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하청업체서 일본시장 80% 장악
품질주의와 철저한 신용이 성장 비결
(주)한일은 1974년 대전의 작은 하청 봉제공장으로 문을 연 뒤 33년 동안 오로지 모터사이클 경기복만 만들어온 회사다.
설립이후 단 한차례의 적자도 없이 회사는 지속적으로 성장, 지난해 매출 256억원, 직원 1300여명의 견실한 기업이 됐다.
한일은 생산되는 모터사이클 경기복 전량을 세계 13개국 25개사에 수출하고 있다. 국내에서는 한일의 제품을 찾아볼 수 없다.
현재 세계시장 점유율은 40%에 이른다. 세계 모터사이클 레이서 10명 중 4명은 한일이 만든 경기복을 입고 경기에 임하고 있는 셈이다.
이탈리아의 알피네스타, 미국의 조로킷, 일본의 난카이(南海) 등 각국 최고의 브랜드가 한일의 경기복을 주문받아 자신들의 상표를 붙여 판매한다.
1980년대까지만 해도 일본 기업들이 이 분야 선두였다. 한일도 일본 업체의 하청업체였다. 하지만 현재 한일은 일본시장의 80%를 장악했다. 일본의 하청업체가 일본시장을 차지한 것이다. 독일시장 40%를 차지할 정도로 유럽에서도 한일의 명성은 높다.
최근에는 일본 혼다, 독일 폴로 등 전 세계 10여개 모터사이클복 업체로부터 밀려드는 주문을 소화하기 위해 중국 산둥성 공장에 이어 베트남 하노이 부근에 ‘제2공장’ 건립을 추진하고 있다.
박은용 대표이사는 성장 비결로 철저한 신용 및 품질관리를 꼽았다.
박 대표는 “한번 거래를 시작한 바이어를 놓치지 않기 위해 무슨 일이 있어도 제대로 된 제품을 기한 내 납품해 왔다”며 “25년 전 일본 바이어와 아직도 거래를 지속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바이어와의 납기를 지키기 위해 밤새워 일하고 현장서 잠을 자다 톱밥난로가 과열돼 불이 난 적도 있다. 심지어 납기가 늦어지면 주문받은 제품을 비행기로 실어 보낸다. 운송비보다 바이어와의 신뢰가 중요하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특히 ‘품질우선주의’는 한일이 창업 이후 지켜온 자존심이다. 김진형 부장은 “회사는 이익이 줄어들더라도 품질만큼은 최고로 만들자는 원칙을 지켜왔다”고 말했다.
‘직원은 가족’이라는 경영을 실천해온 박 대표의 리더십은 한일의 기술력을 이끈 원동력이다.
같은 업종에서 숙련공을 빼가기 위한 쟁탈전이 벌어질 때도 한일의 기술자들은 전혀 흔들리지 않았다. 대전 한일 본사의 생산직 근로자들의 평균 근속연수는 15년이 넘을 정도다. 지금까지 한 번도 인력 구조조정을 한 적이 없다. 이렇게 직원들은 ‘또 하나의 가족’이 됐다.
김 부장은 “중소기업에서 숙련공 한명이 차지하는 비중이 매우 크다”면서 “회사가 직원을 가족처럼 여기지 않았다면 뛰어난 기술을 가진 숙련공들을 보유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기술개발 및 품질향상에도 최선을 다해 총 35명의 기술개발 인력으로 매년 1000여개의 신모델을 양산하고 있다. 생산라인별로 특수기계를 개발해 한 자리에서 한 사람이 여러 공정을 수행할 수 있도록 한 ‘무이동 1인 다공정시스템’을 운영하고 있다.
또한 국내 원단 제조기업과의 기술제휴로 전량 수입에 의존하던 레이싱 특수복용 특수섬유를 세계적 원단사인 듀폰이나 토레이사 제품에 버금가는 수준으로 개발, 국내 원단업체의 기술발전과 수입대체 효과를 가져왔다.
한일은 이러한 노력으로 1990년 500만 달러, 1993년 1000만 달러, 2004년 2000만 달러, 2006년 2500만 달러의 수출실적을 달성했다.
박은용 대표이사는 사양산업인 피혁산업을 성장시킨 공로로 지난 3일 ‘3월의 자랑스러운 중소기업인’으로 선정됐다.
