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겸손한 기업으로 거듭날 것”

중-일 틈바구니에서 벗어나야 희망 … “혁신 과정에서 사람과 시간 중요성 깨달아”

지역내일 2007-04-27
정상에서 리콜 직면한 도요타, 타산지석 삼아야
이건희 회장, “삼성만의 차별성 있어야 지속성장”

지난 23일 중국 베이징에서 삼성전자의 글로벌 전략회의가 열리면서 이 회사의 변화하는 중국 전략이 새삼 화제로 떠올랐다.
중국삼성 본사에서 열린 이 회의에 윤종용 부회장을 비롯한 30여명의 전자 총괄사장단과 글로벌 총괄 책임자들이 참여한 것은 물론, 이들이 회의에 임하는 자세에도 간단치 않은 결의가 엿보였기 때문이다.

중국시장서 새 해법 모색
그 직접적인 원인은 삼성 제품에 대한 중국시장의 반응에 이상기류가 감지된 데 있다. 중국삼성경제연구소에 따르면 삼성전자에 대한 중국인들의 선호도가 눈에 띄게 하락, 최근 조사에서는 12위까지 밀려난 것으로 나타났다. 같은 조사에서 품질경쟁력이 2위로 나타난 것과 얼핏 맥락이 닿지 않는다. 이는 제품과 기업 이미지가 겉도는 것으로 적신호가 아닐 수 없다.
삼성전자 베이징회의가 열릴 당시 분위기가 대략 이랬는데, 그 와중에 이건희 회장이 베이징을 방문해 올림픽 후원 연장을 확인하기까지 했다. 저 일련의 움직임에 대해 중국삼성경제연구소 박승호 상무는 “그간 중국에서 삼성의 이미지가 장사 잘 하는 기업으로 제한된 듯하다”며, 회의 내용이 반성과 대책으로 채워졌음을 암시했다.
물론 이러한 상황은 중국에 진출한 대부분의 외국 기업에 해당할 터이다. 삼성의 경우 변화를 미리 감지하고 적극적으로도 전사적으로 대응하려 한다는 점에서 주목받게 된 것이다.
오늘날 중국에서 외국기업들은 기존의 태도를 바꾸지 않으면 살아남기가 쉽지 않다. 외국 기업들이 중국에서 취할 태도에 관해서는 중국 정부가 여러 차례 암시한 바 있다.
지난 3월 5일 제10회 전국인민대표대회 5차 회의에서 원자바오 중국 총리는 외국기업 정책에 대해 “외자유입의 질을 향상시키고 제도의 최적화를 중시하며, 더 많은 선진기술을 유입시키고 고품격 인재관리에 힘쓰는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이미 세계적인 기업들이 이러한 상황을 감지하고 앞 다투어 허리를 굽히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로 중국 언론이 마이크로소프트(MS)와 자국의 레노보가 공동으로 연구개발센터 설립에 합의한 사실을 대서특필한 것을 들 수 있다.
삼성의 새로운 행보는 저러한 변화의 선두에서 이루어진 것으로, 향후 글로벌 기업으로 재도약하는 데 중요한 시금석이 될 전망이다. 그런데 정작 업계가 주목하는 점은 시장의 변화에 발빠르게 대응한 삼성의 판단력보다는, 이 회사가 진정성을 가지고 고객 앞에서 허리를 굽히는지 여부에 있다. 이건희 회장은 지난 한해 내내 “삼성만의 고유한 차별성 독자성을 만들어가야 한다”면서 스스로의 능력으로 위기상황에 대비할 것을 주문해 왔다. 그 차별성에 자신을 돌아보고 바꿀 것을 과감히 바꾸는 능력이 포함되며, 오만함이 그중 하나라는 지적이다.

