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회창 출마는 께름칙해… 이명박, 박이 원하는 것 들어줘야”
이회창 전 총재가 출마를 선언한 다음날인 8일. 대구 지역 민심은 이회창 전 총재의 출마 자체에 대해선 비판적일지 몰라도 나오면 찍겠다는 목소리가 높았다.
안 그래도 ‘오만한’ 이명박 후보에게 정이 안 갔는데 ‘존경했던’ 이 전 총재가 대선판에 등장했고, ‘지지했던’ 박근혜 전 대표도 중간입장을 지키고 있으니 선택이 쉬울 수밖에 없다는 거였다.
물론 박 전 대표가 이후 어떤 입장을 취하느냐에 따라 이런 민심은 달라질 가능성은 높아보였다. 혹시라도 보수진영의 표가 분열될 수 있는 상황에 대한 고민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고민되고 헷갈릴수록 더욱 박 전 대표의 선택을 무조건 따라가겠다는 민심이 엿보였다.
◆“이 후보, 박이 원하는 것 들어주면 창은 필요없어" = 이 전 총재의 출마선언이 있은지 딱 24시간이 지난 8일 오후 2시쯤 대구 서문시장을 찾았다. 서문시장은 대구지역 재래시장 중에선 가장 규모가 큰 곳 중의 하나인데다 대구 민심이 한바퀴 도는 곳이어서 대선주자라면 누구나 찾아오는 곳이다.
이회창 전 총재는 특히 서문시장 상인들에게 각별했던 것으로 유명하다. 97년, 2002년 두차례의 대선을 치르는 과정에서 정치적으로 어려운 일이 생길 때마다 서문시장을 찾아 애정을 표시하곤 했다. 2002년 대선 직전엔 한인옥 여사까지 찾아와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시장 뒷골목 속옷 도매상 앞에서 신문을 뒤적거리고 있는 남자에게 물었다. 유성현(가명·47)씨는 “박 전 대표에게 지지하기 땜에 그 사람이 어떻게 하나보고 결정할 겁니다”고 말했다. 이 전 총재에 대해선 비판적이었다. “자기 말 어기고 나왔는데 당연히 문제있지”라고 말했다. 이명박 후보를 지지하지 않는 이유도 물어봤다. “오만의 극치라는 박 대표 말이 딱 맞지. BBK나 이런 것 때문에 더 싫은지도 몰라. 김경준 온다 해도 뭐 나올 것 같지는 않지만 그래도 왠지 찜찜해요”라고 말했다. 그래도 “박이 원하는 것 이명박이가 다 들어주면 그 땐 창은 필요없죠. 이명박 지지할 낍니다”라고 했다.
유씨는 이 전 총재의 당선가능성에 비관적이었지만 이 전 총재의 대통령 당선을 거의 확신하고 있는 상인들도 눈에 띄었다. 동산상가 근처의 문구점을 운영하고 있는 성민규(가명·53)씨는 “솔직한 말로 (창) 나오면 찍어요”라고 말했다. 수도권·충청도에서 반반씩 먹고, 대구경북에서 압도적으로 밀어주면 대통령 될 수 있다는 전망도 내놨다.
◆“이명박은 얍씨리” = 서문시장을 도는 내내 머릿속을 떠도는 궁금증은 왜 대구 사람들은 이렇게도 이명박 후보에게 정을 못 줄까 하는 점이었다. 상인들에게 이 후보에 대한 평가를 부탁했을 때 나오는 말은 “말하는 것도 그렇고 좀 얍씨리하지 않소” “이제 창 나온다고 하니 박근혜한테 싹싹 빌고 사람이 좀 간사하다 안카요” “남자가 여자 하나 제대로 안지도 못하고 깜도 아니라카이” 등등의 부정적 표현이 대부분이었다.
오피니언 리더층의 분석을 들어봤다. 친박 성향으로 분류되는 한 시의원은 “대구 사람들이 보기에 한나라당의 정통성은 이회창-박근혜로 이어지는 것이고, 이명박 후보는 솔직히 비주류”라면서 “비주류가 주류를 이기고 대선후보가 됐으면 주류를 인정하고 함께 가야 하는데 대선후보 된 후 2개월이 넘도록 인정하기 보다는 제거하려는 행태를 보인 것 아니냐. 그러다 보니 대구 사람들이 정권교체는 원하면서도 이 후보에 대한 열렬한 마음은 없었던 것”이라고 말했다.
