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할 토양 만들어야 인재 몰린다”
잘 가르친 전문가마저 ‘외국계행’ ... 인사·임금체계 등 체질 변화 필요
국내 모 대형은행이 지난해 상여금으로 한 직원에게 1억원의 상과급을 줘 화제가 됐다. 이 금액은 사실상 우리나라 금융사가 줄 수 있는 최고수준이다. 업계에서는 “우리나라 은행들도 많이 변했다”며 상여금 규모가 크게 늘어난데 고무되기도 했지만 일각에서는 “외국계를 따라가려면 멀었다”는 말도 나왔다.
이러한 논란은 지금 우리나라 금융사들이 투자은행(IB)으로 가기 위해 겪는 진통이다. 인재를 뽑거나 지키기 위한 제도적 장치를 만들려고 하지만 기존의 임금과 인사체계가 여전히 공고하다. 또 조직 자체가 획일적이고 경직돼 있어 투자은행업에 맞지 않다는 지적도 많다. 전반적인 조직의 체질을 바꿔야 한다는 것.
일각에서는 아예 내부직원과 외부 전문가를 구분해서 운영하는 ‘일본식 투자은행’을 제안하기도 했다. 내부적으로도 중장기적인 인력양성 프로그램을 마련해야 하며 대학교나 대학원 교육의 실질적 효율성을 높여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인재가 부족하다” = 인재가 부족하다는 데엔 이견이 없었다.
24일 국내외에 있는 10명의 국제금융과 투자은행업무 전문가들에게 직접 인터뷰형식으로 “투자은행 인재 확보, 어떻게 해야 하냐”고 물어봤다.
우선 원인진단. “왜 인재가 없느냐”부터 대답했다. “투자은행업무를 해 보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답을 내놓았다. “투자은행 업무가 없거나 적어 이를 준비하거나 공부할 생각을 할 수 없었다”는 얘기다. 은행들이 IMF관리체제 이후 뜻밖의 고수익을 올리면서 다른 업무를 준비하는 데 등한시 했다는 지적도 뒤따랐다. (인재)수요가 없어 공급도 없었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상황이 달라졌다. 은행을 중심으로 금융사들이 국내시장에서의 수익확대가 한계에 가까워지자 해외로 눈을 돌리기 시작하면서 투자은행업무 인재들이 대거 필요해졌다. 내부 인력이 부족하다보니 외부에서 끌어오는 게 가장 빠른 방법. 여기서부터 인재부족현상이 뚜렷해졌다.
◆“성과급, 인사체계 바꿔라” = 모두 입을 맞춘 듯 전문가들은 “성과급체계와 인사체계를 외국 투자은행식으로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인재가 없는 게 아니라는 게 전제다. 우리나라 금융사엔 없지만 한국인으로 외국계 투자은행에서 일하는 인재는 많다는 얘기다.
이들을 국내 금융사로 불러들이기 위해서는 그러나 필요한 게 적지 않다.
대규모 영입비용, 높은 연봉, 과감한 성과급체계 등 임금체계의 대폭 손질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또 인사체계도 경직성에서 벗어나 외국계식으로 승진과 대우가 이뤄지도록 바꿔달라는 주문도 나왔다.
연봉과 인사문제가 해결돼도 인재들은 오래 견디지 못한다. 전반적인 조직의 체질을 바꿔야 한다는 주장이다. 유기적인 의사소통, 유연한 조직운영 등 투자의견을 자유롭게 내놓고 투자를 신속하고 합리적으로 결정할 수 있는 기초가 필요하다.
골드막삭스에서 주로 일해 온 이찬근 하나IB증권 대표의 의견은 신선했다.
그는 “우리나라는 성과급은 딜(Deal)이 성사됐을 때 개인에게 주는 데 이렇게 되면 성과급이 한쪽으로 치우칠 뿐만 아니라 빠르게 개인화돼 팀플레이가 어려워진다”며 “팀과 개인을 동시에 평가해 팀과 개인에게 각각 인센티브를 줘야 팀플레이가 가능해진다”고 말했다.
