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 취업빈곤층 노점 자영업자 권 율씨

지역내일 2008-01-17 (수정 2008-01-17 오전 7:17:54)
“일을 해도 빈손 … 절망 또 절망”

“지난 3개월 동안 번 돈은 모두 20만원이 안됩니다. 정말 일하고 싶어요. 아이들이 교통비 급식비 달랠 때 고개를 당당하게 들고 척척 주고 싶습니다.”
‘노점 사장’인 권 율(53)씨는 지난 15일 좌판을 펴는 대신, 오전 내내 자신의 11평 비좁은 아파트 안을 서성거리고 있었다. 이전부터 수차례 동사무소로부터 ‘부자가정으로 등록하라’는 제안을 받았지만, 이를 거절해왔다. ‘모・부자가정’이란 부모중 한쪽만 있는 가정으로, 기초생활수급자는 아니지만 국가로부터 고교생 학비, 초중고 학용품비, 미취학 아동 양육비 등 일정한 생계지원을 받을 수 있다. 정부지원을 받을지 말지 권씨는 심각하게 고민했다. 결론은 ‘좀 더 버텨보자’였다.
권씨와의 인터뷰를 위해 찾아간 곳은 서울 강서구 한 공공임대아파트단지. 도심 한가운데서 궁핍한 사람들이 집중적으로 모여 산다는 뜻으로 ‘도시의 섬’으로 불리는 곳이다. 그는 13년째 이곳에서 살아왔으면서도 기득(고교1・가명)이와 효은(초교6・가명)이가 정부 보조금을 받는 아이로 키우고 싶지 않았다.
“아이들이 친구들로부터 손가락질 받을까봐서요. 부자가정이 되면 아이 학비는 지원을 받을 수 있다고 하더군요. 하지만 아이들이 혹시 기죽을까봐….”

◆권씨의 바쁜 하루 일과 =
권씨의 하루 일과는 새벽 5시부터 시작된다. 어김없이 이 시간이면 아침식사를 준비하고, 6시면 기득이를 학교에 보낸다. 전날 좌판으로 번 몇천원을 버스비로 준다. 효은이 아침을 챙기고 나면 8시. 9시면 강서구 신정동으로 나선다. 노점을 하는 친구들이 있다. 그들에게 판매할 잡화를 받아 좌판을 펼친다. 장사가 좀 되는 날이면 저녁 늦게까지 자리를 지키지만, 늦어도 9시면 집으로 돌아온다. 하루 수입은 1만원 정도.
“애들 저녁밥도 차려줘야 하고, 빨래도 해요. 하지만 그것보다는 아이들 정서 때문입니다. 밤에 내가 집에 있으면 애들이 심리적으로 편안하다고 합니다. 형편이 이렇게 어려운데도, 아이들은 나를 잘 따르고 공부를 열심히 하려해요.”

◆“경기 풀리길 기다려야죠” =
권씨 형편이 처음부터 어려웠던 것은 아니다. 고향이 춘천인 그는 중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집 근처에서 낚시가게 일을 배웠다. 한때 가게를 직접 내기도 했는데, 꽤 많은 돈을 모았다고 했다. 사업이 잘됐다. 낚시기구뿐만 아니라 등산용 지팡이, 손전등, 등산화 등 레저용품을 공급하는 유통업에 뛰어들었다. 하지만 외환위기를 거치면서 사업은 기울었고, 빚은 늘었다. 서울로 생활을 옮겨왔다. 7년전 아내와 이혼하면서, 아이들 양육은 그의 일이 됐다. 낚시용품 도매공급을 위해 하루 300~400km를 뛰어다니면서도, 아이를 돌봐야 했다.
“경기가 안 풀렸어요. 침체가 길어지면서 일감이 없어졌어요. 가끔 대량주문을 받아 트럭에 싣고 나서지만, 하루 4~5만원 하는 기름 값도 감당하기 어려워요. 식대・고속도요금 등을 메우려면 하루에 15만원은 벌어야 합니다. 하지만 계속 밑지기만 하니, 차라리 노점을 차리는 게 낫다 싶었죠.”
잡화를 파는 노점을 시작했다. 살림은 점점 어려워졌지만, 악착같이 일했다. 벌이는 계속 줄었다. 3년전 월 소득이 100만원으로 낮아지더니, 작년부터는 50만~60만원으로 떨어졌다. 실낱같던 희망도 자꾸 가늘어졌다. “몫돈이 없잖아요. 트럭을 빌려서 다녔어요. 고장이 한번씩 날 때마다, 모아둔 돈이 바닥나더군요.”

◆전직한 동료들도 비슷한 처지 =
권씨는 자신뿐만 아니라 주위에서 같은 일을 하는 동료들도 비슷한 처지라고 전했다. “형편이 어려운 건 나뿐만이 아닙니다. 돈이 돈을 벌잖아요. 할인점이나 대형유통점이 곳곳에 늘면서 좌판이나 유통일 하는 친구들도 나랑 비슷한 생활이 됐어요.”
권씨의 직업은 직업세분류상 ‘노점 및 이동판매원’에 속하는데, 한국고용정보원의 조사에 따르면 이 직업 종사자들은 2002년부터 15만7000명에서 2006년 14만1800명으로 줄었다. 권씨에 따르면 친구 누구는 택시운전을 시작했는데, 사납금 채우느라 빚만 떠안았다. 한달에 이틀 쉬는 날 운전해서 그 돈으로 먹고 산다고 했다. 어렵게 용접과 배관 기술을 배워 다른 직업을 찾아나선 이들도 없진 않다. 하지만 그들도 일감을 얻지 못해 일주일에 하루 이틀만 일한다고 했다.

◆두 아이가 희망 =
권씨의 바램은 경기가 좋아져서 다시 유통업을 시작하는 것이다. 왼쪽 어깨가 쉽게 탈골돼 다른 일자리를 얻기도 어렵다. 6년을 버텼다. 그를 버티게 하는 희망은 두 아이다.
“큰 아이에게 급식비 4만원을 못주는 경우 많아요. 아이는 점심시간에 운동장에 나와 혼자 다닌다고 합니다. 그래도 주위엔 나보다 더 못한 사람도 있어요.”
권씨에게 위로가 돼주는 이는 가양종합사회복지관 사회복지사 장호주씨다. 사회 후원이나 식품지원뿐만 아니라 아이들의 생활지도도 해준다. 정부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주선하고 있다. 장호주씨는 “권 율씨가 부자가정이나 차상위계층으로 신청하면 정부지원을 다소 받을 수 있지만 정작 본인이 거부하고 있다”며 “하지만 근로의욕이 높기 때문에 안정적인 일자리만 주어지면 빈곤에서 벗어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강서지역자활지원센터 윤복주 대리는 “권 율씨가 일할 의욕이 있기 때문에 자활프로그램에 따라 창업이나 사회적일자리 혜택을 볼 수 있다”며 “하지만 어깨 탈골 등 건강 때문에 쉽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강경흠 기자 khka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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