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수 출입국관리사무소 화재사건을 보는 시각
설동훈(전북대 교수, 사회학)
사회학자들은 보통 특정 사회현상의 원인을 개인의 행동뿐 아니라 사회구조에서 찾는다. 예컨대, 프랑스 사회학자 에밀 뒤르켐(Emile Durkheim)은 개인적 성향 또는 심리현상의 결과로 파악했던 ‘자살’의 원인에 ‘사회적 연대성’ 또는 ‘사회통합’이 존재함을 밝혀내었다. 순전히 개인에 의해 비롯된 것으로 여겨질 수 있는 사회현상조차도, 개인적 기질뿐 아니라 사회구조적 강제가 작용한다는 것이다.
사회구조로 사건을 설명하는 접근은 그 사회현상이 발생한 배경을 조명하는 데 도움을 주지만, 지나칠 경우 개인을 사회구조의 꼭두각시로 파악하는 치명적 한계에 봉착한다. 반면, 개인의 성향 내지 심리 등 행위자 요인을 중시하는 접근은 사건이 발생한 직접적 메커니즘을 파악하는 데 유용하지만, 과도할 경우 그 사회현상이 출현하게끔 만든 구조적 요인을 철저히 무시하는 결함을 가진다. 그 결과, 사회학은 ‘구조론’과 ‘행위론’이라는 본질적으로 화해하기 힘든 두 개의 접근법을 포괄해야 하는 이론적 딜레마를 안고 있다.
이 두 개의 접근법에 따라서, 지난 2월 11일 전남 여수 출입국관리사무소 외국인보호실에서 발생한 화재사건의 원인을 보는 시각이 구분된다. 한 쪽에서는 외국인 보호시설에 수용 중인 한 중국인이 저지른 방화 행위에 주목하고, 다른 한 쪽에서는 방화용의자가 불법체류자가 된 상황 또는 장기간 구금을 당할 수밖에 없었던 상황적 요인에 관심을 둔다. 물론, 두 시각 모두 단순 화재사건으로 그칠 수 있었던 안전사고가 수많은 인명피해를 낳은 참사로 비화된 원인을 ‘법률에 근거를 두고 구금시설을 운영하는 국가의 관리 미숙’에서 찾는 것은 동일하다.
경찰은 3월 6일 화재사건 수사결과를 발표하였다. 그 내용을 간추리면 다음과 같다. 국립과학수사연구소 조사에 따르면, 누전 등에 의한 자연발화가 아니라 누군가에 의한 ‘방화’가 확실하다. 화재가 처음 발생한 304호 거실 내 사물함 인근 잔해물 속에서 일회용 가스라이터 1개, 보호실 내 화장실 문턱 밑 모포 밑에서 가스라이터 1개를 발견하였다. 발견된 라이터들은 화재에도 불타지 않았다. 304호실 생존자 한 명으로부터 “한국계 중국인 진(金)모 씨가 불이 났던 곳에서 불이 붙도록 우레탄 장판을 들어올렸다”는 진술을 확보하였다. 이러한 조사결과를 토대로, 경찰은 “진 씨가 내복 위에 면바지를 입고, 운동복까지 겹쳐 입었으며 왼쪽 발목부위 내복 안쪽에 현금 13만원을 고무줄로 묶고 있었던 점 등으로 미뤄 도주를 위해 방화한 것으로 추정했다. 또 공모자는 없는 것으로 결론 내렸다.” 말하자면, 경찰은 진모 씨를 방화용의자로 추정하였고, 방화범으로 확정하지는 못하였다.
그러나 진모 씨의 유족들은 그가 방화용의자라는 사실조차 부인한다. “죽은 사람에게 그 죄를 모두 씌우니, 얼마나 억울합니까? 근거도 없이 그러면 어쩝니까?” “병원에 우리 그이가 불을 냈다고 말한 사람이 입원해 있다던데, 그 사람이 우리에게 사과했으면 합니다. 사람이 살려고 하지, 누가 죽으려고 그런 짓을 합니까?” 그가 억울한 희생자일 수 있다는 말이다.
