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로 칼럼>대학원 공동화와 선진국 진입(설동훈 2007.01.05)

지역내일 2007-01-02 (수정 2007-01-05 오전 6:14:31)
대학원 공동화와 선진국 진입
설동훈 전북대 교수, 사회학

한국 대학 졸업생의 해외 유학 열풍은 실로 엄청난 수준이다. 특히 선진 학문과 ‘미국식 영어’를 배울 수 있으며, 졸업 후에도 ‘가장 잘 팔리는’ 미국 유학에 대한 선호는 단연 세계 최고 수준이다. 미국 고등교육신문 ‘더 크로니클 오브 하이어 에듀케이션’(The Chronicle of Higher Education)의 2005년 1월 7일 기사에 의하면, 1999∼2003년 미국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사람의 학부 출신 외국대학 중에서 한국의 주요 대학들이 최상위권을 차지하였다.
서울대가 1655명으로 단연 1위였고, 연세대가 720명으로 5위, 고려대가 445명으로 8위, 한양대가 323명으로 18위를 차지하였다. 서울대는 미국 대학들을 포함시킨 전체 순위에서도 버클리 소재 캘리포니아대의 2175명에 이어 두 번째였다. 한국 대학 전체의 미국 박사 수는 3143명으로 중국(4854명)에 이어 두 번째였다. 인구를 고려하면 단연 세계 1위를 차지한 것이다. 한국의 명문대학들은 공식적으로는 ‘대학원 중심 대학’을 표방하고 있으나 실제로는 미국의 대학원에 수많은 학부 졸업생을 공급하는 ‘학부 중심 대학’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해외유학 열풍은 곧바로 국내 대학원 입시 미달 사태로 이어졌다. 서울대 2007학년도 1학기 대학원 신입생 모집에서 석사과정은 213개 모집단위 중 37개, 박사과정은 182개 모집단위 중 30개 단위에서 미달하였다. 상대적으로 가장 사정이 좋은 축에 드는 서울대조차 2001년 이후 대학원 박사과정 입시에서 정원을 채우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상당수 지방대학들은 대학원 공동화(空洞化) 위기에 봉착하고 있다.
대학원 학생 충원의 어려움은 대학원 졸업생, 즉 국내박사가 노동시장에서 푸대접 받는 관행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2006년 12월 26일 동아일보가 전국 166개 대학의 2001∼2006년 신임교수 채용현황을 분석·보도한 기사에 따르면, ‘박사학위 취득자 중 교수 임용자의 비율’은 국내 박사는 14.5%에 불과했으나, 외국 박사는 47.5%였다. 외국 박사의 교수 임용률이 국내 박사의 세 배 이상이었다.
국내 대학원에 진학하여 박사학위를 취득하더라도 대학에서 자리를 잡는 것은 ‘하늘의 별 따기’ 식으로 어렵지만, 외국의 명문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으면 국내 유수의 대학에서 교수직을 쉽사리 구할 수 있다는 암묵적 법칙이 대학생들 사이에서 공유되고 있다. ‘또래 압박’(peer pressure) 때문에, 대학생들은 친구들보다 뒤처지지 않기 위해서라도 국내 대학원보다는 해외유학을 선호한다.
국내에서 학부나 대학원을 졸업한 뒤 취업을 하려면 수백 대 일의 경쟁을 뚫어야 하지만, 해외 유수의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으면 연구소·기업 등에 훨씬 쉽게 취직할 수 있다는 것도 이제 상식이 되었다. 좋은 일자리를 제공하는 거의 모든 조직에서 외국 박사를 선호하는 경향이 뚜렷해지면서, 국내 대학원의 공동화 현상은 해가 갈수록 더욱 심해지고 있다.
‘노동시장에서 국내박사의 푸대접’ 원인은 약간 엇갈리지만 두 개로 요약할 수 있다. 어떤 사람들은 국내 일부 대학에서 대학원 학사관리를 부실하게 운영하여 실력 없는 박사를 배출해왔다고 비판한다. 다른 사람들은 외국 유수 대학 졸업장이 없으면 취업이 거의 불가능한 상황에서 어느 누가 열심히 공부하겠느냐고 반문하는 한편, 우수한 실력을 가진 국내박사들조차 ‘좋은 일자리’에서 체계적으로 배제되고 있음을 지적한다. 즉, 대학원 공동화 현상을 타개하기 위해서는 ‘국내 대학원생의 실력 배양’과 ‘전문기술직 노동시장에서의 국내박사 차별 철폐’라는 이중의 과제를 달성해야 한다.
선진 사회는 1인당 국민소득 수준만 높아지면 저절로 달성되는 것은 결코 아니다. 경제뿐 아니라 사회의 다른 영역도 같은 수준으로 높아져야 한다. 미국 독일 프랑스 영국 일본 등 선진국 중에서 자국 사회를 이끌어가는 엘리트를 외국 대학과 대학원 유학을 통해 길러내는 나라가 어디 있는가를 따져보면, ‘대학원 공동화’는 단순히 전문기술인력 공급의 위기에 그치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학문의 보편성만큼이나 주체성도 중요하다. 국내 대학에서 선진학문을 가르치고 우수인재를 배출할 수 있는 기반을 조속히 마련하지 못하면, 선진 한국은 미래상은 모래성처럼 허약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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