김형수 기자 hskim@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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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질주의와 철저한 신용이 성장 비결
(주)한일은 1974년 대전의 작은 하청 봉제공장으로 문을 연 뒤 33년 동안 오로지 모터사이클 경기복만 만들어온 회사다.
설립이후 단 한차례의 적자도 없이 회사는 지속적으로 성장, 지난해 매출 256억원, 직원 1300여명의 견실한 기업이 됐다.
한일은 생산되는 모터사이클 경기복 전량을 세계 13개국 25개사에 수출하고 있다. 국내에서는 한일의 제품을 찾아볼 수 없다.
현재 세계시장 점유율은 40%에 이른다. 세계 모터사이클 레이서 10명 중 4명은 한일이 만든 경기복을 입고 경기에 임하고 있는 셈이다.
이탈리아의 알피네스타, 미국의 조로킷, 일본의 난카이(南海) 등 각국 최고의 브랜드가 한일의 경기복을 주문받아 자신들의 상표를 붙여 판매한다.
1980년대까지만 해도 일본 기업들이 이 분야 선두였다. 한일도 일본 업체의 하청업체였다. 하지만 현재 한일은 일본시장의 80%를 장악했다. 일본의 하청업체가 일본시장을 차지한 것이다. 독일시장 40%를 차지할 정도로 유럽에서도 한일의 명성은 높다.
최근에는 일본 혼다, 독일 폴로 등 전 세계 10여개 모터사이클복 업체로부터 밀려드는 주문을 소화하기 위해 중국 산둥성 공장에 이어 베트남 하노이 부근에 ‘제2공장’ 건립을 추진하고 있다.
박은용 대표이사는 성장 비결로 철저한 신용 및 품질관리를 꼽았다.
박 대표는 “한번 거래를 시작한 바이어를 놓치지 않기 위해 무슨 일이 있어도 제대로 된 제품을 기한 내 납품해 왔다”며 “25년 전 일본 바이어와 아직도 거래를 지속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바이어와의 납기를 지키기 위해 밤새워 일하고 현장서 잠을 자다 톱밥난로가 과열돼 불이 난 적도 있다. 심지어 납기가 늦어지면 주문받은 제품을 비행기로 실어 보낸다. 운송비보다 바이어와의 신뢰가 중요하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특히 ‘품질우선주의’는 한일이 창업 이후 지켜온 자존심이다. 김진형 부장은 “회사는 이익이 줄어들더라도 품질만큼은 최고로 만들자는 원칙을 지켜왔다”고 말했다.
‘직원은 가족’이라는 경영을 실천해온 박 대표의 리더십은 한일의 기술력을 이끈 원동력이다.
같은 업종에서 숙련공을 빼가기 위한 쟁탈전이 벌어질 때도 한일의 기술자들은 전혀 흔들리지 않았다. 대전 한일 본사의 생산직 근로자들의 평균 근속연수는 15년이 넘을 정도다. 지금까지 한 번도 인력 구조조정을 한 적이 없다. 이렇게 직원들은 ‘또 하나의 가족’이 됐다.
김 부장은 “중소기업에서 숙련공 한명이 차지하는 비중이 매우 크다”면서 “회사가 직원을 가족처럼 여기지 않았다면 뛰어난 기술을 가진 숙련공들을 보유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기술개발 및 품질향상에도 최선을 다해 총 35명의 기술개발 인력으로 매년 1000여개의 신모델을 양산하고 있다. 생산라인별로 특수기계를 개발해 한 자리에서 한 사람이 여러 공정을 수행할 수 있도록 한 ‘무이동 1인 다공정시스템’을 운영하고 있다.
또한 국내 원단 제조기업과의 기술제휴로 전량 수입에 의존하던 레이싱 특수복용 특수섬유를 세계적 원단사인 듀폰이나 토레이사 제품에 버금가는 수준으로 개발, 국내 원단업체의 기술발전과 수입대체 효과를 가져왔다.
한일은 이러한 노력으로 1990년 500만 달러, 1993년 1000만 달러, 2004년 2000만 달러, 2006년 2500만 달러의 수출실적을 달성했다.
박은용 대표이사는 사양산업인 피혁산업을 성장시킨 공로로 지난 3일 ‘3월의 자랑스러운 중소기업인’으로 선정됐다.
김형수 기자 hskim@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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