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원지 수분리에도 외국인 며느리 … 금강상류 비경지대는 용담댐 물속으로
필리핀에서, 베트남에서, 몽골에서, 우즈베키스탄에서, 중국에서, 인도네시아에서, 미얀마에서 …. 참 멀리도 시집온 여자들. 시집온 새색시가 시댁의 김치맛을 익혀가듯 그 여자들도 김치 담그는 방법을 배우고 있었다.
- 조병준. ‘그곳엔 우리의 누이들이 산다’
금강 발원지 수분리에서 우리는 캄보디아에서 왔다는 한상남씨를 만났다. 1973년 겨울 사진가 강운구씨가 ‘마을 삼부작’으로 수분리를 찍은 지 33년이 지난 지금, 외국인 며느리가 이곳 수분리까지 진출한 것이다.
2003년에서 2005년 사이 사진가 권태균씨는 강운구씨의 제안으로 ‘마을 삼부작 30년 후’를 찍었다. 30년 동안 수분리는 어떻게 변했을까.
1973년과 2006년의 수분리를 비교해 보면, 30년 전 53가구에 살던 389명(남자 199명, 여자 190명)이 45가구 162명(남자 75명, 여자 87명)으로, 195명이나 되던 노동인구는 80명으로 줄었고, … 서른 해 동안 세 마을은, 그러므로 모든 이 땅은 소용돌이치는 바다가 되었다.
- 강운구. ‘마을 삼부작 30년 후’ 서문
수분리 입구에는 ‘우리 마을은 외지 방문차량 번호를 기록해서 관리한다’는 경고문(?)이 붙어 있다. 금강 상류에 있는 마을 곳곳에서 이런 경고문을 볼 수 있었는데, 그만큼 농촌지역에 도난사건이 많다는 얘기다.
이런 문구를 보고 외지인들은 ‘농촌 인심 사납다’고 투덜거린다. 하지만 자기 손으로 고추 한 포기 심어본 일이 없는 도시인들이 농작물을 도둑맞는 촌사람들의 심정을 얼마나 이해할 것인가.
외국인 며느리 문제도 그렇다. ‘심각한 사회적 문제’라는 시각보다는 ‘마흔 넘도록 장가를 못 갔던 아들에게 시집온 태국 며느리가 너무 예쁘다’는 농촌 할머니들의 얘기가 오히려 현실적이다.
도시 사람들 ‘신토불이 우리 농산물’ 좋아하지만 진짜 우리 농산물이 어디 있는가. 토종 한우가 먹는 사료의 대부분은 수입 곡물이고 토종 고추도 씨앗은 네덜란드산이다. 벼와 콩, 도라지 등 몇몇 농작물 이외에는 대부분 외국 종묘회사가 종자를 공급한다. 이런 책임까지 농촌에 돌릴 것인가.
◆이성계가 조선건국의 계시를 받은 샘 = 금강은 한강, 낙동강에 이어 한국에서 세번째로 큰 강이다. 동으로는 백두대간, 남으로는 호남정맥, 북으로는 한남정맥에 걸쳐 있는 금강의 유역면적은 9810㎢에 이르며 전북과 충청권을 가로질러 서해안으로 흘러드는 물길은 약 1000리(395.9km)나 된다.
금강 발원지는 섬진강 발원지인 팔공산을 마주보고 있다. 공식적인 발원샘은 전북 장수군 장수읍 수분리 신무산(897m) 중턱의 ‘뜬봉샘’이다. 수분리 마을은 ‘물뿌랭이마을’로도 불렸던 흔적이 있어 예로부터 선조들이 이곳을 금강 발원지로 여겼음을 알려준다.
장수읍에서 수분령 꼭대기로 가다 보면 왼쪽으로 ‘수분송’이라 이름붙은 커다란 소나무가 한그루 서 있다. 이곳에서 뜬봉샘까지는 걸어서 40분 정도 걸린다. 임도를 타고 자동차로 접근해도 800m 정도는 걸어서 올라가야 한다.
