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병찬의 트렌드 추적 한국의 미래지표 16인

희귀질환을 의료복지로 편입시킨 개척자

① 희귀병 전문의 김현주

지역내일 2006-05-08
의료계 외면에 분노 … 환자돕기운동·가족모임 전개

전문직에 속한 사람들이 사회문제나 공익활동에 자발적으로 참여하지 않는 소시민 현상은 날로 증가해왔다. 하지만 경기불황이 닥칠수록 사람들은 복지와 시민운동에 더욱 많은 관심을 갖는 심리적 아이러니도 있다. 다행히 IMF 위기관리시대 전후 한국사회에서는 사회적 참여에 대한 소신을 갖고 있는 세대가 등장하고 있다. .
이런 친 사회참여 세대는 소신을 실천한다. 취미 생활과 여가시간을 통해 시민운동에 동참하고 기부하는 사람들이 먼저왔다. 지금의 386세대가 그러하다. 50대 이후 이모작 인생을 통해서 일생동안 꿈꾸던 소신을 새롭게 실천하는 사람도 생긴다. 이와 달리 자신의 전문영역 속에서 복지활동의 소신을 펼치는 사람도 증가하고 있다. 기존의 영역을 넘어서 약진하는 김현주같은 파이어니어들이 여기에 속한다.

희귀병과의 필연적 만남
당초에 아주대학교 의과대학 의학유전학과장 김현주 교수는 꽤 깐 질긴 사람이라고 여겼다. 만나보니 뜻밖에 주인공은 성질이 사근사근하다. 첫 눈에도 그녀는 행동하는 의사로 보인다. 희귀한 질병들과 대결해온 한국 최초의 의학유전학 교수로서 개척자의 고충이 가슴에 쌓여있다.
희귀병은 주로 유전적 돌연변이로 발병하는데 10여 년 전까지도 한국에서는 낯선 질환이었다. 그 불모지에 홀연히 출현한 중년 여성 한 사람. 한국 최초의 의학유전학 교수 김현주가 아주대학교 의과대학에 한국 최초로 의학유전학과를 개설하기 위해 부임한 해는 1994년이다.
나는 아주 특이한 희귀병 환자와 직업적으로 맞부딪친 경험이 있다. 영국의 우주물리학자 스티븐 호킹을 면담한 일인데 그는 루게릭병을 앓고 있다. 그는 움직일 수 있는 손가락 하나로 컴퓨터 언어합성기의 자판을 하나하나 눌러 기계 목소리를 만들어 의사를 전달하는 ‘천재적 희귀병 환자’이다. 내가 스티븐 호킹의 예를 들어 말문을 떼자 김현주는 간결하게 응답한다. 루게릭병은 퇴행성 근육무력증을 일으키는 신경질환이라는 것이다. 그녀의 의학유전학적 진단에서 스티븐 호킹의 천재성 같은 것은 고려대상이 아니다.
그녀는 ‘희귀성의 가치’로 희귀병을 설명한다. 금은보석은 희귀성 덕에 사회적 가치를 얻지만, 희귀병은 희귀성 탓에 가치를 상실한다는 말이다. 세계보건기구에 등록된 희귀질환의 종류는 5000 여종이나 되지만 각 희귀질환의 환자 수는 극히 소수이다. 환자가 적으니 치료제를 개발할 시장성이 있을 리 없다.
또 하나는 황우석 교수의 배아 줄기세포 연구가 유전적 결함을 치료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었는가 하는 질문이다. 그 때는 황 교수 팀의 연구 조작이 밝혀지기 전으로 모든 국민이 ‘황우석 신화’의 꿈에 젖어 있던 때였다. 그녀는 줄기세포 연구에 성공했다면 쾌거라고 조건부로 인정하면서도, 그 연구는 국제 생명윤리 기준에 맞아야 난치성질환 치료의 목표에 접근할 수 있을 것이라고 비판적으로 보았다.

