퓨전반도체로 ‘삼성 인사이드’ 시대 개막

지역내일 2007-03-29
‘시대를 앞선 사고’로 시장개척
21세기형 창조적 파괴의 전형 제시

지난해 삼성 창조경영이 국내는 물론, 미국과 일본 등 서구의 경영학계로부터 집중적인 조명을 받은 이래, 최근 신수종 사업 개척에 앞장서는 이 기업에 더욱 비상한 관심이 모이는 중이다. 1990년대 초반부터 시작된 파격적인 혁신 끝에 오늘날 세계가 인정하는 글로벌 기업으로 자리잡은 삼성식 스타일을 기존 경영이론으로 규정하기는 무리라는 것이 업계의 중론이다. 본지는 삼성 창조 경영의 특징과 진화 양상을 살펴 국내 기업이 참조할 교훈을 찾고자 한다.

최근 삼성전자가 발표한 3세대 퓨전 메모리 플렉스-원낸드 반도체가 국내외에서 일으킨 반응이 만만찮다. 메모리 용량을 조절함으로써 사용자 지향성을 높이고 반도체의 용적을 줄여 초소형 휴대폰 등 다양한 신제품의 발판이 됐다는 점에서 동종 업계는 충격을 받은 모습이다. 이 반도체가 창출할 시장 규모가 10조 원대라는 사실 외에도, 이로써 인텔 인사이드의 시대는 가고 명실상부 삼성 인사이드의 시대가 개막됐다는 전망조차 제기된다.
업계는 퓨전반도체를 삼성 창조경영의 모델로 인식하고 있다. 기존 메모리반도체의 경쟁은 얼마나 빠른 시일에 집적도를 높여 기존 메모리를 대체하느냐가 관건이라 할 정도로, 대부분 집적도에 국한돼 있었다. 삼성은 이러한 관념을 뒤엎고 상상을 뒤엎는 제품을, 그것도 자신이 1등인 분야에서 만들어낸 것이다.
삼성 이건희 회장은 기회 있을 때마다 “현재 1등을 하고 있는 제품과 기술이 영원이 1등일 수는 없다”고 강조했고, 특히 신년사에서 “올해는 사업전략을 다시 점검하고 반도체, 무선통신의 뒤를 이을 신사업의 씨앗을 뿌려야 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당장 반도체와 휴대폰이 1등 분야라고 해도 신제품으로 신수종 사업을 일구지 못하는 한 위기는 언제라도 닥칠 수 있다는 경계의 메시지였다.
그러던 중 보란 듯이 삼성의 플렉스-원낸드 메모리가 탄생한 것이다. 삼성전자가 올해 연구개발비로 책정한 금액이 6조1400억 원이라는 점에서 반도체와 휴대폰 분야에서 또 다른 신수종 제품이 공개될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

앞선 자에게 배우되 얽매이지 않아
신제품을 고안해 개발하고 이를 시장에서 성공시키는 모든 과정을 한 사람이 주도하기는 어렵다. 아이팟으로 화려하게 부활하며 IT 업계의 살아 있는 신화가 된 스티브 잡스도 예외는 아이다. 그가 최초로 상용화한 개인용 컴퓨터 애플을 경우를 보자.
1960년대에 미국은 컴퓨터 분야에서 선두를 달리고 있었는데 당시 컴퓨터는 거대한 중앙처리장치에 개인들이 터미널로 접속해 작업하는 방식이 전부였다. 그러던 중 1973년 미국 제록스가가 설립한 팔로알토연구소에서 최초의 개인용 컴퓨터인 알토(Alto)가 개발됐다. 하얀 가운을 걸친 당대 최고의 연구진들은 그러나 이 기계를 오직 연구소 내에서만 사용하고 있었다.
그로부터 6년이 흐른 1979년, 개인용 컴퓨터 개발에 몰두하던 스티브 잡스가 이 회사를 방문했다. 잡스는 알토의 비밀을 알고자 한 것이지만 연구소는 이미 업계에 컴퓨터광으로 알려진 그를 조금도 경계하지 않고 알토의 모든 것을 설명해줬다. 잡스는 곧장 개발에 착수했고,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애플컴퓨터는 잡스를 일약 스타덤에 올려놓았다.
자신이 만든 애플사에서 쫓겨났다 쓰러져가는 애니메이션 회사를 인수해 재기한 뒤 다시 애플사로 돌아와 아이팟을 내놓아 인생의 절정기를 맞은 잡스. 그의 경영철학은 ‘모든 것을 해내기보다 가장 뛰어난 것을 해내는 것이 일등기업’이라는 명제로 요약할 수 있을 것이다.
삼성의 경우는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간다. 삼성은 천재적인 개인에 의존하는 애플 스타일에서 점점 빠른 속도로 벗어나는 중이며, 오늘 1등 제품이 내일도 그러리라는 보장이 없음을 알고 다양한 분야에서 신시장을 모색하고 있다.

