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로 칼럼="">대선 후보들 통일비전 낙제점
임재경/언론인
‘세월아 어서 가거라’하며 달력의 그날치 숫자에 X자를 치는 심경은 오늘의 고통스러움을 내일의 희망을 통해 완화하고자 하는 인간 본래의 모습일 터이다. 비근한 예로 대학 입시를 앞둔 고3 학생들의 안쓰러운 처지를 상상해보라.
필자의 개인적 경험으로는 징집을 당해 휴전선 최전방에 배치되어 엄동설한에 배를 곯던 1950년대 중반이 바로 그러한 시기에 해당한다. 제대 이후에 금시 좋은 일이 기다리고 있었던 것도 아니었고 단지 현재 상태가 견딜 수 없을 만큼 지겨웠던 때문이다.
미래에 거는 인간의 무의식적 기대를 사회주의 철학자 에른스트 블로흐(Ernst Bloch 1885-1977)가 말했던 <희망의 원리="">에서 원용할 필요는 없을지 모르나 유토피아를 과거가 아니라 미래에서 찾는다는 점 하나만으로도 확실히 프로이드보다 한 걸음 앞선 것이다.
고달픈 사람들의 이러한 ‘달력 날짜 지우기’와는 전혀 다른 방향의 초읽기(count-down) 현상이 지금 우리 눈앞에 벌어지고 있다. 그것은 다 아는 대로 차기 대통령선거를 겨냥한 이른바 대선 예비 주자들의 언행인데 가장 최근의 것으로는 먼저 이회창 한나라당 총재의 ‘대북 정책 전면 수정론’을 들 수 있겠다.
냉전논리 회귀한 이 총재의 전면수정론
이 총재는 북한이 변화하고 있다는 김대통령의 북한관을 변경할 것, 햇볕정책의 기조를 상호주의로 전환할 것, 투명성 검증의 원칙을 채택할 것 등 대여섯 가지인데 그 내용을 비유컨대 달력의 지나간 날짜들이 아니라 다가올 앞날의 날짜를 전부 먹칠하는 격, 아니 달력 앞장을 아주 뜯어 내버리는 것과 흡사하다. 달리 표현한다면 2000년 6월 15일 이전 남북관계가 최악의 상태에 있던 1992년 중반 혹은 1970년 후반으로 되돌아가자는 이야기나 다름없다. 이 총재 말대로라면 분단 극복을 위하여 우리가 할 일은 아무것도 없으며 오로지 미국 국무성과 국방성의 지시에 따르는 일만이 남아있는 것이다.
지구가 미소 양대 진영으로 나뉘어 어느 한 쪽 진영에 가담하지 않으면 존립이 불안정했던 시절, 즉 냉전시대의 논리로 이 총재는 회귀하고 있다. 국정의 책임을 지겠다는 정당의 지도자가 이런 정도의 세계관을 지니고 있음은 겨레의 앞날을 위해 심히 유감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더 불행한 것은 6·15를 도출해낸 집권 여당내부의 자천, 타천 대권 예비후보들이 멀게는 미국의 부시 대통령 취임, 가깝게는 김대중 대통령의 방미 이후 남북관계 내지 햇볕정책에 대하여 한결같이 입을 봉하고 있는 현실이다. 이회창 한나라당 총재의 대북정책 전면 수정론은 대통령 선거를 겨냥하고 집권당 흔들기에 일차적 목적이 있다고 할 때 여당 내부 대권 예비후보들의 함구는 무엇을 가리키는 것인가.
답변은 듣지 않아도 알만하다. 미국정부의 비위를 거스르는 입방아를 찧다가는 대권은 아예 물 건너 가기 십상이라는, 좋게 말하여 정치적 현실주의, 투박하게 표현하면 속 들여다 보이는 사대주의적 계산이다. 그들이 사석에서 약소국의 비애를 토로할는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주권국가의 대통령은 국민이 선출한다는 사실을 망각한 것이다.