뜬봉샘이란 이름에는 옛날 이산에서 고을의 재앙을 막고 풍년을 기원하기 위해 산에 군데군데 뜸을 뜨듯이 봉화를 올렸다는 데서 유래했다는 설(이 경우 ‘뜸봉샘’으로 표기)과 태조 이성계가 백일기도를 하다 조선 건국의 계시를 받은 곳이라는 두가지 전설이 전해진다.
뜬봉샘을 출발한 금강 물줄기는 장수읍 용머리마을에서 섬진강의 발원지인 진안 팔공산(1151m) 물을 만난다. 팔공산을 사이에 두고 서쪽은 섬진강, 동쪽은 금강 수계가 되는 것이다.
장수군을 지난 금강 물줄기는 진안군으로 들어가 백두대간 덕유산(1614m)에서 내려오는 ‘구량천’과 호남정맥 마이산(678m)에서 시작되는 ‘진안천’을 만난다. 이제 제법 굵어진 물줄기는 무주·영동군을 향해 거의 정북 방향으로 흘러든다.
‘금강(錦江)’은 굽이치며 흐르는 물결이 비단결과 같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그러나 한때 ‘반역의 강’으로 지목되기도 했는데, 이는 옥천까지 한양 방향으로 잘 올라오다가 갑자기 방향을 90° 틀어 서해바다로 빠져나가기 때문이 아닐까.
◆조선조의 광주사태, 기축옥사의 무대 = 금강 본류와 덕유산에서 내려온 구량천이 만나는 ‘죽도’는 ‘조선조의 광주사태’로 불리는 기축옥사의 주인공 정여립(1546~1589) 선생이 죽은 곳이다.
죽도는 정확하게 용담댐 만수위 선상에 위치한다. 만수위가 되면 금강과 구량천이 만나는 아름다운 물굽이는 물속에 잠기고, 금강 물줄기가 휘감아 섬처럼 보이는 죽도는 진짜 섬으로 바뀐다.
용담댐 수몰 이후 죽도로 들어가는 길은 끊어졌다. 산 위로 우회도로가 났고 죽도 유원지 언덕은 서서히 별장지로 바뀌고 있다.
이곳 죽도에서 구 용담면까지 금강은 전형적인 감입곡류로 곳곳이 영월 동강처럼 아름다운 바위·절벽지대를 이루고 있었다. 용담댐 건설 이후 금강 최고의 비경지대는 물속에 잠겼다.
용담댐 건설로 용담면 월계·월운·호계·호암리 등 68개 마을이 수장됐다. 총 2864가구, 진안군 인구 3만명의 절반에 가까운 1만2616명이 정든 고향을 물속에 묻었다.
용담댐 바로 아래로 내려가면 강 한가운데 수석처럼 아름다운 바위가 하나 서 있다. ‘섬바위’라는 이름의 이 바위는 TV방송의 ‘애국가’ 배경화면으로 등장하는 바람에 일약 스타(?)가 되기도 했는데, 다행히 용담댐 바로 하류에 위치한 까닭에 수장을 면했다.
섬바위 물속으로 들어가면 발이 저릴 정도로 차가운 기운이 느껴진다. 용담댐 방류수가 강물 온도를 이렇게 바꾸어놓은 것이다.
물속 자갈에는 허연 물때가 잔뜩 끼어 걸어다닐 수 없을 정도로 미끄럽고 주변 자갈밭에는 시퍼런 풀들이 무성하게 자라나고 있다. 용담댐 담수 이후 홍수와 갈수라는 자연적인 변화가 사라지면서 금강 생태계에는 이미 이런 변화가 진행되고 있다.