신시장 개척의 위력, 닌텐도처럼
신시장 개척이 가져오는 가공할 위력을 일본 닌텐도사의 부활에서 찾을 수 있다. 닌텐도는 1889년 영세한 화투회사로 출발해 그저 그런 회사로 머무르다 1982년 게임기 패미컴과 동키콩이라는 게임을 발매하면서 유명해졌다. 4000만대나 팔린 슈퍼마리로 시리즈로 승승장구를 거듭해 온 닌텐도 게임기는, 그러나 소니의 플레이스테이션이라는 암초를 만나면서 일거에 무너졌다.
지난해만 해도 일본 업계는 1억대 출시를 돌파한 플레이스테이션의 기세가 여전할 것으로 전망했고, 100년 전통 기업인 닌텐도는 최근까지도 출구를 찾지 못하는 듯했다. 하지만 지난 연말 닌텐도가 게임기 위(Wii)와 DS 라이트를 발매하면서 전세는 하루아침에 역전됐다. 위는 일본과 미국 양국에서 어린이들의 초히트 상품으로 등장했고 DS 라이트는 이미 경쟁자인 소니의 PSP를 멀찍이 밀어내며 ‘없어서 못 파는 게임기’가 됐다.
주목할 사실은 DS 라이트가 얼핏 게임과 무관해 보이는 사람들까지 게이머로 끌어들인다는 것. 닌텐도는 기존 상식으로는 게임의 대상이 되지 않던 분야를 이용해 기발한 게임을 창조했고, 그로써 ‘게임은 청소년의 전유물’이라던 기존 관념을 뒤엎었다.
오늘 삼성이 기울이는 노력은 스티브 잡스가 보여준 천재경영 스타일과 닌텐도가 만들어낸 시장개척 능력을 결합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삼성은 그 답을 창조경영에서 찾고자 하며 전체 삼성 직원을 그 구현자로 삼으려는 것으로 보인다. 이를 위한 시도가 이미 삼성에서 진행되고 있다.

