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공으로 날려버린 장애의 아픔
“선수를 마치면 심판으로 축구를 계속하고 싶어요.”
김형수(35)씨는 장애인 축구 국가대표 선수다. 형수씨는 뇌병변(뇌성마비) 장애인을 중심으로 만든 ‘곰두리 축구단’에서 얼마전까지 최전방 공격수로 지금까지 공식대회에서만 100골을 넘게 넣은 특급 골잡이다. 최근 들어 노장선수(?)로 분류돼 공격수는 후배들한테 물려주고 수비수로 역할을 변신했다고 한다.
아이들과 친해지기 위해 시작한 축구
형수씨가 처음 축구공을 찬 것은 서울 송파구 문정동의 장애아동시설인 ‘동천의 집’에 있던 12살 때부터다.
“아이들하고 친해지기 위해서 공을 차기 시작했어요.”
태어나면서부터 버려진 형수씨는 뇌성마비와 정신지체 3급 장애인으로 왼쪽 팔과 다리를 제대로 쓰지 못한다. 그는 다른 사람이 말하는 것을 듣는 것도 문제가 없고, 모든 판단능력도 정상이지만 말을 하는데 일부 장애가 있어 의사소통에 어려움을 느낀다.
그러나 축구에 대한 열정만큼은 일반인 못지않다. 20년 넘게 축구공을 차면서 자신이 가진 장애의 어려움을 온몸으로 극복했다. 뇌성마비 장애인 축구단 가운데 최강을 자랑하는 ‘곰두리 축구단’의 주전 공격수로 국가대표 주전선수가 된 그는 세계대회와 아시안게임에도 출전해 국위를 선양했다.
오는 8월 일본 오사카에서 열리는 ‘한·일 정기전’을 위해 6월부터 강원도에서 전지훈련을 한다고 한다. 형수씨는 요즘 나이가 들면서 아무래도 예전과 같은 체력을 유지하는 게 힘들다. 매일 런닝과 헬스를 통해서 기초 체력을 유지하고, 때로는 동네 조기축구회 회원들과도 함께 뛰면서 체력을 관리하고 있다.
얼마전부터는 심판수업도 받고 있다. 형수씨는 “계속 선수로 뛰고 싶지만 쉽지가 않다”며 “심판수업을 받고 있으니 앞으로는 심판으로 성공하고 싶다"고 말했다.
형수씨에게 소원이 있다면 우리나라도 실업팀이 생겨 장애인들이 마음 놓고 공을 찰 수 있는 분위기가 조성되는 것이다.
“유럽이나 남미에 가면 장애인들의 축구 저변이 넓어요.” “세계대회에 나가면 항상 유럽팀 한테 크게 패배하는데 저변이 없기 때문에 실력향상에 어려움이 따릅니다.”
인터넷 웹디자인에 빠져
형수씨는 곰두리 축구단의 인터넷 카페 운영자로도 열심히 활동하고 있다. 몸은 불편하지만 형수씨는 축구단의 각종 소식과 사진을 부지런히 카페에 올려 회원들과 정보를 공유하고 있다.
그는 현재 생활하고 있는 서울 강동구 고덕동에 있는 사회복지법인 ‘우성원’에서 140여명의 장애인과 함께 15년째 생활하고 있다. 이곳에서 생활하는 장애인들은 심한 경우를 제외하고 나름대로 일거리가 많다. 주로 세탁일 등을 위탁받아 하고 있다.
형수씨는 요새 웹디자인을 배우고 있다고 한다. 카페도 자신이 직접 꾸민 것이다. 축구 동호회카페여서 입장하면 축구와 관련된 노래가 울려 퍼진다. 일반인들과 메신저도 주고받고 인터넷을 통해 세상과 많이 접하고 있다.
“포기하지 말고 꿈을 이루기 위해서 노력해야 합니다.” 자신과 같은 장애를 가진 후배들에게 해주고 싶은 얘기를 부탁하자 형수씨가 한 말이다. 그는 일반인들한테도 “차별하지 말고, 특별히 대해주지도 말고 다른 사람과 똑같이 대해주면 됩니다.”라고 말했다.
형수씨는 착하고 자신을 이해해 주는 여자를 만나서 결혼도 하고 싶다고 한다. 그동안 꾸준히 모아놓은 돈도 있기 때문에 아내를 행복하게 해줄 자신도 있다고 했다.
전 국가대표 축구선수 홍명보를 가장 좋아한다는 형수씨는 곧 다가올 일본과의 결전에서도 반드시 좋을 활약을 보여주겠다고 다짐했다. 형수씨는 19일 서울시청 광장에서 열리는 ‘2008 장애인의 날 서울시민 문화축제’에서 오세훈 서울시장으로부터 ‘장애를 극복한 모범적 사례’로 인정받아 ‘장애극복상’을 받을 예정이다.
