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 현안 못 다룬 장관급회담 … 6자회담 실무회담으로 전락 우려
한반도 문제는 구조적으로 북핵문제와 남북관계라는 이중적 모습으로 나타난다.
북한의 핵보유 문제가 남북한뿐만 아니라 중국과 일본, 러시아, 미국 등 국제적 성격을 가진다면 남북관계는 분단과 통일이라는 민족 내부의 문제라는 형태다.
이중적 모습이면서도 동시적인 두 문제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할 것인가는 대북정책의 핵심적인 사안이다.
지난해 10월 북한 핵실험의 경우처럼 국제적인 이슈가 부각될 경우 남북관계는 부차적 변수로 평가받기도 하지만 결정적인 갈등의 순간에 위기를 관리하는 남북대화가 빛을 발할 수도 있다. 어느 한쪽만이 한반도 평화를 이루는 데 결정적인 변수라고 할 수 없는 이유다.
◆상반된 YS와 DJ의 대북정책 = 김영삼 전 대통령은 “핵을 가진 자와는 악수할 수 없다”며 남북대화 통로를 닫는 대신 북한에 대해 강경한 목소리를 내던 미국에 한반도 위기관리의 주도권을 넘겨줬다. 그러다 미국이 실제 북폭을 준비하자 허둥지둥 이를 반대하는 자가당착에 빠지기도 했다.
결국 남북관계의 주도권을 잃어버리고 북미대화를 귀동냥하는 신세로 전락했다. 의지와는 관계없이 경수로 부담까지 떠안게 됐다.
남북관계를 국제문제의 종속변수, 즉 ‘남북관계·국제문제 연계론’에 근거한 그의 판단은 대표적인 정책적 실책으로 꼽히고 있다.
김대중 정부는 남북관계와 국제문제의 병행론을 주장하며 대북포용정책을 구사했다. 서해교전에도 불구하고 금강산관광을 지속한 것은 ‘병행론’의 진면목이라는 평가를 받기도 했으며 역사적인 남북정상회담까지 끌어냈다.
그의 햇볕정책은 미국 클린턴 행정부의 개입정책(engage ment policy)과 북핵 동결이라는 조건하에서 추진었고 개성공단과 금강산관광, 남북철도연결 등의 굵직굵직한 사업의 기틀을 마련하는데 공헌했다.
참여정부의 대북정책은 햇볕정책을 계승한 “북한 핵문제 해결과 남북관계를 병행 발전시켜 나간다”는 ‘평화번영정책’으로 요약될 수 있다. 국가안전보장회의가 펴낸 ‘참여정부의 안보정책 구상 - 평화번영과 국가안보’에는 “북한 핵문제 해결과정에 따라 남북경협 확대 등 남북관계를 지속적으로 발전시켜 나가며, 동시에 남북대화를 통해 북한 핵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위한 여건을 조성한다”고 정리돼 있다.
◆남북간 합의사항도 어겨 = 미사일발사와 북한 핵실험에도 불구하고 금강산관광과 개성공단 사업을 지속하면서 ‘병행론’과 ‘시장평화론’의 입장을 명확하게 보여줬던 참여정부의 대북정책은 최근 들어 크게 흔들리고 있다.
국제 문제인 2·13 합의의 진전에 따라 대북 쌀 지원의 속도를 조절하겠다는 ‘연계론’이 득세한 제21차 남북 장관급회담(5월 30일~6월 1일)이 대표적이다. 대북 쌀 차관 지원을 ‘지렛대(레버리지)’로 활용하면서 ‘북한 주민들의 굶주림을 이용하고 있다’는 맹공을 받기도 했지만 청와대는 뜻을 굽히지 않았다.
제20차 장관급회담(2월 27일~3월 2일)에서도 6자회담과 남북관계의 속도조절론이 힘을 발휘했다. 당시 북한은 쌀 차관이 주요 의제인 남북 경추위를 3월 중 열자고 제안했지만 우리 정부는 2·13 합의의 이행시한(60일)인 4월 14일 이후 개최를 고집했다.
취임초기 인도적 지원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병행론을 주장했던 이재정 통일부 장관이 20차, 21차 장관급회담을 거치며 연계론으로 중심이동을 하고 있는 것은 정부의 정책변화와 무관하지 않다는 지적이다.
일관성이 흔들릴 경우 남북관계의 신뢰 손상으로도 이어질 수 있다는 측면에서 참여정부 대북정책의 변화는 민감한 사안이다. 쌀 차관 40만톤이 2·13 합의에 연계되면서 당초 4월 30일 북송하기로 했던 수해복구 쌀 지원분 1만여톤의 선적도 유예됐다. 우리 정부의 일방적 결정으로 남북 합의사항이 지켜지지 않은 것이다.
“(제21차 장관급회담에서) BDA문제와 2·13합의 조치가 선후가 있는 것이 아니지 않느냐. 먼저 2·13합의 조치를 일정 정도 이행할 수도 있지 않겠느냐는 제안도 했다”는 이재정 장관의 말처럼 남북관계 고유 의제보다 국제문제 논의가 중시되는 점도 우려된다. 21차 회담은 쌀 지원 문제 이외에 ‘개성공단 통관·통행 간소화’ 등 주요 의제가 많았었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남북한관계실장은 “2·13 합의 이행과 쌀 지원이 연계되면 남북대화의 고유한 현안이 뒷전으로 밀리고 국제문제가 주요 의제로 자리잡게 된다”며 “장관급회담이 6자회담의 실무회담(워킹그룹)으로 전락할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허신열 기자 syheo@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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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문제는 구조적으로 북핵문제와 남북관계라는 이중적 모습으로 나타난다.
