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년기획: IMF10년-10면 기고글

지역내일 2006-12-28 (수정 2006-12-28 오전 10:20:35)
풍요롭고 품격 있는 사회와 사회적 자본

김태종 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

얼마 전 선배 교수님 댁에 경사가 있었다. 첫 며느리를 맞으신 것이었다. 며느리가 된 분은 핀란드 사람이었다. 혼례와 사돈댁과의 상견례를 위해 열흘간 핀란드를 다녀오신 교수님 말씀이 인상적이었다. “참 핀란드 사람들 느낌이 이상합디다. 남이 이야기를 할 때 무슨 계산으로 저런 이야기를 할까 속으로 따져 보는 기색이 없고, 무슨 말을 해도 믿을 것 같은 분위기였어요.” 사회적 자본(social capital)은 이 “분위기”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선진국 따라잡기, 근대화의 길을 달려오면서 우리는 1인당 국민소득으로 대표되는 외형적 지표로 우리의 위치를 이해하고 다른 나라와 비교하는 데 익숙해졌다. 하지만 사회의 “분위기”, “질감”의 차이에는 아직 둔감한 것이 아닌가. 푸근하고 품격 있는 사회가 있고, 각박하고 불신이 넘치는 사회도 있다. 사회적 자본이 풍부한 사회와 그렇지 못한 사회의 차이다.
“귀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을 신뢰할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귀하는 처음 만나는 사람을 신뢰할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이러한 설문에 대한 응답으로 통상 측정하는 이른바 사회신뢰 (social trust)는 사회적 자본의 핵심을 이룬다고 보아도 좋다. 사회신뢰와 대칭을 이루는 개념으로 특수화된 신뢰 (particularized trust)가 있다. 잘 알고 지내는 가족, 친구, 동료 등에 대한 신뢰를 말한다.
우리나라의 사회적 자본의 실태를 요약하여 표현하면 이렇게 된다. “특수화된 신뢰는 높지만 사회신뢰는 낮다.” 서구의 나라들과 비교하여 우리는 친구의 수가 많다. 직장동료와 근무 끝난 후 많은 시간을 함께 지내고, 동창회, 향우회 등의 모임에 비교적 자주 얼굴을 내민다. 하지만 연고의 울타리를 넘어서는 순간 서로에 대한 신뢰는 급격하게 떨어진다. 자원봉사단체, 공익을 위한 시민단체, 정당에서의 활동은 극히 일부에 국한되어 있다. 친구 찾기, 친구 만들기에 열심인 우리의 모습은 사회신뢰가 낮은 사회에서의 자기방어기제인지도 모른다.
문제는 지금 수준의 사회신뢰를 가지고 우리가 바라는 풍요롭고 품격 있는 선진사회를 만들어 가는 것이 무망하다는 것이다. 혁신을 위해서는 아이디어를 가진 사람과 자본을 가진 사람의 신뢰가 필요하다. 지식기반경제에서는 지식노동자의 자발적 협력을 끌어 낼 수 있는지가 기업의 성패를 가른다. 세계화, 노령화의 물결 속에서 사회적 안전망을 정비해 나가겠지만, 사람들의 다양한 복지 수요를 만족시키기 위해서는 공적 제도의 사각을 매워줄 자발적 복지제도가 긴요하다. 교육 등 사회의 각 분야에 필요한 제도의 개혁을 위해서도 높은 사회신뢰가 필요하고, 개혁의 논의와 실행 과정에서 사회신뢰를 높여가는 지혜가 요구된다.
어떻게 하면 사회신뢰를 높일 수 있는가. 개인 수준에서 친구와 만나 술을 마시고 연고의 울타리를 튼튼히 하는 것은 개인이 동원할 수 있는 사회적 자본의 양을 늘리고 특수화된 신뢰를 두텁게 하겠지만 공정한 절차를 무시하고 끼리끼리 문제를 해결하는 사회에 사회신뢰의 미래는 없다.
최근 실험경제학(experimental economics)에서 각광을 받고 있는 이론 가운데 호혜성의 원리 (reciprocity)가 있다. 이 가설에 따르면 사람은 물질적 손해를 보더라도 공정하고 친절하게 행동하는 사람에게는 공정하고 친절하게 대하고 싶어 한다고 한다. 금전적 손해를 보더라도 상대방의 기회주의적인 행동에는 보복하고 싶어 한다고 한다. 심리적 만족이 물질적 손해를 일정 범위 내에서 보상해 줄 수 있다는 것이다. 호혜성에 따라 행동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을 신뢰하고 공영을 위해 협력할 용의가 있다. 하지만 자신의 선의가 다른 사람들의 기회주의적 행동에 이용되고 말 뿐이라는 것을 알게 되면 냉소적으로 되고 협력을 포기한다고 한다.
사회신뢰를 높이기 위해서는 시민사회의 역할도 필요하고, 기업과 노조가 맡아야 할 부분도 있다. 우리 교육의 모습도 돌아보아야 할 곳이 많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권력을 쥐고 있거나 권력에 가까운 사람들이 게임의 규칙을 위반하고도 처벌받지 않는 일이 없도록 사법제도의 질을 높이고 감시의 눈길을 게을리 하지 않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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