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사율 1% 수준 … 좋은 시설 갖추고 항생제 사용 억제
경기도 안성시 원곡면 반제리에 있는 ‘반제농장’은 도로 옆에 있어 찾기는 쉽다. 그러나 흔히 생각하는 축산농가의 모습과는 판이하다. 넓은 대지 위엔 연두빛 잔디가 깔려 있고 약간의 경사를 따라 붉은 벽돌집이 자리잡고 있어 부호의 전원주택을 연상케 한다.
입구에 자리한 축사에서 나는 특유의 돼지냄새가 없었다면 문패를 보고도 축산농가라는 생각을 하지 못할 정도였다.
◆우루과이라운드 겪고 낙농에서 양돈으로 = 박부한(54) 반제농장 대표는 1979년 낙농을 하는 남편을 소개받아 결혼했다. 남편은 당시 젖소 3마리로 막 낙농을 시작하는 단계였다.
하지만 낙농은 오래가지 않았다. 1986년부터 시작된 우루과이라운드를 계기로 소를 키우는 사람들 사이에서 “바다 건너에서 소가 걸어온다”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였다. 농업부문에 닥쳐온 개방의 충격은 컸다.
박 대표 부부는 소는 생산비가 비싸 가격경쟁력이 없을 것으로 보고 1992년 낙농을 양돈으로 바꿨다. 이들은 새로운 출발을 위해 철저히 준비를 했다. 박 대표는 “꼼꼼하고 성실한 남편 덕에 빈틈없이 준비해서 자동화시스템을 완비한 돈사를 지었다”고 말했다.
당시 이들은 돈사를 마련하는 데만 7억원의 자금을 투자했다. 박 대표는 “주변에선 ‘미쳤다’는 말도 했지만 좋은 시설을 갖춰야 축산경쟁력이 생긴다고 확신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이들이 축산전문가의 조언을 받아 도입한 시스템은 창이 없는 ‘무창돈사’로 강제로 공기를 흡입해서 배출하는 특징을 가진 것이었다. 무창돈사는 지금은 대부분 돈사에 확산됐지만 당시엔 국내에서 보기 드물었던 유럽식 선진시스템이었다.
재래식 돈사와 달리 돼지가 쾌적함을 느낄 수 있는 적정 온도를 맞춰 놓으면 계속 그 온도를 유지할 수 있고, 일정한 산소량을 유지하기 위해 배출하는 실내 공기와 유입되는 바깥 공기의 양을 최적으로 조절할 수도 있었다. 분뇨처리 방식도 첨단이었다.
박 대표 부부는 돼지를 좁은 공간에 많이 키우는 ‘밀식사육’을 지양하고 면역력을 키우기 위해 종돈도 직접 키웠다. 돼지는 안죽이고 키우는 게 돈 버는 길이란 생각을 갖고 병을 예방하는 데 힘을 기울였다.
그러나 불행이 박 대표를 찾아왔다. 이런 모든 것을 하나하나 알려주며 농장 일을 주도하던 남편이 1997년 세상을 떠났다. 박 대표는 “갑자기 백지가 돼버린 마음을 추스를 힘도 없었다”며 눈을 감았다.
하지만 주저 앉지 않았다. 그는 “돼지를 키우면서 명심해야 할 것은 기본을 지키는 것”이라고 강조하던 남편을 떠올리며 농장 일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아들·딸과 함께 농장경영 = 박부한 대표는 돼지에게 항생제를 거의 쓰지 않는다. 그의 경험에 따르면 클리닉 차원에서 기본 백신만 사용해도 질병으로 죽는 돼지는 거의 없다. 소독과 방역을 철저히 하고 사양기록지에 일일이 기록한 데이터에 기초해 농장을 운영했다.
반제농장은 다른 양돈농장보다 15~20일 정도 빠른 160~165일령(새끼가 태어나 출하될 때까지 기간)에 시장에 판다. 무게도 평균 115~117kg이다. 다른 농장은 1년에 2회전하는데 반제농장은 2.3~2.4회전한다. 사료값이 오르고 있지만 아직 손해보고 파는 경우는 없다.
