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규 칼럼>문화 유산 보존과 복원(2007.02.07)

지역내일 2007-02-07
문화 유산 보존과 복원

서울 시내 곳곳에는 옛 도성(都城)의 모습이 남아 있다. 그 중 세월의 향기를 풍기며 옛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한 곳도 있다. 남산이나 인왕산, 북악, 신라호텔 뒤 등 민가가 인접하지 않은 곳에서 찾아 볼 수 있다. 무너진 채 방치된 곳도 있고 아예 사라져 자취를 감춘 곳도 적잖다. 대체로 시가지 구간이 그렇다. 훼손이 심한 곳은 숭례문에서 상공회의소 옆을 지나 서소문과 정동을 거쳐 사직터널 쪽으로 이어지는 부분이다. 중간에 드문드문 흔적이 엿보이지만 학교나 공관의 담장이나 주택의 축대로 남아있는 게 고작이다. 이 구간의 서소문과 돈의문(서대문)은 아예 정확한 자리마저 가늠할 길 조차 없다. 근래 30여 년 전부터 복원된 구간도 있다. 북악, 인왕, 낙산 구간에서 볼 수 있는데 9.7km를 넘는다. 전체 성곽 길이가 18.1km정도이니 절반을 넘는 규모다. 그런데 말끔히 복원한 곳이 오히려 생뚱맞아 보이는 것은 왜일까?
옛 자취대로 남아 있는 서울의 도성은 대체로 숙종 때 것이지만 태조와 세종때 축조한 부분도 군데군데 있다. 도성의 축조기록을 살펴보면 흥미로운 부분이 많다. 태조가 처음 18km 남짓의 도성을 쌓는 데 걸린 기간은 불과 49일이다. 토목 건축공사를 후딱 해치우는 오늘날의 명성이 새삼스러운 건 아닌 모양이다. 이 공사를 위해 전국에서 동원된 인력은 12만 명 정도, 함경도에서 전라, 경상도에 이르기까지 각도에서 차출한 백성들이다. 따라서 공사는 농한기인 정월과 이월을 택했다. 양력으로 치면 2월과 3월인 셈이니 아직 찬바람이 옷깃을 파고 들 때다. 이런 추운 계절에 12만 명의 인부를 어디서 재우고 먹이고 어떻게 통솔했는지 연구 과제다. 도성의 축조 구간은 97구간으로 나누었는데 실명제를 채택해 축조물 부분에 책임자의 이름을 남기게 했다고 한다. 그러니 공사를 대충 대충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으리라. 백성들의 고초가 이만저만 아니었음이 짐작되고도 남는다. 건국 초기에 왕권의 권위를 세우기 위함이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그해 여름에 호우로 상당부분이 훼손되자 태조는 가을걷이가 끝난 후 다시 8만 명을 동원해 토성구간 일부를 돌로 바꾸고 4대문 중 일부를 건설했다고 한다.
그 후 세종 조에 성을 대대적으로 수축하여 흙으로 쌓은 부분을 모두 돌로 바꾸고 키도 높였다. 이때 전국에서 동원된 백성은 32만여 명, 공사기간은 38일이었다. 임진왜란 후인 숙종 조에 이르러서는 대대적인 보수가 이뤄졌다. 이때는 단기간이 아닌 5년간에 걸쳐 공사가 진행됐다. 성곽을 쌓은 돌도 지금의 형태대로 일정 규격의 장방형으로 다듬어 수축했다. 도성은 원래 외침을 막기 위한 것이었지만 그 구실을 제대로 했다는 기록은 없다. 오히려 왕이 도성을 버리고 몽진한 기록만 있을 뿐이다.
이렇듯 선조들의 피와 땀이 서린 도성을 잘 보존하고 가꾸는 일은 중요하다. 그러나 이미 없어진 부분까지 굳이 새롭게 복원할 필요성에 대해서는 생각해 볼 일이다. 허물어진 부분은 추려서 보존하되 굳이 새로 쌓을 필요가 있을지는 의문이다. 역사적 가치가 있는 문화재는 옛 자취대로 남아야 그 역사적 향기가 더 묻어난다. 일제 때 도시계획 등으로 망가진 부분이 적지 않은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그러나 세월의 때가 묻지 않은 복원은 짝퉁일 뿐이다. 문화재에 있어 세월의 때는 보석과도 같은 것이다. 무너진 자취를 더 이상 훼손되지 않게 잘 보존하는 게 오히려 가치 있는 일로 여겨진다. 그리스나 로마의 유적지처럼 세월의 흐름을 그대로 드러내야 문화재적 가치가 더하다. 만약에 없어진 돈의문을 기존의 대로 한복판에 복원해 놓는다고 문화재적 향기가 피어날까? 볼썽만 사나워진다. 존재했었다는 사실을 잘 알려 역사적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새로 복원할 여력이 있다면 남은 부분을 더 잘 관리하고 관광자원 화하는 데 보다 힘 쓸 일이다. 도성에 얽힌 사연이나 그 건축사적 의미를 알리는 표지판이나 홍보물을 더 만들어 많은 사람이 찾아와 보고 느끼게 하는 게 현명하다. 차라리 새로 짓는 공공건물이나 기념물에 한국의 전통적 건축양식을 접합해 후세에 남기는 것이 진정한 전통의 보전이 아니겠는가? 문화재란 인간의 삶을 통해 전해 내려오는 문화적 유산이다. 전통적 양식을 살리면서 현재의 삶에 맞는 문화적 유산을 후세에 남기는 것도 가치 있는 일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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