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혁 진영의 절망과 희망
유승삼 (언론인)
개혁·진보 진영의 참패가 점점 더 분명해지고 있다. 대선의 승패가 문제가 아니라 이대로 가면 내년 4월 총선도 어렵다.
현재의 주류 민심은 한마디로 ‘바꿔 보자’는 것이다. 50년대에 ‘못 살겠다, 갈아 보자’라는 야당 구호가 큰 호응을 얻은 바 있는데 현재의 민심이 바로 그렇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는 것이다. BBK에 대한 검찰의 수사 결과를 ‘믿지 못 하겠다’는 의견이 더 많은데도 이명박 후보의 지지율은 오히려 더 높아진 것도 바로 그런 ‘바꿔 보자’는 민심 탓이다.
이명박 후보는 스스로 인정한 것만 놓고 보아도 비리와 흠투성이다. 그런 후보가 압도적 1위를 유지하고 있는 현실에 대해 그를 지지하는 유권자들조차 자괴감을 느끼고 있다. 따지고 보면 원인이야 어떻든 ‘80’에 속하는 유권자들이 ‘20’의 대표를 지지하는 계급적, 정치적 몽매성과 자가당착도 경제 규모가 세계 12위에 이른다는 나라로서는 남부끄러운 일이다.
준비부족으로 ‘잃어버린 10년’
그러나 흠집투성이의 후보가 압도적 1위를 차지하게 된 가장 큰 원인은 역시 개혁진영 능력 부족에 있다. 우선 상대가 그렇게 비리와 흠집투성이인데도 그를 능가할 대안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는 데 대해 부끄러움을 느껴야 할 것이다.
개혁 진영은 반세기만에 보수 세력을 물리치고 획득한 귀중한 시간을 낭비했다. ‘잃어버린 10년’이란 말은 물론 한나라당이 개혁진영을 비난하기 위해 내건 구호이지만 개혁진영이 주어진 역사적 책임을 다 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보면 딱 들어맞는 비판이다.
정부 수립 이래 지난 60년 간 이 땅에는 냉전의 영향으로 극단적인 보수체제가 확립됐다. 경제 개발도 그런 냉전구조와 보수정치 체제 아래서 이뤄진 것이었다. 이런 역사적, 정치적 여건에 진보적 가치를 접목하려면 거의 혁명에 준하는 노력이 필요했을 것이다. 그러나 지난 10년, 개혁 진영은 혁명에 준하는 개혁은커녕 사실상 현실에 안주했다. 보수 정권이 남긴 경제체제와 관료체제를 그대로 답습하면서 권력의 달콤함을 누렸던 것이 그동안의 사정이었다. 획기적 변화를 기대했던 국민이 ‘배신의 10년’이란 비판을 하는 것도 전혀 무리가 아닌 것이다.
보수 진영의 입장에서 보면 지난 세월은 ‘잃어버린 10년’이 아니라 ‘불로소득의 10년’이었다. IMF사태의 위기를 불러 온 것은 보수 세력이었다. 그러나 그 무너진 보수의 성채를 수선해 다시 번듯한 보수체제를 구축하고 그 성채로 향한 길마저 열심히 닦아준 것이 어이없게도 바로 개혁진영이었다. 보수 관료체제의 포로가 되어 IMF체제를 저항 없이 받아들이고 신자유주의적 세계화를 무조건적으로 받아들인 것이 지난 10년이었다.
이는 개혁진영이 기존 보수체제를 바꿀 대안이나 현실 운용 능력은 없이 정권만 덜렁 잡았던 데서 빚어진 결과였다. 보수 세력이라면 현존하는 질서와 체제가 보수적이기에 정권만 잡는 것으로도 족하다. 그러나 보수에 대항하는 세력은 입장이 다를 수밖에 없다. 기존 질서와 체제를 바꾸려면, 그리고 그것이 국민에게 설득력을 얻고 현실에서 가시적인 성과를 내려면 사전에 치밀한 계획이 있어야 한다. 과도적 부작용에 대한 주도면밀한 대책과 일시적 혼란과 고통을 감내하고 극복할 수 있는 계획도 필수적인 요건이다. 개혁진영엔 선한 의지는 있었을는지 모르나 그런 준비는 없었다.
개혁진영이 처절한 반성을 통해 다시 태어나지 않으면 보수의 집권은 장기화할 가능성이 크다. 대선 바로 다음 날부터 5년 후를 준비해야 한다. 진보의 대안을 준비하는 데는 5년도 긴 시간이 아니다. 그렇다고 실망할 필요는 없다. 보수의 역사는 무려 60년이 아니던가. 그런 보수의 성채가 한두 번의 공격으로 무너지리라고 기대하는 것부터가 무리이다.
5년 후를 지금부터 준비해야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의 조지 레이코프에 따르면 미국의 보수주의자들은 대중에게 보수 이념을 확산하기 위해 1970년부터 재벌들을 설득해 해리티지 재단, 올린 기금 교수직과 연구소 등을 세우며 장기간에 걸쳐 치밀하게 준비했다. 보수주의자들은 진보진영보다 4배나 많은 자금을 쏟아 부으며 논쟁, 토론, 저술, 강연 등을 통해 먼저 보수주의자 내부의 행동을 통일하고 인맥을 형성하여 보수적 가치를 끊임없이 재생산해 냈다고 한다. 그것이 결국 공화당의 오랜 백악관 장악과 의회 지배를 가져왔다는 것이다.
