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이즈예방 가로막는 국회
두 명의 아픈 친구가 있다. 한명은 백혈병환자이고 한명은 에이즈환자이다. 이들은 언론과 사회에서 다루는 백혈병환자와 에이즈환자의 이미지에 대해 화를 냈다. 이유는 그 이미지가 환자의 고통스러운 처지를 은폐하기 때문이다.
새하얀 얼굴을 한 연인이나 빠진 머리카락 때문에 모자를 쓰고 있는 어린이를 바라보는 연인의 눈물을 따라, 어머니의 눈물을 따라 시청자의 눈에도 눈물이 흐른다. 백혈병환자인 친구는 눈물샘자극을 위한 소재나 동정의 대상으로 표현됨으로써 백혈병환자들이 비싼 약값을 감당하기 어려워서 치료를 포기하거나 이혼을 해야 하는 등의 현실을 감추는 효과가 있다고 했다.
질병 책임 개인에게 떠넘겨
에이즈환자인 친구는 백혈병환자인 친구의 말에 공감하면서도 에이즈환자는 동정 받을 가치도 없는 사람으로 취급받고 있다고 했다. 자기가 잘못해서 에이즈에 걸렸기 때문에 죄값을 치루는 것이 마땅하고 다른 이들에게 에이즈를 옮길까봐 일거수일투족을 파악해야 하는 대상으로 취급한다는 것이다. 두 친구는 다른 질병을 앓고 있고 다른 취급을 받고 있지만, 질병의 책임을 개인에게 떠넘기는 현실이 아픈 이들을 더욱 아프게 만든다고 했다.
담배를 많이 폈으니 폐암에 걸리지, 평소에 운동을 안하더니 고혈압이 오지 등 질병을 개인의 관리 소홀이나 잘못으로 돌리는 경우가 많다. 개인의 노력이나 라이프스타일이 질병과 무관한 것은 아니나, 전적으로 개인의 탓으로 돌릴 경우 질병을 유발하는 사회적 환경을 보지 못하는 오류를 범하게 되고, 헌법에 보장된 ‘누구나 건강할 권리’는 실현될 수 없다.
질병을 개인의 탓으로 돌리는 극단적인 예로 에이즈를 들 수 있다. 에이즈는 1980년대에 확인된 후 지금까지 ‘천형’이라고 여겨졌다. 그래서 잘못을 한 대가로 천벌을 받은 에이즈 감염인을 감시하고 격리해야하는 것처럼 알려져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1987년에 이러한 취지로 에이즈예방법이 제정되었다.
에이즈예방법이 제정된 지 20년이 지나는 동안 감염경로가 명확히 밝혀졌으며, 의학적으로 에이즈는 전염성이 높지 않을 뿐만 아니라 만성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질병이 됐다. 감염인에 대한 감시와 인권침해로는 에이즈를 예방할 수 없다는 사실을 확인하기엔 20년은 너무 긴 시간이었다. 다행히 에이즈감염인의 인권을 증진시키는 것이 에이즈예방의 지름길임을 확인하는 에이즈예방법 개정안이 국회에 제출됐다.
그런데 이 법을 심의하고 있는 국회는 한센병 전염을 막는다는 명목으로 한센병 환자와 가족에게 단절과 격리정책을 펼쳤던 것이 얼마나 비과학적이고 반인권적이었는지 벌써 잊은듯하다. 법에 ‘인권’이란 말을 사용하는 것이 이상하다는 둥, 복수심에 퍼트리고 다니도록 놔두면 안 된다는 둥, 딸이 애인의 에이즈감염사실을 모른 채 결혼을 한 경우 이를 막지 못한 국가에 책임을 묻겠다는 둥 국회의원들의 말은 역사적 어록이 되고도 남을만하다. 감염인의 실명과 주민등록번호 등이 에이즈 감염에 관한 역학적 지식과는 전혀 관계가 없고, 병력정보에 대한 실명보고체계가 감염인을 공중보건체계의 외부로 벗어나게 하는 요소로 작용하고 있어 오히려 에이즈 예방을 방해하고 있지만, 국회는 ‘국가가 감염인의 신원을 파악’하기 위해 실명보고가 필요하다고 한다. 감염인의 신원을 파악하는 것이 에이즈예방에 어떤 도움을 주는지에 대해서는 아무런 근거도 대지 못하면서 말이다.
감시·통제 위주의 구태에서 벗어나야
군인이나 재소자, 유흥업소에서 일하는 여성, 장기체류 외국인 등 특정집단에게 강제로 에이즈검사를 시켜서 가려내야 하고, 외국인 감염인은 강제출국시켜야 에이즈를 예방할 수 있다고 말한다. 또한 실제적인 예방효과를 기대하기 힘든 전파매개행위금지조항으로 감염인을 처벌하려는 것에 대해서도 합리적인 설명도 없이 감염인을 악의적, 잠재적 범죄자로 취급을 하고 있다. 국회는 한센병 환자에게 그랬듯이 감시와 통제정책이 감염인을 숨어들게 만들었고, 에이즈예방을 가로막아왔다는 것을 반성하지 않은 채 헌법에 보장된 ‘누구나 건강할 권리’를 스스로 박탈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자문해볼 일이다. 감염인의 인권을 보호하면 국가의 질병관리에 구멍이 뚫리는 것처럼 인식하는 구태를 벗어나지 못하는 한 우리사회는 한센병, 에이즈에 이어 다른 질병에 대해서도 차별을 감행하게 될 것이다.