능력평가와 임금체계를 통해 자유로운 의사개진이 가능한 팀플레이를 유도하는 골드만삭스의 노하우였다. “자신의 얘기를 맘껏 할 수 있는 조직이 성공한다”는 믿음에서 나온 체계다.
이러한 체질 변화는 기존의 인재를 잡아놓기 위해서도 반드시 필요하다.
김한철 산업은행 인력개발부장은 “내부에서 전문가를 공들여 길러놔도 임금이 높은 외국계로 옮겨가기 일쑤”라며 아쉬워했다.
◆노조가 문제라고? = 일각에서는 높은 성과급을 주지 못하는 이유로 ‘노조탓’을 하기도 한다. 노조에서 일부 직원에게만 높은 성과급을 주는 것에 반대하기 때문이라는 것.
그러나 노조 입장에서도 논리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한 대형은행 노조 수석부위원장은 “직원들 내에서는 ‘재수 좋아’ 투자은행업무와 관련된 부서에 간 직원이 많은 성과급을 받는 것에 승복하지 않는 분위기”라며 “특별히 대단히 실력이 있는 것도 아닌데 단지 그 부서에 있다는 것만으로 많은 성과급을 받으면 다른 직원들에게 위화감을 줄 수 있다”고 말했다.
이승건 수출입은행 국제금융부 외화조달팀 부부장은 우리나라 기업문화를 고려한 ‘이중 체계’를 제안했다.
그는 “일본 투자은행들은 오랫동안 일할 내부직원들에게는 현재와 같은 임금체계를 적용하고 외부에서 온 전문가들은 성과급 중심으로 하는 이중구조를 가지고 있다”고 소개했다. 우리나라 금융사들도 최근 ‘전문가 집단’에게 별도의 임금체계를 적용하고 있지만 “행장보다는 많이 주기 어렵다”는 등의 제안이 여전한 게 현실이다. 임금 상한선을 정해놓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는 것이다. 유광호 신한아주금융공사 법인장은 “10배의 이익을 내 주면 아무리 높은 연봉을 주더라도 상관없다는 의식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외국계에 있는 한국인 인재를 데려와라” = 국내에 들어와 있는 외국계 투자은행에서 일하는 한국인들을 끌어들일 필요가 있다. 그들은 여건만 만들어지면 우리나라로 올 의지가 많다.
이 부부장은 “외환위기 때 많은 은행원들이 구조조정을 피해 외국계로 대거 이동했다”며 “이들에겐 사실상 승진의 문턱이 높아 여건만 되면 국내 금융사로 옮길 의지가 있다”고 말했다. 외국계에 있는 한국인 전문가들은 처음부터 외국계로 입사하기 보다는 대부분 국내 금융사에서 옮겨갔기 때문에 국내외 조직문화에 익숙하고 투자은행 경험도 가지고 있어 매력적이라는 평가다. 물론 외국계 투자은행 이상의 대우가 전제돼야 한다.
◆중장기적으로 자체 양성과정 필요 = 신한은행 우리은행 산업은행 미래에셋증권 한국투자증권 대우증권 등 IB업무에 적극적인 금융사들은 자체양성계획을 가지고 있다. 해외와 국내의 MBA 졸업자와 금융공학전문가를 대거 뽑고 있으며 서울대 등 대학교나 전문기관에서 개설하는 금융공학과정에도 직원들을 보내고 있다.
내부적으로도 도제식으로 일대 일 교육을 통해 투자능력을 확대하고 있다.
박현주 미래에셋금융그룹 회장은 “신입사원을 채용해 전문가를 만들기 위해서는 5~7년 정도는 강도높게 훈련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윤성일 한국증권 상무는 “필요인원보다 여유있게 직원을 뽑아 교육에 투입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준규 기자 jkpark@naeil.com
Copyright ⓒThe Naeil News. All rights reserved.
