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정상회담과 통일을 여는 사람들] ③ 고 윤이상 선생 부인 이수자 여사

‘간첩 윤이상’ 누명쓰고 30년 망명 생활

지역내일 2007-10-01
“남북이 함께 민족의 음악가로 키워야” … 김정일 위원장, 한국 방문 축하선물 보내기도

제2차 남북정상회담이 다음달 2일부터 4일까지 평양에서 열린다. 이번 정상회담은 북핵문제 해결과 북미관계 정상화 가능성이 어느 때보다 높은 가운데 열리는 것이어서 남북관계의 획기적 전환을 이루는 계기가 될 전망이다. 본지는 정상회담을 앞두고 지금까지 통일을 위해 남다르게 헌신했던 인물들의 삶과 근황, 이번 회담에 대한 기대를 세 차례에 걸쳐 연재한다.

“여보 만족해요?” 이수자(80·사진) 여사는 ‘2007 윤이상 페스티벌’ 개막공연이 열리는 내내 마음속으로 남편 윤이상에게 끊임없이 물었다.“선생님께서 살아서 꿈에도 그리던 조국에서 후배들이 자신의 음악을 이렇게 훌륭하게 연주하는 것을 보셨다면 얼마나 감격했겠어요.”
지난달 16일 서울 ‘예술의 전당’에서 만난 이 여사는 40년만에 조국을 찾아 감격적인 공연을 하는 동안 눈물을 쏟아냈다.
이날 공연은 40년의 세월만큼이나 어렵게 성사됐다. 격정적인 연주 과정에서 첼로의 4개 현 중 마지막 줄이 끊어져 잠시 공연이 중단되기도 했다.

◆꿈에도 그리던 조국을 찾았지만 = 이 여사의 이번 조국방문은 꼬박 40년만이다. 지난 1967년 이른바 ‘동백림 사건’으로 부부가 함께 독일에서 강제로 국내로 끌려와 재판을 받고 이 여사는 같은 해 집행유예로 풀려나 독일로 추방된 후 40년만에 다시 남한 땅을 밟은 것이다.
동백림 사건은 박정희 정권이 1967년 독일에서 유학중이던 학생들이 동독을 방문한 것을 이유로 간첩죄를 적용한 사건이다.
하지만 1969년 2년 형을 살다 풀려난 후 독일에서 망명객의 생활을 한 윤이상 선생은 끝내 살아서 고국 땅을 밟지 못하고 영정만 돌아왔다.
70~80년대 윤이상 선생은 조국의 남쪽에서 철저히 간첩으로 몰렸다. 이들을 조국에서 등지게 했던 ‘동백림 사건’은 한국 현대사의 대표적인 여론몰이 사건의 하나다. 국정원 과거사위원회는 지난해 1월 “동백림 사건이 지나치게 과장되고 확대해석 됐다”고 밝혔다.
윤이상 선생은 해외 망명생활을 하면서도 이 사건을 “인간으로서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분노의 사건”이라고 말했다. 화가 이응로는 동백림 사건을 겪고 나서 프랑스에서 활동하면서 “미치지 않기 위해 그림을 그렸다”고 말했다.

◆한국이 낳은 세계적인 음악가 = 윤이상 선생은 1917년 경남 산청군 지리산 자락에서 태어난 후 4세 때 통영으로 이사해 어린시절을 보냈다. 1935년 일본으로 건너가 오사카 음악학교를 다닌 그는 1944년 징용 중 반일혐의로 옥고를 치르기도 했다.
해방 후 한국전쟁이 끝날 때까지 부산 통영 등지에서 교편을 잡았던 그는 1950년 부산사범학교 시절 같은 학교 국어과 교사였던 이수자와 결혼했다. 이 여사는 집안의 강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윤 선생과 결혼을 강행했다.
전쟁 후 서울로 올라온 윤이상은 여러 대학에서 작곡을 가르치다 1956년 유럽으로 유학길에 올랐다. 프랑스 파리 국립고등음악원을 거쳐 독일 서베를린 음악대학을 1959년 졸업한 그는 그 해 네덜란드의 빌토벤에서 ‘피아노를 위한 다섯 개의 소품’, 다름슈타트에서 ‘일곱 악기를 위한 음악’을 프란시스 트라비스의 지휘로 초연했다. 이때부터 그는 유럽 현대 음악계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1961년 이 여사가 독일로 건너오면서 이들은 본격적인 독일생활을 시작했다. 차곡차곡 예술적 성과를 쌓아 올라가던 즈음 1967년 ‘동백림 사건’이 터졌다. 1969년 석방 이후 이들의 삶에는 예술에 민주와 민족이 더해졌다. 1972년 뮌헨올림픽 문화행사로 오페라 ‘심청’ , 81년에는 교향시 ‘광주여 영원히’를 초연했다.
1988년 독일정부로부터 ‘대공로훈장’을 받기도 했다.

