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들이 국내에 들어와 결혼해 한국국적을 취득하더라도 실제 한국인으로 생활하기에는 여전히 벽이 많다. 이런 상황은 지난 97년 국내에 들어와 한국 남성과 결혼한 중국 옌벤조선족자치주 화룡시에 고향을 둔 중국동포 박순임(50·가명)씨의 경우를 보면 잘 알 수 있다. 박씨는 안산지역에서 신혼살림을 차리고 생활하면서 식당 주방일을 하기 원했지만 중국 출신이라는 이유로 거절되는 일이 많았고, 일을 하고도 정당한 대가를 받지 못하기도 했다. 이런 이유로 박씨는 여러 곳의 식당을 전전할 수밖에 없었고 시댁의 오해와 남편의 의심 등 문화적 차이 때문에 이혼이라는 상처도 안고 살아가고 있다. 해외에서 국내에 들어온 결혼이민자들이 국적을 취득한 한국인이지만 여전히 이방인으로 생활하고 있다.
이들이 한국인으로 살아갈 수 있는 사회 인식의 변화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한국국적 있어도 외국인 취급해요”
국적 취득 10년째인 박씨 “비하와 편견 이제 사라졌으면”
“한국국적을 취득한 지 10년째입니다. 하지만 주변에서는 여전히 외국인이라며 가슴에 상처를 주는 말을 무심코 던집니다. 비하와 편견으로 힘든 날을 보냈죠. 외국인에 대한 편견이 사라졌으면 합니다.”
박순임(50·가명)씨는 옌벤조선족자치주 화룡시에 고향을 둔 중국동포다. 그는 1997년 한국 남성과 국제결혼을 통해 한국에 들어왔다. 한국국적을 취득한 박씨는 경기도 안산지역에 신혼살림을 차린 후 줄곧 안산에서만 생활했다.
그러나 박씨의 삶은 결코 순탄하지 않았다. 박씨는 분명 법적으로 한국인이었지만 한국사회에서 그는 여전히 ‘이방인’이었던 것이다.
◆일자리 거절 당해 = 박씨는 일자리를 구하면서부터 벽에 부딪쳤다. 그는 중국 고향에서 식당을 운영하며 직접 요리를 할 정도로 요리솜씨에는 자신이 있었던 터라 주방장으로 일하기를 고대했다.
“중국 고향에서 작은 식당을 운영하면서 2명의 아이들과 먹고 사는데는 충분했죠. 음식만드는 일이 즐겁고 자신 있어요.”
일자리를 찾아 나섰지만 주방장은 고사하고 식당 허드레 일 조차 중국인이라는 이유로 거절되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식당 문 두드리기가 두려웠을 정도다.
어렵사리 일하게 된 안산시내 한 횟집에서는 한달만에 분노를 삼키며 가게를 나와야 했다. 손꼽아 기다린 월급날, 130만원 받기로 한 월급이 100만원 밖에 나오지 않자 박씨는 이유를 물었다.
이에 식당 실장에게서 “중국인이라 월급을 올려줄 수 없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중국인에게 100만원이면 충분하다는 이야기다. 항의 했지만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그는 다음날 가게를 그만 두었다.
2001년도 안산지역내 공장 식당 주방장을 맡고 있을 때였다. 식사 후 직원들이 “맛있다”는 이야기를 꺼내자 한 직원이 “중국×이 요리를 잘하면 얼마나 잘 하겠느냐”며 비아냥 거렸다. 이 말을 우연히 들은 박씨는 충격으로 1년 정도 정들었던 주방을 떠났다.
이런 저런 이유로 마음 깊이 상처만 남긴 채 일자리를 떠나야 했다. 한때는 1년에 8번 정도 가게를 옮기기도 했다. 박씨는 10년이 지났어도 음식하는 게 즐거워 여전히 식당에서 일을 하고 있다.
“지금은 내 음식솜씨를 인정받을 때까지 무조건 견디며 생활하는 게 익숙해졌어요. 예전보다는 더 강해졌다고나 할까. 말 한마디에 상처받지 않고 이제는 당당히 내 이야기를 해요.”
