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스펀이 남긴 ‘빚의 금리자’

지역내일 2008-02-11
그린스펀이 남긴 ‘빚의 금리자’

사면초가 빠진 버냉키 의장

끝을 모르는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
만장일치형 FOMC에도 파열음 생겨
‘FRB는 무책임한 권력'' 무용론까지

‘경제 대통령’이라고 불리며 말 한마디가 곧 경제지표였던 인물이 있었다. 알렌 그린스펀.
그는 1987년부터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을 맡아 2005년까지 미국의 경제 대통령, 미국 경제의 조타수, 통화정책의 신의 손이라고 불렸다. 1990년대 미국의 장기 호황을 이끌었으며 28년만에 최저의 실업률과 29년만에 재정 흑자 및 고성장을 이룩할 수 있는 발판을 제공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미국뿐 아니라 세계경제에 미치는 영향력을 빗대 ‘그린스펀효과’라는 말까지 생겨났다.
하지만 언덕이 높으면 골도 깊은 법. 그린스펀이 남긴 ‘빚의 그림자’가 후임자인 벤 버냉키 FRB 의장에게 짙게 드리우고 있다.

◆시장은 FRB 의도대로 움직여주지 않았다 =
2001년 1월 주가는 IT 거품이 최고조를 찍은 이래 1년 가까이 뒷걸음질쳤다. 이에 따라 연준리는 2년래 첫 금리인하를 시작했고 2년 6개월 사이 총 12차례 같은 결정을 되풀이했다. 그 결과 2003년 6월이 되면 금리는 1%가 됐고 이는 1959년 이래 가장 낮은 수치였다. 그리고 2004년 6월 미국 경제는 금리를 다시 올려도 될 정도로 튼튼해져 보였다.
하지만 연준리의 잘못된 판단은 가계에는 시한폭탄이 됐다.
금리가 낮아지자 사람들은 새로 집을 구입하고 주택담보대출을 늘렸다. 그 사이 소득은 제자리여서 가계부채가 가계자산을 앞지르기 시작했다. 지난 20년간 꾸준히 가계 순자산을 밑돌았던 부채가 2000년을 기점으로 가파르게 상승한 것. 집값이 기록적인 수치를 기록한데 따른 착시현상이었다. 사실상 이 때부터 서브프라임 모기지(부실 주택담보 대출) 사태의 씨앗을 키운 것이다.
실제로 2001~2005년 사이 가계자산은 25.6% 상승했지만 같은 기간 가계부채는 44.1%나 늘었다. 연준리는 금리인상에 따라 주택담보대출 금리도 오르고 이를 통해 사람들이 빚은 덜 내고 저축은 늘릴 것으로 기대했다. 하지만 주택담보대출 금리가 계속 낮은 상태를 유지하면서 너도나도 주택시장으로 몰렸다. 이 때라도 사태는 바로잡을 수 있었지만 그린스펀은 그러지 않았다. 은행들도 덩달아 상환능력을 검증하지 않고 마구 대출했지만 그린스펀 의장은 이 경고신호를 무시했다. 결국 2007년 3월 담보대출을 상환하지 못하는 가구가 급격히 늘고 금융기관이 연쇄 부실화하면서 시작된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는 1년째 세계 경제를 멍들게 하고 있다.

◆그린스펀의 아우라, 버냉키에겐 저주 =
워낙 그린스펀의 영향력이 강력했던 탓에 후임자인 버냉키는 실무적으로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그린스펀은 금리결정기구인 ''미국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를 만장일치로 운영했다. 아우라(aura)가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학자풍의 버냉키는 그럴 능력도, 의지도 없었다. 지난해 10월 버냉키가 금리인하를 요구하자 FOMC의 한 위원이 반대표를 던지는가 하면 12월 또 다른 FOMC 위원은 버냉키 요구치보다 더 많이 금리를 인하해야한다며 반대표를 던졌다. 그 결과 그린스펀식의 ‘말 한마디’로 통제되던 시절은 끝났다. JP모건의 수석 이코노미스트인 브루스 카스만은 “이제 시장은 연준리의 말에 귀기울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연준리 무용론까지 나온다. ‘미 연준리:세기의 사기꾼(the Federal Reserve : fraud of the Century)’이라는 책은 “연방준비제도이사회란 1913년 개인은행들이 미국 경제를 좌지우지하기 위해 만든 카르텔에 연방기관 느낌을 주기 위해 ‘연방’을 갖다붙인 것에 불과하다”며 연준리라는 ‘무책임하고 선출되지 않은 중앙은행의 횡포’에 대해 경고했다.
반면 버냉키 앞의 상황은 그린스펀 당시보다 훨씬 복잡, 심각하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의 끝을 가늠하기 어려운 가운데 초유의 달러약세가 계속되고 있다. 배럴당 100달러에 육박하는 고유가로 인해 인플레 압력은 높아지는데 고용지표는 나빠지고 있다. 경기후퇴(recession) 징후까지 보이는 상황에서 ‘성장과 물가안정’이라는 정반대의 정책을 조율해야하는 딜레마에 빠진 것이다.
특히 올해는 미국 대선이 있다. 경제살리기가 대선 쟁점이 되면서 비정치적, 독립성을 강조하는 연준리의 결정이 그 어느 때보다 정치적 파급효과가 높아졌다. 버냉키로서는 피하고 싶은 상황만 모아놓은 재난의 종합선물세트가 됐다.
지난 주말 선진 7개국(G7) 재무장관회의에서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 관련 부실규모 전망치가 4000억달러로 종전 전망치의 3~4배나 늘었다. 앞으로 어디서, 어떤 부실이 또 나올지 알 수 없다. 이에 따라 미국 연준리의 대응방식과 규모도 한치 앞을 예상하기 어렵다. 14일로 예정된 의회 청문회에서 버냉키 의장이 어떤 발언을 내놓을 지 주목된다.
조숭호 기자 shcho@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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