북한의 핵보유 문제가 남북한뿐만 아니라 중국과 일본, 러시아, 미국 등 국제적 성격을 가진다면 남북관계는 분단과 통일이라는 민족 내부의 문제라는 형태다.
이중적 모습이면서도 동시적인 두 문제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할 것인가는 대북정책의 핵심적인 사안이다.
지난해 10월 북한 핵실험의 경우처럼 국제적인 이슈가 부각될 경우 남북관계는 부차적 변수로 평가받기도 하지만 결정적인 갈등의 순간에 위기를 관리하는 남북대화가 빛을 발할 수도 있다. 어느 한쪽만이 한반도 평화를 이루는 데 결정적인 변수라고 할 수 없는 이유다.
◆상반된 YS와 DJ의 대북정책 = 김영삼 전 대통령은 “핵을 가진 자와는 악수할 수 없다”며 남북대화 통로를 닫는 대신 북한에 대해 강경한 목소리를 내던 미국에 한반도 위기관리의 주도권을 넘겨줬다. 그러다 미국이 실제 북폭을 준비하자 허둥지둥 이를 반대하는 자가당착에 빠지기도 했다.
결국 남북관계의 주도권을 잃어버리고 북미대화를 귀동냥하는 신세로 전락했다. 의지와는 관계없이 경수로 부담까지 떠안게 됐다.
남북관계를 국제문제의 종속변수, 즉 ‘남북관계·국제문제 연계론’에 근거한 그의 판단은 대표적인 정책적 실책으로 꼽히고 있다.
김대중 정부는 남북관계와 국제문제의 병행론을 주장하며 대북포용정책을 구사했다. 서해교전에도 불구하고 금강산관광을 지속한 것은 ‘병행론’의 진면목이라는 평가를 받기도 했으며 역사적인 남북정상회담까지 끌어냈다.
그의 햇볕정책은 미국 클린턴 행정부의 개입정책(engage ment policy)과 북핵 동결이라는 조건하에서 추진었고 개성공단과 금강산관광, 남북철도연결 등의 굵직굵직한 사업의 기틀을 마련하는데 공헌했다.
참여정부의 대북정책은 햇볕정책을 계승한 “북한 핵문제 해결과 남북관계를 병행 발전시켜 나간다”는 ‘평화번영정책’으로 요약될 수 있다. 국가안전보장회의가 펴낸 ‘참여정부의 안보정책 구상 - 평화번영과 국가안보’에는 “북한 핵문제 해결과정에 따라 남북경협 확대 등 남북관계를 지속적으로 발전시켜 나가며, 동시에 남북대화를 통해 북한 핵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위한 여건을 조성한다”고 정리돼 있다.
◆남북간 합의사항도 어겨 = 미사일발사와 북한 핵실험에도 불구하고 금강산관광과 개성공단 사업을 지속하면서 ‘병행론’과 ‘시장평화론’의 입장을 명확하게 보여줬던 참여정부의 대북정책은 최근 들어 크게 흔들리고 있다.
국제 문제인 2·13 합의의 진전에 따라 대북 쌀 지원의 속도를 조절하겠다는 ‘연계론’이 득세한 제21차 남북 장관급회담(5월 30일~6월 1일)이 대표적이다. 대북 쌀 차관 지원을 ‘지렛대(레버리지)’로 활용하면서 ‘북한 주민들의 굶주림을 이용하고 있다’는 맹공을 받기도 했지만 청와대는 뜻을 굽히지 않았다.
제20차 장관급회담(2월 27일~3월 2일)에서도 6자회담과 남북관계의 속도조절론이 힘을 발휘했다. 당시 북한은 쌀 차관이 주요 의제인 남북 경추위를 3월 중 열자고 제안했지만 우리 정부는 2·13 합의의 이행시한(60일)인 4월 14일 이후 개최를 고집했다.
취임초기 인도적 지원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병행론을 주장했던 이재정 통일부 장관이 20차, 21차 장관급회담을 거치며 연계론으로 중심이동을 하고 있는 것은 정부의 정책변화와 무관하지 않다는 지적이다.
일관성이 흔들릴 경우 남북관계의 신뢰 손상으로도 이어질 수 있다는 측면에서 참여정부 대북정책의 변화는 민감한 사안이다. 쌀 차관 40만톤이 2·13 합의에 연계되면서 당초 4월 30일 북송하기로 했던 수해복구 쌀 지원분 1만여톤의 선적도 유예됐다. 우리 정부의 일방적 결정으로 남북 합의사항이 지켜지지 않은 것이다.
“(제21차 장관급회담에서) BDA문제와 2·13합의 조치가 선후가 있는 것이 아니지 않느냐. 먼저 2·13합의 조치를 일정 정도 이행할 수도 있지 않겠느냐는 제안도 했다”는 이재정 장관의 말처럼 남북관계 고유 의제보다 국제문제 논의가 중시되는 점도 우려된다. 21차 회담은 쌀 지원 문제 이외에 ‘개성공단 통관·통행 간소화’ 등 주요 의제가 많았었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남북한관계실장은 “2·13 합의 이행과 쌀 지원이 연계되면 남북대화의 고유한 현안이 뒷전으로 밀리고 국제문제가 주요 의제로 자리잡게 된다”며 “장관급회담이 6자회담의 실무회담(워킹그룹)으로 전락할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허신열 기자 syheo@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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