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민가협)은 1985년 12월 12일 창립됐다. 군사정권의 탄압이 서슬 퍼렇던 당시 민가협은 학생·노동자·시민 등 민주화를 염원하는 모든 사람들의 방패막이가 됐다.
민가협은 창립과 함께 구속된 민주인사에 대한 석방투쟁과 각종 시위와 농성을 지원하는 투쟁을 벌였다.
87년 6월항쟁 과정에서도 민가협 어머니들은 헌신적으로 시위현장을 지키며 자식 같은 학생들은 온몸으로 지켰다. 명동성당 등지에서 벌어지는 투쟁을 지원하기 위해 먹을거리를 준비해 학생들의 주린 배를 채워주기도 했다.
민가협에서 10여년 이상 활동한 남규선 국가인권위원회 시민교육팀장은 “가정주부였던 어머니들이 자식의 문제로 민주화대열에 나섰지만 누구보다도 앞장서서 투쟁했다”며 “이들의 역할이 시민들이나 국제사회가 보기에도 우리나라 민주화운동의 지평을 넓히는 역할을 했다”고 말했다.
6월항쟁이후 민가협은 통일과 인권문제에 본격적으로 나서기 시작했다. 1989년부터 ‘양심수를 위한 시와 노래의 밤’이라는 인권콘서트를 해마다 개최하고 있으며, 지난해 12월에는 제18회 ‘인권콘서트’가 열렸다.
민가협은 30~40년 동안 감옥에 갇혀 있던 비전향장기수의 석방운동을 벌여왔으며, 2000년 9월 63명의 비정향장기수가 북한으로 돌아가는데 커다란 역할을 했다.
1989년에는 악명 높은 고문경찰 이근안 경감을 국민들이 직접 검거하자며 현상수배를 하기도 했다. 93년 9월부터 계속된 ‘목요집회’는 지난 21일 669회째를 맞았다. 이날 집회에서 민가협 회원들은 국가보안법을 하루바삐 철폐하라고 소리 높여 외쳤다.
특히 최근들어 경찰의 국가보안법 수사가 눈에 띄게 늘어나고 있는 것에 대해 경계하면서 공안분위기를 조성하는 참여정부를 규탄했다.
한지연 민가협 간사는 “민가협 운동이 양심수 석방운동에서 확장된 개념으로 국보법철폐와 소수자운동 등을 벌여나가고 있다”며 “어머니들이 자식 때문에 운동을 시작해 새로운 세상을 봤다고 말씀하신다”고 말했다.
하지만 민가협도 세월의 흐름속에서 예전과 같은 왕성한 활동을 하지 못하고 있다.
20년이 넘도록 여전히 열성적인 활동을 하고 있는 20여명의 어머니들이 있지만 한창 때 수백명의 회원이 움직일 때와는 사뭇 다르다.
남 팀장은 “어머니들이 국가보안법의 폐단을 알리고 억울한 사람들의 무죄를 입증하기 위해 노력했다”며 “하지만 겨우 1명의 무죄만 밝혀냈을 뿐인데 이제 그 어머니들도 많이 늙으셔서 안타깝다”고 말했다.
특별취재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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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가협은 창립과 함께 구속된 민주인사에 대한 석방투쟁과 각종 시위와 농성을 지원하는 투쟁을 벌였다.
87년 6월항쟁 과정에서도 민가협 어머니들은 헌신적으로 시위현장을 지키며 자식 같은 학생들은 온몸으로 지켰다. 명동성당 등지에서 벌어지는 투쟁을 지원하기 위해 먹을거리를 준비해 학생들의 주린 배를 채워주기도 했다.
민가협에서 10여년 이상 활동한 남규선 국가인권위원회 시민교육팀장은 “가정주부였던 어머니들이 자식의 문제로 민주화대열에 나섰지만 누구보다도 앞장서서 투쟁했다”며 “이들의 역할이 시민들이나 국제사회가 보기에도 우리나라 민주화운동의 지평을 넓히는 역할을 했다”고 말했다.
6월항쟁이후 민가협은 통일과 인권문제에 본격적으로 나서기 시작했다. 1989년부터 ‘양심수를 위한 시와 노래의 밤’이라는 인권콘서트를 해마다 개최하고 있으며, 지난해 12월에는 제18회 ‘인권콘서트’가 열렸다.
민가협은 30~40년 동안 감옥에 갇혀 있던 비전향장기수의 석방운동을 벌여왔으며, 2000년 9월 63명의 비정향장기수가 북한으로 돌아가는데 커다란 역할을 했다.
1989년에는 악명 높은 고문경찰 이근안 경감을 국민들이 직접 검거하자며 현상수배를 하기도 했다. 93년 9월부터 계속된 ‘목요집회’는 지난 21일 669회째를 맞았다. 이날 집회에서 민가협 회원들은 국가보안법을 하루바삐 철폐하라고 소리 높여 외쳤다.
특히 최근들어 경찰의 국가보안법 수사가 눈에 띄게 늘어나고 있는 것에 대해 경계하면서 공안분위기를 조성하는 참여정부를 규탄했다.
한지연 민가협 간사는 “민가협 운동이 양심수 석방운동에서 확장된 개념으로 국보법철폐와 소수자운동 등을 벌여나가고 있다”며 “어머니들이 자식 때문에 운동을 시작해 새로운 세상을 봤다고 말씀하신다”고 말했다.
하지만 민가협도 세월의 흐름속에서 예전과 같은 왕성한 활동을 하지 못하고 있다.
20년이 넘도록 여전히 열성적인 활동을 하고 있는 20여명의 어머니들이 있지만 한창 때 수백명의 회원이 움직일 때와는 사뭇 다르다.
남 팀장은 “어머니들이 국가보안법의 폐단을 알리고 억울한 사람들의 무죄를 입증하기 위해 노력했다”며 “하지만 겨우 1명의 무죄만 밝혀냈을 뿐인데 이제 그 어머니들도 많이 늙으셔서 안타깝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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