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정’이 얼마남지 않았다. 필자에게 ‘설’은 고소한 기름냄새로 기억된다. 집안 곳곳에 부침개 냄새가 넘쳐 나고 평소에 만나기 힘든 사촌 형제들이 모이는 때가 바로 설이었다.
그래서 달력에 동그라미를 쳐가면서 설을 기다리곤 했었다. 그런데 요즘 아이들도 손꼽아 설을 기다린다. 일전에 신문에서 보니 아이들이 ‘1년 중 가장 좋아하는 날’이 생일도 크리스마스도 아닌 ‘설날’이란다. 하지만 셈에 밝은 요즘 아이들답게 설을 기다리는 이유가 필자와는 수준이 다르다. 바로 세뱃돈 때문이다. 그래서 평소엔 어른들에게 인사를 시키면 쭈뼛쭈뼛하던 아이들이 설만 되면 시키지 않아도 넙죽넙죽 절도 잘한다. 이렇게 아이들은 세뱃돈으로 불룩해질 주머니를 떠올리며 이제나저제나 설을 기다리고 있다.
하지만 어른들에게는 세뱃돈이 부담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다. 요즘 세뱃돈 인플레이션이 여간 심하지 않은 탓이다. 한 조사 결과에 따르면 초등학생이 설날 받는 세뱃돈 액수가 10만원이 넘는 경우가 보통이라고 한다.
치솟는 물가도 그렇지만 어른들간의 눈치싸움도 세뱃돈 인플레이션에 단단히 한몫을 한듯하다. 설날 세뱃돈을 주기위해 지갑을 열다 보면 나도 모르게 주위를 살피게 된다. 온 가족이 모인 자리니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다. “올해는 세뱃돈으로 얼마나 준비해야 할까?” 설날이 가까워 오면 은근히 세뱃돈이 부담으로 다가올 정도다.
실제 직장인 절반이 세뱃돈 때문에 “설날이 두렵다”고 했다는 조사결과도 있다. 오죽하면 ‘세뱃돈 스트레스’라는 말까지 나왔을까? 그래서 인터넷에는 “ 덕담을 최대한 길게 한다” , “다른 사람들에 끼어서 세배를 받는다”, “애들과 당당히 맞절한다” 등 포복절도 할 ‘세뱃돈 안 주는 방법’까지 등장했다.
본래 새해를 맞이하면서 덕담과 복을 나누는 것이 ‘세배’요 ‘세뱃돈’이다. 하지만 요즘의 세뱃돈은 본래의 의미는 간데없고 아이들에게는 돈을 버는 기회로, 어른들도 아이들에게 건넬 덕담보다 더 신경이 쓰이는 부담스러운 존재가 되어버린 지 오래다.
그래서 이번 설에는 잘못된 ‘세뱃돈 문화’를 바꾸어보자. 우선 세뱃돈의 액수가 적당해야 한다. 세뱃돈이 아이들이 어른을 평가하고, 어른들은 서로의 체면을 관리하는 수단이 되어서는 안 된다. 세뱃돈은 어른이 아니라 아이 수준에 맞게 주어야 한다. 보통 세뱃돈은 아이의 한달 용돈 금액을 넘지 않는 것이 좋다. 또 세뱃돈을 체면치레로 생각하는 문화도 바뀌어야 한다.
가계에 부담이 되더라도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세뱃돈을 주어서는 곤란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어른들끼리의 협조가 필수적이다. 형편이 어려운 친지를 고려해 아예 금액을 통일하거나 각자 적당한 세뱃돈을 낸 다음 그 돈을 모아서 아이들 연령에 따라 나눠 주는 것도 방법이다.
다음은 아이들이 세배를 돈벌이로 착각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점이다.
어렵게 쌓아온 아이들의 경제관념이 언제 와르르 무너질까? 바로 설날 세뱃돈을 받을 때이다. 너무 쉽게 돈을 버는 탓이다. 설날 절 한번 넙죽 하면 몇만 원에서 몇 십만원이 생긴다. 평소에 받는 용돈을 아껴 모으려면 얼마가 걸릴지 모를 큰 금액이다.
