곳간만 축내는 머슴이라면
허영섭(언론인, 전 경향신문 논설위원)
공무원의 본분은 국민을 섬기는 데 있다.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는 한편 일상생활에 불편함이 없도록 최대한 봉사할 책임과 의무가 있다는 얘기다. 공무원을 ‘국민의 머슴’이라고 표현하는 까닭이기도 하다. 다음주로 다가온 총선에서도 후보들이 저마다 지역의 상머슴을 자처하며 한표를 호소하고 있다.
하지만 말과는 달리 실제로는 공무원들이 국민 위에 군림하려 드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각종 인허가 도장을 쥐고 있다는 하나만으로도 기업이나 민원인과의 관계에서 상전으로 행세하곤 했다. 여기에 관료주의와 집단 이기주의라는 타성까지 얹혀지게 되면 국민을 위해 봉사한다는 본분은 이미 물 건너간 셈이나 다름없다. 그 대신 무책임과 나태, 줄서기로 굳어진 복지부동의 처세술이 횡행하기 마련이다.
최근 이명박 대통령이 지적한 ‘하루 220대 밖에 안 다니는 톨게이트’ 사례에서도 그런 점이 부분적으로 엿보인다. 결국 국토해양부 조사에서 하루 통행량이 1000대에도 못 미치는 톨게이트가 전국적으로 12개소에 이른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이 정도면 처음부터 고속도로 노선이나 톨게이트 위치 선정 자체에 문제가 있었던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예산과 인력낭비 차원을 넘어 담당 공무원들이 그런 문제의식조차 가지고 있지 않았던 것처럼 비쳐지는 것은 더 심각한 문제다.
대낮 아파트에서 여자 초등학생에 대한 유괴기도사건이 벌어졌는데도 수사를 머무적거린 경찰의 처신은 그야말로 무사안일의 극치다. 엘리베이터 안에서 어린아이를 마구 짓밟고 끌어내려 했는데도 단순 폭행사건이라니, 마치 소꼽놀이 하다가 또래들끼리 떠밀며 싸우는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는 뜻인가. 더구나 안양 초등학생 유괴살인사건으로 전 국민이 불안해하며 치를 떨었던게 불과 며칠 전의 일이었다.
기어코 대통령이 수사본부가 차려진 일선 경찰서로 몸소 찾아가 호통을 퍼부어야 하는 사태까지 벌어지고 말았다. 질책을 받은 경찰 당국이 수사관들을 풀어 지하철역 주변의 술집과 목욕탕 등을 뒤진 끝에 그날로 범인을 붙잡았으니 그나마 다행이었다. 그렇게 마음만 먹으면 곧바로 처리할 수 있는 사건을 왜 굳이 대통령까지 나서도록 만들어야 했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사건을 해결한 것은 대통령”이라는 말이 나도는 것도 그래서다.
그렇다고 행정 전반에 걸쳐 사소한 문제에 이르기까지 따지고 드는 통치 스타일이 바람직하다는 얘기는 아니다. 이 대통령이 각 부처 업무보고를 받는 과정에서 지시했던 몇 가지 사안들도 비슷한 맥락에서 살펴볼 수 있다.
물가관리를 위한 생필품 50개 품목 선정에서부터 운전면허시험 개선, 국가 유공자에 대한 고용의무비율 조정 및 쌀로 만든 샌드위치 주문에 이르기까지 이 대통령의 관심이 서류 기안 담당자보다 더 세부적으로 제시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하나부터 열까지 직접 챙겨야 직성이 풀리는 꼼꼼한 성격 때문이겠지만 세간에서는 이 대통령이 시시콜콜 관심을 나타내는 모습이 마치 며느리에게 참견하는 시어머니처럼 비쳐지기도 하는 모양이다. 나라와 국민을 위해 큰 그림을 그리는 데도 생각과 시간이 모자랄 텐데 자잘한 사안까지 일일이 신경 쓰다가 자칫 크고 굵직한 사안을 놓칠 수도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들린다.
