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의 정치학

타구소리 높은 곳에 원성도 높다

지역내일 2006-03-16
권력과 돈을 매개로, 스포츠와 접대문화의 절묘한 만남
아쉬운 소리 해야 할 기업인들, 권력에 골프접대는 필수

‘3·1절 골프파문’과 이해찬 총리의 사임으로 새삼 세간의 주목을 받은 ‘골프정치’.
세월이 흘러도 ‘골프에 얽힌 정치’ 얘기가 끊이질 않는 것을 보면 골프와 정치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임에 틀림이 없는 것 같다.
한국정치사에서 골프정치는 때론 권력을 만들기도 했지만, 노무현 정권들어 골프정치는 결국 권력을 내놓게 만드는 화(禍)를 불렀다. ‘권력이 있는 곳에 접대가 있고, 골프가 접대의 최고수단으로 정치화’됐기 때문이다.
과거에 술과 접대가 만나 ‘요정정치’ ‘룸살롱 정치’가 있었다면 권력과 돈을 매개로, 스포츠와 접대가 만난 게 골프정치다. 골프를 좀 쳐본 사람들은 농담 삼아 ‘서서 하는 운동 중에 가장 재미있는 운동’이 골프라고 한다. 대신 다른 운동에 비해 돈이 많이 들어가는 ‘단점’ 때문에 조그마한 권력이라도 있는 사람은 자기 돈 내고 골프를 치려하지 않는 게 보통이다. 권력에 ‘아쉬운 소리’를 해야 하는 사람들 입장에서는 가장 좋아하는 스포츠를 제공하고 뭔가 부탁하는 ‘부패고리’가 여기에서 생기하는 것이다.

◆황제골프와 대통령 골프 =
이해찬 총리의 사임을 부른 직접적인 이유는 최고권력을 가진 총리와 권력에 뭔가 아쉬운 소리를 해야 하는 기업인, 그것도 부도덕한 기업인이 같이 골프를 쳤다는 것이다. ‘3·1절’이란 시점이 꺼림직 하긴 하지만 평소에 운동 좋아하는 친구들과 자기 돈 내고 골프를 쳤다면 그걸로 사임하라는 얘기는 나오지 않았을 지도 모른다.
이 총리의 3·1절 골프가 눈총을 받은 또 다른 이유는 이른바 ‘황제골프’를 쳤다는 점이다. 황제골프란 앞 팀과 뒷팀의 시간간격을 늘여서 그 팀의 플레이가 시간에 쫓기지 않도록 배려하는 것이다.
아예 돈으로 앞 뒷팀의 순서를 사는 경우도 있다. 보통 골프에서는 앞 팀의 뒤꽁무니를 쫓아가게 되지만 ‘황제골프’는 앞 뒷팀이 없어 그 팀이 무엇을 하는지는 직접 운동하는 사람과 캐디밖에 알 수가 없다.
문제는 이런 황제골프가 ‘부킹(필드사용 예약)’이 어렵다는 주말에 많이 이뤄진다는 것이다. 황제골프를 치는 당사자들이야 재력이나 신분의 과시일지 모르지만 그만큼 원성을 듣게 된다.
황제골프와 달리 ‘대통령 골프’는 아예 전체 코스를 빌리다시피 한다. 대통령의 경호 문제 때문에 곳곳에 경호원까지 배치하는 게 보통이다.
미국 대통령들의 골프 비화를 쓴 《백악관에서 그린까지》를 보면  ‘대통령이 골프를 칠 때면 자동소총을 든 경호원들이 숲 곳곳에 숨어 있고, 이들은 때로는 숲으로 날아온 공을 페어웨이 안에 던져 놓기도 한다’는 대목이 나온다. 우리 대통령의 골프도 이런 식인지는 알 수 없지만, ‘대통령 골프’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 것은 분명하다.
‘대통령 골프’ 역시 원성의 대상이다.
지난해 8월 여름 휴가 당시 노무현 대통령은 권양숙 여사와 용평CC에서 골프를 친 적이 있다. 마침 이날은 전두환 전 대통령도 ‘대통령 골프’를 쳐 골프장은 거의 마비상태였다고 한다. 당시 현장에서 골프를 쳤던 한 인사는 “보통 4시간30분이면 라운딩 할 것을 거의 7시간이나 걸렸다”며 “이런 횡포가 어디있냐”는 글을 인터넷에 올리기도 했다.

◆외유골프와 정치 =
정치인이 골프로 물의를 일으키는 예 중 가장 많은 것이 접대성 해외여행에서 골프를 치는 이른바 ‘외유골프’다. 최근 국회 과기정위 소속인 한나라당 김석준 의원이 과기정위 업무와 직접적인 연관이 있는 통신업체의 후원을 받아 하와이에서 골프를 쳐 세간의 눈총을 받은 것도 외유골프의 전형이다.
국회 과기정위의 골프추문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 97년 4월 과기정위 소속 여야 의원 5명이 한국통신으로부터 거액의 경비를 지원받아 골프외유에 나섰다가 검찰에 고발된 적도 있다.
국회의원들이 골프외유를 선호하는 이유는 국내에서는 ‘보는 눈’이 많아 자칫 입방아에 오를 수 있기 때문이다. 예전과 달리 부킹이 잘 되지 않는다는 점도 골프외유를 즐기는 이유 중 하나다.
과거에 국회 재경위 소속 의원들의 경우 피감기관인 국세청에 전화한통이면 바로 부킹이 이뤄졌다고 한다. 골프장측이 국세청의 요청이면 ‘하늘이 두쪽 나도’ 들어줬기 때문이다. 하지만 참여정부 들어 이용섭 전 청장 취임 이후부터는 재경위의 골프부킹도 ‘좋은 시절’ 얘기가 돼 버렸다고 한다. 이 전 청장이 정치인들의 부킹 부탁을 직접 관리하겠다며 국세청 공무원들에게 ‘엄포’를 놨기 때문이라는 게 재경위 관계자의 전언이다.
요즘은 체육시설을 피감기관으로 둔 문광위나 통신업체를 피감기관으로 둔 과기정위, 군부대 골프장 이용이 가능한 국방위, 금융기관을 피감기관으로 둔 정무위 등이 골프부킹 잘되는 상임위라고 한다.

◆이해찬 총리 사건, 정치인들에게 반면교사 =
정치인들에게 골프는 이제 필수다. 과거 JP(김종필 전 자민련 총재)와 같은 거물정치인 몇몇이 골프로 정치를 했다면 이젠 초선들도 대부분 골프를 친다. 최근 ‘한국일보’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17대 국회의원 297명 중 골프 치는 의원은 216명으로 70%를 넘는 의원들이 골프를 즐긴다.
실력은 천차만별이다. 열린우리당 신학용 김종률 의원, 한나라당 김학송 의원 등은 자타가 공인하는 싱글(기본 72타에서 9타 이내를 오버하는 수준) 골퍼다.
386 운동권 출신 의원들 골프수준도 상당하다. 열린우리당 임종석 의원은 80초반을 오가는 실력자로 이미 정평이 나 있다. 임 의원의 골프입문은 골프파문으로 물러난 이해찬 총리의 권유 때문이었다고 한다.
정치인들은 ‘이제 골프를 모르면 사람 사귀기 어렵다’고 말한다. 정치행위를 위한 반드시 해야 할 운동이라는 주장이다. 하지만 과유불급이란 말이 있듯, 골프의 속성 상 언제 누가 ‘이해찬 총리’ 꼴이 날지 모를 일이다. 그래서 이해찬 총리 사건은 정치인들에게 반면교사가 되고 있다.
남봉우·신창훈 기자 chunsim@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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