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과 마음으로 겪은 삶이 공부가 되는 아이들

지역내일 2007-12-20

체험형 생태학습 프로그램 운영이 어린이에게 미치는 영향

충남 아산시 송악면 송학리 거산초등학교
교장 박장진

시골에서 점점 사라지는 모습 몇 가지를 꼽아 보면 굴뚝 연기, 아기 울음소리, 젊은이, 그리고 아이들이 뛰어노는 학교를 들 수 있다. 유행처럼 웰빙 바람이 불어 농촌을 찾는 사람들이 늘어나긴 하지만 지친 도시인들에게 잠시 쉬는 공간일 뿐 삶의 공간으로 자리 잡지는 못하고 있다. 요즘 들어 아예 가까운 도시나 소읍에서 생활하며 차를 타고 농사를 지으러 다니는 사람들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나이가 젊은 축에 드는 그네들의 속사정을 들여다보면 안타깝다. 그들 가운데 대부분이 시골에 살 집이 있어도 빚을 내서 아파트나 집을 얻어 사는 형편이다. 이들이 삶의 둥지를 시골에 틀지 않는 까닭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 가운데 ‘자녀 교육’의 문제가 매우 크다. 전교생이 백 명에 미치지 못하는 학교는 통폐합의 대상으로 거론되어 없어진지 오래라 면소재지에 학교가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걸어서 다닐 수 있는 곳에 있던 학교가 멀리 통학버스를 타고 가야만 하는 곳으로 바뀌다보니 아이들 안전문제나 도시교육에 대한 동경심을 갖고 있던 이들에게 삶의 터전을 바꾸는 일은 피할 수 없는 일이 되었다. 그러다보니 지금 우리의 농촌은 빈 까치집만 남아있는 오래된 고목 같다. 낡고 허술한 까치둥지에 더 이상 까치가 날아오지 않듯 학교가 사라지고, 삶의 희망이 사라진 곳에 사람들은 더 이상 삶의 둥지를 틀지 않게 된 것이다.

2002년 십 년 동안이나 폐교대상이었던 거산초등학교에 새로운 둥지를 마련한 사람들은 농촌에서 교육적 가치와 삶의 가치를 발견하고자 하는 이들이었다. 삶을 가꾸는 글쓰기 공부를 하던 교사들과 아이들에게 생태적 삶과 가치를 배우게 하고 싶어 하던 학부모, 학교의 폐교를 적극적으로 막아내고 있던 지역민, 소외된 농촌에서 우리 사회의 대안과 희망을 찾고자 애쓰던 시민단체들이 힘을 모았던 것이다. 그리하여 전교생이 32명으로 두 개 학년이 한 교실에서 공부를 하던 거산분교에 아산과 천안지역에서 96명의 학생이 전학을 오게 되었다. 공교육 내에서 대안을 모색하는 거산초등학교의 첫 발걸음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거산초등학교는 농촌이 가지고 있는 천혜의 교육적 자원을 공교육의 교육과정에서 적극적으로 구현해보고자 하였다. 본교가 6년 동안 체험형 생태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할 수 있게 된 까닭이 여기에 있다. 지역의 물적 자원과 인적 자원이 풍부하고 전문가와 결합하는 네트워킹이 형성되어 다양한 형태의 생태교육이 가능한 것이다. 물론 지속적인 생태교육이 가능한 것은 학부모의 끊임없는 노력과 학교의 적극적인지지 그리고 교육 주체인 학부모와 교사에 대한 연수가 실시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지속적인 생태교육은 결국 아이들의 바람직한 인성형성에 큰 구실을 하고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본교 아이들은 생태적 감수성이 풍부할 뿐만 아니라 자연에서 배우고 익힌 것을 지식과 연관 지어 활용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또한 어떤 문제 상황에 직면하면 내면에 형성된 생태적 가치관을 적용하여 판단 기준의 잣대로 삼곤 한다. 둘레에서 만나는 뭇생명을 귀하게 여기고 돌보는 태도와 함께 살아가는 대상으로 껴안는 어이들의 모습은 오히려 어른을 부끄럽게 만든다.


본교에서 실시하는 생태교육이 아이들의 삶에서 구현되고 있는 바는 과정을 중요시하고 인내하고 배려하는 모습이다. 자연은 현대사회가 요구하는 무자비한 속도의 전쟁을 과감히 거부한다. 빠르다는 것이 마치 미덕인 것처럼 여겨지는 사회에서 자연의 습성과 태도를 배운다는 것은 자칫 진부해 보일지 모른다. 그러나 진정한 교육은 ‘만드는 문화’에서는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기르는 문화’를 몸으로 겪으며 하나하나의 과정에서 배움을 얻고 결과를 얻기까지 인내하는 마음을 배우는 것이 참된 공부인 것이다. 봄에 씨감자를 잘라 땅에 묻고, 북을 주고 하얗게 핀 꽃을 보며 감자알이 굵어지길 기다리는 마음, 잘 영근 감자를 캐서 교실에서 친구들과 함께 쪄먹으며 결실을 나누는 마음, 모심기를 하며 밥이 우리 입으로 오기까지 여든 번의 손길을 거쳐야 함을 알며 밥 한 톨을 귀하게 여기는 마음과 태도가 자연스럽게 길러지는 것을 보게 되었다. 지식을 머리로 배우는 것이 아닌 몸과 마음으로 직접 배우는 공부, 우리 둘레에 있는 모든 것들이 우리 삶을 풍요롭게 하는 데 중요한 구실을 하는 것임을 깨닫는 것 자체가 삶을 가치롭게 만드는 공부인 것이다. 이런 공부는 자연이 비교적 덜 훼손된 농산어촌에서 가능한 것이다.

우리 학교 둘레에는 빈 집이 없다. 물론 생계유지를 위해 이사를 오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 학교에 아이를 보내고 싶은 사람들이 이사를 오기 때문이다. 6년 전 학교 근처의 밭에서 농사를 짓는 노부부가 한 말이 떠오른다. 쥐죽은 듯 조용하기만 하던 학교에서 아이들 소리가 시끌시끌 나서 공연히 기분이 좋아지고, 일을 하는 데도 신이 난다고 했다. 학교가 사니 농촌에 생기가 돌기 시작한 것이다. 젊은이들은 자식들 교육을 위해 도시로 나갈 까닭이 없고, 오히려 이사를 오고자 하는 이들이 많아진다는 것은 거산학교가 보여주는 또 다른 희망이다. 공장형 학교, 아파트형 학교는 아이들에게 과정의 소중함과 인내와 배려, 더불어 사는 삶의 기쁨과 행복을 가르치기 어렵다. 농촌의 작은 학교를 살리는 일은 결국 우리 아이들을 살리는 일이고 우리의 미래를 건강하게 만드는 토대를 형성하는 중요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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