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국주 칼럼]법치와 경제

지역내일 2007-12-28
법치와 경제
김국주 (전 제주은행장 제주대학교 산학초빙교수)

이제 며칠 후면 일제로부터 해방되고 나서 어렵게 수립한 우리나라 정부가 환갑의 해 무자(戊子)년을 맞는다. 잘못 들어선 길은 다시 돌아 나오는 데 최소한 같은 길이의 시간이 필요하다고 하던가. 나라를 잃었던 세월의 길이만큼이나 나라를 새로 만드는 작업도 오래 걸리고 있다는 느낌이다. 양적으로는 세계 11위 정도의 경제대국이 되었다고는 하나 여러 면에서 우리는 선진국으로 넘어가는 문지방을 아직 넘지 못하고 있다.
필자는 그것이 우리 - 관(官)과 민(民)을 통틀어 - 의 법 감각(法 感覺)이라고 보아 독자들과 몇 가지 생각을 나누고자 펜을 든다.
아주 평범한 예에서 출발한다. 주정차 금지 또는 견인지역 표지 밑에 항상 길게 늘어선 자동차들을 보면 운전자와 단속 요원들 간의 숨바꼭질을 보는 것 같다. 또한 대도시 외곽이나 지방에 가면 차량통행이 한적한 교차로에 일정한 주기로 켜지는 빨간 신호등이 있고 이를 무시하고 주행하는 많은 차량들을 볼 수 있다. 이런 현상을 두고 경제학자들은 운전자의 습관을 탓하거나 시민의식의 미숙을 말하지 않는다.

부의 정당성은 법치에 달려
경제학자들에 따르면 소비자들은 규정위반으로 얻는 효용(잠시 편리한 주차 또는 신호등에 서지 않고 진행함)과 단속됐을 때의 비효용(벌과금), 그리고 단속될 확률을 종합하여 기댓값(expected value)을 계산하고 이 기댓값을 극대화 하는 행동을 할 뿐이며 그런 여러 사람들의 행동이 모인 것을 하나의 균형이라고 풀이한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피부로 느끼는 대로 위반을 선택하는 경우가 그렇지 않은 경우보다 더 많다는 사실인데 세상을 다스리는 일은 경제학적으로 푸는 것이 옳다. 금년도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시장설계(market design) 이론을 연구하는 학자들도 이런 것은 시장 참여자의 잘못이 아니고 시장의 설계가 잘못된 때문이라고 말한다.
잘 된 설계의 예로는 미국 시애틀의 한적한 도로에서 보았던 교차로 신호등의 전자인식 장치가 떠오른다. 사거리 각 방향의 대기 차량 유무에 따라 신호등의 간격과 순서가 자유자재로 바뀐다. 건너편 도로의 좌회전 차로에 대기중인 차가 없으면 파란 신호등을 계속 켜준다. 좌우측 도로에 대기 차량이 없어도 마찬가지다. 이러니 운전자가 조바심을 낼 이유도 없고 오로지 신호등을 믿고 따르게 된다.
흔히 접하는 도로에서의 예를 들었지만 우리 모두는 매일의 신문과 TV, 그리고 생의 현장에서 위반, 불법, 부패의 사례를 듣고 보고 있다. 잘못된 법, 그래서 집행이 잘 되지 않는 법의 해악은 심대하다.
첫째, 범법자가 양산된다. 단속하면 안 걸릴 사람이 없으니 검찰, 나아가 정권의 힘이 너무 강해진다. 둘째, 법과 규정을 따르지 않는 습성이 생긴다. 이것은 결국 우리 주위에서 주기적으로 발생하는 대형사고 - 삼풍백화점 붕괴사고에서 ‘헤베이 스프리트’ 유조선 기름 유출사고까지 - 로 이어 진다. 셋째, 부자에 대한 존경심은 고사하고 부(富)의 정당성을 인정하는 문화가 형성되지 못한다.
10년 전의 IMF국란은 탑의 허리가 부러진 것에 비유된다. 저층 탑신은 좁은데 그 위로 경제의 탑을 올리다 보니 약간의 흔들림을 이기지 못했던 것이다. 우리가 약했던 것은 경제의 탑신 그 자체가 아니고 그 아래에 있는 기단(基壇)이었다. 기단을 넓히지 않고 경제의 탑을 다시 높이려 한다면 탑의 허리는 어느 때건 또 부러진다고 보아야 한다.
해결책으로 준법정신이나 시민의식을 먼저 말해서는 안 된다. 제도가 의식을 낳는다는 관점에 입각하여 두 가지 접근을 동시에 할 것을 해야 한다고 본다. 첫째는 언어적 접근으로서, 진정성이 결여되는 통제나 단속을 하지 않는 것이다. 비유적으로 든 사례이지만 이유없이 켜있는 빨간 신호등, 법 망신을 시키는 주정차 금지표지 같은 것은 없어져야 한다.

경제는 단단한 기단에 세워야
둘째는 사법적 접근이다. 법을 지키는 것이 민(民)의 의무라면 법(나쁜 법을 포함해서)을 지키도록 하는 것은 관(官)의 의무다. 사법처리 여부가 검찰이나 정권의 권리라고 착각해서는 안 된다. 비현실적인 법규라는 생각에 서로 눈감아 주는 것은 결코 고마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는 나쁜 법이 고쳐지지 않고 계속 우리 주위에 남아 우리나라를 비선진국으로 남게 만들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꼭 살리고 싶어하는 경제도 쉽게 살려지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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