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정신 못 차렸다”
“우리만 봉이냐”
사례 #1.
올해 중순.
외교부 정기인사를 앞두고 재외공관 근무에 현직 지방경찰청장이 도전했다. ㅈ청장은 준비를 잘 했는지 업무적합평가와 외국어능력시험까지 통과했다. 하지만 ㅈ청장은 공관으로 나가지 못했다. 외교부가 ‘재외공관 자리를 내줬으니 경찰도 같은 직급의 외교관이 갈 수 있는 자리를 내놓으라’고 요구했기 때문이다. 결국 이 인사는 없던 일이 됐다.
사례 #2.
지난 1일.
행정자치부 출신의 김호영 유엔 거버넌스센터 원장이 신임 외교부 2차관으로 부임했다. 외교부로선 김 차관이 온 것도 충격이었지만 이대로 당할 수는 없는 일. 외교부는 ‘행자부 출신이 차관으로 왔으니 거버넌스센터 원장 자리는 외교부 출신이 가야한다’는 논리로 중앙인사위원회에 들이밀었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까지 배출했으니 유엔 산하기구는 당연히 외교부 몫이라는 정서법도 동원했다.
하지만 그 자리는 외교부 몫이 아닌 현직의 광역지자체 행정부시장 몫으로 굳어지고 있다. ‘우리 부처에서 자리를 내줬으면 당연히 다른 부처도 한 자리는 내놔야지…’라는 생각에 빠진 외교부는 아직도 어디에서 잘못 됐는지 모르고 있다.
인사(人事)가 만사(萬事)라는 말이 있다. 특히 공무원 사회는 인사를 위해서라면 물불 가리지 않는다. 자신의 밥그릇 챙기기만이 아니다. 부처의 밥그릇(인사몫)을 잘 챙기는 사람이 ‘능력있다’고 평가받는다.
특히 외교부는 타 부처와 달리 외무고시라는 별도의 시험으로 공무원이 된다. ‘순혈주의’를 주장할 수 있었던 것도 이 때문이다. 평가기준이 다르다고 보기 때문이다. 해외여행이 자유롭지 못하던 시절, 외교관 근무는 선망의 대상이자 큰 특권이기도 했다. 하지만 세월이 흐르고 세상이 변하고 있다.
외교부는 “2002년 정부 부처 사상 최초로 직위분류제와 직위공모제를 도입한 인사혁신 선도부처”라고 자임하고 있다. 올 6월 현재 필수 공모대상 직위가 179개나 된다고 한다.
반면 외교관의 꽃이라고 불리는 재외공관장 자리는 여전히 외교부 출신이 독식하고 있다.
한국은 현재 129개 상주 대사관 또는 (총)영사관을 운영하고 있다. 이 가운데 전문 외교관이 아닌 민간 전문가 또는 타 부처 출신 공관장이 운영을 맡고 있는 ‘특임’ 자리는 17곳에 지나지 않는다. 비율로는 10%를 겨우 넘었다.
타 부처와 인사교류에 있어 외교부는 1대1 맞교환 방식을 고수하고 있다. 타 부처도 원칙적으로는 비슷하다. 하지만 외교부는 업무 특성상 광범위한 정부부처에 인력을 파견하고 있다.(오른쪽 표 참조).
때문에 인사교류라는 점에서 보면 외교부는 타 부처에 큰 소리 칠 형편이 아니다. 외교부는 참여정부 출범 이후 타부처에 170명을 파견근무시키고 있다. 반면 타 부처로부터 파견을 받은 인원은 46명에 지나지 않는다. 국민의 정부 시절에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183명을 각 부처로 내보냈던 외교부는 다른 부처로부터 고작 35명밖에 받지 않았다. 파견받는 인원이 파견보내는 인원의 4배가 넘는다.
올해 8월 1일부터 정부 각 중앙부처에서는 고위공무원단(고공단) 제도가 시행되고 있다. 이 제도는 복지부동·서열중심의 공무원 사회에 활력을 불어넣자는 취지로 도입됐다. 실·국장급(1~3급) 고위공무원 1300여명을 고공단으로 묶는 일종의 인력 풀(pool) 제도다. 능력이 있다면 하급자도 상급자를 통솔할 수 있으며 그 반대 경우도 가능하도록 했다.
하지만 외교관들은 여기 동참하지 않고 있다. 업무의 특수성 때문이라는 이유에서다. 대신 외교부는 현재 고공단 시행에 맞춰 외교공무원법 개정안을 국회에 계류해 두고 있다.
외교부는 올해부터 대명제도를 도입했다. 대명(待命)이란 말 그대로 명을 받는다는 뜻으로 일정기간 보직을 받지 못하면 외교관 신분을 뺏겠다는 제도다. 직급에 따라 180일~1년6개월의 대명기간이 주어진다. 그 기간이 지나고도 보직을 받지 못하면 퇴직해야한다.
외교부는 참여정부 들어 업무상 특수성과 ‘계량할 수 없는 외교역량’ 평가에서 큰 차별을 받고 있다고 느끼고 있다. 특히 정부 출범 초기 ‘동맹파와 자주파 싸움’으로 대변되는 미국 일변도 외교 타파 과정에서 정권과 심각한 갈등을 겪었다. 현직 윤영관 외교장관이 경질되고 외교부내에 ‘탈레반이 있다’는 풍문이 도는 등 감정적인 상처를 깊숙이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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