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탄 숭례문과 실용주의
임재경 (언론인 전 한겨레신문 부사장)
불행과 재난은 아주 공교로운 시점을 택하여 찾아오기 일쑤다. 2008년 2월10일 밤의 숭례문(세칭 남대문) 소실이 좋은 예다. 닷새 동안 계속된 설연휴의 마지막 날인데다 새 정부가 들어설 날을 보름 남짓 앞둔 시기였다. 국보 제1호가 잿더미가 되었다는 국가적 손실과는 별개로 쥐띠해(戊子年) 특유의 발복(發福)을 기대하던 국민으로서는 김이 있는 대로 샌 꼴이다. 더구나 정권인수를 앞둔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 측에서 보자면 흉조라면 더할 나위 없는 흉조이며 물러나는 노무현 정부 쪽에서도 5년 동안의 실적이 남대문 소실로 인하여 모개로 평가절하될 판이다.
하지만 남대문의 소진을 그 시기의 공교로움이란 시각에서 영탄할 일만은 물론 아니다. 10일 밤 TV 화면을 통하여 두 시간 가까이 남대문의 불길과 소방차의 호스에서 내뿜는 물줄기를 보면서 한결같이 답답했던 것은 소방대원들이 왜 남대문 안으로 뛰어들어가 물을 뿜어대지 못할까 하는 안타까움이었다.
비용 절약만 생각한 서울시
불구덩이에 뛰어드는 것은 목숨을 거는 행동이다. 그러나 소방대의 선두에 서는 사람은 경우에 따라, 아니 국보 1호의 화재 피해를 최대한으로 줄이기 위해 거의 조건반사적으로 불구덩이로 몸을 던지는 특별한 위치에 있는 존재가 아닌가. 발화 직후 문화재 손상을 우려하여 내부진입을 자제해달라는 문화재청 직원의 요구 때문이라는 보도가 있기는 하나 소방대원의 소임을 망각한 데 대한 면책사유는 되지 못한다. 큰 불길은 잡았고 잔불만 남았다는 현장 소방관의 언표는 판단착오의 극이라 할 것이다.
어디 그뿐인가. 남대문을 시민에게 개방한 것을 큰 자랑으로 여긴 서울시가 단지 다섯개의 소화전을 비치한 것과 안전관리를 상업적 경비업체에 맡긴 것은 비용 절약(인건비 절감)만을 생각했지 무슨 일이 있더라도 국보를 지키겠다는 결연한 의지와는 거리가 멀다.
일년여 매스컴의 상투어가 된 CEO 형 행정관리 방식이 초래한 재난의 본보기가 국보 제1호 남대문을 불태운 여건을 조성한 측면이 없지 아니하다. CEO형 행정이 과연 무엇을 뜻하느냐는 데 이르면 구구한 설명이 따르겠으되 투입비용과 산출효과(産出效果)를 가장 중요한 지표로 삼아 공공상의 정책을 결정하는 방식이라고 보면 크게 빗나가지 않을 것이다.
국보 제1호 남대문은 투입비용만 있을 뿐 산출 효과는 구체적으로 계산하기 어려운 비상업적 공공 재화(財貨)이다. 프랑스 파리시 한복판에 있는 개선문이 그렇듯이 개선문을 관리유지하는 일은 거기서 구체적인 잉여를 산출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러한 이유로 프랑스 정부는 개선문의 안전관리를 상업적 경비업체에 맡기지 않는다. 최근 각광을 받는 한국의 CEO들이 즐겨 입에 담는 투입비용 대 산출 효과로는 도저히 계산할 수 없는 프랑스 국민의 긍지가 개선문에 담겨 있다.
영리 기업의 운영방식을 공공적 행정에 적용할 때 나타나는 강점을 굳이 외면할 까닭은 없다. 무사안일을 일삼는 관료주의를 깨는 데는 일정한 효과가 나타났고 경쟁을 유도함으로써 능률을 향상시키는 현상은 구미 여러 나라에서 보는대로다. 그러나 실용주의라는 이름으로 등장한 한국의 신흥 CEO들은 우리 사회가 합의한 보편적 가치체계를 무너뜨리는 데 주력하고 있다. 그 최신판이 ‘워린지 형’ 영어교육을 막무가내로 관철하려는 정권인수위원회의 움직임이다.
특정 분야의 필요와 효과의 시간적 한정성을 도외시하는 행태는 큰 주목을 요한다. 기업의 최고 경영자는 특정 업종의 수익을 일정한 시기에 최대한으로 증대시키는 것이 목적일 뿐 이해가 상충하는 사회를 조화시키는 것은 당초부터 안목에 없다.
이런 류의 한국판 실용주의가 기회주의에 물든 한국 관료층에 정권 이양기에는 되도록 소극적으로 임하는 병폐를 만연시키고 있음이 역력하다. 이를테면 남대문 화재 시에 출동한 소방서가 불길을 온전히 잡는 일에 앞서 문화재를 소홀히 다루었다는 뒷말을 의식하여 소극적으로 진화작업에 임하였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힘들다.
