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랑에 선 이회창
득표율 00%에 머물러 … “여론조사 지지율 실체 없다” 논란
무소속 이회창 후보가 대선에서 00를 득표, 벼랑에 섰다. 당초 목표했던 20%는 물론 마지노선이라는 15%에도 못 미치는 수치다. 이로 인해 이 후보가 새로운 당을 이끌어 보수층 결집을 재시도하는 동력은 크게 떨어질 위기를 맞았다. 자금 조달 문제도 당장 현실적으로 난관에 부딪쳤다. 게다가 이회창 후보를 ‘눈엣 가시’처럼 여겼던 한나라당은 대선 이후까지도 이 후보에 대한 정계 은퇴 압박을 더 강하게 밀어 붙일 전망이다.
◆대구·경북, 충청에서의 득표 저조 =
이 후보는 이번 대선에 출마하면서 충청도와 대구 경북 바닥 민심에 큰 기대를 걸었다. 대선 승리 자신감도 어느때보다 컸다. 대구 서문시장을 방문해 달걀 세례를 맞고도 “계란 마사지를 받았다”며 여유 있는 모습을 보일 정도였다. 게다가 한나라당 경선 과정을 지켜보며 ‘박근혜 홀대론’을 가슴에 새긴 대구 경북 지역 바닥 민심이 흔들렸다. 곽성문 김병호 의원이 한나라당을 탈당해 이회창 후보를 공개적으로 지지했다. 이 후보 본인은 박근혜 전 대표 자택을 세 번이나 찾아가는 ‘삼고초려’로 부동층 흡수에 나섰다.
충청에서는 심대평 전 국민중심당 대표와의 연대로 무소속 약점을 극복하는 바닥 조직을 확보했다. 거기에 김혁규 전 경남지사의 지지선언, 박찬종 전 의원의 반이명박 선언, 막바지 ‘BBK이명박 동영상’까지 터지면서 이 후보에게 유리한 분위기가 조성됐다.
그럼에도 성적은 예상외로 저조했다. 이 후보는 대구 경북 00%, 충청 00%의 득표에 그쳤다. 이 후보측의 기대심리가 큰 만큼 저조한 결과가 오히려 큰 타격이 될 수 있다. 이 후보의 전국 득표율 00%는 17대 대선의 3위 000당 이인제 후보의 00%보다도 낮다.
==== 이 부분은 전국 득표율과 대구 경북 충청 지역 득표율 반영해야
◆창당, 무거운 과제 =
새로운 당을 추진하려는 계획도 낮은 득표율로 인해 어려운 과제로 남게 됐다. 유권자들은 여론조사에서 이 후보에게 15-20%의 높은 지지율을 보인 반면 실제로는 00%의 표를 줬다. 이럴 경우 이회창 후보가 ‘정치적 세력을 이끌 힘’은 예상외로 낮다는 논란으로 이어질 수 있다.
게다가 이 후보는 무소속으로 대선을 치렀다. 1997년 한나라당 후보로 출마했을 당시에는 낙선자임에도 불구하고 당내 지지세력을 기반으로 5년 후를 도모할 수 있었다. 이회창 총재 체제에서 인재를 영입, 2002년 대선에서는 대규모 특보단을 구성하고 직능 조직까지 꾸려 다시 대선에 나올 수 있었다. 반면 이번에는 이회창 후보 지지세력이 계속 남아 있을 수 있는 둥지가 없고, 현실적 자금마련조차 어려운 상황에 놓였다. 득표율이 15%를 넘었다면 광고비를 포함한 선거운동 비용 전액을 돌려받을 수 있었지만 10~15%이하 득표율에서는 이중 절반만 받을 수 있다. 이외에도 심대평 국민중심당 대표가 이회창 후보를 지지했지만 대선 이후에는 어떤 입장을 취할지 아직 미지수다.
◆고민하는 총선 희망 출마자들 =
무엇보다 이 후보와 총선을 동시에 바라봤던 일부 지지층들의 고민이 커졌다. 박근혜 전 대표를 지지했다가 한나라당에 등을 돌리고 이회창 후보에게 돌아선 직업 정치인들은 속앓이를 하고 있다. 박 전 대표는 여전히 한나라당에 남아 있고, 믿었던 이회창 후보는 큰 성과를 내지 못했다. 이런 기세가 총선까지 이어질 경우 ‘한나라당을 탈당했다’는 비난과 ‘노력은 했지만 별다른 영향력이 없다’는 비판을 동시에 받을 수 있다. 박 전 대표 지지세력인 ‘파랑새단’ 관계자는 “19일 밤부터 회의를 진행했다”며 “00000”라고 말했다.
이회창 후보는 20일 오전 “ ”라고 밝혔다. 국민중심당 관계자는 “ ”라며 “ ”라고 말했다.