우여곡절 끝에 화재 피해를 입은 보호 외국인 보상 문제가 마무리되었다. 경향신문은 다음과 같이 보도하였다. “법무부와 화재참사공동대책위는 3월 29일 부상자에 대해 1인당 1000만원의 배상금과 치료를 위해 본인에게 3년, 보호자 1명에게는 1년간 국내 체류가 가능한 기타(G-1)사증을 발급한다는 데 합의했다. 또 법무부는 3월 24일 사망자 유족에게는 1인당 1억∼1억1200만원씩 위로금을 지급키로 하고, 방화용의자로 지목된 진모 씨의 유족에게는 5000만원을 주기로 합의했다.”
여기서 방화용의자로 지목된 진모 씨의 유족에게 지급하기로 한 위로금 5000만원에 대하여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진모 씨가 ‘억울한 희생자’라면 위로금 차별 지급을 시정해야 한다. 죽은 것도 억울한 데 불명예까지 뒤집어썼다는 유족의 절규를 고려하여 사실관계를 좀더 확실하게 밝힐 필요가 있다. 그러나 그가 방화범이거나 방화용의자라고 밝혀진다면, 그의 유족에게 지급되는 위로금의 지불 여부와 액수에 대한 정당화가 필수적이다. 행위론적 접근법을 취하는 사람은 “방화범이 확실하다면 한 푼의 위로금도 지불해서는 안 된다.”고 할 것이고, 구조론적 접근법을 취하는 사람은 “그는 방화용의자일 뿐이고, 여러 명의 사망 참사가 난 원인에는 정부의 책임이 있다.”고 역설할 것이다.
위로금 지불 여부와 그 액수가 나름대로 고민하여 타협을 거쳐 내린 결정이라는 것은 잘 안다. 그렇지만 위로금의 재원이 국민 세금과 법무부 출입국관리공무원들의 성금으로 조성한 ‘공적 자금’인 이상, 그 집행 원칙을 세워 그것을 철저히 준수하여야 한다. 원칙을 훼손하는 온정주의가 개입하는 것은 어떤 경우에도 막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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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동훈(전북대 교수, 사회학)
사회학자들은 보통 특정 사회현상의 원인을 개인의 행동뿐 아니라 사회구조에서 찾는다. 예컨대, 프랑스 사회학자 에밀 뒤르켐(Emile Durkheim)은 개인적 성향 또는 심리현상의 결과로 파악했던 ‘자살’의 원인에 ‘사회적 연대성’ 또는 ‘사회통합’이 존재함을 밝혀내었다. 순전히 개인에 의해 비롯된 것으로 여겨질 수 있는 사회현상조차도, 개인적 기질뿐 아니라 사회구조적 강제가 작용한다는 것이다.
사회구조로 사건을 설명하는 접근은 그 사회현상이 발생한 배경을 조명하는 데 도움을 주지만, 지나칠 경우 개인을 사회구조의 꼭두각시로 파악하는 치명적 한계에 봉착한다. 반면, 개인의 성향 내지 심리 등 행위자 요인을 중시하는 접근은 사건이 발생한 직접적 메커니즘을 파악하는 데 유용하지만, 과도할 경우 그 사회현상이 출현하게끔 만든 구조적 요인을 철저히 무시하는 결함을 가진다. 그 결과, 사회학은 ‘구조론’과 ‘행위론’이라는 본질적으로 화해하기 힘든 두 개의 접근법을 포괄해야 하는 이론적 딜레마를 안고 있다.
이 두 개의 접근법에 따라서, 지난 2월 11일 전남 여수 출입국관리사무소 외국인보호실에서 발생한 화재사건의 원인을 보는 시각이 구분된다. 한 쪽에서는 외국인 보호시설에 수용 중인 한 중국인이 저지른 방화 행위에 주목하고, 다른 한 쪽에서는 방화용의자가 불법체류자가 된 상황 또는 장기간 구금을 당할 수밖에 없었던 상황적 요인에 관심을 둔다. 물론, 두 시각 모두 단순 화재사건으로 그칠 수 있었던 안전사고가 수많은 인명피해를 낳은 참사로 비화된 원인을 ‘법률에 근거를 두고 구금시설을 운영하는 국가의 관리 미숙’에서 찾는 것은 동일하다.