콘크리트 남대문 등장 우려
남대문이 잿더미가 된 이튿날 점심을 같이한 시민단체의 한 운동가는 남대문을 복원하는 일에 한 가지 걱정스러운 일이 있다며 새 정부가 화재의 위험성을 최대한 줄인다는 명목 아래 목재 대신 시멘트 콘크리트로 남대문을 세울지 모른다는 것이었다. 설마 그런 일이야 있겠느냐며 일소에 부쳤으나 한국판 실용주의가 기승을 부리는 이 시기에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고 아무도 장담하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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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재경 (언론인 전 한겨레신문 부사장)
불행과 재난은 아주 공교로운 시점을 택하여 찾아오기 일쑤다. 2008년 2월10일 밤의 숭례문(세칭 남대문) 소실이 좋은 예다. 닷새 동안 계속된 설연휴의 마지막 날인데다 새 정부가 들어설 날을 보름 남짓 앞둔 시기였다. 국보 제1호가 잿더미가 되었다는 국가적 손실과는 별개로 쥐띠해(戊子年) 특유의 발복(發福)을 기대하던 국민으로서는 김이 있는 대로 샌 꼴이다. 더구나 정권인수를 앞둔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 측에서 보자면 흉조라면 더할 나위 없는 흉조이며 물러나는 노무현 정부 쪽에서도 5년 동안의 실적이 남대문 소실로 인하여 모개로 평가절하될 판이다.
하지만 남대문의 소진을 그 시기의 공교로움이란 시각에서 영탄할 일만은 물론 아니다. 10일 밤 TV 화면을 통하여 두 시간 가까이 남대문의 불길과 소방차의 호스에서 내뿜는 물줄기를 보면서 한결같이 답답했던 것은 소방대원들이 왜 남대문 안으로 뛰어들어가 물을 뿜어대지 못할까 하는 안타까움이었다.
비용 절약만 생각한 서울시
불구덩이에 뛰어드는 것은 목숨을 거는 행동이다. 그러나 소방대의 선두에 서는 사람은 경우에 따라, 아니 국보 1호의 화재 피해를 최대한으로 줄이기 위해 거의 조건반사적으로 불구덩이로 몸을 던지는 특별한 위치에 있는 존재가 아닌가. 발화 직후 문화재 손상을 우려하여 내부진입을 자제해달라는 문화재청 직원의 요구 때문이라는 보도가 있기는 하나 소방대원의 소임을 망각한 데 대한 면책사유는 되지 못한다. 큰 불길은 잡았고 잔불만 남았다는 현장 소방관의 언표는 판단착오의 극이라 할 것이다.
어디 그뿐인가. 남대문을 시민에게 개방한 것을 큰 자랑으로 여긴 서울시가 단지 다섯개의 소화전을 비치한 것과 안전관리를 상업적 경비업체에 맡긴 것은 비용 절약(인건비 절감)만을 생각했지 무슨 일이 있더라도 국보를 지키겠다는 결연한 의지와는 거리가 멀다.
일년여 매스컴의 상투어가 된 CEO 형 행정관리 방식이 초래한 재난의 본보기가 국보 제1호 남대문을 불태운 여건을 조성한 측면이 없지 아니하다. CEO형 행정이 과연 무엇을 뜻하느냐는 데 이르면 구구한 설명이 따르겠으되 투입비용과 산출효과(産出效果)를 가장 중요한 지표로 삼아 공공상의 정책을 결정하는 방식이라고 보면 크게 빗나가지 않을 것이다.
국보 제1호 남대문은 투입비용만 있을 뿐 산출 효과는 구체적으로 계산하기 어려운 비상업적 공공 재화(財貨)이다. 프랑스 파리시 한복판에 있는 개선문이 그렇듯이 개선문을 관리유지하는 일은 거기서 구체적인 잉여를 산출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러한 이유로 프랑스 정부는 개선문의 안전관리를 상업적 경비업체에 맡기지 않는다. 최근 각광을 받는 한국의 CEO들이 즐겨 입에 담는 투입비용 대 산출 효과로는 도저히 계산할 수 없는 프랑스 국민의 긍지가 개선문에 담겨 있다.
영리 기업의 운영방식을 공공적 행정에 적용할 때 나타나는 강점을 굳이 외면할 까닭은 없다. 무사안일을 일삼는 관료주의를 깨는 데는 일정한 효과가 나타났고 경쟁을 유도함으로써 능률을 향상시키는 현상은 구미 여러 나라에서 보는대로다. 그러나 실용주의라는 이름으로 등장한 한국의 신흥 CEO들은 우리 사회가 합의한 보편적 가치체계를 무너뜨리는 데 주력하고 있다. 그 최신판이 ‘워린지 형’ 영어교육을 막무가내로 관철하려는 정권인수위원회의 움직임이다.
특정 분야의 필요와 효과의 시간적 한정성을 도외시하는 행태는 큰 주목을 요한다. 기업의 최고 경영자는 특정 업종의 수익을 일정한 시기에 최대한으로 증대시키는 것이 목적일 뿐 이해가 상충하는 사회를 조화시키는 것은 당초부터 안목에 없다.
이런 류의 한국판 실용주의가 기회주의에 물든 한국 관료층에 정권 이양기에는 되도록 소극적으로 임하는 병폐를 만연시키고 있음이 역력하다. 이를테면 남대문 화재 시에 출동한 소방서가 불길을 온전히 잡는 일에 앞서 문화재를 소홀히 다루었다는 뒷말을 의식하여 소극적으로 진화작업에 임하였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힘들다.
콘크리트 남대문 등장 우려
남대문이 잿더미가 된 이튿날 점심을 같이한 시민단체의 한 운동가는 남대문을 복원하는 일에 한 가지 걱정스러운 일이 있다며 새 정부가 화재의 위험성을 최대한 줄인다는 명목 아래 목재 대신 시멘트 콘크리트로 남대문을 세울지 모른다는 것이었다. 설마 그런 일이야 있겠느냐며 일소에 부쳤으나 한국판 실용주의가 기승을 부리는 이 시기에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고 아무도 장담하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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