전예현 기자 newslove@naeil.com
득표율 00%에 머물러 … “여론조사 지지율 실체 없다” 논란
무소속 이회창 후보가 대선에서 00를 득표, 벼랑에 섰다. 당초 목표했던 20%는 물론 마지노선이라는 15%에도 못 미치는 수치다. 이로 인해 이 후보가 새로운 당을 이끌어 보수층 결집을 재시도하는 동력은 크게 떨어질 위기를 맞았다. 자금 조달 문제도 당장 현실적으로 난관에 부딪쳤다. 게다가 이회창 후보를 ‘눈엣 가시’처럼 여겼던 한나라당은 대선 이후까지도 이 후보에 대한 정계 은퇴 압박을 더 강하게 밀어 붙일 전망이다.
◆대구·경북, 충청에서의 득표 저조 =
이 후보는 이번 대선에 출마하면서 충청도와 대구 경북 바닥 민심에 큰 기대를 걸었다. 대선 승리 자신감도 어느때보다 컸다. 대구 서문시장을 방문해 달걀 세례를 맞고도 “계란 마사지를 받았다”며 여유 있는 모습을 보일 정도였다. 게다가 한나라당 경선 과정을 지켜보며 ‘박근혜 홀대론’을 가슴에 새긴 대구 경북 지역 바닥 민심이 흔들렸다. 곽성문 김병호 의원이 한나라당을 탈당해 이회창 후보를 공개적으로 지지했다. 이 후보 본인은 박근혜 전 대표 자택을 세 번이나 찾아가는 ‘삼고초려’로 부동층 흡수에 나섰다.
충청에서는 심대평 전 국민중심당 대표와의 연대로 무소속 약점을 극복하는 바닥 조직을 확보했다. 거기에 김혁규 전 경남지사의 지지선언, 박찬종 전 의원의 반이명박 선언, 막바지 ‘BBK이명박 동영상’까지 터지면서 이 후보에게 유리한 분위기가 조성됐다.
그럼에도 성적은 예상외로 저조했다. 이 후보는 대구 경북 00%, 충청 00%의 득표에 그쳤다. 이 후보측의 기대심리가 큰 만큼 저조한 결과가 오히려 큰 타격이 될 수 있다. 이 후보의 전국 득표율 00%는 17대 대선의 3위 000당 이인제 후보의 00%보다도 낮다.
==== 이 부분은 전국 득표율과 대구 경북 충청 지역 득표율 반영해야
◆창당, 무거운 과제 =
새로운 당을 추진하려는 계획도 낮은 득표율로 인해 어려운 과제로 남게 됐다. 유권자들은 여론조사에서 이 후보에게 15-20%의 높은 지지율을 보인 반면 실제로는 00%의 표를 줬다. 이럴 경우 이회창 후보가 ‘정치적 세력을 이끌 힘’은 예상외로 낮다는 논란으로 이어질 수 있다.
게다가 이 후보는 무소속으로 대선을 치렀다. 1997년 한나라당 후보로 출마했을 당시에는 낙선자임에도 불구하고 당내 지지세력을 기반으로 5년 후를 도모할 수 있었다. 이회창 총재 체제에서 인재를 영입, 2002년 대선에서는 대규모 특보단을 구성하고 직능 조직까지 꾸려 다시 대선에 나올 수 있었다. 반면 이번에는 이회창 후보 지지세력이 계속 남아 있을 수 있는 둥지가 없고, 현실적 자금마련조차 어려운 상황에 놓였다. 득표율이 15%를 넘었다면 광고비를 포함한 선거운동 비용 전액을 돌려받을 수 있었지만 10~15%이하 득표율에서는 이중 절반만 받을 수 있다. 이외에도 심대평 국민중심당 대표가 이회창 후보를 지지했지만 대선 이후에는 어떤 입장을 취할지 아직 미지수다.
◆고민하는 총선 희망 출마자들 =
무엇보다 이 후보와 총선을 동시에 바라봤던 일부 지지층들의 고민이 커졌다. 박근혜 전 대표를 지지했다가 한나라당에 등을 돌리고 이회창 후보에게 돌아선 직업 정치인들은 속앓이를 하고 있다. 박 전 대표는 여전히 한나라당에 남아 있고, 믿었던 이회창 후보는 큰 성과를 내지 못했다. 이런 기세가 총선까지 이어질 경우 ‘한나라당을 탈당했다’는 비난과 ‘노력은 했지만 별다른 영향력이 없다’는 비판을 동시에 받을 수 있다. 박 전 대표 지지세력인 ‘파랑새단’ 관계자는 “19일 밤부터 회의를 진행했다”며 “00000”라고 말했다.
이회창 후보는 20일 오전 “ ”라고 밝혔다. 국민중심당 관계자는 “ ”라며 “ ”라고 말했다.
전예현 기자 newslove@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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