권미란 활동가
에이즈예방법 대응 공동행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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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명의 아픈 친구가 있다. 한명은 백혈병환자이고 한명은 에이즈환자이다. 이들은 언론과 사회에서 다루는 백혈병환자와 에이즈환자의 이미지에 대해 화를 냈다. 이유는 그 이미지가 환자의 고통스러운 처지를 은폐하기 때문이다.
새하얀 얼굴을 한 연인이나 빠진 머리카락 때문에 모자를 쓰고 있는 어린이를 바라보는 연인의 눈물을 따라, 어머니의 눈물을 따라 시청자의 눈에도 눈물이 흐른다. 백혈병환자인 친구는 눈물샘자극을 위한 소재나 동정의 대상으로 표현됨으로써 백혈병환자들이 비싼 약값을 감당하기 어려워서 치료를 포기하거나 이혼을 해야 하는 등의 현실을 감추는 효과가 있다고 했다.
질병 책임 개인에게 떠넘겨
에이즈환자인 친구는 백혈병환자인 친구의 말에 공감하면서도 에이즈환자는 동정 받을 가치도 없는 사람으로 취급받고 있다고 했다. 자기가 잘못해서 에이즈에 걸렸기 때문에 죄값을 치루는 것이 마땅하고 다른 이들에게 에이즈를 옮길까봐 일거수일투족을 파악해야 하는 대상으로 취급한다는 것이다. 두 친구는 다른 질병을 앓고 있고 다른 취급을 받고 있지만, 질병의 책임을 개인에게 떠넘기는 현실이 아픈 이들을 더욱 아프게 만든다고 했다.
담배를 많이 폈으니 폐암에 걸리지, 평소에 운동을 안하더니 고혈압이 오지 등 질병을 개인의 관리 소홀이나 잘못으로 돌리는 경우가 많다. 개인의 노력이나 라이프스타일이 질병과 무관한 것은 아니나, 전적으로 개인의 탓으로 돌릴 경우 질병을 유발하는 사회적 환경을 보지 못하는 오류를 범하게 되고, 헌법에 보장된 ‘누구나 건강할 권리’는 실현될 수 없다.
질병을 개인의 탓으로 돌리는 극단적인 예로 에이즈를 들 수 있다. 에이즈는 1980년대에 확인된 후 지금까지 ‘천형’이라고 여겨졌다. 그래서 잘못을 한 대가로 천벌을 받은 에이즈 감염인을 감시하고 격리해야하는 것처럼 알려져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1987년에 이러한 취지로 에이즈예방법이 제정되었다.
에이즈예방법이 제정된 지 20년이 지나는 동안 감염경로가 명확히 밝혀졌으며, 의학적으로 에이즈는 전염성이 높지 않을 뿐만 아니라 만성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질병이 됐다. 감염인에 대한 감시와 인권침해로는 에이즈를 예방할 수 없다는 사실을 확인하기엔 20년은 너무 긴 시간이었다. 다행히 에이즈감염인의 인권을 증진시키는 것이 에이즈예방의 지름길임을 확인하는 에이즈예방법 개정안이 국회에 제출됐다.
그런데 이 법을 심의하고 있는 국회는 한센병 전염을 막는다는 명목으로 한센병 환자와 가족에게 단절과 격리정책을 펼쳤던 것이 얼마나 비과학적이고 반인권적이었는지 벌써 잊은듯하다. 법에 ‘인권’이란 말을 사용하는 것이 이상하다는 둥, 복수심에 퍼트리고 다니도록 놔두면 안 된다는 둥, 딸이 애인의 에이즈감염사실을 모른 채 결혼을 한 경우 이를 막지 못한 국가에 책임을 묻겠다는 둥 국회의원들의 말은 역사적 어록이 되고도 남을만하다. 감염인의 실명과 주민등록번호 등이 에이즈 감염에 관한 역학적 지식과는 전혀 관계가 없고, 병력정보에 대한 실명보고체계가 감염인을 공중보건체계의 외부로 벗어나게 하는 요소로 작용하고 있어 오히려 에이즈 예방을 방해하고 있지만, 국회는 ‘국가가 감염인의 신원을 파악’하기 위해 실명보고가 필요하다고 한다. 감염인의 신원을 파악하는 것이 에이즈예방에 어떤 도움을 주는지에 대해서는 아무런 근거도 대지 못하면서 말이다.
감시·통제 위주의 구태에서 벗어나야
군인이나 재소자, 유흥업소에서 일하는 여성, 장기체류 외국인 등 특정집단에게 강제로 에이즈검사를 시켜서 가려내야 하고, 외국인 감염인은 강제출국시켜야 에이즈를 예방할 수 있다고 말한다. 또한 실제적인 예방효과를 기대하기 힘든 전파매개행위금지조항으로 감염인을 처벌하려는 것에 대해서도 합리적인 설명도 없이 감염인을 악의적, 잠재적 범죄자로 취급을 하고 있다. 국회는 한센병 환자에게 그랬듯이 감시와 통제정책이 감염인을 숨어들게 만들었고, 에이즈예방을 가로막아왔다는 것을 반성하지 않은 채 헌법에 보장된 ‘누구나 건강할 권리’를 스스로 박탈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자문해볼 일이다. 감염인의 인권을 보호하면 국가의 질병관리에 구멍이 뚫리는 것처럼 인식하는 구태를 벗어나지 못하는 한 우리사회는 한센병, 에이즈에 이어 다른 질병에 대해서도 차별을 감행하게 될 것이다.
권미란 활동가
에이즈예방법 대응 공동행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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