백만호 기자 hopebaik@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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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수를 마치면 심판으로 축구를 계속하고 싶어요.”
김형수(35)씨는 장애인 축구 국가대표 선수다. 형수씨는 뇌병변(뇌성마비) 장애인을 중심으로 만든 ‘곰두리 축구단’에서 얼마전까지 최전방 공격수로 지금까지 공식대회에서만 100골을 넘게 넣은 특급 골잡이다. 최근 들어 노장선수(?)로 분류돼 공격수는 후배들한테 물려주고 수비수로 역할을 변신했다고 한다.
아이들과 친해지기 위해 시작한 축구
형수씨가 처음 축구공을 찬 것은 서울 송파구 문정동의 장애아동시설인 ‘동천의 집’에 있던 12살 때부터다.
“아이들하고 친해지기 위해서 공을 차기 시작했어요.”
태어나면서부터 버려진 형수씨는 뇌성마비와 정신지체 3급 장애인으로 왼쪽 팔과 다리를 제대로 쓰지 못한다. 그는 다른 사람이 말하는 것을 듣는 것도 문제가 없고, 모든 판단능력도 정상이지만 말을 하는데 일부 장애가 있어 의사소통에 어려움을 느낀다.
그러나 축구에 대한 열정만큼은 일반인 못지않다. 20년 넘게 축구공을 차면서 자신이 가진 장애의 어려움을 온몸으로 극복했다. 뇌성마비 장애인 축구단 가운데 최강을 자랑하는 ‘곰두리 축구단’의 주전 공격수로 국가대표 주전선수가 된 그는 세계대회와 아시안게임에도 출전해 국위를 선양했다.
오는 8월 일본 오사카에서 열리는 ‘한·일 정기전’을 위해 6월부터 강원도에서 전지훈련을 한다고 한다. 형수씨는 요즘 나이가 들면서 아무래도 예전과 같은 체력을 유지하는 게 힘들다. 매일 런닝과 헬스를 통해서 기초 체력을 유지하고, 때로는 동네 조기축구회 회원들과도 함께 뛰면서 체력을 관리하고 있다.
얼마전부터는 심판수업도 받고 있다. 형수씨는 “계속 선수로 뛰고 싶지만 쉽지가 않다”며 “심판수업을 받고 있으니 앞으로는 심판으로 성공하고 싶다"고 말했다.
형수씨에게 소원이 있다면 우리나라도 실업팀이 생겨 장애인들이 마음 놓고 공을 찰 수 있는 분위기가 조성되는 것이다.
“유럽이나 남미에 가면 장애인들의 축구 저변이 넓어요.” “세계대회에 나가면 항상 유럽팀 한테 크게 패배하는데 저변이 없기 때문에 실력향상에 어려움이 따릅니다.”
인터넷 웹디자인에 빠져
형수씨는 곰두리 축구단의 인터넷 카페 운영자로도 열심히 활동하고 있다. 몸은 불편하지만 형수씨는 축구단의 각종 소식과 사진을 부지런히 카페에 올려 회원들과 정보를 공유하고 있다.
그는 현재 생활하고 있는 서울 강동구 고덕동에 있는 사회복지법인 ‘우성원’에서 140여명의 장애인과 함께 15년째 생활하고 있다. 이곳에서 생활하는 장애인들은 심한 경우를 제외하고 나름대로 일거리가 많다. 주로 세탁일 등을 위탁받아 하고 있다.
형수씨는 요새 웹디자인을 배우고 있다고 한다. 카페도 자신이 직접 꾸민 것이다. 축구 동호회카페여서 입장하면 축구와 관련된 노래가 울려 퍼진다. 일반인들과 메신저도 주고받고 인터넷을 통해 세상과 많이 접하고 있다.
“포기하지 말고 꿈을 이루기 위해서 노력해야 합니다.” 자신과 같은 장애를 가진 후배들에게 해주고 싶은 얘기를 부탁하자 형수씨가 한 말이다. 그는 일반인들한테도 “차별하지 말고, 특별히 대해주지도 말고 다른 사람과 똑같이 대해주면 됩니다.”라고 말했다.
형수씨는 착하고 자신을 이해해 주는 여자를 만나서 결혼도 하고 싶다고 한다. 그동안 꾸준히 모아놓은 돈도 있기 때문에 아내를 행복하게 해줄 자신도 있다고 했다.
전 국가대표 축구선수 홍명보를 가장 좋아한다는 형수씨는 곧 다가올 일본과의 결전에서도 반드시 좋을 활약을 보여주겠다고 다짐했다. 형수씨는 19일 서울시청 광장에서 열리는 ‘2008 장애인의 날 서울시민 문화축제’에서 오세훈 서울시장으로부터 ‘장애를 극복한 모범적 사례’로 인정받아 ‘장애극복상’을 받을 예정이다.
백만호 기자 hopebaik@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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