·법’(1988년)에 수록했다. 나는 학위논문 ‘신문 발행인의 게이트키핑 특성에 관한 연구’(1999년)에서 한국일보 노조운동과 게이트키핑의 딜레마를 비교적 상세히 기술한바 있다.
‘1974년 겨울’은 한국일보 원년노조의 순수성을 말해준다. 그 주역들은 31년 동안 한번도 작당하여 자기들의 선구적 언론노조운동을 내세운 적이 없으니 지나치게 겸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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