◆문화적 차이는 이혼의 상처 줘 = 문화적 차이에 따른 주변의 편견과 오해는 그에게 지울 수 없는 아픔을 주기도 했다. 1997년 국제결혼으로 한국에 정착한 박씨가 결혼 7년만에 이혼하게 된 이유도 문화적 차이 때문이다.
이미 중국에서 남편의 외도로 이혼의 상처를 안고 있던 박씨는 남편 이(가명)씨도 외로웠던 터라 서로의 아픔을 감싸주며 평생해로하고 싶었다. 그는 설날, 추석, 시부모 생일 때는 빠지지 않고 시댁을 다녀올 정도로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그러나 시댁의 오해와 남편의 의심이 심해지면서 또다시 이별의 아픔을 겪었다. “지금 생각하면 작은 문화적 차이였던 것 같아요. 시댁이나 남편, 그리고 나도 그 차이를 이해하지 못했던 거지요.”
이별 후 박씨는 우울증에 걸렸다. 그는 중국에 떼어놓은 아들들을 생각하면 놀 수가 없어 다시 일을 찾아 나섰다.
이러한 주변의 편견으로 인한 오해 때문에 박씨는 중국교포라는 사실이 알려 질까봐 두려워 여러 사람 있는 곳에서는 말을 하지 않는 버릇이 생겼다.
“중국교포들이 한국에 구걸하러 온 것이 아닙니다. 열심히 일하며 희망을 만들어 가는 이들에게 비하와 편견은 견디기 힘든 족쇄입니다.” 박씨는 “아직도 한국사회는 편견이 많다”고 지적했다.
◆그래도 한국은 기회의 땅 = 박씨는 최근 칭타오의 한국인 회사에 근무하고 있는 두 아들에게 초청장을 보냈다. 자식들이 한국에서 돈의 가치와 투자의 땀방울을 배우고, 이곳에서 또다른 인생을 펼치도록 하기 위해서다.
박씨는 중국교포들과 외국인들이 한국사회에 적응하는 지름길로 ‘언어’를 꼽았다. 박씨는 TV를 보면서 한국말을 익혔다. 언어를 빨리 익혀 제대로 의사소통을 한다면 오해를 상당히 줄일 수 있다는 것이다. 박씨는 특히 “진심은 통한다”면서 “한국은 열심히 일하는 사람에게는 기회를 주는 땅”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안산외국인노동자센터에 따르면 공단지역인 반월시화지역에 외국인은 약 7만명에 이른다. 안산에만 4만 5000명에서 5만여명에 이른다. 이들 중 40% 정도는 불법체류자다. 2000여명은 국제결혼해 정착한 경우다.
안산 김형수 기자 hskim@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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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이 한국인으로 살아갈 수 있는 사회 인식의 변화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한국국적 있어도 외국인 취급해요”
국적 취득 10년째인 박씨 “비하와 편견 이제 사라졌으면”
“한국국적을 취득한 지 10년째입니다. 하지만 주변에서는 여전히 외국인이라며 가슴에 상처를 주는 말을 무심코 던집니다. 비하와 편견으로 힘든 날을 보냈죠. 외국인에 대한 편견이 사라졌으면 합니다.”
박순임(50·가명)씨는 옌벤조선족자치주 화룡시에 고향을 둔 중국동포다. 그는 1997년 한국 남성과 국제결혼을 통해 한국에 들어왔다. 한국국적을 취득한 박씨는 경기도 안산지역에 신혼살림을 차린 후 줄곧 안산에서만 생활했다.
그러나 박씨의 삶은 결코 순탄하지 않았다. 박씨는 분명 법적으로 한국인이었지만 한국사회에서 그는 여전히 ‘이방인’이었던 것이다.
◆일자리 거절 당해 = 박씨는 일자리를 구하면서부터 벽에 부딪쳤다. 그는 중국 고향에서 식당을 운영하며 직접 요리를 할 정도로 요리솜씨에는 자신이 있었던 터라 주방장으로 일하기를 고대했다.
“중국 고향에서 작은 식당을 운영하면서 2명의 아이들과 먹고 사는데는 충분했죠. 음식만드는 일이 즐겁고 자신 있어요.”
일자리를 찾아 나섰지만 주방장은 고사하고 식당 허드레 일 조차 중국인이라는 이유로 거절되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식당 문 두드리기가 두려웠을 정도다.