사대주의라는 말이 나온 김에 한 마디 더 보태면 미-소 양대 진영이 핵무기를 전쟁 억제수단으로 하며 서로 으르렁거리며 약소국들을 각기의 진영에 붙들어 매놓았던 시대에는 미국을 사대하는 것이 단기적 내지 중기적 소강상태와 소비 생활의 현상유지를 일정 범위 안에서 보장하는 면이 없지 않았다. 하지만 현 시점에서는 단기적으로는 남북 간의 우발 사태 야기, 중기적으로는 동북아세아의 불안 증폭, 장기적으로는 민족 자립의 저해 등의 요인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더 높은 것이다.
여권의 대통령 예비후보들의 함구가 김대통령 방미와 관련된 자체 평가에 혼선이 빚어지고 있는 점과 전혀 무관치는 않다 하더라도 그들이 평소에 분단극복에 대한 신념이 확고했던들 지금처럼 대북정책에 대한 여론이 표류상태로 방치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여권 대선 후보들의 기회주의적 함구
6·15 선언의 장래는 미국의 새정부가 들어선 이후라야 확실해진다는 기회주의적 태도가 정치권 전반에 만연되어 있었던 면이 엿보인다. 그렇다. 사대주의는 사후적 강제의 결과가 아니라 중요 결단을 사대의 필요시까지 유보해두는 심리상태라 하는 편이 더 적절하다.
거대 언론매체들이 대선 예비후보자들 이상으로 사대주의에 물들어 있는 참담한 현실을 외면하여서는 안되지만 적어도 대권주자들이 입을 모아 6·15정신에 대한 올바른 몽적 발언을 하였던들 오늘날과 같은 국내외의 역류는 모면했을지 모른다.
대통령선거와 관련된 실질적 일정은 향후 1년 이상을 남겨놓았다. 하지만 분단극복의 비전에 관한 예비후보자들의 성적표는 예외없이 낙제감이다. 김대중 대통령의 최대치적으로 남을 6·15 선언을 계승할 나라의 지도자를 어느 곳에서 찾아야 할 지가 이제 새로운 과제로 떠올랐다.
임재경/언론인희망의>신문로>
임재경/언론인
‘세월아 어서 가거라’하며 달력의 그날치 숫자에 X자를 치는 심경은 오늘의 고통스러움을 내일의 희망을 통해 완화하고자 하는 인간 본래의 모습일 터이다. 비근한 예로 대학 입시를 앞둔 고3 학생들의 안쓰러운 처지를 상상해보라.
필자의 개인적 경험으로는 징집을 당해 휴전선 최전방에 배치되어 엄동설한에 배를 곯던 1950년대 중반이 바로 그러한 시기에 해당한다. 제대 이후에 금시 좋은 일이 기다리고 있었던 것도 아니었고 단지 현재 상태가 견딜 수 없을 만큼 지겨웠던 때문이다.
미래에 거는 인간의 무의식적 기대를 사회주의 철학자 에른스트 블로흐(Ernst Bloch 1885-1977)가 말했던 <희망의 원리="">에서 원용할 필요는 없을지 모르나 유토피아를 과거가 아니라 미래에서 찾는다는 점 하나만으로도 확실히 프로이드보다 한 걸음 앞선 것이다.
고달픈 사람들의 이러한 ‘달력 날짜 지우기’와는 전혀 다른 방향의 초읽기(count-down) 현상이 지금 우리 눈앞에 벌어지고 있다. 그것은 다 아는 대로 차기 대통령선거를 겨냥한 이른바 대선 예비 주자들의 언행인데 가장 최근의 것으로는 먼저 이회창 한나라당 총재의 ‘대북 정책 전면 수정론’을 들 수 있겠다.