잘 가르친 전문가마저 ‘외국계행’ ... 인사·임금체계 등 체질 변화 필요
국내 모 대형은행이 지난해 상여금으로 한 직원에게 1억원의 상과급을 줘 화제가 됐다. 이 금액은 사실상 우리나라 금융사가 줄 수 있는 최고수준이다. 업계에서는 “우리나라 은행들도 많이 변했다”며 상여금 규모가 크게 늘어난데 고무되기도 했지만 일각에서는 “외국계를 따라가려면 멀었다”는 말도 나왔다.
이러한 논란은 지금 우리나라 금융사들이 투자은행(IB)으로 가기 위해 겪는 진통이다. 인재를 뽑거나 지키기 위한 제도적 장치를 만들려고 하지만 기존의 임금과 인사체계가 여전히 공고하다. 또 조직 자체가 획일적이고 경직돼 있어 투자은행업에 맞지 않다는 지적도 많다. 전반적인 조직의 체질을 바꿔야 한다는 것.
일각에서는 아예 내부직원과 외부 전문가를 구분해서 운영하는 ‘일본식 투자은행’을 제안하기도 했다. 내부적으로도 중장기적인 인력양성 프로그램을 마련해야 하며 대학교나 대학원 교육의 실질적 효율성을 높여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인재가 부족하다” = 인재가 부족하다는 데엔 이견이 없었다.
24일 국내외에 있는 10명의 국제금융과 투자은행업무 전문가들에게 직접 인터뷰형식으로 “투자은행 인재 확보, 어떻게 해야 하냐”고 물어봤다.
우선 원인진단. “왜 인재가 없느냐”부터 대답했다. “투자은행업무를 해 보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답을 내놓았다. “투자은행 업무가 없거나 적어 이를 준비하거나 공부할 생각을 할 수 없었다”는 얘기다. 은행들이 IMF관리체제 이후 뜻밖의 고수익을 올리면서 다른 업무를 준비하는 데 등한시 했다는 지적도 뒤따랐다. (인재)수요가 없어 공급도 없었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상황이 달라졌다. 은행을 중심으로 금융사들이 국내시장에서의 수익확대가 한계에 가까워지자 해외로 눈을 돌리기 시작하면서 투자은행업무 인재들이 대거 필요해졌다. 내부 인력이 부족하다보니 외부에서 끌어오는 게 가장 빠른 방법. 여기서부터 인재부족현상이 뚜렷해졌다.
◆“성과급, 인사체계 바꿔라” = 모두 입을 맞춘 듯 전문가들은 “성과급체계와 인사체계를 외국 투자은행식으로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인재가 없는 게 아니라는 게 전제다. 우리나라 금융사엔 없지만 한국인으로 외국계 투자은행에서 일하는 인재는 많다는 얘기다.
이들을 국내 금융사로 불러들이기 위해서는 그러나 필요한 게 적지 않다.
대규모 영입비용, 높은 연봉, 과감한 성과급체계 등 임금체계의 대폭 손질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또 인사체계도 경직성에서 벗어나 외국계식으로 승진과 대우가 이뤄지도록 바꿔달라는 주문도 나왔다.
연봉과 인사문제가 해결돼도 인재들은 오래 견디지 못한다. 전반적인 조직의 체질을 바꿔야 한다는 주장이다. 유기적인 의사소통, 유연한 조직운영 등 투자의견을 자유롭게 내놓고 투자를 신속하고 합리적으로 결정할 수 있는 기초가 필요하다.
골드막삭스에서 주로 일해 온 이찬근 하나IB증권 대표의 의견은 신선했다.
그는 “우리나라는 성과급은 딜(Deal)이 성사됐을 때 개인에게 주는 데 이렇게 되면 성과급이 한쪽으로 치우칠 뿐만 아니라 빠르게 개인화돼 팀플레이가 어려워진다”며 “팀과 개인을 동시에 평가해 팀과 개인에게 각각 인센티브를 줘야 팀플레이가 가능해진다”고 말했다.