참패를 통해 자신의 무능력과 대안 준비의 필요성을 깨달을 수만 있다면 희망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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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승삼 (언론인)
개혁·진보 진영의 참패가 점점 더 분명해지고 있다. 대선의 승패가 문제가 아니라 이대로 가면 내년 4월 총선도 어렵다.
현재의 주류 민심은 한마디로 ‘바꿔 보자’는 것이다. 50년대에 ‘못 살겠다, 갈아 보자’라는 야당 구호가 큰 호응을 얻은 바 있는데 현재의 민심이 바로 그렇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는 것이다. BBK에 대한 검찰의 수사 결과를 ‘믿지 못 하겠다’는 의견이 더 많은데도 이명박 후보의 지지율은 오히려 더 높아진 것도 바로 그런 ‘바꿔 보자’는 민심 탓이다.
이명박 후보는 스스로 인정한 것만 놓고 보아도 비리와 흠투성이다. 그런 후보가 압도적 1위를 유지하고 있는 현실에 대해 그를 지지하는 유권자들조차 자괴감을 느끼고 있다. 따지고 보면 원인이야 어떻든 ‘80’에 속하는 유권자들이 ‘20’의 대표를 지지하는 계급적, 정치적 몽매성과 자가당착도 경제 규모가 세계 12위에 이른다는 나라로서는 남부끄러운 일이다.
준비부족으로 ‘잃어버린 10년’
그러나 흠집투성이의 후보가 압도적 1위를 차지하게 된 가장 큰 원인은 역시 개혁진영 능력 부족에 있다. 우선 상대가 그렇게 비리와 흠집투성이인데도 그를 능가할 대안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는 데 대해 부끄러움을 느껴야 할 것이다.
개혁 진영은 반세기만에 보수 세력을 물리치고 획득한 귀중한 시간을 낭비했다. ‘잃어버린 10년’이란 말은 물론 한나라당이 개혁진영을 비난하기 위해 내건 구호이지만 개혁진영이 주어진 역사적 책임을 다 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보면 딱 들어맞는 비판이다.
정부 수립 이래 지난 60년 간 이 땅에는 냉전의 영향으로 극단적인 보수체제가 확립됐다. 경제 개발도 그런 냉전구조와 보수정치 체제 아래서 이뤄진 것이었다. 이런 역사적, 정치적 여건에 진보적 가치를 접목하려면 거의 혁명에 준하는 노력이 필요했을 것이다. 그러나 지난 10년, 개혁 진영은 혁명에 준하는 개혁은커녕 사실상 현실에 안주했다. 보수 정권이 남긴 경제체제와 관료체제를 그대로 답습하면서 권력의 달콤함을 누렸던 것이 그동안의 사정이었다. 획기적 변화를 기대했던 국민이 ‘배신의 10년’이란 비판을 하는 것도 전혀 무리가 아닌 것이다.
보수 진영의 입장에서 보면 지난 세월은 ‘잃어버린 10년’이 아니라 ‘불로소득의 10년’이었다. IMF사태의 위기를 불러 온 것은 보수 세력이었다. 그러나 그 무너진 보수의 성채를 수선해 다시 번듯한 보수체제를 구축하고 그 성채로 향한 길마저 열심히 닦아준 것이 어이없게도 바로 개혁진영이었다. 보수 관료체제의 포로가 되어 IMF체제를 저항 없이 받아들이고 신자유주의적 세계화를 무조건적으로 받아들인 것이 지난 10년이었다.
이는 개혁진영이 기존 보수체제를 바꿀 대안이나 현실 운용 능력은 없이 정권만 덜렁 잡았던 데서 빚어진 결과였다. 보수 세력이라면 현존하는 질서와 체제가 보수적이기에 정권만 잡는 것으로도 족하다. 그러나 보수에 대항하는 세력은 입장이 다를 수밖에 없다. 기존 질서와 체제를 바꾸려면, 그리고 그것이 국민에게 설득력을 얻고 현실에서 가시적인 성과를 내려면 사전에 치밀한 계획이 있어야 한다. 과도적 부작용에 대한 주도면밀한 대책과 일시적 혼란과 고통을 감내하고 극복할 수 있는 계획도 필수적인 요건이다. 개혁진영엔 선한 의지는 있었을는지 모르나 그런 준비는 없었다.
개혁진영이 처절한 반성을 통해 다시 태어나지 않으면 보수의 집권은 장기화할 가능성이 크다. 대선 바로 다음 날부터 5년 후를 준비해야 한다. 진보의 대안을 준비하는 데는 5년도 긴 시간이 아니다. 그렇다고 실망할 필요는 없다. 보수의 역사는 무려 60년이 아니던가. 그런 보수의 성채가 한두 번의 공격으로 무너지리라고 기대하는 것부터가 무리이다.
5년 후를 지금부터 준비해야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의 조지 레이코프에 따르면 미국의 보수주의자들은 대중에게 보수 이념을 확산하기 위해 1970년부터 재벌들을 설득해 해리티지 재단, 올린 기금 교수직과 연구소 등을 세우며 장기간에 걸쳐 치밀하게 준비했다. 보수주의자들은 진보진영보다 4배나 많은 자금을 쏟아 부으며 논쟁, 토론, 저술, 강연 등을 통해 먼저 보수주의자 내부의 행동을 통일하고 인맥을 형성하여 보수적 가치를 끊임없이 재생산해 냈다고 한다. 그것이 결국 공화당의 오랜 백악관 장악과 의회 지배를 가져왔다는 것이다.
참패를 통해 자신의 무능력과 대안 준비의 필요성을 깨달을 수만 있다면 희망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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