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창재 칼럼>“죽지나 말지, 죽지나 말지…”

지역내일 2007-01-26
“죽지나 말지, 죽지나 말지…”
문창재 (본지 객원 논설위원)

“죽지나 말지, 죽지나 말지, 하는 말만 나온다. 왜 이리 허망한지 몰라.”
인혁당 재건위 사건 사형수 8명에 대한 대법원 최종판결이 무효라는 서울중앙지법의 판결 후 한 사형수의 아내가 독백처럼 토해낸 말이다. 누가 죽고 싶어 죽었나. 32년 세월을 싸워 원하는 판결을 얻었건만 허망하기만 하다는 그 말은 잠시 하던 일을 멈추게 하였다.
오래 힘이 되어준 문정현 신부 가슴에 머리를 묻었던 한 사형수 부인의 슬픈 얼굴은 온통 물기로 번들거렸다. 청상으로 살아온 오랜 고통의 세월이 깊은 주름살로 패인 것을 보면서, 유가족들에게 뒤늦은 명예회복이 무슨 소용인지를 묻고 싶었다.
두 차례의 인혁당 사건은 현대 한국의 대표적인 공안 조작사건이었다. 아무 실체도 없었던 두 번째 사건이 첫 사건보다 형량이 가혹했다는 점만 보아도 조작성을 알 만하다. 1964년 8월 중앙정보부(중정)로부터 사건을 송치 받은 서울지검 공안부 검사들은 사건이 되지 않는 것을 기소하라는 상부의 압력에 사표로 저항하였다.

어마어마한 공안사건으로 조작
“증거가 아무것도 없었다. 불온서적, 판매금지 된 책 한권도 찾아볼 수 없었다. … 피의자 전원이 수사 중 고문당했다는 말만 하고 앉았고, 인민혁명당 그런 말을 들어본 기억조차 없다고 했다.”(학민사 발행 사법살인-1975년 4월의 학살)
증거물 하나 없이 중정에서 송치되어 온 국가보안법 위반 국가변란 기도사건이라는 것을 연장수사까지 해보아도 혐의를 발견할 수 없었던 당시 서울지검 이용훈 공안부장과 장원찬· 김병리 검사는 사건이 안 된다는 결론을 내리고 사표를 냈다. 검찰 수뇌부는 숙직검사를 시켜 기소하게 했지만 서울고검의 재수사를 통해 14명은 공소취하하고 12명은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를 반공법 위반으로 공소변경해 재판에 회부하였다.
1심판결 결과는 도예종과 양춘우 피고인에게만 각각 징역3년과 징역2년 형이 선고되었을 뿐, 나머지 피고인은 모두 무죄였다. 이런 사건이 10년 뒤 8명을 무더기로 교수대에 세운 어마어마한 공안사건으로 조작되었다.
1975년 4월 중정은 1차사건의 주모자 도예종 등이 인혁당재건위원회를 결성해 국가변란을 꾀했다는 혐의를 씌워 무더기로 잡아 들였다. 북한의 사주를 받아 민청학련 배후에서 학생시위를 조종하고 정부전복과 노동자 농민에 의한 정부수립을 기도했다는 것이 중정의 발표 내용이었다. 무려 253명이 구속되어 군법회의에 묶여간 전대미문의 조작극이었다.
서울대 재학생들이 주축이었던 민청학련 관계자들은 사형선고를 받은 사람조차 대부분 재판 도중에 석방되었지만 인혁당 재건위 사건 8명에게는 무죄였던 사람에게까지 사형이 선고되었다. 사건은 대법원으로 넘겨져 1975년 4월 8일 드디어 전원에게 사형을 확정한 ‘역사적’인 판결이 뒤따랐다. 그 판결을 보도한 TV 뉴스에 놀란 국민이 잠에서 깨어나기도 전인 다음날 새벽 8명의 교수형이 집행되었다.
그렇게 서둘러 형을 집행할 이유가 무언가, 왜 유가족에게 전해진 유언들이 조작되었는가, 왜 영결식장으로 가던 유해들이 기동경찰의 완력으로 화장터로 끌려가 강제 화장을 당했는가. 이런 수많은 의혹들은 그 후 30 여 년 동안 금기중의 금기가 되어 입에 담는 것조차 용납되지 않았다.
이런 야만을 합법화 해주었던 1975년 4월의 대법원 판결을 뒤집은 23일 서울중앙지법의 재심판결은 ‘겨울 공화국’ 시절 잘못된 법원의 결정에 대한 사법광정의 의지로 볼 수 있겠다. 너무 늦었어도 다행한 일이지만, 이번 결정을 사법살인 종언의 계기로 승화시키는 노력이 필요하다. 다시는 사법살인이 재연될 수 없도록 사형 제도를 폐기하는 일이다.
어떤 이유로도 인간이 인간의 생명을 빼앗는 일은 옳지 못하다. 그 주체가 국가와 제도라 해도 마찬가지다. 제도가 있는 한 사형에 대한 유혹을 떨칠 수 없는 것이 권력의 심리다.