그러니 세뱃돈 탓에 돈을 우습게 알거나 분수 넘치는 소비가 나올 수밖에 없다. 그래서 세뱃돈을 놓고 얘기할 때는 신중할 필요가 있다. 특히 “세배하면 돈줄께”, “세뱃돈으로 얼마 벌었니?”라는 식의 말은 문제가 있다. 어떻게 일을 안하고 돈을 버는가? 돈은 하루하루 전쟁같이 치러낸 노동의 대가로 버는 것이다.
하지만 세배는 대가와 상관없이 어른들께 드리는 존경의 표시이고, 세뱃돈 역시 마음으로 주는 선물이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올바른 세뱃돈의 의미를 깨우쳐주기 위해서는 말 한마디에도 세심한 주의가 필요하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세뱃돈을 소비기술을 가르치는 기회로 활용하는 일이다. 옛날 어른들은 세뱃돈을 주실 때 그냥 주시는 법이 없었다. 꼭 봉투에 넣어 겉봉에 ‘책값’, ‘붓 값’ 하고 어디에 쓸지 용도까지 적어 주셨다. 아이들에게 돈 쓰는 지혜를 알려주기 위해서다. 이번 설에 그 지혜를 빌려보자. 세뱃돈 봉투에 돈 관리와 관련한 덕담을 함께 적어 건네는 것이다. 특히 저축·나눔·소비 등 지출항목 별로 구분해 세뱃돈 봉투를 준비해야 한다.
예컨대, ‘저축 봉투’에는 “어릴 때부터 저축하는 습관을 들이는 게 중요하다. 이 세뱃돈으로 네 이름의 통장을 만들면 어떨까?”, 또 ‘나눔 봉투’에는 “돈은 세상을 아름답게 만드는데 쓸 때 더 가치가 높아진다.
이 세뱃돈은 어려운 이웃이나 친구를 도울 때 쓸 돈이다.“, ‘소비 봉투’에는 “돈이란 버는 것뿐 아니라 쓰는 법도 중요하다. 이 세뱃돈으로 돈 잘 쓰는 법을 익히면 좋겠다. 미리 지출 계획을 세워 꼭 필요한 물건만 사야 한다.” 등을 적어주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아이들도 덕담에 담겨진 의미를 새기면서 올바른 소비에 대해 생각해보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다가올 설에는 세뱃돈의 의미도 살리고 소비의 원칙을 일깨워줄 수 있는 세뱃돈 문화를 만들어보자. 설날에 안성맞춤인 금융교육이 될 것이다.
국민은행 연구소 박철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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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달력에 동그라미를 쳐가면서 설을 기다리곤 했었다. 그런데 요즘 아이들도 손꼽아 설을 기다린다. 일전에 신문에서 보니 아이들이 ‘1년 중 가장 좋아하는 날’이 생일도 크리스마스도 아닌 ‘설날’이란다. 하지만 셈에 밝은 요즘 아이들답게 설을 기다리는 이유가 필자와는 수준이 다르다. 바로 세뱃돈 때문이다. 그래서 평소엔 어른들에게 인사를 시키면 쭈뼛쭈뼛하던 아이들이 설만 되면 시키지 않아도 넙죽넙죽 절도 잘한다. 이렇게 아이들은 세뱃돈으로 불룩해질 주머니를 떠올리며 이제나저제나 설을 기다리고 있다.
하지만 어른들에게는 세뱃돈이 부담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다. 요즘 세뱃돈 인플레이션이 여간 심하지 않은 탓이다. 한 조사 결과에 따르면 초등학생이 설날 받는 세뱃돈 액수가 10만원이 넘는 경우가 보통이라고 한다.
치솟는 물가도 그렇지만 어른들간의 눈치싸움도 세뱃돈 인플레이션에 단단히 한몫을 한듯하다. 설날 세뱃돈을 주기위해 지갑을 열다 보면 나도 모르게 주위를 살피게 된다. 온 가족이 모인 자리니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다. “올해는 세뱃돈으로 얼마나 준비해야 할까?” 설날이 가까워 오면 은근히 세뱃돈이 부담으로 다가올 정도다.
실제 직장인 절반이 세뱃돈 때문에 “설날이 두렵다”고 했다는 조사결과도 있다. 오죽하면 ‘세뱃돈 스트레스’라는 말까지 나왔을까? 그래서 인터넷에는 “ 덕담을 최대한 길게 한다” , “다른 사람들에 끼어서 세배를 받는다”, “애들과 당당히 맞절한다” 등 포복절도 할 ‘세뱃돈 안 주는 방법’까지 등장했다.