냉전논리 회귀한 이 총재의 전면수정론
이 총재는 북한이 변화하고 있다는 김대통령의 북한관을 변경할 것, 햇볕정책의 기조를 상호주의로 전환할 것, 투명성 검증의 원칙을 채택할 것 등 대여섯 가지인데 그 내용을 비유컨대 달력의 지나간 날짜들이 아니라 다가올 앞날의 날짜를 전부 먹칠하는 격, 아니 달력 앞장을 아주 뜯어 내버리는 것과 흡사하다. 달리 표현한다면 2000년 6월 15일 이전 남북관계가 최악의 상태에 있던 1992년 중반 혹은 1970년 후반으로 되돌아가자는 이야기나 다름없다. 이 총재 말대로라면 분단 극복을 위하여 우리가 할 일은 아무것도 없으며 오로지 미국 국무성과 국방성의 지시에 따르는 일만이 남아있는 것이다.
지구가 미소 양대 진영으로 나뉘어 어느 한 쪽 진영에 가담하지 않으면 존립이 불안정했던 시절, 즉 냉전시대의 논리로 이 총재는 회귀하고 있다. 국정의 책임을 지겠다는 정당의 지도자가 이런 정도의 세계관을 지니고 있음은 겨레의 앞날을 위해 심히 유감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더 불행한 것은 6·15를 도출해낸 집권 여당내부의 자천, 타천 대권 예비후보들이 멀게는 미국의 부시 대통령 취임, 가깝게는 김대중 대통령의 방미 이후 남북관계 내지 햇볕정책에 대하여 한결같이 입을 봉하고 있는 현실이다. 이회창 한나라당 총재의 대북정책 전면 수정론은 대통령 선거를 겨냥하고 집권당 흔들기에 일차적 목적이 있다고 할 때 여당 내부 대권 예비후보들의 함구는 무엇을 가리키는 것인가.
답변은 듣지 않아도 알만하다. 미국정부의 비위를 거스르는 입방아를 찧다가는 대권은 아예 물 건너 가기 십상이라는, 좋게 말하여 정치적 현실주의, 투박하게 표현하면 속 들여다 보이는 사대주의적 계산이다. 그들이 사석에서 약소국의 비애를 토로할는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주권국가의 대통령은 국민이 선출한다는 사실을 망각한 것이다.
사대주의라는 말이 나온 김에 한 마디 더 보태면 미-소 양대 진영이 핵무기를 전쟁 억제수단으로 하며 서로 으르렁거리며 약소국들을 각기의 진영에 붙들어 매놓았던 시대에는 미국을 사대하는 것이 단기적 내지 중기적 소강상태와 소비 생활의 현상유지를 일정 범위 안에서 보장하는 면이 없지 않았다. 하지만 현 시점에서는 단기적으로는 남북 간의 우발 사태 야기, 중기적으로는 동북아세아의 불안 증폭, 장기적으로는 민족 자립의 저해 등의 요인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더 높은 것이다.
여권의 대통령 예비후보들의 함구가 김대통령 방미와 관련된 자체 평가에 혼선이 빚어지고 있는 점과 전혀 무관치는 않다 하더라도 그들이 평소에 분단극복에 대한 신념이 확고했던들 지금처럼 대북정책에 대한 여론이 표류상태로 방치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여권 대선 후보들의 기회주의적 함구
6·15 선언의 장래는 미국의 새정부가 들어선 이후라야 확실해진다는 기회주의적 태도가 정치권 전반에 만연되어 있었던 면이 엿보인다. 그렇다. 사대주의는 사후적 강제의 결과가 아니라 중요 결단을 사대의 필요시까지 유보해두는 심리상태라 하는 편이 더 적절하다.
거대 언론매체들이 대선 예비후보자들 이상으로 사대주의에 물들어 있는 참담한 현실을 외면하여서는 안되지만 적어도 대권주자들이 입을 모아 6·15정신에 대한 올바른 몽적 발언을 하였던들 오늘날과 같은 국내외의 역류는 모면했을지 모른다.
대통령선거와 관련된 실질적 일정은 향후 1년 이상을 남겨놓았다. 하지만 분단극복의 비전에 관한 예비후보자들의 성적표는 예외없이 낙제감이다. 김대중 대통령의 최대치적으로 남을 6·15 선언을 계승할 나라의 지도자를 어느 곳에서 찾아야 할 지가 이제 새로운 과제로 떠올랐다.
임재경/언론인희망의>신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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