주류-비주류 분석에 대해 창사랑 대표를 맡고 있는 백승홍 전 의원은 더 노골적으로 표현했다. 백 대표는 “말을 함부로 하는 게 노무현 대통령과 닮았다”면서 “표를 얻기 위해서 전국을 누비면서 정체성을 상실한 채 오락가락하고 있는 문제라든가. 대북문제도 시류에 영합하지 않았느냐”면서 이 후보의 보수정통성에 의문을 제기했다.
지역 여론조사기관인 아이너스리서치의 이근성 대표도 비슷한 분석을 내놨다. 이 대표는 “박 전 대표를 지지했던 대구 사람들은 그동안 이 후보에게 적극적인 지지를 보냈다기 보다는 대안 부재로 인한 소극적 지지를 보냈던 것”이라면서 “그런데 이 전 총재가 나오면서 생각이 바뀐 것 같다. 일시적일지 장기적일지는 결국 박 전 대표에게 달렸지 않았겠느냐”고 말했다.
◆“이명박 대통령돼도 총선 때 쉽지 않을걸” = 이후 대구 민심은 어떻게 변해갈까는 주목해야 할 포인트다. 정권교체를 애타게 원하는 대구민심을 본다면 혹시 이회창 전 총재에게 표가 쏠려서 정권교체가 안 될 수 있는 상황이 약간 고민되는 듯했다.
동대구역으로 가는 택시 안에서 어려운 질문을 던져봤다. 정권교체를 위해 이명박-이회창 중 어느 한 쪽으로 몰아줘야 할 경우에 어떻게 하겠느냐는 질문이었다. 60대를 바라보는 택시기사 김찬호씨는 “솔직히 우리도 헷갈리지요”라며 “한나라당도 살려야겠고, 그 분(이회창)도 존경하고…”라고 말을 흐렸다. 결론은 박근혜 전 대표였다. 김씨는 “마, 무조건 박근혜가 마음 정하는 데로 찍어야지”라고 말했다.
그래도 뼈섞인 한 마디는 잊지 않았다.
“이번에 이명박을 대통령 찍어줘도 총선 땐 쉽지 않을걸요. 박근혜 이회창 세력이 총선까지 남아있는다 하면 그 쪽으로 맘이 가지 않겠어요.”
대구=최세호 김형선 기자 egoh@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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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회창 전 총재가 출마를 선언한 다음날인 8일. 대구 지역 민심은 이회창 전 총재의 출마 자체에 대해선 비판적일지 몰라도 나오면 찍겠다는 목소리가 높았다.
안 그래도 ‘오만한’ 이명박 후보에게 정이 안 갔는데 ‘존경했던’ 이 전 총재가 대선판에 등장했고, ‘지지했던’ 박근혜 전 대표도 중간입장을 지키고 있으니 선택이 쉬울 수밖에 없다는 거였다.
물론 박 전 대표가 이후 어떤 입장을 취하느냐에 따라 이런 민심은 달라질 가능성은 높아보였다. 혹시라도 보수진영의 표가 분열될 수 있는 상황에 대한 고민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고민되고 헷갈릴수록 더욱 박 전 대표의 선택을 무조건 따라가겠다는 민심이 엿보였다.
◆“이 후보, 박이 원하는 것 들어주면 창은 필요없어" = 이 전 총재의 출마선언이 있은지 딱 24시간이 지난 8일 오후 2시쯤 대구 서문시장을 찾았다. 서문시장은 대구지역 재래시장 중에선 가장 규모가 큰 곳 중의 하나인데다 대구 민심이 한바퀴 도는 곳이어서 대선주자라면 누구나 찾아오는 곳이다.
이회창 전 총재는 특히 서문시장 상인들에게 각별했던 것으로 유명하다. 97년, 2002년 두차례의 대선을 치르는 과정에서 정치적으로 어려운 일이 생길 때마다 서문시장을 찾아 애정을 표시하곤 했다. 2002년 대선 직전엔 한인옥 여사까지 찾아와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시장 뒷골목 속옷 도매상 앞에서 신문을 뒤적거리고 있는 남자에게 물었다. 유성현(가명·47)씨는 “박 전 대표에게 지지하기 땜에 그 사람이 어떻게 하나보고 결정할 겁니다”고 말했다. 이 전 총재에 대해선 비판적이었다. “자기 말 어기고 나왔는데 당연히 문제있지”라고 말했다. 이명박 후보를 지지하지 않는 이유도 물어봤다. “오만의 극치라는 박 대표 말이 딱 맞지. BBK나 이런 것 때문에 더 싫은지도 몰라. 김경준 온다 해도 뭐 나올 것 같지는 않지만 그래도 왠지 찜찜해요”라고 말했다. 그래도 “박이 원하는 것 이명박이가 다 들어주면 그 땐 창은 필요없죠. 이명박 지지할 낍니다”라고 했다.