경찰은 3월 6일 화재사건 수사결과를 발표하였다. 그 내용을 간추리면 다음과 같다. 국립과학수사연구소 조사에 따르면, 누전 등에 의한 자연발화가 아니라 누군가에 의한 ‘방화’가 확실하다. 화재가 처음 발생한 304호 거실 내 사물함 인근 잔해물 속에서 일회용 가스라이터 1개, 보호실 내 화장실 문턱 밑 모포 밑에서 가스라이터 1개를 발견하였다. 발견된 라이터들은 화재에도 불타지 않았다. 304호실 생존자 한 명으로부터 “한국계 중국인 진(金)모 씨가 불이 났던 곳에서 불이 붙도록 우레탄 장판을 들어올렸다”는 진술을 확보하였다. 이러한 조사결과를 토대로, 경찰은 “진 씨가 내복 위에 면바지를 입고, 운동복까지 겹쳐 입었으며 왼쪽 발목부위 내복 안쪽에 현금 13만원을 고무줄로 묶고 있었던 점 등으로 미뤄 도주를 위해 방화한 것으로 추정했다. 또 공모자는 없는 것으로 결론 내렸다.” 말하자면, 경찰은 진모 씨를 방화용의자로 추정하였고, 방화범으로 확정하지는 못하였다.
그러나 진모 씨의 유족들은 그가 방화용의자라는 사실조차 부인한다. “죽은 사람에게 그 죄를 모두 씌우니, 얼마나 억울합니까? 근거도 없이 그러면 어쩝니까?” “병원에 우리 그이가 불을 냈다고 말한 사람이 입원해 있다던데, 그 사람이 우리에게 사과했으면 합니다. 사람이 살려고 하지, 누가 죽으려고 그런 짓을 합니까?” 그가 억울한 희생자일 수 있다는 말이다.
우여곡절 끝에 화재 피해를 입은 보호 외국인 보상 문제가 마무리되었다. 경향신문은 다음과 같이 보도하였다. “법무부와 화재참사공동대책위는 3월 29일 부상자에 대해 1인당 1000만원의 배상금과 치료를 위해 본인에게 3년, 보호자 1명에게는 1년간 국내 체류가 가능한 기타(G-1)사증을 발급한다는 데 합의했다. 또 법무부는 3월 24일 사망자 유족에게는 1인당 1억∼1억1200만원씩 위로금을 지급키로 하고, 방화용의자로 지목된 진모 씨의 유족에게는 5000만원을 주기로 합의했다.”
여기서 방화용의자로 지목된 진모 씨의 유족에게 지급하기로 한 위로금 5000만원에 대하여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진모 씨가 ‘억울한 희생자’라면 위로금 차별 지급을 시정해야 한다. 죽은 것도 억울한 데 불명예까지 뒤집어썼다는 유족의 절규를 고려하여 사실관계를 좀더 확실하게 밝힐 필요가 있다. 그러나 그가 방화범이거나 방화용의자라고 밝혀진다면, 그의 유족에게 지급되는 위로금의 지불 여부와 액수에 대한 정당화가 필수적이다. 행위론적 접근법을 취하는 사람은 “방화범이 확실하다면 한 푼의 위로금도 지불해서는 안 된다.”고 할 것이고, 구조론적 접근법을 취하는 사람은 “그는 방화용의자일 뿐이고, 여러 명의 사망 참사가 난 원인에는 정부의 책임이 있다.”고 역설할 것이다.
위로금 지불 여부와 그 액수가 나름대로 고민하여 타협을 거쳐 내린 결정이라는 것은 잘 안다. 그렇지만 위로금의 재원이 국민 세금과 법무부 출입국관리공무원들의 성금으로 조성한 ‘공적 자금’인 이상, 그 집행 원칙을 세워 그것을 철저히 준수하여야 한다. 원칙을 훼손하는 온정주의가 개입하는 것은 어떤 경우에도 막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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