잘 나갈 때 버릴 줄 알았던 GE
미국에서 지금까지 100년이 넘도록 상장사로 남아 있는 기업으로는 사실상 GE가 유일하다. 그 신화를 창조한 잭 웰치 회장의 업적은 기업 경영의 교과서라 불리고 있으며 한국 기업들은 그가 만든 경영 기업을 너나없이 수용해 왔다.
하지만 많은 기업에서 그가 제시한 방법이나 원칙을 성공적으로 적용하지 못하는데, 이는 전적으로 시대를 읽는 관점의 한계에 기인한다. 예를 들어 잭 웰치가 1981년 최연소 회장으로 뽑힐 당시 미국은 불황의 수렁에 빠져들고 있었다. 거대 관료조직 중심의 대량생산 체제로 일관하던 기업들이 순식간에 쓰러지는 일이 다반사였다.
잭 웰치가 취임과 함께 내뱉은 ‘고쳐라, 매각하라, 아니면 폐쇄하라’는 구호는 이러한 당시 관료주의적 경영 구조를 겨냥한 것이었다. 그는 현대 시장경제가 단순히 국경을 넘어 연결되는데 지나지 않고, 기업간의 치열한 속도 경쟁을 유발하고 있음을 간파했다. 앨빈 토플러가 ‘제3의 물결’에서 지적한 것처럼 그러한 상황에서 “관료주의라는 칸막이는 몰락의 신호탄”에 지나지 않았다. 이 말을 웰치는 미국 기업들의 반성할 줄 모르는 경영방식에 대한 경고로 이해했다.
또한 웰치는 시장경쟁에서 승리의 관건이 시간에 있음을 간파했고, 위기에 빠진 GE를 회생시킬 전략으로 3S, 즉 빠르고(Speedy), 단순하며(Simple), 자신감(Selfconfident) 있는 조직을 요구했다. 이 모두는 상품이라는 3차원의 제품에 타이밍, 즉 시간이라는 요소를 결합해 경쟁 우위에 서려는 것으로 귀결한다. 일반 기업인들이 근대적인 3차원의 관점에 머물러 있는 사이, 그는 사물을 보는 4차원의 관점을 터득하고 있었던 것이다.
때문에 그는 이미 시기가 지났다면 당장 돈이 되는 부문이라도 매각해 버렸다. 가전제품 판매가 절정에 이른 80년대에 오히려 Black & Decker나 Thomson 같은 수익부문을 매각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웰치 회장은 “그 분야는 한국과 같은 신흥공업국들에게 내줄 수밖에 없다”고 말했고, 그것은 얼마 뒤 현실로 나타났다. 같은 논리로 그는 미국기업에 뿌리 깊은 관료주의를 타파했다. 그는 “계층이 많은 조직은 옷을 몇 겹이나 겹쳐 입은 사람과 같아서 변화에 둔감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하며, 중간임원을 모두 폐지하고 사원-매니저-부사장-부문별 CEO로 이어지는 단순 보고체계를 확립했다.
이러한 혁신의 배경에는 자신을 포함한 기업의 문제를 있는 그대로 보고 변화에 적극적이고 능동적으로 대응하려는 관점이 작용한다. 잭 웰치는 정보기술에 대한 투자에 앞장서면서 자신이 문외한임을 알고 일반 사원을 자신의 멘토(Mentor)로 선정해 그에게서 인터넷과 같은 최신 조류와 기술을 배웠던 것이다.