문제는 우리 공직사회가 대통령이 나서지 않으면 제대로 움직이려 들지 않을 만큼 굳어질 대로 굳어져 있다는 점이다. 역대 정부에서 위아래 없이 입버릇처럼 규제개혁을 거론해왔으면서도 정작 차량 통행에 걸치적거리는 전봇대 하나 제대로 처리하지 못했던 이유도 바로 거기에 있다.
새정부 들면서 이 대통령이 ‘머슴론’을 앞세워 공직사회에 대해 끊임없이 경고장을 꺼내 드는 이유도 마찬가지다. 이미 공무원들의 출근시간이 앞당겨진 데다 작은 정부를 지향한다는 취지에서 구조조정의 칼바람마저 몰아칠 기세다.
이 대통령의 직접 지시로 각 부처별 태스크 포스팀이 줄줄이 해체됐으며 엘리트 간부급 200여명이 졸지에 보직을 잃고 경우에 따라서는 명예퇴직 위기에까지 몰리게 된 것이 지금의 상황이다. 고질적으로 제밥그릇 챙기기 행태를 버리지 못하는 공공기관들에 대해서도 조만간 강력한 제재가 예고되어 있다.
공무원들에게는 결코 달갑지 않을 이러한 개혁 바람은 공직사회 스스로 초래한 측면이 다분하다. 국민들에 대해 충직한 머슴의 본분을 벗어나 게으르고 나태한 데서 비롯됐다는 얘기다. 옆에서 눈길을 줄 때는 허리를 굽히고 일하는 척하다가도 주인이 돌아서기가 무섭게 일손을 놓아 버리고 밥때만 기다리는 머슴이라면 어느 누가 기꺼이 믿음을 주겠는가.
그런 점에서 공직사회가 지금이라도 내부에서부터 변화하는 모습을 보여 주어야 한다. 적어도 대통령이 자잘한 문제에는 신경을 기울이지 않아도 될 만큼 모든 공무원들이 책임의식과 창의적 사고로 알아서 움직이는 자세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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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무원의 본분은 국민을 섬기는 데 있다.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는 한편 일상생활에 불편함이 없도록 최대한 봉사할 책임과 의무가 있다는 얘기다. 공무원을 ‘국민의 머슴’이라고 표현하는 까닭이기도 하다. 다음주로 다가온 총선에서도 후보들이 저마다 지역의 상머슴을 자처하며 한표를 호소하고 있다.
하지만 말과는 달리 실제로는 공무원들이 국민 위에 군림하려 드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각종 인허가 도장을 쥐고 있다는 하나만으로도 기업이나 민원인과의 관계에서 상전으로 행세하곤 했다. 여기에 관료주의와 집단 이기주의라는 타성까지 얹혀지게 되면 국민을 위해 봉사한다는 본분은 이미 물 건너간 셈이나 다름없다. 그 대신 무책임과 나태, 줄서기로 굳어진 복지부동의 처세술이 횡행하기 마련이다.
최근 이명박 대통령이 지적한 ‘하루 220대 밖에 안 다니는 톨게이트’ 사례에서도 그런 점이 부분적으로 엿보인다. 결국 국토해양부 조사에서 하루 통행량이 1000대에도 못 미치는 톨게이트가 전국적으로 12개소에 이른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이 정도면 처음부터 고속도로 노선이나 톨게이트 위치 선정 자체에 문제가 있었던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예산과 인력낭비 차원을 넘어 담당 공무원들이 그런 문제의식조차 가지고 있지 않았던 것처럼 비쳐지는 것은 더 심각한 문제다.
대낮 아파트에서 여자 초등학생에 대한 유괴기도사건이 벌어졌는데도 수사를 머무적거린 경찰의 처신은 그야말로 무사안일의 극치다. 엘리베이터 안에서 어린아이를 마구 짓밟고 끌어내려 했는데도 단순 폭행사건이라니, 마치 소꼽놀이 하다가 또래들끼리 떠밀며 싸우는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는 뜻인가. 더구나 안양 초등학생 유괴살인사건으로 전 국민이 불안해하며 치를 떨었던게 불과 며칠 전의 일이었다.