취재에 도움 주신 분들
금강유역환경청
해성수중 금강지킴이
협찬
환경부 해양수산부 한국수자원공사
경기도 경상북도 대구시
성남판교수질복원센터
장수 진안 = 글 사진 전호성 남준기 기자 hsjeon@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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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핀에서, 베트남에서, 몽골에서, 우즈베키스탄에서, 중국에서, 인도네시아에서, 미얀마에서 …. 참 멀리도 시집온 여자들. 시집온 새색시가 시댁의 김치맛을 익혀가듯 그 여자들도 김치 담그는 방법을 배우고 있었다.
- 조병준. ‘그곳엔 우리의 누이들이 산다’
금강 발원지 수분리에서 우리는 캄보디아에서 왔다는 한상남씨를 만났다. 1973년 겨울 사진가 강운구씨가 ‘마을 삼부작’으로 수분리를 찍은 지 33년이 지난 지금, 외국인 며느리가 이곳 수분리까지 진출한 것이다.
2003년에서 2005년 사이 사진가 권태균씨는 강운구씨의 제안으로 ‘마을 삼부작 30년 후’를 찍었다. 30년 동안 수분리는 어떻게 변했을까.
1973년과 2006년의 수분리를 비교해 보면, 30년 전 53가구에 살던 389명(남자 199명, 여자 190명)이 45가구 162명(남자 75명, 여자 87명)으로, 195명이나 되던 노동인구는 80명으로 줄었고, … 서른 해 동안 세 마을은, 그러므로 모든 이 땅은 소용돌이치는 바다가 되었다.
- 강운구. ‘마을 삼부작 30년 후’ 서문
수분리 입구에는 ‘우리 마을은 외지 방문차량 번호를 기록해서 관리한다’는 경고문(?)이 붙어 있다. 금강 상류에 있는 마을 곳곳에서 이런 경고문을 볼 수 있었는데, 그만큼 농촌지역에 도난사건이 많다는 얘기다.
이런 문구를 보고 외지인들은 ‘농촌 인심 사납다’고 투덜거린다. 하지만 자기 손으로 고추 한 포기 심어본 일이 없는 도시인들이 농작물을 도둑맞는 촌사람들의 심정을 얼마나 이해할 것인가.
외국인 며느리 문제도 그렇다. ‘심각한 사회적 문제’라는 시각보다는 ‘마흔 넘도록 장가를 못 갔던 아들에게 시집온 태국 며느리가 너무 예쁘다’는 농촌 할머니들의 얘기가 오히려 현실적이다.
도시 사람들 ‘신토불이 우리 농산물’ 좋아하지만 진짜 우리 농산물이 어디 있는가. 토종 한우가 먹는 사료의 대부분은 수입 곡물이고 토종 고추도 씨앗은 네덜란드산이다. 벼와 콩, 도라지 등 몇몇 농작물 이외에는 대부분 외국 종묘회사가 종자를 공급한다. 이런 책임까지 농촌에 돌릴 것인가.
◆이성계가 조선건국의 계시를 받은 샘 = 금강은 한강, 낙동강에 이어 한국에서 세번째로 큰 강이다. 동으로는 백두대간, 남으로는 호남정맥, 북으로는 한남정맥에 걸쳐 있는 금강의 유역면적은 9810㎢에 이르며 전북과 충청권을 가로질러 서해안으로 흘러드는 물길은 약 1000리(395.9km)나 된다.
금강 발원지는 섬진강 발원지인 팔공산을 마주보고 있다. 공식적인 발원샘은 전북 장수군 장수읍 수분리 신무산(897m) 중턱의 ‘뜬봉샘’이다. 수분리 마을은 ‘물뿌랭이마을’로도 불렸던 흔적이 있어 예로부터 선조들이 이곳을 금강 발원지로 여겼음을 알려준다.