어렵사리 일하게 된 안산시내 한 횟집에서는 한달만에 분노를 삼키며 가게를 나와야 했다. 손꼽아 기다린 월급날, 130만원 받기로 한 월급이 100만원 밖에 나오지 않자 박씨는 이유를 물었다.
이에 식당 실장에게서 “중국인이라 월급을 올려줄 수 없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중국인에게 100만원이면 충분하다는 이야기다. 항의 했지만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그는 다음날 가게를 그만 두었다.
2001년도 안산지역내 공장 식당 주방장을 맡고 있을 때였다. 식사 후 직원들이 “맛있다”는 이야기를 꺼내자 한 직원이 “중국×이 요리를 잘하면 얼마나 잘 하겠느냐”며 비아냥 거렸다. 이 말을 우연히 들은 박씨는 충격으로 1년 정도 정들었던 주방을 떠났다.
이런 저런 이유로 마음 깊이 상처만 남긴 채 일자리를 떠나야 했다. 한때는 1년에 8번 정도 가게를 옮기기도 했다. 박씨는 10년이 지났어도 음식하는 게 즐거워 여전히 식당에서 일을 하고 있다.
“지금은 내 음식솜씨를 인정받을 때까지 무조건 견디며 생활하는 게 익숙해졌어요. 예전보다는 더 강해졌다고나 할까. 말 한마디에 상처받지 않고 이제는 당당히 내 이야기를 해요.”
◆문화적 차이는 이혼의 상처 줘 = 문화적 차이에 따른 주변의 편견과 오해는 그에게 지울 수 없는 아픔을 주기도 했다. 1997년 국제결혼으로 한국에 정착한 박씨가 결혼 7년만에 이혼하게 된 이유도 문화적 차이 때문이다.
이미 중국에서 남편의 외도로 이혼의 상처를 안고 있던 박씨는 남편 이(가명)씨도 외로웠던 터라 서로의 아픔을 감싸주며 평생해로하고 싶었다. 그는 설날, 추석, 시부모 생일 때는 빠지지 않고 시댁을 다녀올 정도로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그러나 시댁의 오해와 남편의 의심이 심해지면서 또다시 이별의 아픔을 겪었다. “지금 생각하면 작은 문화적 차이였던 것 같아요. 시댁이나 남편, 그리고 나도 그 차이를 이해하지 못했던 거지요.”
이별 후 박씨는 우울증에 걸렸다. 그는 중국에 떼어놓은 아들들을 생각하면 놀 수가 없어 다시 일을 찾아 나섰다.
이러한 주변의 편견으로 인한 오해 때문에 박씨는 중국교포라는 사실이 알려 질까봐 두려워 여러 사람 있는 곳에서는 말을 하지 않는 버릇이 생겼다.
“중국교포들이 한국에 구걸하러 온 것이 아닙니다. 열심히 일하며 희망을 만들어 가는 이들에게 비하와 편견은 견디기 힘든 족쇄입니다.” 박씨는 “아직도 한국사회는 편견이 많다”고 지적했다.
◆그래도 한국은 기회의 땅 = 박씨는 최근 칭타오의 한국인 회사에 근무하고 있는 두 아들에게 초청장을 보냈다. 자식들이 한국에서 돈의 가치와 투자의 땀방울을 배우고, 이곳에서 또다른 인생을 펼치도록 하기 위해서다.
박씨는 중국교포들과 외국인들이 한국사회에 적응하는 지름길로 ‘언어’를 꼽았다. 박씨는 TV를 보면서 한국말을 익혔다. 언어를 빨리 익혀 제대로 의사소통을 한다면 오해를 상당히 줄일 수 있다는 것이다. 박씨는 특히 “진심은 통한다”면서 “한국은 열심히 일하는 사람에게는 기회를 주는 땅”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안산외국인노동자센터에 따르면 공단지역인 반월시화지역에 외국인은 약 7만명에 이른다. 안산에만 4만 5000명에서 5만여명에 이른다. 이들 중 40% 정도는 불법체류자다. 2000여명은 국제결혼해 정착한 경우다.
안산 김형수 기자 hskim@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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