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말 바꾸는 미국 앞에
동요하는 한국 사회
“개성공단식 소통방법 좋다”던 미국, 1년만에 태도 바꿔
미국의 한마디에 남북경협의 존속 여부를 놓고 한국 사회가 벌집을 쑤신 듯 동요하고 있다. 1년 동안 개성공단·금강산사업에 대한 미국측 평가가 긍정에서 부정으로, 또 일부 긍정으로 수시로 바뀌고 있지만 그 때마다 한국은 ‘일희일비’하며 혼란스러워하고 있다.
북한 핵실험이라는 초유의 사태와 야당·보수층의 공세 앞에 중심을 잡지 못한 정부가 스스로 혼란을 자초한 측면도 적지 않다.
라이스 미 국무장관은 16일(현지시간)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사업을 계속한다는 한국 정부 방침에 대해 질문을 받고 “한국이 북한과의 활동 전반에 관해 어떤 결정을 내릴지 지켜볼 것”이라며 사실상 남북경협 전반에 이의를 제기했다. 그는 “한국의 대북 활동의 많은 부분이 북한이 하는 일(핵개발 등)과 관계가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며 적극적인 대북제재 조치를 주문하기도 했다.
라이스 장관이 북핵사태 협의를 위해 19일 방한할 예정이고 보면 한국 정부에 ‘현금이 제공되는 남북경협을 전면 재검토하라’고 압박한 것으로 충분히 해석할 수 있다.
◆미, 국무장관과 차관보도 딴 목소리 =
하지만 지난해 12월 당시 정동영 통일부 장관에게 “개성공단과 같은 방식으로 북한과 상호소통하는 것은 상당히 좋은 것”이라고 얘기했던 사람이 바로 라이스 장관이다. 데이비드 샘슨 상무부 부장관은 당시 “개성공단 사업을 중요하게 생각하며 미국도 이 사업이 성공하도록 지원할 것”이라고 말하기까지 했다.
또 18일 방한한 크리스 힐 미 국무부 차관보(6자회담 수석대표)는 “개성공단 사업은 북한의 경제개혁 측면에서 이해하지만 그 외 다른 사업은 잘 이해하지 못하겠다”고 말했다. 불과 2~3일만에 국무장관과 국무부 차관보가 딴 목소리를 내고 있는 것이다.
지금은 미국이 남북경협 전반을 문제삼는지, 아니면 금강산관광만을 지적하는지조차 불분명하다. 그럼에도 국내에서는 미국의 강경발언이 나올 때마다 ‘유엔 대북제재 결의안이 채택된 만큼 미국 뜻을 존중해 현금이 제공되는 남북경협 전체를 중단해야한다’는 여론이 들끓고 있다.
유엔 대북제재 결의안은 ‘각국의 법 절차에 따라 북한의 대량살상무기(WMD) 프로그램을 지원하는 자금을 동결하라’며 자율권을 보장하고 있다. 따라서 남북경협의 핵심사업인 개성공단·금강산관광 사업이 북한의 WMD 개발자금으로 전용되느냐 여부는 한국 정부가 판단할 수 있다. 오히려 한반도 긴장완화에 도움이 되는 측면을 강조할 수도 있다.
개성공단은 북한의 최단거리 서울 공격루트를 차단하는 군사적 효과가 있다. 개성공단 때문에 북한은 인민군 6사단, 64사단, 62포병여단 등 육군 부대를 송악산 이북과 개풍군 일대의 후방으로 물렸다. 또 개성-문산-서울의 최단거리 남침 진격로 한 가운데 개성공단이 자리함에 따라 서울을 남침으로부터 보호하는 역할도 한다(내일신문 10월 16일자 4면 참조).
금강산 관광사업 역시 마찬가지 효과가 있다. 북한은 1998년 금강산 사업이 시작되면서 장전항에 있던 군항을 후방으로 밀어냈다.
◆“미국은 WMD 정책실패 핑계를 찾는 중” =
외교부 당국자는 “미국은 지금 이라크전 실패의 핑계를 찾기 위해 노력중”이라고 분석했다. 미국은 2002년 ‘악의 축’으로 이라크, 이란, 북한을 꼽았다. 그리고 2003년 3월, 이라크의 WMD를 찾겠다며 전쟁을 시작했다. 하지만 2000명이 넘는 미군을 희생하고도 미국은 WMD를 찾지 못했다. 미국이 이라크전 수렁에 빠진 사이 정작 북한에서 전격 핵실험을 단행해버렸다. 이에 따라 부시 행정부는 ‘WMD 정책이 표적을 잘못 맞춰도 한창 잘못 맞췄다’는 비난에 직면해 있다.
지금 미국은 ‘북한이 외부의 도움으로 WMD 개발에 성공했고 미국으로서는 사전예방이 불가능했다’는 핑계를 절실히 필요한 상태이며 한국의 ‘현금지급형 남북경협’이 그 희생양이 되고 있다.
물론 이 과정에서 한국 정부가 혼란을 자초한 측면도 있다. 외교부와 통일부는 핵실험을 규탄하는 유엔 결의안(1718호)가 채택되기 전 이미 ‘개성공단과 금강산관광은 WMD와 무관한 만큼 결의안이 어떻게 채택되든 사업은 존속된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하지만 윤태영 청와대 대변인은 12일 금강산 관광과 개성공단 사업 지속 여부와 관련, “최종 판단을 내린 것은 없다”고 외교·통일부와 딴 목소리를 냈다. 국민은 혼란스러워졌고 ‘외교안보라인 엇박자’ 비난 앞에 정부는 할 말이 없어졌다.
조숭호 기자 shcho@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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