기어코 대통령이 수사본부가 차려진 일선 경찰서로 몸소 찾아가 호통을 퍼부어야 하는 사태까지 벌어지고 말았다. 질책을 받은 경찰 당국이 수사관들을 풀어 지하철역 주변의 술집과 목욕탕 등을 뒤진 끝에 그날로 범인을 붙잡았으니 그나마 다행이었다. 그렇게 마음만 먹으면 곧바로 처리할 수 있는 사건을 왜 굳이 대통령까지 나서도록 만들어야 했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사건을 해결한 것은 대통령”이라는 말이 나도는 것도 그래서다.
그렇다고 행정 전반에 걸쳐 사소한 문제에 이르기까지 따지고 드는 통치 스타일이 바람직하다는 얘기는 아니다. 이 대통령이 각 부처 업무보고를 받는 과정에서 지시했던 몇 가지 사안들도 비슷한 맥락에서 살펴볼 수 있다.
물가관리를 위한 생필품 50개 품목 선정에서부터 운전면허시험 개선, 국가 유공자에 대한 고용의무비율 조정 및 쌀로 만든 샌드위치 주문에 이르기까지 이 대통령의 관심이 서류 기안 담당자보다 더 세부적으로 제시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하나부터 열까지 직접 챙겨야 직성이 풀리는 꼼꼼한 성격 때문이겠지만 세간에서는 이 대통령이 시시콜콜 관심을 나타내는 모습이 마치 며느리에게 참견하는 시어머니처럼 비쳐지기도 하는 모양이다. 나라와 국민을 위해 큰 그림을 그리는 데도 생각과 시간이 모자랄 텐데 자잘한 사안까지 일일이 신경 쓰다가 자칫 크고 굵직한 사안을 놓칠 수도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들린다.
문제는 우리 공직사회가 대통령이 나서지 않으면 제대로 움직이려 들지 않을 만큼 굳어질 대로 굳어져 있다는 점이다. 역대 정부에서 위아래 없이 입버릇처럼 규제개혁을 거론해왔으면서도 정작 차량 통행에 걸치적거리는 전봇대 하나 제대로 처리하지 못했던 이유도 바로 거기에 있다.
새정부 들면서 이 대통령이 ‘머슴론’을 앞세워 공직사회에 대해 끊임없이 경고장을 꺼내 드는 이유도 마찬가지다. 이미 공무원들의 출근시간이 앞당겨진 데다 작은 정부를 지향한다는 취지에서 구조조정의 칼바람마저 몰아칠 기세다.
이 대통령의 직접 지시로 각 부처별 태스크 포스팀이 줄줄이 해체됐으며 엘리트 간부급 200여명이 졸지에 보직을 잃고 경우에 따라서는 명예퇴직 위기에까지 몰리게 된 것이 지금의 상황이다. 고질적으로 제밥그릇 챙기기 행태를 버리지 못하는 공공기관들에 대해서도 조만간 강력한 제재가 예고되어 있다.
공무원들에게는 결코 달갑지 않을 이러한 개혁 바람은 공직사회 스스로 초래한 측면이 다분하다. 국민들에 대해 충직한 머슴의 본분을 벗어나 게으르고 나태한 데서 비롯됐다는 얘기다. 옆에서 눈길을 줄 때는 허리를 굽히고 일하는 척하다가도 주인이 돌아서기가 무섭게 일손을 놓아 버리고 밥때만 기다리는 머슴이라면 어느 누가 기꺼이 믿음을 주겠는가.
그런 점에서 공직사회가 지금이라도 내부에서부터 변화하는 모습을 보여 주어야 한다. 적어도 대통령이 자잘한 문제에는 신경을 기울이지 않아도 될 만큼 모든 공무원들이 책임의식과 창의적 사고로 알아서 움직이는 자세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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