유씨는 이 전 총재의 당선가능성에 비관적이었지만 이 전 총재의 대통령 당선을 거의 확신하고 있는 상인들도 눈에 띄었다. 동산상가 근처의 문구점을 운영하고 있는 성민규(가명·53)씨는 “솔직한 말로 (창) 나오면 찍어요”라고 말했다. 수도권·충청도에서 반반씩 먹고, 대구경북에서 압도적으로 밀어주면 대통령 될 수 있다는 전망도 내놨다.
◆“이명박은 얍씨리” = 서문시장을 도는 내내 머릿속을 떠도는 궁금증은 왜 대구 사람들은 이렇게도 이명박 후보에게 정을 못 줄까 하는 점이었다. 상인들에게 이 후보에 대한 평가를 부탁했을 때 나오는 말은 “말하는 것도 그렇고 좀 얍씨리하지 않소” “이제 창 나온다고 하니 박근혜한테 싹싹 빌고 사람이 좀 간사하다 안카요” “남자가 여자 하나 제대로 안지도 못하고 깜도 아니라카이” 등등의 부정적 표현이 대부분이었다.
오피니언 리더층의 분석을 들어봤다. 친박 성향으로 분류되는 한 시의원은 “대구 사람들이 보기에 한나라당의 정통성은 이회창-박근혜로 이어지는 것이고, 이명박 후보는 솔직히 비주류”라면서 “비주류가 주류를 이기고 대선후보가 됐으면 주류를 인정하고 함께 가야 하는데 대선후보 된 후 2개월이 넘도록 인정하기 보다는 제거하려는 행태를 보인 것 아니냐. 그러다 보니 대구 사람들이 정권교체는 원하면서도 이 후보에 대한 열렬한 마음은 없었던 것”이라고 말했다.
주류-비주류 분석에 대해 창사랑 대표를 맡고 있는 백승홍 전 의원은 더 노골적으로 표현했다. 백 대표는 “말을 함부로 하는 게 노무현 대통령과 닮았다”면서 “표를 얻기 위해서 전국을 누비면서 정체성을 상실한 채 오락가락하고 있는 문제라든가. 대북문제도 시류에 영합하지 않았느냐”면서 이 후보의 보수정통성에 의문을 제기했다.
지역 여론조사기관인 아이너스리서치의 이근성 대표도 비슷한 분석을 내놨다. 이 대표는 “박 전 대표를 지지했던 대구 사람들은 그동안 이 후보에게 적극적인 지지를 보냈다기 보다는 대안 부재로 인한 소극적 지지를 보냈던 것”이라면서 “그런데 이 전 총재가 나오면서 생각이 바뀐 것 같다. 일시적일지 장기적일지는 결국 박 전 대표에게 달렸지 않았겠느냐”고 말했다.
◆“이명박 대통령돼도 총선 때 쉽지 않을걸” = 이후 대구 민심은 어떻게 변해갈까는 주목해야 할 포인트다. 정권교체를 애타게 원하는 대구민심을 본다면 혹시 이회창 전 총재에게 표가 쏠려서 정권교체가 안 될 수 있는 상황이 약간 고민되는 듯했다.
동대구역으로 가는 택시 안에서 어려운 질문을 던져봤다. 정권교체를 위해 이명박-이회창 중 어느 한 쪽으로 몰아줘야 할 경우에 어떻게 하겠느냐는 질문이었다. 60대를 바라보는 택시기사 김찬호씨는 “솔직히 우리도 헷갈리지요”라며 “한나라당도 살려야겠고, 그 분(이회창)도 존경하고…”라고 말을 흐렸다. 결론은 박근혜 전 대표였다. 김씨는 “마, 무조건 박근혜가 마음 정하는 데로 찍어야지”라고 말했다.
그래도 뼈섞인 한 마디는 잊지 않았다.
“이번에 이명박을 대통령 찍어줘도 총선 땐 쉽지 않을걸요. 박근혜 이회창 세력이 총선까지 남아있는다 하면 그 쪽으로 맘이 가지 않겠어요.”
대구=최세호 김형선 기자 egoh@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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