신화 속의 위기, 도요타의 고민
한국 기업들에게 도요타는 가장 가까이 있는 혁신의 모범이다. 도요타는 일개 방직기 제조회사로 출발해 한국 전쟁의 틈바구니에서 자동차업체로 변신하는 데 성공한 뒤 만년 후발주자 신세를 면치 못하던 회사였다. 회사 직원들도 대부분 아이치 현 출신으로 동경대의 최우수 인재들만 모여 있던 닛산과는 개인 능력에서 비교가 되지 않았다.
그러다 80년대 들어 국내 시장의 1인자로 부상하더니 90년대에는 렉서스 브랜드로 미국 고급차 시장을 석권했고, 지난해에는 창사 70년 만에 명실상부 세계 1위 메이커로 올라섰다. 그 숨 가빴던 변화의 이면에는 모든 직원이 자주적으로 참여하여 의견을 개진하는 카이젠, 대량생산 방식에 시간 요소를 도입한 린 생산 등과 같은 혁신적 원리가 작용한다. 도요타는 이와 같은 일하는 사람의 중요성, 시간의 중요성을 하나의 관점으로 정립하여 공장 운영, 제조생산, 판매유통 나아가 기업경영 전반에 적용했고 그로써 독특한 도요타 방식(Toyota Way)를 만들어냈다. 이 또한 기존의 근대적 관점을 넘어선 현대적 관점의 승리라 할 수 있다.
그런 도요타가 최근 ‘4년 연속 리콜 100만대’라는, 때 아닌 복병을 맞고 있다. 지난 2001년 9만대에 불과했던 이 회사의 리콜 차량이 2003년 103만대, 2004년 201만대, 2005년 189만대를 기록하더니 지난해 겨우 138만대까지 줄어든 상태. 하지만 이미 출고된 차량의 설계에서 비롯된 문제가 대부분이라 손을 쓰지 못하고 있다. 지난 2월에는 소비자들이 엔진결함에 대해 집단 소송을 제기해 수리비만 수억 달러를 배상하는 치욕적인 사태까지 맞아야 했다.
리콜 사태가 이어지자 조 후지오 도요타 회장은 “병참선이 길어지고 있다”며 당혹가믈 감추지 못하고 있다. 이 말처럼 도요타는 그간 세계 일등을 달성하기 위해 강행군을 멈추지 않았다. 무리한 원가절감, 간소한 점검, 과도한 부품 공용화 등에다 결정적으로 설계 단계의 부주의까지 겹치면서 연쇄적이고도 대량의 불량이 예고되는 상황에 이른 것이다.
전문가들은 도요타에서 이런 문제가 나타나는 근본 원인으로 반성의 부재를 든다. 예를 들어 이 회사는 렉서스를 통해 미국 시장에 진출할 때 자사의 이름까지 없애면서 철저히 고객의 요구에 부응하는 최상의 차를 만드는 데 골몰했다. 정상의 지위에 오를 것이 분명해지면서 이러한 정신을 잃기 시작했다는 지적이다.
프랑스 르노의 카를로스 곤 사장이 진두지휘해 도산의 위기에서 벗어나 회복세를 보이던 일본 닛산 자동차가 주춤하는 것도 비슷한 경우. 닛산은 부도 직전에 르노에 구원을 요청했고, 르노는 당시 최고의 관리자라 불리던 곤을 파견했다. 그는 특유의 카리스마로 단 1년만에 닛산을 회생시켜 일약 스타로 부상했다.
닛산을 살려낸 그 특유의 스타일이 자신에게는 부메랑으로 돌아갔다. 곤은 목표를 먼저 내걸고 단숨에 몰아붙이는 이른바 공약(Commitment) 스타일의 경영자다. 때문에 목표가 높으면 높을수록 그것을 달성해야 하는 직원들은 생각할 시간을 점점 뺏기게 된다. 그러한 방식이 반복되면서, 밑으로는 피로가 누적되고 위에서는 독선적인 결정이 횡행하며 당장의 실적을 위해 장기적인 전략이 희생된 채 지금에 이른 것이다.
곤 사장의 ‘반성’은 외부로부터 강제되고 말았다. 확실한 우위를 점하고도 미국 GM과의 제휴에 실패한 그는 경영위원회 를 확대하고 북미 사업 지휘권을 넘겨야 했다.

한국기업, 위기 탈출은 반성
에서 시작해야
한국 경제가 일본과 중국 사이에서 위협을 받고 있다는 이건희 회장의 ‘샌드위치론’ 발언이 나온 이후 이를 구체적으로 뒷받침하는 주장이 나와 눈길을 끌었다. 지난 20일 대한상공회의소 주최 세미나에서 오노 히사시(小野尙) 노무라종합연구소 서울지점장이 발표한 내용이다.
그는 현재 한국경제가 처한 상황을 ▲기술장벽 샌드위치 ▲이익장벽 샌드위치 ▲시장지배 샌드위치 ▲첨단산업 샌드위치 등 ''4대 샌드위치''로 분석했다. 기술력을 따라잡지 못하면서 하위 기업의 가격경쟁력에 추격당하는 상황(자동차 및 부품소재), 시장지배력이 높지만 이익이 줄어드는 상황(평판디스플레이와 조선), 막대한 투자로 규모의 경제를 추구하지 않으면 경쟁력을 유지할 수 없는 상황(철강), 축적된 지적 자산이나 브랜드력이 부족해 하청구조에 벗어나지 못하는 상황(IT와 소프트웨어)에 놓여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샌드위치 신세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국내 기업은 사실상 없을 것이다.
히사시 지점장은 이런 지적에 이어 현실의 극복 사례로 삼성전자와 소니의 액정패널 공동사업을 들었다. 경쟁관계에 놓은 기업들이 적절한 분업과 협력관계를 모색하면 기회가 될 수 있을 것이라는 지적이다. 하지만 이러한 기회를 인식하기 위해서는 자신이 처한 현실을 숨김없이 인정하는 솔직함이 필요하다.
러시아 발명가 겐리히 알트슐러는 제자들과 함께 50년에 걸쳐 전 세계 250만 건의 특허를 조사한 결과, “문제의 대부분은 세상의 어딘가에 해결안이 이미 존재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창조란 결국 현실의 아이디어를 응용하려는 시도에서 생겨난다는 것이다.
삼성이 모든 일하는 사람들에게서 다양하게 발휘되는 창조성을 존중함으로써 그 통일을 유지하여 기업 경쟁력의 마르지 않는 원천으로 삼을 수 있을 지 여부는, 다른 무엇보다 이 기업이 고객 앞에서 무한히 겸허할 수 있는지에 달렸다.
김선태 기자 kst@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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