붕어빵의 의문
김현주는 어떻게 하여 하필이면 수지타산이 맞지 않는 의학유전학 전문의의 길을 선택하게 되었는가. 우선 어린 시절의 단순한 호기심을 들 수 있다. 어린 시절에 그녀는 부모를 자식이 쏙 빼 닮는 까닭이 남달리 궁금했다고 한다. “왜 사람은 대를 이어 붕어빵처럼 쏙 빼 닮는가.” 그녀로 하여금 의학유전학의 외길로 들어서도록 첫 동기를 부여한 의문이었다.
의학유전학이 미국 유수한 의과대학에서 새롭게 태동하던 시점에 그녀가 그곳에 가있었다는 점이 두번째 동기이다. 자신을 업그레이드하려는 열망을 품은 그녀는 망설이지 않고 유전학 전문의의 길로 걸어들어 간다.
뉴욕에 있는 마운트사이나이 의과대학의 의학유전학 특별연구원(펠로우십)이 되어 연수과정을 밟은 그녀는 미국이 처음으로 임상유전학 전문의 인증제도를 도입한 1982년에 심사와 자격시험을 통과하여 미국 제1대 의학유전학 전문의 자격증을 획득한다.
스물 다섯 살 때 미국에 갔던 김현주가 아주대의대에 온 것은 쉰 두 살 때이다. 아주대학병원 유전학 클리닉을 열고서 그녀가 맨 처음 접한 희귀병 환자는 고셔병을 앓는 아홉 살 난 소녀 현정이였다. 고셔병은 사람 몸에 꼭 필요한 효소 클루코세레브로시다아제(GC)의 결핍으로 일어난다. 효소가 부족하면 복합지방물질은 분해되지 않아 비장, 간, 골수 등에 쌓이고 때로는 림프계, 폐, 피부, 눈, 신경계까지 침범한다. 당시 한국의 치료법은 비장 절제수술을 하는 길뿐이었다. 김현주는 아주대학병원에 유전학 클리닉을 연 그 해에 미국에서 유전자 재조합기술을 이용해서 효소를 대량 생산하여 세레자임이라는 약제를 만들어 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효소대치술 치료만 하면 병세가 좋아진다는 것을 아는 그녀는 고통으로 일그러진 어린 환자를 외면할 수 없었다. 의학유전학회에 참석하기 위해 미국에 간 기회에 그녀는 보스턴에 있는 고셔병 치료제 제조회사인 젠자임을 직접 찾아가 약제를 구입해 왔다. 치료를 시작하고 다섯 달이 되자 멈추었던 성장이 다시 시작되는 약효가 나타났다. 단 한 사람의 고셔병 소녀를 치료하기 위해서 그녀는 그렇게 노력을 집중했다.
김현주가 대한의학유전학회에 나가 한국에서 처음으로 효소대치술로 고셔병 환자를 성공적으로 치료한 사례를 발표한 것은 1996년 11월이다. 이듬해 아주대학병원 유전학클리닉은 고셔병 등록사업을 통해서 파악한 여덟 가족을 초대하여 ‘한국고셔모임’을 열었다. 이 것이 한국의 첫 번째 희귀병환자 모임이다. 그녀는 이렇게 한 발 한 발 빠져들면서 한국 희귀병의 고뇌와 아픔을 온 몸으로 운반하게 된다.

베체트 병 시인의 난치병
베체트 병을 앓는 조한풍은 농민문학작가상을 탄 시인이다. 터키 의사 베체트에 의해 처음 밝혀진 이 희귀병은 자가 면역 결함으로 일어나는 것으로 추정된다. 눈과 입 속, 복부 등에 궤양이 나타나는 고질이다. 김현주는 조한풍이 희귀병을 앓고 있는 모든 사람을 위해서 지은 시 ‘난치병과 나’를 읽어보라고 한다.

희귀병이 초래한 비극이 있었다. 2002년 광주에서 한 아버지가 3대에 걸쳐 가족 5명에게 나타난 유전병을 비관하여 아들의 목을 졸라 살해한 사건이다. 언론은 이 유전질환이 ‘윌슨병’이라고 단정해서 보도했다. 윌슨병은 체내에 흡수된 구리성분이 간과 뇌, 신장, 각막 등에 축적되어 간경화, 뇌이상, 손발 떨림, 언어장애 등의 증상이 나타나는 선천성질환이다. 그러나 김현주는 열성 유전인 윌슨병이 부모에서 자식으로 대물림되지 않기 때문에 윌슨병은 아니라고 진단했다. 아직 정확한 병명을 붙일 수 없지만 우성 유전질환이 분명하다는 것이다.
희귀병은 종류가 다양하다. 희귀병 중에는 ‘행복한 웃음’을 앓는 병도 있다. 스무명 정도가 앓는 엔젤만 증후군이라는 질병인데 모계의 염색체 결손으로 발달지체, 언어 손실, 사지 떨림 등 증상을 보인다.