능력평가와 임금체계를 통해 자유로운 의사개진이 가능한 팀플레이를 유도하는 골드만삭스의 노하우였다. “자신의 얘기를 맘껏 할 수 있는 조직이 성공한다”는 믿음에서 나온 체계다.
이러한 체질 변화는 기존의 인재를 잡아놓기 위해서도 반드시 필요하다.
김한철 산업은행 인력개발부장은 “내부에서 전문가를 공들여 길러놔도 임금이 높은 외국계로 옮겨가기 일쑤”라며 아쉬워했다.
◆노조가 문제라고? = 일각에서는 높은 성과급을 주지 못하는 이유로 ‘노조탓’을 하기도 한다. 노조에서 일부 직원에게만 높은 성과급을 주는 것에 반대하기 때문이라는 것.
그러나 노조 입장에서도 논리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한 대형은행 노조 수석부위원장은 “직원들 내에서는 ‘재수 좋아’ 투자은행업무와 관련된 부서에 간 직원이 많은 성과급을 받는 것에 승복하지 않는 분위기”라며 “특별히 대단히 실력이 있는 것도 아닌데 단지 그 부서에 있다는 것만으로 많은 성과급을 받으면 다른 직원들에게 위화감을 줄 수 있다”고 말했다.
이승건 수출입은행 국제금융부 외화조달팀 부부장은 우리나라 기업문화를 고려한 ‘이중 체계’를 제안했다.
그는 “일본 투자은행들은 오랫동안 일할 내부직원들에게는 현재와 같은 임금체계를 적용하고 외부에서 온 전문가들은 성과급 중심으로 하는 이중구조를 가지고 있다”고 소개했다. 우리나라 금융사들도 최근 ‘전문가 집단’에게 별도의 임금체계를 적용하고 있지만 “행장보다는 많이 주기 어렵다”는 등의 제안이 여전한 게 현실이다. 임금 상한선을 정해놓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는 것이다. 유광호 신한아주금융공사 법인장은 “10배의 이익을 내 주면 아무리 높은 연봉을 주더라도 상관없다는 의식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외국계에 있는 한국인 인재를 데려와라” = 국내에 들어와 있는 외국계 투자은행에서 일하는 한국인들을 끌어들일 필요가 있다. 그들은 여건만 만들어지면 우리나라로 올 의지가 많다.
이 부부장은 “외환위기 때 많은 은행원들이 구조조정을 피해 외국계로 대거 이동했다”며 “이들에겐 사실상 승진의 문턱이 높아 여건만 되면 국내 금융사로 옮길 의지가 있다”고 말했다. 외국계에 있는 한국인 전문가들은 처음부터 외국계로 입사하기 보다는 대부분 국내 금융사에서 옮겨갔기 때문에 국내외 조직문화에 익숙하고 투자은행 경험도 가지고 있어 매력적이라는 평가다. 물론 외국계 투자은행 이상의 대우가 전제돼야 한다.
◆중장기적으로 자체 양성과정 필요 = 신한은행 우리은행 산업은행 미래에셋증권 한국투자증권 대우증권 등 IB업무에 적극적인 금융사들은 자체양성계획을 가지고 있다. 해외와 국내의 MBA 졸업자와 금융공학전문가를 대거 뽑고 있으며 서울대 등 대학교나 전문기관에서 개설하는 금융공학과정에도 직원들을 보내고 있다.
내부적으로도 도제식으로 일대 일 교육을 통해 투자능력을 확대하고 있다.
박현주 미래에셋금융그룹 회장은 “신입사원을 채용해 전문가를 만들기 위해서는 5~7년 정도는 강도높게 훈련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윤성일 한국증권 상무는 “필요인원보다 여유있게 직원을 뽑아 교육에 투입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준규 기자 jkpark@naeil.com
Copyright ⓒThe Naeil News. All rights reserved.
위 기사의 법적인 책임과 권한은 내일엘엠씨에 있습니다.
<저작권자 ©내일엘엠씨,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