◆사랑하는 조국에게서 상처만 받은 사람 = 이 여사는 윤이상 선생이 세상을 뜬 1995년 이후 지금까지 귀국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남편의 복권과 한국 정부의 사과를 요구해왔다.
지난 5월 이재정 통일부 장관이 “불행했던 과거의 사건으로 인해 윤이상 선생 및 유가족이 큰 고초를 겪은데 대해 사과한다”고 밝히면서 이 여사의 귀국은 빠르게 추진됐다. “윤이상 선생은 한국의 음악을 세계에 알린 음악계의 거장입니다. 동양적인 감수성과 서양의 철학을 결합해 150여곡을 작곡한 예술가로 전 세계에 한국을 알린 건 분명 조국의 자랑입니다.” “독일의 베토벤, 러시아의 차이코프스키와 마찬가지인 것입니다. 그러나 조국은 윤이상 선생에게 평생 아픔만을 주었습니다. 조국을 그토록 사랑했던 사람에게 조국은 상처만 줬습니다. 이제 바뀌어야 합니다.”
이 여사는 “정부가 그의 위대한 작품들을 이용해 우리민족 고유의 정기를 널리 알려야 한다”며 “그것이 조국의 아들로 불우하게 죽어간 윤이상 선생에 대한 위로일 것”이라고 말했다.

◆냉전체제 무너지는 상징 = 이 여사는 지난달 10일 귀국 후 서울에서 ‘2007 윤이상 페스티벌’에 참석하고 청와대를 방문해 노무현 대통령도 만났다. 통영과 부산 등지를 돌면서 친척과 남편의 발자취를 돌아봤다. 이 여사의 고국 방문은 견고한 냉전체제를 유지하던 한반도의 급격한 변화를 상징하는 사건이다.
이 여사는 오는 4일 방문을 끝내고 북한으로 간다. 이달 22일 북한 평양에서 열리는 윤이상 음악회에 참석하기 위해서다. 현재 이수자 여사는 독일과 평양에 집을 두고 있다. 만약 남한에 또 하나의 집을 둔다면 한반도에서 처음으로 남북한에 집을 가진 사람이 된다.
이 여사는 “북한에서도 이번 방문에 대해 많은 것들을 보고 즐겁게 지내다 오라고 얘기하는 분들이 많았다”며 “김정일 위원장도 선물을 보내줬다”고 밝혔다. 그는 북한에 있는 ‘윤이상관현악단’이 한국에서 연주할 수 있기를 바라고 있다. ‘윤이상관현악단’은 북한에서 25년 된 악단으로 윤이상 선생이 직접 지도했다. 이수자 여사는 악단에서 고문직을 제안 받았지만 남북관계를 고려해 응하지 않고 있다.
그는 윤이상 선생을 빨갱이도 간첩단 두목도 아니라고 했다. 다만 민족을 사랑하고 통일을 간절히 바랬던 민족주의자였고 훌륭한 예술작품을 남긴 위대한 예술가였다고 강조했다.
“이제 윤이상 선생이 세계적인 음악가로 확고히 자리 잡을 수 있도록 전 민족이 도와줘야 합니다.” 절망만을 안겨줬던 조국에 이수자 여사가 바라는 소망이다.

특별취재팀 = 백만호 윤여운 김현경 김동수 기자

정주환(75)
남북코리아미술교류협의회 회장

지난 1991년 북경에서 남북작가들이 처음으로 ‘남북코리아성화전’을 개최했다. 2001년에는 남북정상회담 1주년을 기념해 북한작가 30여명이 참가해 ‘통일미술전’을 열기도 했다.
미술교류는 사람의 접촉이 필수적이다. 서로 만나 작품에 대해 얘기하고, 예술관 등을 툭 터놓고 말하면서 상호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박인배(54)
민족예술인총연합 기획실장

민예총은 1989년 황석영 대변인이 방북하면서부터 북의 예술인들과 접촉을 시도했다. 이후 일본 등 제3국에서 북한 예술인과 접촉을 지속해 왔다. 하지만 1994년 북의 ‘문학예술가총동맹과 합의한 코리아통일예술축전이 김일성 주석 사망 등으로 무산됐다.
최근에 다시 우리말사전 남북공동기획, 공동미술전시회, 윤이상 평화음악제 등을 통해 지난날의 노력이 성과를 보고 있다.

김형수(47)
민족문학작가회의 사무총장

민족문학작가회의는 ‘작가의 조국은 모국어다’란 신념을 가지고 있다. 언어가 이질화되고 있는 것은 커다란 문제다. 북측 문인들과 함께 ‘통일사전’ 편찬 작업과 공동기관지 ‘통일문학’ 발행 작업 등을 추진하고 있다.
지난해 금강산에서 남과 북인이 모여 ‘6·15민족문학인협회’를 결성하기도 했다.이번 제2차 정상회담을 통해 남북문화교류가 확고하게 자리 잡기를 바란다.

김정민(39)
윤이상 평화재단 기획팀장

남과 북이 서로 교류하기 위해서는 서로의 공통분모가 필요한데 문화부문에서는 단연 윤이상 선생이다. 북한은 이미 윤이상 선생에 대한 많은 연구를 진행했고, 남한도 최근 들어 선생님에 대한 재조명이 화두가 되고 있다.
올 10월 베를린에서 남북한과 독일의 연주자가 참여하는 ‘평화합동콘서트’가 정상회담으로 취소됐다. 이번 회담을 통해 문화교류가 정치의 변화에 관계없이 유지됐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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