김현주의 분노
1994년 아주대학병원 개원과 더불어 국내에서 처음으로 유전학 클리닉을 열 때만 해도 그녀는 전문의로서 처방과 치료에 전념하면 될 줄 알았다. 자신은 사회적 여건을 조성하러 온 운동가도 아니고 수호천사도 아니므로 번거로운 복지사업은 내가 상관할 바 아니라고 여겼다. 그런데 심각한 희귀병 환경과 맞닥뜨리자 그녀는 한 걸음 한 걸음 운동가의 길로 끌려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그것을 그녀는 ‘필연성에 의한 업보’라고 표현한다.
그녀는 함께 아주대학교에 초빙된 남편 김효철 박사(혈액종양학)가 의료원 원장 자리에 앉아있다고 해도 의학유전학 클리닉의 발전에 남편 덕을 본 것은 하나도 없다고 단언한다. 공과 사를 분명히 한다는 남편의 결벽증 때문이라는 말이다.
“병원 지원도 없다. 기업 지원도 없다. 정부 지원도 없다.” 김현주는 의학계와 의료계의 기득권 세력이 이기심에 매달리는 꼴이 참을 수 없다고 말한다. 그녀가 세운 한국희귀질환연맹은 사무실이 따로 없고 비좁은 진료실 한 귀퉁이를 쪼개 쓰고 있다. 그녀가 펴는 캠페인의 하나는 한국희귀질환연맹을 매개로 희귀병 환자 가족 모임을 거미줄처럼 짜나가는 일이다.
그녀가 11년 간 분투한 결과는 SBS의 ‘사랑의 릴레이 운동’과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행’에 집약된다. 1998년 1월 SBS가 처음으로 ‘또 하나의 그늘, 고셔병을 앓는 아이들’을 문성근의 ‘그것이 알고싶다’에 방영하자 희귀병에 대한 사회적 반향이 일어났다. 소구력을 가진 영상매체가 그녀의 운동을 이해하고 합세함으로서 홀로 달려가던 그녀는 고립에서 벗어나게 된다. 이런 움직임이 모든 희귀병 환자들을 도울 수 있는 ‘사랑의 릴레이’로 발전한 것은 2001년 4월이다. 사랑의 릴레이는 사회가 희귀병 환자에게 도움을 주면, 도움을 받은 환자가 도움이 필요한 다른 환자에게 도움을 주어서 희귀질환 환자들에게 두루 희망을 뿌려가자는 운동이다.
어느 새 정년퇴임을 눈앞에 둔 그녀는 2005년 11월 정기총회에서 대한의학유전학회 회장에 취임했다. 그녀는 앞으로 뛰어서 이루어 내야할 제2세대 임상 유전 전문인 양성계획을 세웠다. 희귀병 환자를 진단하고 치료할 능력을 갖춘 임상 유전학 전문의, 유전 상담을 통해서 환자와 가족들에게 희귀질환을 이해시키고 유전검사를 받을 수 있도록 지원해줄 유전상담사를 양성하는 교육 프로그램과 ‘인증제도’를 확립하는 사업이다.
한국 의료복지에 희귀질환을 편입시킨 제1세대 공로자인 그녀는 새로운 제2세대 전문가를 배출할 징검다리를 놓고있다.

본지 칼럼니스트

김현주는
1942년 생. 연세의대를 졸업한 뒤 미국에 유학, 소아과 전문의가 되고 1982년 미국 임상유전학 전문의 자격을 획득했다. 뉴욕 다운스테이트 의대 교수 등을 역임, 1994년 아주의대가 초빙하여 국내에 첫 의학유전학과를 개설. 한국희귀질환연맹을 세우고, ‘사랑의 릴레이 운동’을 펼치는 한편 SBS ‘세상에서 가장아름다운여행’ 솔루션위원장으로 참여하는 등 전천후 활동을 하고 있다. 2006년 대한의학유전학회 회장에 취임하여 제2세대 임상유전학 전문의와 유전상담사의 양성계획을 실천에 옮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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