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혁명군
총사령관 양세봉
조문기 지음 / 안병호 옮김
나무와숲 / 1만5000원
항일무장투쟁을 이끈 독립군을 아느냐고 묻는다면 김좌진 장군이나 홍범도 장군 등을 떠올리게 된다. 하지만 양세봉이라는 이름은 낯설다.
조선혁명군 총사령관으로 1920~1930년대 남만주 일대에서 항일무장투쟁을 이끈 양세봉 장군은 수십차례에 걸쳐 조선진공작전을 펼친 항일 명장이다. 거듭된 전투에서 승리하자 항일전선에 합류하려는 만주족과 한족이 양세봉을 찾아왔고 그의 부대는 1000명을 넘어섰다.
양세봉 장군의 활동 근거지였던 요령성 신빈현(옛 홍경현) 왕청문에는 그의 업적을 기리는 석상이 세워져 있고, 매년 추모행사가 열리고 있다.
그는 중국 동북지역에서 군신(軍神)으로 명성을 떨쳤지만 그의 활동이 제대로 알려진 것은 최근이다.
양세봉은 북한의 김일성 주석의 아버지인 김형직과 의형제를 맺었고, 해방후 그의 가족들은 북한으로 이주해 북한 정부의 보살핌을 받았기 때문에 남한에서는 그의 업적과 활동에 대해 연구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특히 그의 묘소가 평양애국열사릉에 있다는 사실 등으로 인해 남한에서 홀대를 받았다.
특이하게도 양세봉의 묘소는 북에 있지만 서울 흑석동 국립묘지에도 있다. 남북한 국립묘지에 그의 묘소가 있지만 남쪽 묘지는 허묘다. 양세봉은 1934년 일본군의 사주를 받은 이로부터 암살됐다. 그의 시신은 일본군에 의해 파헤쳐져 목이 잘린 채 거리에 걸렸다. 하지만 조선인들은 그의 시신을 다시 수습해 가매장했다. 가족들은 독립 후 그의 시신을 평양으로 옮겼고 이후 애국열사릉에 묻히게 된다. 남북한 국립묘지에 묘소가 있는 유일한 독립투사라는 점에서 그의 항일투쟁의 무게가 느껴진다.
‘조선혁명군 총사령관 양세봉’의 원저자는 만주족 출신의 역사가 조문기였고, 이 책을 옮긴이는 퇴역장성으로 1991년 수도방위사령관을 지낸 안병호 제정구기념사업회 이사다. 남한에서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독립투사가 퇴역장성에 의해 빛을 보고 있는 것이다.
역자는 서문을 통해 “편협한 퇴영적 민족주의를 넘어 진취적으로 평화와 민족적 통합의 길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양세봉 장군이 실천한 ‘개방적 민족주의’와 ‘유연하고 현실성 있는 투쟁방략’에서 시사점을 찾아내야 한다”고 밝혔다.
오승완 기자 osw@naeil.com
Copyright ⓒThe Naeil News. All rights reserved.
총사령관 양세봉
조문기 지음 / 안병호 옮김
나무와숲 / 1만5000원
항일무장투쟁을 이끈 독립군을 아느냐고 묻는다면 김좌진 장군이나 홍범도 장군 등을 떠올리게 된다. 하지만 양세봉이라는 이름은 낯설다.
조선혁명군 총사령관으로 1920~1930년대 남만주 일대에서 항일무장투쟁을 이끈 양세봉 장군은 수십차례에 걸쳐 조선진공작전을 펼친 항일 명장이다. 거듭된 전투에서 승리하자 항일전선에 합류하려는 만주족과 한족이 양세봉을 찾아왔고 그의 부대는 1000명을 넘어섰다.
양세봉 장군의 활동 근거지였던 요령성 신빈현(옛 홍경현) 왕청문에는 그의 업적을 기리는 석상이 세워져 있고, 매년 추모행사가 열리고 있다.
그는 중국 동북지역에서 군신(軍神)으로 명성을 떨쳤지만 그의 활동이 제대로 알려진 것은 최근이다.
양세봉은 북한의 김일성 주석의 아버지인 김형직과 의형제를 맺었고, 해방후 그의 가족들은 북한으로 이주해 북한 정부의 보살핌을 받았기 때문에 남한에서는 그의 업적과 활동에 대해 연구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특히 그의 묘소가 평양애국열사릉에 있다는 사실 등으로 인해 남한에서 홀대를 받았다.
특이하게도 양세봉의 묘소는 북에 있지만 서울 흑석동 국립묘지에도 있다. 남북한 국립묘지에 그의 묘소가 있지만 남쪽 묘지는 허묘다. 양세봉은 1934년 일본군의 사주를 받은 이로부터 암살됐다. 그의 시신은 일본군에 의해 파헤쳐져 목이 잘린 채 거리에 걸렸다. 하지만 조선인들은 그의 시신을 다시 수습해 가매장했다. 가족들은 독립 후 그의 시신을 평양으로 옮겼고 이후 애국열사릉에 묻히게 된다. 남북한 국립묘지에 묘소가 있는 유일한 독립투사라는 점에서 그의 항일투쟁의 무게가 느껴진다.
‘조선혁명군 총사령관 양세봉’의 원저자는 만주족 출신의 역사가 조문기였고, 이 책을 옮긴이는 퇴역장성으로 1991년 수도방위사령관을 지낸 안병호 제정구기념사업회 이사다. 남한에서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독립투사가 퇴역장성에 의해 빛을 보고 있는 것이다.
역자는 서문을 통해 “편협한 퇴영적 민족주의를 넘어 진취적으로 평화와 민족적 통합의 길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양세봉 장군이 실천한 ‘개방적 민족주의’와 ‘유연하고 현실성 있는 투쟁방략’에서 시사점을 찾아내야 한다”고 밝혔다.
오승완 기자 osw@naeil.com
Copyright ⓒThe Naeil News. All rights reserved.
위 기사의 법적인 책임과 권한은 내일엘엠씨에 있습니다.
<저작권자 ©내일엘엠씨,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