태어난 돼지를 시장에 팔기 전에 죽는 폐사율도 1% 내외다. 심하면 40%까지 올라가는 다른 농장에 비해 확연히 차이가 난다.
박 대표는 “더 빨리 파니까 사육비용이 적고 들고, 무게도 많이 나가고 맛도 좋다고 평이 나 있어 가격은 더 많이 받으니까 ‘저비용고효율’이 된다”며 “특히 폐사율이 낮아 돼지 한 마리 한 마리가 다 돈이 되니까 이게 강력한 경쟁력”이라고 말했다.
모돈 200두를 기르는 반제농장은 지난해 2600여두를 팔았다. 모돈 한 마리당 10마리의 돼지를 출하하는 평균생산량보다 높은 것이다. 연간 수익도 13억원 가량된다.
박 대표는 2006년부터 아들과 함께 일을 하고 있다. 기계설비 분야를 전공한 아들은 농장 시설관리와 폐수처리 등의 일에 집중하면서 돼지사육 등 농장 운영 전반에 대해 일을 배우고 있다. 대학에서 식품공학을 전공한 딸도 농장일을 하기 위해 대학원에서 육가공을 전공하고 있다.
박 대표는 꿈이 있다. 남편이 꾸던 꿈이다. 그는 “멀지 않은 미래에 돼지 체험농장을 만들 계획”이라고 밝혔다. 반제농장을 공원처럼 꾸미고 농장 터를 넓게 확보한 것도 언젠가는 돼지체험농장을 만들겠다는 꿈을 꿨기 때문이다.
유치원이나 초등학교 학생들은 물론 가족단위 관광객이 농장을 찾아와 농장체험도 하고 하룻밤 묵으며 직접 고기도 구워먹고, 돌아갈 때는 고기를 사서 가는 시스템은 소비자들에게 싸고 질 좋은 고기를 공급할 수 있는 새로운 방식의 축산이 될 것이다.
안성 = 정연근 기자 ygjung@naeil.com
Copyright ⓒThe Naeil News. All rights reserved.
경기도 안성시 원곡면 반제리에 있는 ‘반제농장’은 도로 옆에 있어 찾기는 쉽다. 그러나 흔히 생각하는 축산농가의 모습과는 판이하다. 넓은 대지 위엔 연두빛 잔디가 깔려 있고 약간의 경사를 따라 붉은 벽돌집이 자리잡고 있어 부호의 전원주택을 연상케 한다.
입구에 자리한 축사에서 나는 특유의 돼지냄새가 없었다면 문패를 보고도 축산농가라는 생각을 하지 못할 정도였다.
◆우루과이라운드 겪고 낙농에서 양돈으로 = 박부한(54) 반제농장 대표는 1979년 낙농을 하는 남편을 소개받아 결혼했다. 남편은 당시 젖소 3마리로 막 낙농을 시작하는 단계였다.
하지만 낙농은 오래가지 않았다. 1986년부터 시작된 우루과이라운드를 계기로 소를 키우는 사람들 사이에서 “바다 건너에서 소가 걸어온다”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였다. 농업부문에 닥쳐온 개방의 충격은 컸다.
박 대표 부부는 소는 생산비가 비싸 가격경쟁력이 없을 것으로 보고 1992년 낙농을 양돈으로 바꿨다. 이들은 새로운 출발을 위해 철저히 준비를 했다. 박 대표는 “꼼꼼하고 성실한 남편 덕에 빈틈없이 준비해서 자동화시스템을 완비한 돈사를 지었다”고 말했다.
당시 이들은 돈사를 마련하는 데만 7억원의 자금을 투자했다. 박 대표는 “주변에선 ‘미쳤다’는 말도 했지만 좋은 시설을 갖춰야 축산경쟁력이 생긴다고 확신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이들이 축산전문가의 조언을 받아 도입한 시스템은 창이 없는 ‘무창돈사’로 강제로 공기를 흡입해서 배출하는 특징을 가진 것이었다. 무창돈사는 지금은 대부분 돈사에 확산됐지만 당시엔 국내에서 보기 드물었던 유럽식 선진시스템이었다.
