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존중 기업경영의 승리
김영호 (시사평론가 언론광장 공동대표)
IMF 사태는 참혹했다. 금리폭등, 환율폭등, 물가폭등, 집단도산, 대량해고, 임금삭감, 자살속출, 가정파탄, 학업포기 등등…. 하루아침에 내습한 경제파탄은 온 나라를 초토화하는 핵탄의 위력을 발휘했다. 나라가 망하는구나 하는 충격으로 다가왔다. 외자를 유치하여 나라를 살리려면 해고가 자유로워야 한다는 쪽으로 소리가 모아졌다. 기업을 살리기 위해서도 노동시장의 유연성이 꼭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김대중 정권이 미국식 고용제도를 도입했다. 호황-불황에 따라 고용-해고를 자유롭게 만든 것이다. 해고를 제도적으로 보장함으로써 단시일내에 외자도입과 기업회생을 촉진한다는 정책구상이다. 먼저 인력감축과 임금삭감을 단행하고 그 다음 고용창출을 통해 실업문제를 해결한다고 말이다. 하지만 기업의 입장은 다르다. 구조조정을 인력감축으로 알고 인건비 절약에만 주력한다. 그 까닭에 정규직보다 비정규직을 선호한다. 여기에다 급속히 진전되는 자동화-전산화가 ‘무고용 성장’(jobless growth)으로 나타나 한몫 한다.
우리은행이 던진 신선한 충격
IMF사태 이후 10년이 지났다. 명예퇴직이니 조기퇴직이니 해서 무더기로 직장에서 쫓겨났다. 신규직은 되도록 비정규직으로 채용한다. 정부는 전체 노동자의 35.5%인 546만명이 비정규직이라고 말한다. 이에 맞서 노동계는 전체의 55.0%인 845만명이라고 주장한다. 어느 쪽이 맞든 틀림없는 사실은 비정규직이 양산된다는 점이다. 같은 일을 해도 돈을 절반밖에 못 받는다. 밥 먹으러 갈 때도 따로 간다. 더러는 사내식당의 식단이 다르고 통근버스가 있어도 타지 못한다. 무엇보다도 언제 쫓겨날지 모르는 불안에 떤다. 신분제도나 다름없는 인간차별이다.
미국에서도 이런 노동정책에 대한 비판이 높다. ‘살인자 자본주의’(killer capitalism)라는 것이다. 경기변동에 대비하여 사내에 잉여인력을 유보하기보다는 해고를 상시화한다. 사원복지보다는 주주이익을 중시한다. 주가를 띄우고 배당을 늘리려고 수시로 감원한다. 그 결과 훈련된 인력 부족으로 경기상승에 민첩하게 대응하지 못해 기업경쟁력이 약화된다. 고용불안이 미국사회를 빈민화시킨다는 주장도 만만찮다. 절도, 폭행, 살인 등 범죄증가는 물론이고 자살, 이혼, 질병도 노동정책에 상당한 원인이 있다는 것이다. 해고의 공포가 노동자의 정신을 황폐하게 만들어 알코올 중독, 마약복용도 늘어난다고 한다.
미국식 노동제도가 이 나라에도 많은 문제점을 던진다. 상시적 해고가 자리를 잡으면서 마흔이 넘으면 하루살이 마냥 고용불안에 떨며 산다. 중산층을 급속히 붕괴시키고 세대간의 갈등을 심화시킨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으로 양분되는 고용구조가 직종간-직무간의 갈등양상을 빚는데 그치지 않고 사회구조의 양극화로 치닫는다. 고용불안→사회불안→정치불안으로 이어지는 연쇄파동으로 계층간-세대간의 마찰음이 높다. 인간부재의 고용구조가 빚는 갈등구조이다.
이런 의미에서 지난해 12월 우리은행의 노사합의는 신선한 충격을 던진다. 전체 직원의 28%인 비정규직 3151명을 정규직으로 전환한다는 내용이다. 고용보장과 복리후생에서 정규직과 같이 대우한다는 것이다. 앞으로 임금격차를 어떻게 완화해 나가느냐는 난제이다. 하지만 정규직이 임금동결이라는 희생을 감수한다는 점에서 쉬운 결단이 아니다. 비정규직은 임금의 문제를 떠나서 인간차별이다. 이런 고용구조에서는 창의성, 자발성을 기대하는 데 한계가 있다.
캐논은 뜨고 소니는 지고
1990년대 장기불황을 겪은 일본에서도 해고선풍이 불었다. 평생직장의 개념이 뿌리 깊은 나라에서 많은 기업들이 전통적인 연공서열, 종신고용의 경영방식을 버렸다. 그리곤 주주이익을 최우선으로 하는 미국식의 능력주의, 성과주의를 채택했다. 그러나 연공서열을 파기하되 종신고용은 고수한 캐논은 일본 전자산업의 승자로 뜨고 있다. 대조적으로 전자산업의 대명사인 소니는 지는 모습이다. 2005년 외국인 CEO를 영입하여 종업원 1만명 감축과 11개 공장폐쇄를 단행했지만 경영개선의 효과가 크지 않는 모양이다.
일본이 낳은 위대한 기업인, 고 마쓰시타 고노스케는 인재중시, 노사협력, 종신고용을 기업경영의 가장 큰 덕목으로 꼽았다. 그가 창업한 마쓰시타전기는 내셔널과 파나소닉이란 브랜드를 두 손에 들고 세계 20위의 다국적기업으로 우뚝 섰다. 65세 정년을 자랑하는 도요타는 미국의 GM를 위협하며 세계 자동차의 최강자로 자리 매김하고 있다. 인간존중의 기업경영이 일군 승리다.
