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사람들이 불쌍한 이유’
유승삼 (언론인)
요즘 ‘미녀들의 수다’라는 KBS의 일요 토크쇼가 인기를 끌고 있다. 2~5년째 한국에 살고 있는 유학생 등 각국의 20대 여성들이 출연해 방송국이 제시한 주제에 대해 자신들의 경험과 생각을 털어 놓으며 즐기는 프로이다. 웃음이 주목적인 오락 프로이지만 외국인이 접한 우리 삶의 모습에서 깨달음을 얻게도 된다.
지난 25일의 주제는 ‘한국 남자들은 이럴 때 불쌍하다’였는데 미녀들이 꼽은 그 이유 중의 하나가 ‘돈 없으면 결혼 못한다’였다. 말문을 연 것은 몽골 여학생이었다. 자동차에, 직장에, 집이 있어야 한다며 서른이 넘도록 결혼 못하는 한국 남자가 딱하다는 것이었다. 캐나다 여학생이 말했다. “나는 성격만 봐요” 돈은 상관없다고 강조했다. 웃으며 말했지만 소신은 분명했다. 오스트리아 여학생은 진지하게 설명했다. “우리는 그런 걱정 안 해요. 사회보장이 되니까 돈 있는 남자, 없는 남자 별 차이 없이 다 비슷해요”
사회제도가 인생관도 만든다!
그러자 두 일본 여학생이 다른 의견을 말했다. “자식을 위해서라도 남자는 경제력이 있어야 되잖아요?” “돈 없으면 대학에 못 가잖아요?” 한국인과 결혼하고 싶다는 영국 여학생은 자신도 원래는 캐나다, 오스트리아 학생과 생각이 같았는데 한국에 와서 보고 생각이 바뀌었다고 말했다. 미국 여성은 생각이 아주 달랐다. 돈 없어도 시험 잘 보면 대학도 갈 수 있고 문제들이 해결되는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에콰도르 여학생도 “남자가 똑똑하기만 하면 잘 살 수 있다”고 말했다.
어쩌면 그리도 정확하게 자기 나라의 사회상을 그대로 대변하는지 감탄할 지경이었다. 그들의 결혼관, 사랑관, 인생관에는 그들 나라 제도가 고스란히 반영되어 있었던 것이다. 누구 말대로 ‘존재가 의식을 결정’했다고나 할까.
정리하자면 사회보장제가 발달한 나라의 여성들은 하나같이 결혼에 돈이 큰 문제는 아니라고 했다. 몽골은 가난한 나라여서 사회보장제 때문이라고 말하기는 어렵겠지만 최소한 우리 같은 경제체제와 문화는 아니다.
반면에 잘 사는 나라이지만 신자유주의를 기조로 하고 있는 일본과 미국 여성의 견해는 그 반대였다. 미국 경제의 영향을 크게 받은 에콰도르의 여학생의 견해가 미국·일본 여성의 견해와 같은 맥락인 것도 자연스런 일일 것이다.
캐나다 여학생이 결론 삼아 말했다. “그전에는 그런 생각 한 번도 안 했는데 한국에서 살아 보니까 노후 준비를 해야겠더라구요” 이들의 말을 다 듣고 난, 같은 또래의 한국 연예인은 “듣고 보니 한국 젊은이들이 더욱 불쌍하게 여겨진다”고 말했다.
어찌 젊은이뿐이랴. 실은 우리 국민 모두가 불쌍하다. 국부의 총량으로는 세계 11위, 12위다 하지만 그것을 실감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국민의 몇%나 될까. 학비 걱정, 결혼 비용 걱정, 취업 걱정, 요행히 취업이 되고 나면 이번엔 구조조정 걱정, 내 집 마련 걱정, 병원비 걱정, 노후 걱정 등 삶 전체가 걱정의 연속이다. 한국이야말로 불교에서 말하는 ‘인생은 고해’라는 말이 실감나는 사회이다.
세계적인 국부를 자랑하면서도 건강보험 광고가 한국처럼 극성인 나라가 있던가. 국민들이 왜 그렇게 부동산에 목을 맬까. 노후의 삶이 보장 안 되는데 그 큰 원인이 있지 않은가.
‘미녀들의 수다’는 그 나라의 사회제도와 성격이 그 나라 국민의 인생관과 삶의 방식을 결정한다는 것을 일깨워 주었다. 토크 쇼 출연진의 출신 국을 사회제도를 기준으로 나누면 캐나다·오스트리아·영국·몽골이 한 갈래이고 미국·일본·에콰도르가 다른 한 갈래이다. 어느 쪽이 좋은가는 각자의 가치관과 관계되는 것이겠지만 문제는 우리들에게는 한 번도 그런 선택의 기회가 없었다는 것이다. 그저 미국·일본의 체제와 제도만을 좇아 경쟁적이고 각박한 삶을 당연시하며 살아 왔을 뿐이다.
사회 모델을 쟁점화해야
양극화를 처절하게 경험하면서 국민의 의식도 확연히 달라졌다. 지난 해 5월의 한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우리 사회가 향후 10년 이내에 이루어야 할 과제’로 응답자의 54.4%가 ‘양극화 해소 등 복지사회 건설’을 꼽았고 ‘3만불 시대 등 경제 강국 수립’은 29.8%에 머물렀다. 새로운 사회제도를 갈구하고 있는 징후이다.
뒤늦었지만 이제라도 국민에게 자신이 바라는 사회 모델과 제도를 선택할 기회를 주어야 한다. 그러나 아직도 이런 문제를 의제화하는 정당도, 대선주자도 없다. 요즘 ‘찍을 후보가 없다’는 푸념이 널리 퍼지고 있는 한 가지 이유도 바로 거기에 있을 것이다.
