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반된 자녀교육 철학으로 갈등 겪는 부부의 해법 찾기

소신파 남편 vs 정보파 아내, 사교육 광풍 앞에 냉전 중

지역내일 2006-06-22
사교육 문제를 놓고 부부 사이에 서로 못마땅하게 바라본 적이 한 번쯤은 있을 것 같다. 학기 초보다 점점 심해지는 아내의 교육열과 더욱 바빠지는 아이들의 학원행. 하지만 멀찌감치 서있는 남편은 왜 그렇게 해야만 하는지 납득할 수 없을 때가 있다. 그러다보니 남편과 얘기하면 말이 안 통한다며 조용히 비자금을 만들어 학원비 보태는 아내도 있고, 노심초사 남편을 설득시킬 갖은 노력을 하기도 한다는데. 사교육 앞에 벽을 느끼는 부부들은 어떻게 해법을 찾을까.

“아빠! 돈 버세요~ 우리가 쓰잖아요~” ‘아빠 힘내세요’ 노래의 아빠 버전이다. 사교육의 성패는 ‘아빠의 경제력과 엄마 정보력의 합작품’이라는 말까지 나오는 요즘, 사교육 열풍에 편승한 아내와 이에 결사반대하며 굳은 소신으로 일관하려는 남편 사이에 말다툼은 자연스럽기까지 하다.
학원에 다니지 않으면 엄마까지 소외된다는 말이며 0세부터 시작한다는 초조기교육 열풍을 눈으로 확인할 길 없는 게 직장에 갇혀 지내는 아빠들의 세상살이다. 인터넷 한 게시판에는 세태를 믿을 수 없다는 듯 한 일곱 살 딸을 둔 아빠의 진지한 물음도 올라와있다.
“요즘 1학년들은 한글, 영어, 수학, 한자까지 다 알고 들어갑니까? 정말 사교육 받지 않고 학교 수업만으로는 다른 아이들을 도저히 따라가지 못하나요?” 친구들 대부분 오후에 학원을 돌다 보니 놀이터에서 만날 수 있는 친구가 없다는 아내 말도 그로선 믿을 수 없다고 했다.
좋은 학원 찾느라 발품 파는 아내, 맹모삼천지교를 주장하는 아내를 보며 “어디가 됐든 아이 하기 나름이야”라든가 “학원 안 다니고도 잘 된 사람 많아” 같은 말을 내뱉는 남편을 보면 벽을 느끼기는 아내도 마찬가지다. 남편 반대 때문에 초등학교 5년 동안 영어 학원을 보내지 않다가 최근 고액 강좌에 등록한 김민선 씨(39·가명)는 “학원을 보내고 안 보내고는 부모의 소신이지만, 그 때문에 아이가 받는 소외감이나 열등감은 소신을 심어주는 것만으로 감싸지지 않았다. 남편이 놓치기 쉬운 부분은 바로 이러한 아이의 섬세한 감정”이라고 말한다.
남편의 소신에도 아내의 열성에도 분명 나름의 이유와 교육 철학은 있다. 다만 이에 대한 공유 없이 그저 인성교육만 중시하는 세상물정 모르는 남편, 사교육 편승에 극성인 아내로만 서로를 바라보는 부부들. 극과 극으로 치닫는 교육철학에 통하지 않는 대화로 말문이 막힌다는 부부들의 이야기와 그 속에서 찾은 해법을 들어봤다.