Copyright ⓒThe Naeil News. All rights reserved.
김영호 (시사평론가 언론광장 공동대표)
IMF 사태는 참혹했다. 금리폭등, 환율폭등, 물가폭등, 집단도산, 대량해고, 임금삭감, 자살속출, 가정파탄, 학업포기 등등…. 하루아침에 내습한 경제파탄은 온 나라를 초토화하는 핵탄의 위력을 발휘했다. 나라가 망하는구나 하는 충격으로 다가왔다. 외자를 유치하여 나라를 살리려면 해고가 자유로워야 한다는 쪽으로 소리가 모아졌다. 기업을 살리기 위해서도 노동시장의 유연성이 꼭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김대중 정권이 미국식 고용제도를 도입했다. 호황-불황에 따라 고용-해고를 자유롭게 만든 것이다. 해고를 제도적으로 보장함으로써 단시일내에 외자도입과 기업회생을 촉진한다는 정책구상이다. 먼저 인력감축과 임금삭감을 단행하고 그 다음 고용창출을 통해 실업문제를 해결한다고 말이다. 하지만 기업의 입장은 다르다. 구조조정을 인력감축으로 알고 인건비 절약에만 주력한다. 그 까닭에 정규직보다 비정규직을 선호한다. 여기에다 급속히 진전되는 자동화-전산화가 ‘무고용 성장’(jobless growth)으로 나타나 한몫 한다.
우리은행이 던진 신선한 충격
IMF사태 이후 10년이 지났다. 명예퇴직이니 조기퇴직이니 해서 무더기로 직장에서 쫓겨났다. 신규직은 되도록 비정규직으로 채용한다. 정부는 전체 노동자의 35.5%인 546만명이 비정규직이라고 말한다. 이에 맞서 노동계는 전체의 55.0%인 845만명이라고 주장한다. 어느 쪽이 맞든 틀림없는 사실은 비정규직이 양산된다는 점이다. 같은 일을 해도 돈을 절반밖에 못 받는다. 밥 먹으러 갈 때도 따로 간다. 더러는 사내식당의 식단이 다르고 통근버스가 있어도 타지 못한다. 무엇보다도 언제 쫓겨날지 모르는 불안에 떤다. 신분제도나 다름없는 인간차별이다.
미국에서도 이런 노동정책에 대한 비판이 높다. ‘살인자 자본주의’(killer capitalism)라는 것이다. 경기변동에 대비하여 사내에 잉여인력을 유보하기보다는 해고를 상시화한다. 사원복지보다는 주주이익을 중시한다. 주가를 띄우고 배당을 늘리려고 수시로 감원한다. 그 결과 훈련된 인력 부족으로 경기상승에 민첩하게 대응하지 못해 기업경쟁력이 약화된다. 고용불안이 미국사회를 빈민화시킨다는 주장도 만만찮다. 절도, 폭행, 살인 등 범죄증가는 물론이고 자살, 이혼, 질병도 노동정책에 상당한 원인이 있다는 것이다. 해고의 공포가 노동자의 정신을 황폐하게 만들어 알코올 중독, 마약복용도 늘어난다고 한다.
미국식 노동제도가 이 나라에도 많은 문제점을 던진다. 상시적 해고가 자리를 잡으면서 마흔이 넘으면 하루살이 마냥 고용불안에 떨며 산다. 중산층을 급속히 붕괴시키고 세대간의 갈등을 심화시킨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으로 양분되는 고용구조가 직종간-직무간의 갈등양상을 빚는데 그치지 않고 사회구조의 양극화로 치닫는다. 고용불안→사회불안→정치불안으로 이어지는 연쇄파동으로 계층간-세대간의 마찰음이 높다. 인간부재의 고용구조가 빚는 갈등구조이다.
이런 의미에서 지난해 12월 우리은행의 노사합의는 신선한 충격을 던진다. 전체 직원의 28%인 비정규직 3151명을 정규직으로 전환한다는 내용이다. 고용보장과 복리후생에서 정규직과 같이 대우한다는 것이다. 앞으로 임금격차를 어떻게 완화해 나가느냐는 난제이다. 하지만 정규직이 임금동결이라는 희생을 감수한다는 점에서 쉬운 결단이 아니다. 비정규직은 임금의 문제를 떠나서 인간차별이다. 이런 고용구조에서는 창의성, 자발성을 기대하는 데 한계가 있다.
캐논은 뜨고 소니는 지고
1990년대 장기불황을 겪은 일본에서도 해고선풍이 불었다. 평생직장의 개념이 뿌리 깊은 나라에서 많은 기업들이 전통적인 연공서열, 종신고용의 경영방식을 버렸다. 그리곤 주주이익을 최우선으로 하는 미국식의 능력주의, 성과주의를 채택했다. 그러나 연공서열을 파기하되 종신고용은 고수한 캐논은 일본 전자산업의 승자로 뜨고 있다. 대조적으로 전자산업의 대명사인 소니는 지는 모습이다. 2005년 외국인 CEO를 영입하여 종업원 1만명 감축과 11개 공장폐쇄를 단행했지만 경영개선의 효과가 크지 않는 모양이다.
일본이 낳은 위대한 기업인, 고 마쓰시타 고노스케는 인재중시, 노사협력, 종신고용을 기업경영의 가장 큰 덕목으로 꼽았다. 그가 창업한 마쓰시타전기는 내셔널과 파나소닉이란 브랜드를 두 손에 들고 세계 20위의 다국적기업으로 우뚝 섰다. 65세 정년을 자랑하는 도요타는 미국의 GM를 위협하며 세계 자동차의 최강자로 자리 매김하고 있다. 인간존중의 기업경영이 일군 승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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