Copyright ⓒThe Naeil News. All rights reserved.
유승삼 (언론인)
요즘 ‘미녀들의 수다’라는 KBS의 일요 토크쇼가 인기를 끌고 있다. 2~5년째 한국에 살고 있는 유학생 등 각국의 20대 여성들이 출연해 방송국이 제시한 주제에 대해 자신들의 경험과 생각을 털어 놓으며 즐기는 프로이다. 웃음이 주목적인 오락 프로이지만 외국인이 접한 우리 삶의 모습에서 깨달음을 얻게도 된다.
지난 25일의 주제는 ‘한국 남자들은 이럴 때 불쌍하다’였는데 미녀들이 꼽은 그 이유 중의 하나가 ‘돈 없으면 결혼 못한다’였다. 말문을 연 것은 몽골 여학생이었다. 자동차에, 직장에, 집이 있어야 한다며 서른이 넘도록 결혼 못하는 한국 남자가 딱하다는 것이었다. 캐나다 여학생이 말했다. “나는 성격만 봐요” 돈은 상관없다고 강조했다. 웃으며 말했지만 소신은 분명했다. 오스트리아 여학생은 진지하게 설명했다. “우리는 그런 걱정 안 해요. 사회보장이 되니까 돈 있는 남자, 없는 남자 별 차이 없이 다 비슷해요”
사회제도가 인생관도 만든다!
그러자 두 일본 여학생이 다른 의견을 말했다. “자식을 위해서라도 남자는 경제력이 있어야 되잖아요?” “돈 없으면 대학에 못 가잖아요?” 한국인과 결혼하고 싶다는 영국 여학생은 자신도 원래는 캐나다, 오스트리아 학생과 생각이 같았는데 한국에 와서 보고 생각이 바뀌었다고 말했다. 미국 여성은 생각이 아주 달랐다. 돈 없어도 시험 잘 보면 대학도 갈 수 있고 문제들이 해결되는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에콰도르 여학생도 “남자가 똑똑하기만 하면 잘 살 수 있다”고 말했다.
어쩌면 그리도 정확하게 자기 나라의 사회상을 그대로 대변하는지 감탄할 지경이었다. 그들의 결혼관, 사랑관, 인생관에는 그들 나라 제도가 고스란히 반영되어 있었던 것이다. 누구 말대로 ‘존재가 의식을 결정’했다고나 할까.
정리하자면 사회보장제가 발달한 나라의 여성들은 하나같이 결혼에 돈이 큰 문제는 아니라고 했다. 몽골은 가난한 나라여서 사회보장제 때문이라고 말하기는 어렵겠지만 최소한 우리 같은 경제체제와 문화는 아니다.
반면에 잘 사는 나라이지만 신자유주의를 기조로 하고 있는 일본과 미국 여성의 견해는 그 반대였다. 미국 경제의 영향을 크게 받은 에콰도르의 여학생의 견해가 미국·일본 여성의 견해와 같은 맥락인 것도 자연스런 일일 것이다.
캐나다 여학생이 결론 삼아 말했다. “그전에는 그런 생각 한 번도 안 했는데 한국에서 살아 보니까 노후 준비를 해야겠더라구요” 이들의 말을 다 듣고 난, 같은 또래의 한국 연예인은 “듣고 보니 한국 젊은이들이 더욱 불쌍하게 여겨진다”고 말했다.
어찌 젊은이뿐이랴. 실은 우리 국민 모두가 불쌍하다. 국부의 총량으로는 세계 11위, 12위다 하지만 그것을 실감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국민의 몇%나 될까. 학비 걱정, 결혼 비용 걱정, 취업 걱정, 요행히 취업이 되고 나면 이번엔 구조조정 걱정, 내 집 마련 걱정, 병원비 걱정, 노후 걱정 등 삶 전체가 걱정의 연속이다. 한국이야말로 불교에서 말하는 ‘인생은 고해’라는 말이 실감나는 사회이다.
세계적인 국부를 자랑하면서도 건강보험 광고가 한국처럼 극성인 나라가 있던가. 국민들이 왜 그렇게 부동산에 목을 맬까. 노후의 삶이 보장 안 되는데 그 큰 원인이 있지 않은가.
‘미녀들의 수다’는 그 나라의 사회제도와 성격이 그 나라 국민의 인생관과 삶의 방식을 결정한다는 것을 일깨워 주었다. 토크 쇼 출연진의 출신 국을 사회제도를 기준으로 나누면 캐나다·오스트리아·영국·몽골이 한 갈래이고 미국·일본·에콰도르가 다른 한 갈래이다. 어느 쪽이 좋은가는 각자의 가치관과 관계되는 것이겠지만 문제는 우리들에게는 한 번도 그런 선택의 기회가 없었다는 것이다. 그저 미국·일본의 체제와 제도만을 좇아 경쟁적이고 각박한 삶을 당연시하며 살아 왔을 뿐이다.
사회 모델을 쟁점화해야
양극화를 처절하게 경험하면서 국민의 의식도 확연히 달라졌다. 지난 해 5월의 한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우리 사회가 향후 10년 이내에 이루어야 할 과제’로 응답자의 54.4%가 ‘양극화 해소 등 복지사회 건설’을 꼽았고 ‘3만불 시대 등 경제 강국 수립’은 29.8%에 머물렀다. 새로운 사회제도를 갈구하고 있는 징후이다.
뒤늦었지만 이제라도 국민에게 자신이 바라는 사회 모델과 제도를 선택할 기회를 주어야 한다. 그러나 아직도 이런 문제를 의제화하는 정당도, 대선주자도 없다. 요즘 ‘찍을 후보가 없다’는 푸념이 널리 퍼지고 있는 한 가지 이유도 바로 거기에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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