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통으로 고생하던 이 모씨는 지난 2003년 A병원에서 신경수술을 받았다. 다리가 약간 마비되는 증상이 나타났으나 병원은 별다른 조치 없이 이씨를 퇴원시켰다.
이후 이씨의 증상은 더욱 악화돼 다리가 완전히 마비되는 장애가 발생했다.
졸지에 장애인이 된 이씨는 병원의 의료과실을 이유로 2004년 서울서부지법에 소송을 제기했다. 이씨는 재판과정에서 “시술과 관련 없는 신경, 혈관, 근육 등에 손상을 입혀 장애에 이르게 됐다”며 “병원이 주의의무를 다하지 못해 평생 장애인으로 살게됐다”고 하소연했다.
재판부는 A병원의 과실이 있는지 판단하기 위해 B병원에 진료기록감정 사실조회를 보냈다. 1차 사실조회를 2005년 3월 보냈고 지난해 4월 2차 조회신청을 보냈으나 9일 현재까지 답변이 없다.
감정결과가 나오지 않자 재판장도 더는 못 기다리겠다며 결심을 하겠다고 밝혔지만 이씨 변호인측은 재판부에 기일 연기를 계속 요청하고 있는 상황이다.
병원의 감정결과는 판결의 승패를 결정지을 만큼 중요한 자료로 활용된다. 이런 사정으로 인해 병원이 감정결과를 보내지 않으면 재판이 무기한 지연되는 경우가 발생한다. 의료소송이 장기화되는 주요 원인도 바로 이 때문이다.
의료소송 전문 박윤원 변호사는 “의료소송에서 병원 의료과실에 대한 입증책임은 원고 측에게 있기 때문에 객관적 증거자료는 필수”라며 “제도적 보완을 위해 대한의사협회 내에 회신기구를 생각해 볼 수 있지만 대한의협은 의사의 이익을 대변하는 성격이 있고 또한 회신이 익명으로 오기 때문에 내용이 추상적이고 모호한 경우가 있다”고 말했다.
◆몇달 기다렸는데 회신불가 답변도 = 지난해 서울중앙지법에서는 병원의 진료기록감정·사실조회가 1년 5개월이 넘게 도착하지 않아 사건이 조정으로 끝난 사례도 있다. 이 사건은 2003년도에 소송이 제기됐는데 결국 4년이 지난 후에도 병원의 감정 지연으로 판결이 아닌 조정으로 끝난 것이다.
또한 병원에 감정을 신청하면 몇 개월 후 ‘회신 불가’라는 일방적 통보가 나올 때도 종종 있다. 이럴 경우 몇 개월의 시간이 그냥 허비되고 다시 다른 병원으로 사실조회신청서나 진료기록신청서를 보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한다.
지난해 수원지법에 계류 중인 의료소송사건 가운데 병원이 몇 달 후 ‘회신불가’ 통지를 보내자 화가 난 재판장이 “변호사회가 방법을 강구해서 해당병원에 손해배상이라도 청구하던지 방법을 강구하라”고 원고와 피고측 변호인에게 촉구한 일도 있다.
이런 일이 자주 벌어지는 것은 현재 대한의사협회나 대학병원이 법적으로 회신의무가 없고 그것을 강제할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서울고법, 대체방안 진행 중 = 이러한 문제점 때문에 현재 의료사건 전담재판부인 서울고등법원 민사 17부에서는 준비절차를 전문위원 조정으로 대체하는 방법을 시도하고 있다. 대학병원 각과의 교수가 전문위원으로 위촉된 후 준비절차에 출석, 의학적 의견을 밝히는 것이다.
이 제도로 인해 1심과 반복되게 사실조회 신청 등 증거신청을 할 필요가 없어 시간이 단축되는 효과를 낳고 있다.
하지만 피해자인 원고측 입장에서는 전문위원이 1심판결보다 불리한 의견을 낼 경우 재판부가 그 의견에 상당한 영향을 받아 과실비율을 삭감하는 경우가 있어 전문위원의 신뢰성이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다.
