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학사에 우뚝선 대하소설 ''토지''>

지역내일 2008-05-06
25년만에 완성한 박경리 대표작

(서울=연합뉴스) 정천기 기자 = "그 순간 서희는 자신을 휘감은 쇠사슬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땅에 떨어지는 것을 느낀다."한국 대하소설의 뿌리이면서 한편으로는 가장 높은 봉우리로 평가받는 ''토지''(나남출판.전21권)의 마지막 장면에서 주인공 서희는 딸 양현으로부터 일본의 패망소식을 전해듣고 땅바닥에 주저앉는다. 그리고는 자신의 삶을 무겁게 조여왔던 고통스러운 쇠사슬에서 벗어난 기분을 맛본다.
고(故) 박경리 씨가 1969년 9월 ''현대문학''에 첫 회 연재를 시작한 뒤 1994년 8월 15일 ''문화일보''에 연재할 마지막 원고를 탈고하기까지 ''토지'' 전체 5부가 완성되는 데는 무려 25년의 세월이 걸렸다.소설은 1897년 하동 평사리에서 시작해 서울, 만주, 일본을 거쳐 다시 평사리 섬진강 가에 이른 서희가 해방소식을 듣는 것으로 끝난다. 작가가 원고의 마지막 마침표를 찍는 날을 소설이 끝나는 8월 15일로 잡은 것은 우연이었을까?6.25때 남편과 사별하고, 외동딸을 기르며 힘들게 창작활동을 해온 작가는 ''토지''를 연재하기 시작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유방암 선고까지 받았다. 이로 인해 작가는 가슴에 붕대를 동여매고 ''토지''를 집필했다고 한다. 게다가 유신정권에 저항하던 김지하 시인을 사위로 둔 탓에 작가의 삶은 언제나 무거운 쇠사슬을 휘감은 듯 고통의 나날일 수밖에 없었다.
원고지 4만장 분량의 대작 ''토지''를 마무리한 날은 그래서 작가 개인에게는 창작의 고통스런 족쇄에서 풀려난 날이었을 것이다.
''토지''는 구한말에서 시작해 일제 강점기를 거쳐 해방에 이르기까지 민족수난기를 다루고 있다. 최참판댁 손녀 서희가 역사의 물줄기를 따라 하동에서 하얼빈까지 유전하다가 고향땅으로 돌아와 해방을 맞는 것이 소설의 큰 줄거리를 이룬다.작품에는 동학농민전쟁, 을사보호조약, 청일전쟁, 1902년 7월 전국에 번졌던 콜레라, 1909년 간도협약, 일제의 토지조사사업, 관동대지진, 백정들의 신분해방운동인 1923년 형평사 운동, 1937년 만주사변 등 역사적 사건이 무수히 등장한다.
''토지''에는 이런 역사적 사건을 배경으로 삼아 이름없는 민초를 포함해 700여 명의 인물들이 명멸한다. 하지만 그들은 모두 허구의 인물이라는 점에서 이 작품은 실존인물을 소재로 삼아온 기존 역사소설과는 성격이 다르다. ''토지''는 오로지 작가의 상상력으로 우리 민족이 겪은 고난을 형상화했다는 점에서 새로운 역사소설 시대를 열었다.
''토지''가 역사책에서 주목받지 못하는 보통 사람들의 삶을 생생하게 복원해낸 것을 두고 역사학자 강만길 고려대 명예교수는 "역사보다 더 역사적인 소설"이라고 평한 바 있다. 문학평론가 이재선 서강대 명예교수는 ''창안적 역사소설''이라는 새로운 개념을 ''토지''에 부여하기도 했다.그 뿐만 아니라 ''토지''는 인물이나 사건을 하나의 주제에 종속시키는 서구 소설의 이론을 따르지 않는 새로운 창작실험을 시도한 작품으로 평가받는다.문학평론가 정현기 전 연세대 국문학과 교수는 판소리처럼 이야기의 중간에 이런저런 작은 이야기들이 마디처럼 삽입한 것을 놓고 ''토지''의 창작방식을 ''마디 이론''으로 설명하기도 했다.
이상진 방송통신대 국문학과 교수는 "이름을 가진 인물만 해도 578명이나 등장하는 ''토지''에 주인공이 따로 없다는 것에 많은 연구자들이 공감한다"면서 "작품의 주인공은 서희만이 아니라 수많은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등장인물 모두이며, 이 때문에 이야기가 하나의 중심으로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실핏줄처럼 퍼져나가는 독특한 소설"이라고 말했다.
이런 특징 때문에 어느 학자는 ''토지''를 ''대하(大河)소설''이 아니라 ''다하(多河)소설''이라고 평하기도 한다. 이야기가 하나의 줄기로 흘러가지 않고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고루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토지''는 탈(脫)중심적 소설이기도 하다.
이상진 교수는 "이야기 전개와 창작방식에서 ''토지''의 탈중심적 성격은 작가의 생명사상과 연결된다"면서 "어느 것도 중심이 아니며, 인물마다 제 몫을 하고 있다는 점에서 모든 생명을 공평하게 대해야 한다는 작가의 사상이 여기에 깃들어 있다"고 분석했다.
작가의 생명사상은 우리 민족 고유의 정서인 한(恨)과 연결된다. 작가는 모든 생명에는 한이 있다고 자주 말해왔다. 그 한은 생명은 생명을 먹어야만 유지된다는 본질적인 문제에서 비롯된다는 것이 작가의 지론이었다. 이 때문인지 ''토지''에 등장하는 사람은 한결같이 불행한 사람들 뿐이다. 인간은 모두 한을 가진 존재라는 작가의 사상이 투영돼 있기 때문이다.
인간의 욕망과 사랑, 일본 제국주의 등 물신주의에 대한 올곧은 저항, 생명사상등 ''토지''가 가진 풍부한 내용 때문에 이를 원작으로 삼아 KBS와 SBS가 모두 세 차례에 걸쳐 TV드라마로 제작했고, 1974년 김수용 감독이 메가폰을 잡고 배우 김지미와 이순재 등이 출연한 영화로도 제작됐다.
또 1995년 광복 50주년 기념 서사음악극으로 세종문화회관 무대에 올려졌으며, 청소년판과 만화로도 출간되는 등 다른 장르로 끊임없이 변용돼 왔다. 또한 하동 평사리 드라마 촬영 세트장은 관광명소로 각광받고 있으며, 작품 속의 공간인 평사리에서는 해마다 문학제가 열리고 있다. 이는 ''토지''의 가치가 그만큼 널리 인정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들이다.
''토지''는 서구에 비해 짧은 역사를 가진 한국 근대문학을 절정기에 올려놓은 대작이다. 이후 황석영의 ''장길산'', 조정래의 ''태백산맥'', 최명희의 ''혼불'' 등 대하소설들이 쏟아져 나오면서 한국소설은 전성기를 누렸다.이러한 작가적 사명을 예감했던지 박씨는 1966년 수필집 ''Q씨에게''에 실린 ''창작의 주변''이라는 글에서 "이제부터 나는 써야 할 작품이 있다. 그것을 위해 지금까지의 것을 모두 습작이라 한다. 그것을 쓰기 위해 나는 이삼년을 기다려야 할까보다"라며 대작을 집필하겠다는 의욕을 내비친 뒤 실제로 3년 후 ''토지''를 세상에 내놓았다.이후 그가 펼쳐낸 ''토지''의 작품세계는 평사리 들판처럼 드넓고, 지리산처럼 웅장한 모습으로 한국문학사에 자리 잡았다. ckchung@yna.co.kr(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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