재래식 돈사와 달리 돼지가 쾌적함을 느낄 수 있는 적정 온도를 맞춰 놓으면 계속 그 온도를 유지할 수 있고, 일정한 산소량을 유지하기 위해 배출하는 실내 공기와 유입되는 바깥 공기의 양을 최적으로 조절할 수도 있었다. 분뇨처리 방식도 첨단이었다.
박 대표 부부는 돼지를 좁은 공간에 많이 키우는 ‘밀식사육’을 지양하고 면역력을 키우기 위해 종돈도 직접 키웠다. 돼지는 안죽이고 키우는 게 돈 버는 길이란 생각을 갖고 병을 예방하는 데 힘을 기울였다.
그러나 불행이 박 대표를 찾아왔다. 이런 모든 것을 하나하나 알려주며 농장 일을 주도하던 남편이 1997년 세상을 떠났다. 박 대표는 “갑자기 백지가 돼버린 마음을 추스를 힘도 없었다”며 눈을 감았다.
하지만 주저 앉지 않았다. 그는 “돼지를 키우면서 명심해야 할 것은 기본을 지키는 것”이라고 강조하던 남편을 떠올리며 농장 일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아들·딸과 함께 농장경영 = 박부한 대표는 돼지에게 항생제를 거의 쓰지 않는다. 그의 경험에 따르면 클리닉 차원에서 기본 백신만 사용해도 질병으로 죽는 돼지는 거의 없다. 소독과 방역을 철저히 하고 사양기록지에 일일이 기록한 데이터에 기초해 농장을 운영했다.
반제농장은 다른 양돈농장보다 15~20일 정도 빠른 160~165일령(새끼가 태어나 출하될 때까지 기간)에 시장에 판다. 무게도 평균 115~117kg이다. 다른 농장은 1년에 2회전하는데 반제농장은 2.3~2.4회전한다. 사료값이 오르고 있지만 아직 손해보고 파는 경우는 없다.
태어난 돼지를 시장에 팔기 전에 죽는 폐사율도 1% 내외다. 심하면 40%까지 올라가는 다른 농장에 비해 확연히 차이가 난다.
박 대표는 “더 빨리 파니까 사육비용이 적고 들고, 무게도 많이 나가고 맛도 좋다고 평이 나 있어 가격은 더 많이 받으니까 ‘저비용고효율’이 된다”며 “특히 폐사율이 낮아 돼지 한 마리 한 마리가 다 돈이 되니까 이게 강력한 경쟁력”이라고 말했다.
모돈 200두를 기르는 반제농장은 지난해 2600여두를 팔았다. 모돈 한 마리당 10마리의 돼지를 출하하는 평균생산량보다 높은 것이다. 연간 수익도 13억원 가량된다.
박 대표는 2006년부터 아들과 함께 일을 하고 있다. 기계설비 분야를 전공한 아들은 농장 시설관리와 폐수처리 등의 일에 집중하면서 돼지사육 등 농장 운영 전반에 대해 일을 배우고 있다. 대학에서 식품공학을 전공한 딸도 농장일을 하기 위해 대학원에서 육가공을 전공하고 있다.
박 대표는 꿈이 있다. 남편이 꾸던 꿈이다. 그는 “멀지 않은 미래에 돼지 체험농장을 만들 계획”이라고 밝혔다. 반제농장을 공원처럼 꾸미고 농장 터를 넓게 확보한 것도 언젠가는 돼지체험농장을 만들겠다는 꿈을 꿨기 때문이다.
유치원이나 초등학교 학생들은 물론 가족단위 관광객이 농장을 찾아와 농장체험도 하고 하룻밤 묵으며 직접 고기도 구워먹고, 돌아갈 때는 고기를 사서 가는 시스템은 소비자들에게 싸고 질 좋은 고기를 공급할 수 있는 새로운 방식의 축산이 될 것이다.
안성 = 정연근 기자 ygjung@naeil.com
Copyright ⓒThe Naeil News. All rights reserved.
위 기사의 법적인 책임과 권한은 내일엘엠씨에 있습니다.
<저작권자 ©내일엘엠씨,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