장수읍에서 수분령 꼭대기로 가다 보면 왼쪽으로 ‘수분송’이라 이름붙은 커다란 소나무가 한그루 서 있다. 이곳에서 뜬봉샘까지는 걸어서 40분 정도 걸린다. 임도를 타고 자동차로 접근해도 800m 정도는 걸어서 올라가야 한다.
뜬봉샘이란 이름에는 옛날 이산에서 고을의 재앙을 막고 풍년을 기원하기 위해 산에 군데군데 뜸을 뜨듯이 봉화를 올렸다는 데서 유래했다는 설(이 경우 ‘뜸봉샘’으로 표기)과 태조 이성계가 백일기도를 하다 조선 건국의 계시를 받은 곳이라는 두가지 전설이 전해진다.
뜬봉샘을 출발한 금강 물줄기는 장수읍 용머리마을에서 섬진강의 발원지인 진안 팔공산(1151m) 물을 만난다. 팔공산을 사이에 두고 서쪽은 섬진강, 동쪽은 금강 수계가 되는 것이다.
장수군을 지난 금강 물줄기는 진안군으로 들어가 백두대간 덕유산(1614m)에서 내려오는 ‘구량천’과 호남정맥 마이산(678m)에서 시작되는 ‘진안천’을 만난다. 이제 제법 굵어진 물줄기는 무주·영동군을 향해 거의 정북 방향으로 흘러든다.
‘금강(錦江)’은 굽이치며 흐르는 물결이 비단결과 같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그러나 한때 ‘반역의 강’으로 지목되기도 했는데, 이는 옥천까지 한양 방향으로 잘 올라오다가 갑자기 방향을 90° 틀어 서해바다로 빠져나가기 때문이 아닐까.
◆조선조의 광주사태, 기축옥사의 무대 = 금강 본류와 덕유산에서 내려온 구량천이 만나는 ‘죽도’는 ‘조선조의 광주사태’로 불리는 기축옥사의 주인공 정여립(1546~1589) 선생이 죽은 곳이다.
죽도는 정확하게 용담댐 만수위 선상에 위치한다. 만수위가 되면 금강과 구량천이 만나는 아름다운 물굽이는 물속에 잠기고, 금강 물줄기가 휘감아 섬처럼 보이는 죽도는 진짜 섬으로 바뀐다.
용담댐 수몰 이후 죽도로 들어가는 길은 끊어졌다. 산 위로 우회도로가 났고 죽도 유원지 언덕은 서서히 별장지로 바뀌고 있다.
이곳 죽도에서 구 용담면까지 금강은 전형적인 감입곡류로 곳곳이 영월 동강처럼 아름다운 바위·절벽지대를 이루고 있었다. 용담댐 건설 이후 금강 최고의 비경지대는 물속에 잠겼다.
용담댐 건설로 용담면 월계·월운·호계·호암리 등 68개 마을이 수장됐다. 총 2864가구, 진안군 인구 3만명의 절반에 가까운 1만2616명이 정든 고향을 물속에 묻었다.
용담댐 바로 아래로 내려가면 강 한가운데 수석처럼 아름다운 바위가 하나 서 있다. ‘섬바위’라는 이름의 이 바위는 TV방송의 ‘애국가’ 배경화면으로 등장하는 바람에 일약 스타(?)가 되기도 했는데, 다행히 용담댐 바로 하류에 위치한 까닭에 수장을 면했다.
섬바위 물속으로 들어가면 발이 저릴 정도로 차가운 기운이 느껴진다. 용담댐 방류수가 강물 온도를 이렇게 바꾸어놓은 것이다.
물속 자갈에는 허연 물때가 잔뜩 끼어 걸어다닐 수 없을 정도로 미끄럽고 주변 자갈밭에는 시퍼런 풀들이 무성하게 자라나고 있다. 용담댐 담수 이후 홍수와 갈수라는 자연적인 변화가 사라지면서 금강 생태계에는 이미 이런 변화가 진행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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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수 진안 = 글 사진 전호성 남준기 기자 hsjeon@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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