한국을 사형폐지국가로
올해로 10년째 사형집행이 없는 한국은 사실상 사형제도 폐지국가가 되어가고 있다. 그것만으로는 안 된다. 명문규정으로 확실하게 사형제도 폐지를 못 박을 필요가 있다. 앰네스티는 2006년을 ‘한국의 사형제도 폐지의 해’로 정해 집중 캠페인을 벌였었다.
국가인권위원회도 사형제도 폐지 입장을 공식화 했고, 법무부도 폐지검토 의사를 밝힌 바 있다. 여야 의원 175명도 제도 폐지 결의안을 내놓았다. 분위기는 이 정도면 충분하다. 남은 것은 모두 팔을 걷어붙이고, 한국을 세계 119번째 사형 폐지국가로 만드는 일이다.
Copyright ⓒThe Naeil News. All rights reserved.

위 기사의 법적인 책임과 권한은 내일엘엠씨에 있습니다.
<저작권자 ©내일엘엠씨,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제보

닫기
(주)내일엘엠씨(이하 '회사'라 함)은 개인정보보호법을 준수하고 있으며, 지역내일 미디어 사이트와 관련하여 아래와 같이 개인정보 수집∙이용(제공)에 대한 귀하의 동의를 받고자 합니다. 내용을 자세히 읽으신 후 동의 여부를 결정하여 주십시오. [관련법령 개인정보보호법 제15조, 제17조, 제22조, 제23조, 제24조] 회사는 이용자의 개인정보를 중요시하며,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개인정보보호법」을 준수하기 위하여 노력하고 있습니다.
회사는 개인정보처리방침을 통하여 회사가 이용자로부터 제공받은 개인정보를 어떠한 용도와 방식으로 이용하고 있으며, 개인정보보호를 위해 어떠한 조치를 취하고 있는지 알려드립니다.


1) 수집 방법
지역내일 미디어 기사제보

2) 수집하는 개인정보의 이용 목적
기사 제보 확인 및 운영

3) 수집 항목
필수 : 이름, 이메일 / 제보내용
선택 : 휴대폰
※인터넷 서비스 이용과정에서 아래 개인정보 항목이 자동으로 생성되어 수집될 수 있습니다. (IP 주소, 쿠키, MAC 주소, 서비스 이용 기록, 방문 기록, 불량 이용 기록 등)

4) 보유 및 이용기간
① 회사는 정보주체에게 동의 받은 개인정보 보유기간이 경과하거나 개인정보의 처리 목적이 달성된 경우 지체 없이 개인정보를 복구·재생 할 수 없도록 파기합니다. 다만, 다른 법률에 따라 개인정보를 보존하여야 하는 경우에는 해당 기간 동안 개인정보를 보존합니다.
② 처리목적에 따른 개인정보의 보유기간은 다음과 같습니다.
- 문의 등록일로부터 3개월

※ 관계 법령
이용자의 인터넷 로그 등 로그 기록 / 이용자의 접속자 추적 자료 : 3개월 (통신비밀보호법)

5) 수집 거부의 권리
귀하는 개인정보 수집·이용에 동의하지 않으실 수 있습니다. 다만, 수집 거부 시 문의하기 기능이 제한됩니다.
이름*
휴대폰
이메일*
제목*
내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