의료소비자시민연대 관계자는 “전문감정인으로 구성된 별도의 자문기구를 설립해야 한다”며 “소송 당사자들의 신뢰 할 수 있도록 객관성과 중립성을 확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경기 기자 cellin@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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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이씨의 증상은 더욱 악화돼 다리가 완전히 마비되는 장애가 발생했다.
졸지에 장애인이 된 이씨는 병원의 의료과실을 이유로 2004년 서울서부지법에 소송을 제기했다. 이씨는 재판과정에서 “시술과 관련 없는 신경, 혈관, 근육 등에 손상을 입혀 장애에 이르게 됐다”며 “병원이 주의의무를 다하지 못해 평생 장애인으로 살게됐다”고 하소연했다.
재판부는 A병원의 과실이 있는지 판단하기 위해 B병원에 진료기록감정 사실조회를 보냈다. 1차 사실조회를 2005년 3월 보냈고 지난해 4월 2차 조회신청을 보냈으나 9일 현재까지 답변이 없다.
감정결과가 나오지 않자 재판장도 더는 못 기다리겠다며 결심을 하겠다고 밝혔지만 이씨 변호인측은 재판부에 기일 연기를 계속 요청하고 있는 상황이다.
병원의 감정결과는 판결의 승패를 결정지을 만큼 중요한 자료로 활용된다. 이런 사정으로 인해 병원이 감정결과를 보내지 않으면 재판이 무기한 지연되는 경우가 발생한다. 의료소송이 장기화되는 주요 원인도 바로 이 때문이다.
의료소송 전문 박윤원 변호사는 “의료소송에서 병원 의료과실에 대한 입증책임은 원고 측에게 있기 때문에 객관적 증거자료는 필수”라며 “제도적 보완을 위해 대한의사협회 내에 회신기구를 생각해 볼 수 있지만 대한의협은 의사의 이익을 대변하는 성격이 있고 또한 회신이 익명으로 오기 때문에 내용이 추상적이고 모호한 경우가 있다”고 말했다.
◆몇달 기다렸는데 회신불가 답변도 = 지난해 서울중앙지법에서는 병원의 진료기록감정·사실조회가 1년 5개월이 넘게 도착하지 않아 사건이 조정으로 끝난 사례도 있다. 이 사건은 2003년도에 소송이 제기됐는데 결국 4년이 지난 후에도 병원의 감정 지연으로 판결이 아닌 조정으로 끝난 것이다.
또한 병원에 감정을 신청하면 몇 개월 후 ‘회신 불가’라는 일방적 통보가 나올 때도 종종 있다. 이럴 경우 몇 개월의 시간이 그냥 허비되고 다시 다른 병원으로 사실조회신청서나 진료기록신청서를 보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한다.
지난해 수원지법에 계류 중인 의료소송사건 가운데 병원이 몇 달 후 ‘회신불가’ 통지를 보내자 화가 난 재판장이 “변호사회가 방법을 강구해서 해당병원에 손해배상이라도 청구하던지 방법을 강구하라”고 원고와 피고측 변호인에게 촉구한 일도 있다.
이런 일이 자주 벌어지는 것은 현재 대한의사협회나 대학병원이 법적으로 회신의무가 없고 그것을 강제할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서울고법, 대체방안 진행 중 = 이러한 문제점 때문에 현재 의료사건 전담재판부인 서울고등법원 민사 17부에서는 준비절차를 전문위원 조정으로 대체하는 방법을 시도하고 있다. 대학병원 각과의 교수가 전문위원으로 위촉된 후 준비절차에 출석, 의학적 의견을 밝히는 것이다.
이 제도로 인해 1심과 반복되게 사실조회 신청 등 증거신청을 할 필요가 없어 시간이 단축되는 효과를 낳고 있다.
하지만 피해자인 원고측 입장에서는 전문위원이 1심판결보다 불리한 의견을 낼 경우 재판부가 그 의견에 상당한 영향을 받아 과실비율을 삭감하는 경우가 있어 전문위원의 신뢰성이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다.
의료소비자시민연대 관계자는 “전문감정인으로 구성된 별도의 자문기구를 설립해야 한다”며 “소송 당사자들의 신뢰 할 수 있도록 객관성과 중립성을 확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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