본래 새해를 맞이하면서 덕담과 복을 나누는 것이 ‘세배’요 ‘세뱃돈’이다. 하지만 요즘의 세뱃돈은 본래의 의미는 간데없고 아이들에게는 돈을 버는 기회로, 어른들도 아이들에게 건넬 덕담보다 더 신경이 쓰이는 부담스러운 존재가 되어버린 지 오래다.
그래서 이번 설에는 잘못된 ‘세뱃돈 문화’를 바꾸어보자. 우선 세뱃돈의 액수가 적당해야 한다. 세뱃돈이 아이들이 어른을 평가하고, 어른들은 서로의 체면을 관리하는 수단이 되어서는 안 된다. 세뱃돈은 어른이 아니라 아이 수준에 맞게 주어야 한다. 보통 세뱃돈은 아이의 한달 용돈 금액을 넘지 않는 것이 좋다. 또 세뱃돈을 체면치레로 생각하는 문화도 바뀌어야 한다.
가계에 부담이 되더라도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세뱃돈을 주어서는 곤란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어른들끼리의 협조가 필수적이다. 형편이 어려운 친지를 고려해 아예 금액을 통일하거나 각자 적당한 세뱃돈을 낸 다음 그 돈을 모아서 아이들 연령에 따라 나눠 주는 것도 방법이다.
다음은 아이들이 세배를 돈벌이로 착각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점이다.
어렵게 쌓아온 아이들의 경제관념이 언제 와르르 무너질까? 바로 설날 세뱃돈을 받을 때이다. 너무 쉽게 돈을 버는 탓이다. 설날 절 한번 넙죽 하면 몇만 원에서 몇 십만원이 생긴다. 평소에 받는 용돈을 아껴 모으려면 얼마가 걸릴지 모를 큰 금액이다.
그러니 세뱃돈 탓에 돈을 우습게 알거나 분수 넘치는 소비가 나올 수밖에 없다. 그래서 세뱃돈을 놓고 얘기할 때는 신중할 필요가 있다. 특히 “세배하면 돈줄께”, “세뱃돈으로 얼마 벌었니?”라는 식의 말은 문제가 있다. 어떻게 일을 안하고 돈을 버는가? 돈은 하루하루 전쟁같이 치러낸 노동의 대가로 버는 것이다.
하지만 세배는 대가와 상관없이 어른들께 드리는 존경의 표시이고, 세뱃돈 역시 마음으로 주는 선물이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올바른 세뱃돈의 의미를 깨우쳐주기 위해서는 말 한마디에도 세심한 주의가 필요하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세뱃돈을 소비기술을 가르치는 기회로 활용하는 일이다. 옛날 어른들은 세뱃돈을 주실 때 그냥 주시는 법이 없었다. 꼭 봉투에 넣어 겉봉에 ‘책값’, ‘붓 값’ 하고 어디에 쓸지 용도까지 적어 주셨다. 아이들에게 돈 쓰는 지혜를 알려주기 위해서다. 이번 설에 그 지혜를 빌려보자. 세뱃돈 봉투에 돈 관리와 관련한 덕담을 함께 적어 건네는 것이다. 특히 저축·나눔·소비 등 지출항목 별로 구분해 세뱃돈 봉투를 준비해야 한다.
예컨대, ‘저축 봉투’에는 “어릴 때부터 저축하는 습관을 들이는 게 중요하다. 이 세뱃돈으로 네 이름의 통장을 만들면 어떨까?”, 또 ‘나눔 봉투’에는 “돈은 세상을 아름답게 만드는데 쓸 때 더 가치가 높아진다.
이 세뱃돈은 어려운 이웃이나 친구를 도울 때 쓸 돈이다.“, ‘소비 봉투’에는 “돈이란 버는 것뿐 아니라 쓰는 법도 중요하다. 이 세뱃돈으로 돈 잘 쓰는 법을 익히면 좋겠다. 미리 지출 계획을 세워 꼭 필요한 물건만 사야 한다.” 등을 적어주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아이들도 덕담에 담겨진 의미를 새기면서 올바른 소비에 대해 생각해보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다가올 설에는 세뱃돈의 의미도 살리고 소비의 원칙을 일깨워줄 수 있는 세뱃돈 문화를 만들어보자. 설날에 안성맞춤인 금융교육이 될 것이다.
국민은행 연구소 박철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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