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회교수의 이산가족 이야기

이렇게 정성을 다한다면

지역내일 2001-05-07
천체물리학자인 찬드라세카르 박사(1910∼1995)는 미국 시카고 근교의 위스콘신 주에 있는 천체연구소에서 일했다. 1947년, 그의 나이가 30대 후반인 때였다. 시카고 대학에서 겨울방학 동안 고급물리학에 관한 특강을 해달라는 연락이 왔다.

세계적인 학자를 키워낸 정성
박사는 쾌히 승낙했다. 그러나 몇 주 후에 다시 전화가 걸려 오기로는, 학생이 두 명밖에 등록하지 않아 강의를 취소해야 할 형편이라는 것이었다. 그는 클래스가 작은 것은 상관없으니 그 두 학생이 어떤 학생들인지 알려달라고 했다.
학생들에 관한 정보를 전해듣고 박사는 강의를 하겠다고 통보했다. 그리고 그 유난히 추운 시카고의 겨울 내내 찬바람과 눈보라를 헤치고 매번 2시간을 자동차로 움직여 강의를 나갔다. 1주일에 두 번씩, 단 한 번도 빠짐없이 강의를 했다.
그로부터 꼭 10년의 세월이 흐른 후 박사에게 강의를 받았던 그 두 사람이 함께 노벨 물리학상을 받게 되었다. 이들중 한 사람은 첸넝양 박사이고 다른 한 사람은 충도리라는, 중국계 미국인 과학자들이었다.
그들은 수상식장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우리가 이 상을 받게 된 결정적인 원인은, 우리 두 사람을 앞에 놓고 열정적으로 강의했던 찬드라세카르 박사님 때문입니다."
박사는 한 사람의 인재를 얼마나 소중히 해야 하며 어떻게 양육해야 하며 거기에는 어떤 정성이 필요한지 올곧게 알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런데 그와 같은 정성의 원리를 알고 있던 박사 자신의 삶 역시 허술할 수 없었다. 그 또한 1983년에 노벨 물리학상을 받았다.

북한 국어학자와 고서점 주인
이 감동적인 찬드라세카르 박사의 이야기에 대비하여, 여기 우리의 이야기 한 편을 더 소개하기로 한다. 지난해 6월 15일 역사적인 남북 정상회담 이후에, 제1차 남북 이산가족의 교환방문이 이루어지고 북한 이산가족들이 서울을 방문했을 때의 일이다. 시카고 물리학자들에 못지 않은 감동적인 사건이 우리에게도 있었다. 이 사건은 국내의 '좋은 생각'이란 잡지에 소개되었다.
8월의 무더위 속에 서울에 사는 91세의 이겸노 옹이 지팡이에 의지하여 한 시간을 기다린 끝에, 서울을 방문한 북한의 국어학자 류열 교수를 만났다. 관광코스에 포함되어 있던 롯데월드 민속관 앞에서였다.
"나, 통문관 주인이오. 알아보겠소?"
'아!'하는 짧은 탄식 끝에 류 교수는 그의 손을 맞잡으며 나직이 대답했다.
"알지요, 알아. 아직 살아 계셨군요. 이게 얼마만입니까?"
50년만의 만남이었다. 이 옹은 노란 표지의 책 {농가월령가} 두 권을 류교수에게 내밀었다.
"해방 즈음해서 당신이 쓴 {농가월령가} 해설서가 있지요? 그게 이 책에 들어 있습니다."
"아니, 그 책이 아직……."
류교수가 놀라움에 책을 들춰보며 말을 잇지 못하는 사이, 이 옹은 또 품에서 흰 봉투를 꺼냈다.
"남쪽에 가족들을 그렇게 찾아도 없더니만……. 받으십시오. 원고료요."

이 정성이면 무쇠라도 녹일 터
봉투 속에는 50만원이 담겨 있었다. 류 교수가 무슨 말인가를 하려는 순간, 일행에 밀려 전시장으로 들어가야 했고 이 5분 동안의 짧은 '비공식' 만남은 그렇게 감격과 아쉬움을 남기고 끝이 났다.
이겸노 옹은 해방 전부터 서울 관훈동에서 통문관이라는 유명한 고서점을 운영해 왔고, 류열 교수는 그 때 고려대학교에서 학생을 가르치던 30대 초반의 국어학자였다.
통문관은 당시 전국 국어학자들의 연락사무소 역할을 했고, 류 교수는 동료 학자들의 소식을 듣고 국어학 연구에 필요한 고서도 구하기 위해 통문관을 제 집 드나들 듯 한 단골손님이었다.
이겸노 옹은 텔레비전에서 북측 방문단 가운데 '류열'이란 이름을 발견하고, 그들이 들른다는 롯데월드로 찾아가 기다렸던 것이다. 55년 전 통문관에서 출간한 류교수의 책 {농가월령가}와 원고료를 전달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였기 때문이었다.
아흔을 넘긴 노인, 유명을 달리할 날을 얼마 남겨놓지 아니한 그 노인이 마지막 기력을 다해 반 백년 전의 약속을 지켰다. 이 아름다운 마음, 이 애틋한 정성이 원래 순수하고 손해보기 잘했던 우리 민족의 마음이었다.
이런 정성을 되살린다면, 이렇게 정성을 다하는 마음으로 되돌아간다면, 남북 이산가족 문제의 해결은 결코 저 산너머에 있는 행복이 아닐 터이다.
일천만이산가족재회추진위원회 사무국장 / 경희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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