사례 1. 남편들의 불만_불안해 못 견디는 아내 ‘소신도 없나?’
초등학교 입학 전까지 학습지 한 번 안 시키며 ‘물 흐르는 대로 키우자’는 소신을 지녔던 이 아무개씨 부부. 그러나 1학년 입학 후론 사교육 논쟁이 시시때때 부부싸움을 일으키고 있다. 학교만 갔다 오면 ‘피아노 필수더라, 논술도 벌써 하더라, 영어학원 안 다니는 애가 없더라’ 열변을 토하는 아내(35·서초구 우면동)와 이에 ‘아줌마들 먼저 정신차려야 한다’ 반격을 가하는 남편(37)의 접전.
“아내는 남들 다 하는데 우리 애만 못해 비교되는 게 안타깝다고 한다. 내 아이는 다르다면서 아내가 결국 좇는 건 남들의 ‘기준’이다. 남들 하는 것에 편승하지 않으면 불안해하며 기준선상에 놓여야만 편안해한다. 다양성과 개성을 인정하지 못하고 남들과 같지 않으면 배척하는 풍토가 안타깝다.”
김선엽 씨(37·경기도 평촌)도 사교육 열성 정도로 아이가 남보다 나아질 거라 생각하는 건 오산이이라고 생각한다. “아내는 아이의 흥미보다 비교 기준을 중시하는 경향이 있다. 또한 그 비교 기준은 항상 위로만 향해 있는 게 문제다. 내 아이답게 키우기보다 사회 속에 딱 맞는 아이로 키우고 싶어 한다. 남들보다 더 나은 아이가 아니라 내 아이만의 기질을 살려주는 게 옳지 않을까?”
이들은 때론 뚜렷한 소신 없이 엄마들 사이 경쟁과 따라 잡기식 교육에 욕심내는 아내가 실망스럽다고 했다.
최영선 씨(45·경기도 분당)는 멀리 보지 못하는 아내의 시야가 조금 안타깝다. 수행평가 1~2점만 낮게 나와도 남의 아이 성적을 기가 막히게 알아내는 엄마들. 공부 잘하는 아이 엄마들과만 교류하려고 해 상처를 많이 입었다는 아내의 말도 이해는 간다. “그 안에서 내 아내 혼자, 중요한 것은 성적이 아니라고 외칠 순 없는 노릇이라는 건 잘 안다. 하지만 내 아내만큼은 그런 풍토에만 연연하지 않고 넓은 세상을 봤으면 한다”.
정동민 씨(38·경기도 수원시)도 막연히 사교육 과목수가 늘 때마다 뿌듯해하는 아내가 불만이다. 학원에 다녀야만 공부를 잘할 수 있다는 아내의 신조에 동조할 수 없다는데, 아이들의 성적을 올리고 싶다면 학원 교육이나 공부 강요가 아니라 학습 의지와 흥미를 심어주는 것이지 먼저라는 것이다.
“내 경험에 비춰볼 때 재수 기간 동안 성적이 크게 올랐다. 그것이 학원만의 힘일까? 결코 그렇지 않다. 스스로 필요성을 깨달은 자발적인 공부와 타의에 의한 강제적 의무 이행의 결과는 하늘과 땅 차이”라는 것. 아닌 것을 다그쳐서 만드는 것은 부모의 허영 섞인 이기심뿐이란 지적도 덧붙인다.
그는 설령 돈이 있다한들 아이를 사교육의 전장으로 밀어 넣고 싶은 생각은 전혀 없다면서 우리 애가 뭐든 제일 잘 하는 사람이 되길 기대하지 말자고 아내에게 늘 말한다. 다만 모르는 것을 창피하게 여기지 않고 노력해서 깨치는 기쁨을 알았으면 좋겠다고 한다. 그런 태도를 기를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게 부모의 역할이란 소신 때문이다.

사례 2. 아내들의 반격_소외되고 자신감 잃는 아이는 어찌하라고?
소신파 남편들은 사교육 열풍 세태에 아내의 귀가 얇아지고 흔들리는 모습을 안타까워한다. 당장 눈앞의 현실만 생각할 뿐 아이의 행복과 미래를 놓치고 있다면서 말이다. 하지만 아내들의 말을 들어보면 눈앞의 나무만 보고 큰 숲을 보지 못하는 사람은 오히려 남편이라고 답답해한다.
일곱 살 난 딸 아이 영어유치원 문제를 두고 석 달 가까이 냉전을 벌였다는 한 부부. 남편 주아무개 씨(38·서초구 반포동)는 친구들이 모두 영어유치원으로 옮긴다며 거금이 필요하다는 아내 말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일곱 살은 일곱 살에 필요한 것들을 채우며 자라길 원한다. 이렇게 생각하는 내가 정녕 세상 물정 모르는 무책임한 아빠일까?”
아내 양아무개 씨(32)의 대답은 ‘yes’다. “초등학교에 가서 자기만 영어유치원을 안 나왔다며 울었다는 아이 이야기를 들었다. 어른은 소신으로 일관할 수 있지만 아이는 감정으로 움직인다. 아이가 소외감 느끼지 않고 잘 적응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자는 게 내 생각이다.” 엄마들이 중시하는 건 단지 ‘학원행’이 아닌 그에서 비롯되는 교우 관계와 자신감이라는 것이다.
이희령씨(33·경기도 안양시)는 “대화에서 소외되고 끼리끼리 학원 버스 타는 친구들 앞에 의기 소침하는 아이를 보며 그래도 너는 놀이터에서 뛰어놀아야 한다고 밀어붙일 수 있는 엄마가 얼마나 될까?”라고 묻는다. 아이들 사이 오가는 대화를 한두 번만 유심히 들어도 가벼워질 문제를 ‘사교육’ 자체로만 보는 남편의 편협한 시각이 오히려 문제라고 지적한다.
엄마들은 공부 시키려거든 일찍부터 습관을 들여야 하며 공부 시키는 게 남는 거라는 생각도 한다. 한기성 씨(42·경기도 안산시)도 이 문제를 두고 최근 아내와 언쟁을 벌였다. 어느 학원에 보낼까 고심하는 아내를 보며 “아무리 좋은 선생 붙여봐. 애가 안 받아들이면 효과 없어”란 말을 했다가 오히려 공격을 받았다.
“학교에 보내보니 하기 싫다고 안 할 수 있는 공부가 아니다. 받아들이고 안 받아들이고의 문제가 아니라 공부니까 해야 하는 거라는 자포자기까지 들곤 한다. 흥미가 없으면 소용없다고 말하지만 나는 자극을 통해 흥미를 찾아낼 수도 있다고 본다. 그래서 가능한 방법을 동원하며 그것이 계기가 되기를 기대하는 것”이라는 게 아내의 주장이다.
분명 아내의 말에도 일리는 있는 것 같단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하기 싫은 공부를 하며 현재의 행복을 놓치고 사는 아이에게 100퍼센트 확실치도 않은 앞날의 행복이 무슨 의미가 있을지 씁쓸해한다.