직원 창의력 모여야 창조경영 가능
지난 1월 삼성 사내방송팀은 ‘창조, 혁신, 그리고 새로운 도전’이라는 프로그램을 방송했다. 눈길을 끄는 대목은 프로그램의 전 과정이 창조성의 고양에 맞추어져 있다는 것. 아나운서는 “삼성의 일등주의와 치밀한 관리, 일사불란한 조직력이 일류기업 삼성을 견인한 원동력”이라 전제하면서도 “국내외 경영환경의 변화는 창조를 위한 새로운 도전을 요구하고 있는데 이는 현재 (삼성의) 문화로는 어려울 수도 있다”는 우려를 전했다.
3월 들어서도 삼성은 ‘창의력의 재발견’ 제하에 3부작 시리즈를 방송했다. 1부 방송은 창의력의 사례로 초현실주의 작가 르네 마그리트의 작품을 소개하며 창의력은 어려운 것이 아니라, “우선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을 조금 다르게 보는 것”이라고 전했다. 이후 이어진 시리즈는 창조경영이 향후 기업의 성패를 좌우하며, 직원들의 창의력이 그 기초를 이룬다고 역설했다. 삼성 직원 개개인의 창의성이 모여야 그룹 차원의 창조경영이 가능하며, 그것만이 위기 타개의 동력이라는 것이다.
삼성은 IMF 외환위기를 딛고 일어선 이래 줄곧 한국 경제의 리더십을 유지해 왔다. 97년대 월 1700억 원의 적자를 내던 골칫덩이 삼성전자는 IMF 이후 5년 만에 연 순익 10조 원대 회사로 변신했고, 남들이 손을 털던 메모리시장에 뒤늦게 뛰어들어 소니와 인텔을 차례로 밀어내며 반도체 제국을 구축했다.
당연히 ‘창조경영을 강조하지 않은 지난 10여 년간 삼성은 어떻게 수많은 일등 제품을 쏟아낼 수 있었는가’라는 질문이 이어질 법하다. 그 비결을 전문가들은 개방형 혁신이라는 말로 설명한다. 삼성경제연구소 임영모 수석연구원은 “산업과 제품의 융·복합화가 심화되면서 한 기업이 모든 영역에서 앞선 기술을 갖는 것은 불가능하게 됐다”면서 “글로벌 리딩 기업들은 사내외의 다양한 자원과 아이디어를 결합해 혁신의 원동력으로 삼는 개방형 혁신에 나서고 있다”고 말했다.

경쟁력 원천, 시대를 앞선 사고
물론 그러한 아이디어를 지닌 세계적 기업들은 많다. 다만 삼성은 그러한 아이디어를 발굴할 시스템을 일찍이 갖추었다는 데 차별성이 있다. 삼성은 1993년 이른바 프랑크푸르트 선언 이래 파격적인 개혁을 성공적으로 진행했다. 이건희 회장의 한 발 앞선 시대의식이 물꼬를 텄고, 이것이 경영진과 직원들의 한발 앞선 사고로 이어졌다. 직원 개개인의 한발 앞선 사고가 집적·집중되면 기업에는 한 시대를 앞선 사고가 형성되기 마련이다.
시대를 앞선 사고는 단순히 한두 분야에만 영향력을 발휘하지 않는다.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최근 열린 전시회로 뒤늦게 국내 일반인에게 소개된 르네 마그리트는 천재적 사고가 미치는 초월적 영향력의 단면을 보여준다.
마그리트는 이른바 자동기술법에 따라 추상화에 매달리던 초현실주의 화풍과는 달리, 일상에 존재하는 사물이나 사람들을 그리면서 그 대상들에 모순과 역설, 신비감을 부여했다. 현실의 존재를 도무지 말이 되지 않는 형상으로 그려내는 그의 작품들은 감상자를 당황하게 만들면서, 동시에 감상자에게 새롭게 사고하는 법을 가르친다. 마그리트의 위대성은 “그림이란 보는 것만이 아니라 생각하는 것이며, 그 생각 또한 감상자 스스로 창조하는 것”임을 깨닫게 한 데 있다. 때문에 마그리트는 미술 분야를 넘어서 비틀즈의 음악, 영화 매트릭스 등 다양한 현대 문화에 영감을 미치는 존재가 된 것이다.
르네 마그리트는 “보이는 것이 보이지 않는 것보다 우월하다고 생각하지 않고 그 역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하며 현실과 추상을 아우르는 예술 세계를 창조했다. 93년의 신경영에서 오늘의 창조경영까지, 기존의 경영학으로 규정할 수 없는 삼성의 경영철학 또한 그러한 고뇌의 산물일 것이다.
김선태 구본홍 기자 kst@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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