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봉장 스케치

지역내일 2001-02-27 (수정 2001-02-27 오전 8:06:53)
"어머니, 불효자식이 50년만에야 이렇게 인사를 드립니다." "애비 노릇도 못한 이 못난 애비를 용서
해 다오."
반세기만의 혈육 만남에 상봉장인 서울 서초구 반포동 센트럴시티는 다시한번 눈물바다가 됐다. 남
북 이산가족들은 '어머니', '아버지', '아들아', '형님'을 목놓아 부르며 부둥켜 안은채 떨어질 줄을
몰랐다.
당초 오후 3시 30분부터 시작될 예정이었던 단체상봉이 조금 늦어져 초조한 모습을 보이던 남측 가족
들은 3시 55분 밀레니엄홀에 도착한 북측 상봉단의 모습이 보이자 벌써부터 눈물을 머금기 시작했다.
센트럴시티 밀레니엄홀은 순식간에 가슴벅찬 기운으로 가득찼다.
어떤 이는 부여잡은 손을 놓지 못했고 너무나 많이 변해버린 얼굴에 꿈인지 생신지 분간조차 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망연자실한 모습을 연출하기도 했다.
"마누라도 못 알아보나 왜 못 알아보나."
북측 방문단 가운데 최고령자인 임문빈(86)씨의 아내 남상숙(81)씨는 50년만에 만난 남편의 손을 부여
잡고 왜 못알아보냐며 몇번을 탓했다.
비록 얼굴을 기억하지는 못하지만 딸 태혁(53)씨와 은혁(50)씨는 아버지 품에 안겨 "아버지"라며 목매
어 울었다.
임씨는 아내에게 "딸들을 잘 키워줘 고맙다"며 "그저 고마울 따름"이라는 말만 반복할 수밖에 없었
다.
어머니 모기술(84)씨를 만난 북의 최경석(66)씨는 휠체어에 앉은 어머니를 끌어안고 노래를 불렀다.
다른 가족들도 박수를 치며 장단을 맞췄다. 최씨는 자신이 부른 노래를 '사향가'라고 소개하며 "북한
에서 고향을 그릴 때 즐겨 부르곤 했다"고 설명했다. 최씨는 "오마니, 기쁘죠", "염려 마시라우 오마
니, 통일되면 모시고 살갔시요"라며 부둥켜 안은 어머니를 놓지 못했다.
백발이 성성한 89세의 노모 앞에 세달후면 온다던 아들이 교수가 돼 돌아왔다. 50년 7월 17일에 의용
군으로 가며 가족과 헤어졌던 조원영(69)씨는 어머니를 보자마자 큰절로 인사를 올렸다.
"하늘에서 뚝 떨어졌나봐" 거동이 불편한 어머니 김서운씨는 아들을 보며 언신 믿겨지지 않는다는 듯
이 말했다. "의용군갔다 3개월후에 온다던 애가 이제야 왔어."
"어머니 나 혼자 가서 식구 불려 왔다. 딸이 둘이다"라고 원영씨가 얘기하자 어머니는 "아들은?"하며
아쉬워했고 이에 원영씨는 웃으며 "일없다"고 대답했다.
"옛날에는 얼굴이 통통하니 살이 좋았는데 이제는 얼굴이 갸름해졌구나"라며 원영씨의 얼굴을 연신
어루만지며 아쉬워하던 어머니 김씨는 그러면서도 4년전에 사망한 남편 조용범(당시 88세)씨 이야기
를 하며 그렁그렁한 눈시울을 감추지 못했다.
'향수'의 명시를 남긴 정지용 시인의 아들 구인(67)씨를 만난 남쪽의 형 구관(73)씨는 "아버지 찾으러
간다더니 드디어 왔구나"하며 굵은 눈물을 흘렸다. "이 기쁜 날이 올 줄은… 형님, 고생 많으셨죠?"
북의 동생은 월북시인의 아들로 알려져 남한에서 험한 삶을 헤쳐온 형의 굵은 손마디를 연신 어루만
졌다. 충남 보령 탄광에서의 광부생활과 보따리장사로 굵어진 형님의 손마디에 동생은 목이 메었다.
공훈예술가 정두명(66)씨는 노모 김인순(89)씨에게 "어머니 인사받으세요"라며 인사한 뒤 부친의 작고
소식을 듣고 오열을 터뜨렸다.
'51년만의 모자상봉'을 한 허 계(92)씨는 북에서 온 아들 김두식(70)씨의 손을 꼭 붙잡은채 말을 잇지
못하고 눈물만 흘렸고 중풍으로 거동이 어려운 강항구(80)씨는 앰뷸런스를 타고 북한에서 온 동생 서
구(70)씨와 감격의 해후를 했다.
반세기라는 세월도 핏줄을 갈라놓진 못했다. 이산가족들은 피붙이를 한눈에 알아보고는 헤어짐을 강
요한 분단의 역사에 대한 원망과 만남의 기쁨으로 눈물바다를 만들었다.
2시간여동안 이뤄진 이날 만남속에서는 오직 이산의 한이 녹아내린 혈육의 정만이 흘러넘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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