사례 3 합일점 찾기_엄마, 아빠가 아닌 아이의 입장에서
이렇게 남편과는 대화가 안 되지만 그래도 아이 교육은 시키고 봐야 한다는 게 엄마들의 입장. 그래서 절대 돌아서지 않을 남편을 설득하느라 벌이는 고군분투가 곳곳에서 벌어진다.
고미경 씨(38·경기도 용인시)는 입시 제도나 현실 무관심에서 빚어진 의견 불일치라면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직시시키는 것만이 최선이라는 입장이다. 논술 열풍이며 사교육 관련 기사를 일일이 프린트하고 스크랩해두었다가 밑줄까지 쳐서 남편에게 보여주기를 몇 차례. 일부의 얘기인 줄 알고 치맛바람 운운하며 엄마가 가장 좋은 선생님이라 외치던 남편이 수북한 기사의 마지막 장을 넘길 즈음 “사교육도 잘만 활용하면 좋지”하면서 꼬리를 내렸단다. “엄마가 해줄 수 있는 한계를 가장 먼저 설득했다. 그리고 아이에게 그것이 왜 필요한지는 기사를 보여주며 납득하게 했다”는 것.
김수영 씨(43·동작구 사당동)는 본인 표현 그대로라면 ‘목에 칼이 들어와도 사교육은 안 된다’던 남편에게 영어 과외를 시켜달라는 아들 얘기를 꺼냈다. 아들의 성적은 상위권이지만 영어 회화 실력이 좀 떨어졌다.
“회화는 혼자 할 수 있는 게 아닌데도 남편은 고집을 꺾지 않았다. 하지만 아이가 당했을 상처를 생각하니 마음이 아팠는지 객관적인 평가를 받아보자고 했다. 같이 학원에 가서 레벨테스트를 받아보고 나서야 남편은 고집을 꺾었다.”
학원에선 “같은 학년 친구들과 그룹수업을 하기에는 수준이 많이 떨어져 있으니 몇 달간이라도 1인 집중 수업을 받아 어느 정도 수준이 올려놓아야 한다”고 했다. 좀 충격을 받았는지 고민하던 정씨는 신조를 꺾고 영어회화 과외비를 건넸다.
아이의 의지에 무너지는 건 어느 부모나 마찬가지다. 차라리 강아지랑 뛰노는 게 훨씬 얻는 게 더 많다면서 사교육 일체를 반대하던 아빠가 ‘하고 싶다’고 반복하는 아이의 말에는 ‘빚을 내서라도 시켜주겠다’며 영어에 과학까지 등록시켰단다. 그래서 이서연 씨(33·경기도 용인시)는 이제 자신의 목소리가 아닌 아이의 목소리로 학원비를 청구한다. 이렇게 아내의 생각과 아이의 의지가 남편의 소신을 꺾을 때도 있지만, 반대로 남편의 소신에 아내의 불안함이 잠재워지는 것으로 합일점을 찾는 부부도 없지 않다.
연년생 두 아들을 대학 진학시키기까지 그간 사교육 문제로 부부 갈등도 많았다는 박숙경 씨(50·대전시 서구)가 그런 경우다.
“문제는 왜 싫은 공부를 해야 하는지 또는 왜 나는 하고 싶은데 안 시켜주는지, 말은 안하지만 불만이 가득한 아이의 맘을 읽지 못하는 부모다. 경쟁이라는 치열한 현장 속에서 상처 받았을 자식을 애정으로 대하고 각자의 교육철학을 내세우기보다 부모를 필요로 할 때 도와줄 수 있는 마음가짐을 갖추는 것이 최선 아닐까.”
그래도 이렇게 아이 교육에 대해 관심을 가진 아빠들은 좀 낫다. 자녀 교육은 엄마 몫이라며 아이가 학원에 가는지, 무엇을 배우는지 전혀 관심 없는 아빠들에 비하면 말이다. 아빠의 경제력만으로 아이가 잘 자랄 순 없고 엄마의 정보력만으로 아이가 행복할 수 없으니까. 아이가 원하는 것을 가장 필요로 할 때 적절히 해줄 수 있는 능력을 가진 부모 되기. 역시 요즘 부모 노릇은 참 어렵다.
취재 최유정 리포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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