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남 외국인 노동자의 집, 중국 동포의 집

방 한칸으로 시작한 그들만의 쉼터

지역내일 2001-04-13
맹장이 패혈증으로 번지도록 손도 쓰지 못한채 이국땅에서 고통받는 사람들이 있다. 의료보험이 없어 병원한번 가지 못하고 앓아야 하는 사람들. 이 땅에 벌써 30만명이나 되는 외국인 노동자들이다.
다행히 이들에게도 피곤한 몸을 눕힐 쉼터가 있다. 성남 외국인 노동자의 집. 경기도 성남시청 부근에 위치한 이 곳에서는 최소한 한국말을 못해서 또는 불법체류자라서 겪는 서러움은 없다. 러시아와 방글라데시, 스리랑카, 네팔, 인도네시아, 이란, 파키스탄 등 다양한 곳에서 온 그들을 위해 이곳은 쓰레기통 분리수거 안내문까지 8개 국어를 사용한다. 체불임금, 산재보상 등 그들이 처리하기 힘든 문제들을 도맡아줄 뿐 아니라 돈이 없는 그들을 위해 무료진료까지 해주는 곳이다.

방 한칸으로 시작한 보금자리
1994년 4월에 설립된 ‘성남외국인노동자의 집’에는 현재 모두 80여명의 외국인 노동자들이 살고 있다. ‘살고있다’라는 표현을 사용해도 될까하는 의구심이 들만큼 그들이 사는 곳은 매우 열악하다. 15평 남짓 되는 방 한칸에 20여명이 다닥다닥 모여 잠을 잔다. 자기 몸크기만한 이불을 깔면 그게 바로 자기 보금자리가 되고 머리맡의 나무선반위에는 트렁크들이 가득하다.
처음 문을 연 이래 7년째 이곳을 운영하고 있는 김해성(39·사진)목사는 “처음엔 주민교회 지하에 얻은 방 한칸으로 시작했어요. 그러다가 이곳을 찾는 외국인노동자들이 늘어가니까 주민교회에서 고맙게도 지하층을 내준거죠”라며 초창기의 어려움을 설명했다.
120평인 이 곳 지하에는 노동자들이 머무는 방 네칸과 사무실 한칸, 그리고 식당, 강당이 숨막히게 붙어있다. 말이 강당이지 강당이라 붙여진 곳은 교회이자 무료진료소이자 외국인들의 모임장소이다. 아직도 냉기가 가시지 않은 강당 바닥에 앉아 예배를 하고, 치료를 받고, 대화를 나눈다.
강당 바로 옆으로 1평이 될까말까한 창고가 보인다. 타국에서 죽음을 맞이한 채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한 외국인 노동자들의 유골함 42개가 선반에 가지런히 놓여있다. 대부분 교포들이지만 외국인이란 이유로 그들은 납골당에 들어가지 못한다. 그들의 유족이 올 때를 기다리며 이곳에 안치되어있다. 하얀 보자기에 제각각 이름이 붙여져 있는데 유독 눈에 띄는 이름이 있다. 한국인 공장장에게 토막살해 당해 시신을 그대로 본국으로 옮길 수 없게 되었다는 라흐만씨의 유골함. 이슬람교인들은 화장을 하지 않는 것이 전통임에도 불구하고 그의 유골함은 여기 있을 수 밖에 없다.

10여년간의 노력
고통받는 수많은 외국인 노동자들을 지난 10여년간 돌보아온 김목사는 “예전에 우리나라도 사우디 같은 곳에 나가서 일을 했었음에도 지금 우리는 외국인노동자들을 매우 차별하고 있어요”라며 한국인의 이중성을 꼬집었다.
대학졸업 후 1980년대초 성남지역에서 노동운동을 해 오던 그가 외국인 노동자에게 관심을 기울이게 된 것은 1992년초. 인권변호사로 잘 알려진 이재명 변호사의 소개로 찾아온 중국교포 허순필씨의 유족들이 그에게 도움을 청했다. 아파트 신축현장 16층에서 떨어진 허씨의 보상문제를 해결하면서 그는 불법체류 외국인 노동자들의 삶을 고민하기 시작했고 1994년 4월에 ‘외국인 노동자의 집’을 열었다.
쉽지만은 않은 시작이었다. “불법체류자들에게 행정을 펼 수 없다”며 정부와 지방자치단체 어느 곳도 지원을 맡으려하지 않았다. 오로지 그의 뜻을 높이 사는 후원자들의 손길과 김목사의 투철한 희생정신이 그간 성남외국인 노동자의 집을 꾸리는 힘이었다. “쌀이 떨어지면 성남시장이나 도지사한테 전화를 해서 쌀내놓으라고 하기도 해요”라며 너털웃음을 짓는 김목사의 표정 저편에는 씁쓸함이 함께 묻어나고 있었다.

상담을 넘어서 법제정 운동까지
“처음엔 상담을 통해 문제를 해결해주는게 그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의 전부인줄 알았습니다. 그러다가 한계를 느낀거죠.” 김목사는 상담을 넘어 그들을 근본적으로 보호해줄 법의 제정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법제정 운동의 시작은 순조롭지 않았다. 1996년 6월3일 법무부 직원들이 상담소에 있는 불법체류 외국인들을 연행해 가려하자 그는 교회입구를 막으며 이를 제지했다. “결국엔 법무부 직원들 차 밑에 드러누워버렸죠. 못가게 말이죠.” 이 때문에 김목사는 특수공무집행방해죄라는 혐의로 두달간 구속되기도 했었다.
이런 끈질긴 투쟁덕분일까. 1994년 불법체류자에게도 산재보상의 길이 열렸다. 1995년엔 외국인 연수생에게 최저임금제가 적용되고 의료보험, 산재보상이 가능해졌다. 최근에는 한국여성과 결혼하는 외국인 남성이나 그 자녀들이 우리나라 국적 취득의 기회를 얻게되었다. 김목사는 “이 모든게 이곳 지하에서 이루어졌습니다”라며 그간의 성과를 흐뭇하게 되돌아본다.

절반의 성공 절반의 실패
김목사는 여기에 만족하지 않는다. “외국인 노동자들의 노동조건이나 보상을 돕는 것만으로는 절반의 성공이자 절반의 실패라는 걸 깨닫기 시작했습니다”라며 또다른 시작을 암시한다. 팔뚝이 잘린 산재를 입은 방글라데시인을 도와 3000만원 보상을 받게끔 도와줬더니 그가 본국에 돌아가 악덕 기업주가 되었다며 안타까운 마음을 감추지 못한다. 기껏 도와준 사람들이 귀국해서 유흥업소를 차리거나, 보상받은 돈으로 마약을 사거나 하는 소식을 들을 때면 그는 늘 가슴이 답답했다.
“처음 상담만이 이뤄지던 이 곳이 이제 예배를 드리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보상을 받도록 도와주는 것이 그들을 위한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은 김목사는 성경의 가르침을 전하기 위해 외국인노동자 교회를 만들었다. 예배참석을 위해 200여명의 외국인들이 매주 일요일 모인다고 한다. 기껏해야 한달에 한두번 노는 일요일을 반납하면서 여러번 버스를 갈아타고 몇시간씩 걸려 이곳 지하강당에 모이는 것이다.
외국인노동자들에 대한 이유없는 차별이 존재하는 사회. 그러나 한편에서 이렇게 그들을 따뜻하게 보듬어 주는 곳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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