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소기업 환헤지 피해 ‘고환율정책’이 원인
KIKO 불공정성 주장 … 공정위 조사 착수
중소기업들이 정부의 고환율정책에 분노하고 있다. 환율 변동으로 인한 피해를 줄이려 가입한 환헤지 상품이 정부의 고환율 정책으로 중소기업에게 독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환헤지 피해를 입은 중소기업들이 공동대책위원회를 구성하고 집단대응에 나설 태세여서 주목된다.
지난해 11월 코스닥시장에 상장, 주목받았던 USB형 통신 모뎀 부문 세계 1위 업체인 씨모텍은 최근 예상치 못한 환율급등으로 125억7870만원의 손실을 냈다.
이재만 대표는 홈페이지를 통해 “수출 비중이 80%를 넘는 상황에서 위험을 회피하기 위해 체결한 환헤지 거래가 성장 발목을 잡는 역풍으로 작용할 지 예측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특수장비를 수출하는 수산중공업도 지난해 말 계약한 옵션상품으로 올해 1분기만 자기자본의 8%에 해당하는 35억원의 손실을 보았다.
건설중장비 K사도 지난 3월부터 매달 3억원의 환차손을 보고 있다. 이 회사는 환율이 1000원대를 유지할 경우 올해 20억원 정도의 환차손을 예상하고 있다.
중소기업중앙회가 5월 27일부터 ‘수출중소기업 환헤지 피해상황 접수’를 실시, 현재까지 114개 업체의 피해사례 접수한 결과 총 1453억원의 평가손실이 발생했다. 업체당 평균 13억원의 피해를 본 것이다.
이렇게 고환율은 견실한 중소기업들 경영을 악화시키는 요인으로 등장했다. 예상치 못한 환율급등이 환변동보험이나 KIKO 등 시중은행의 옵션거래 상품에 가입한 중소기업에게 막대한 환헤지 손실을 주고 있는 것이다.
조봉구 코막중공업 대표는 “고환율 정책으로 수출은 늘지만 오히려 중소기업들은 골병이 든다”면서 “정부가 거시정책을 안정적으로 운영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중소기업중앙회 관계자도 “정부의 인위적인 고환율 유지정책으로 수출기업들이 막대한 손실을 보고 있다”면서 “정부가 환위험을 불러온 장본인”이라고 성토했다.
◆중소기업 공동대응 나서 = 환헤지 피해 중소기업들은 3일 중소기업중앙회에서 ‘환헤지 피해기업 공동대책위원회’를 결성하고 공동대응에 나섰다.
이들은 시중은행의 옵션거래 상품인 KIKO의 불공정한 계약조건과 은행의 무분별한 판매행위를 성토하며 공정거래위원회에 제소할 계획이다.
KIKO상품은 환율이 일정 범위 안에서 움직일 경우 미리 약정한 환율에 약정금액을 팔 수 있도록 한 파생금융상품이다.
환율이 정해진 범위 아래로 떨어지면 계약이 자동 해지(Knock-out) 된다. 하지만 환율이 정해진 범위 이상으로 올라가고 만기환율이 약정환율보다 높으면 기업은 약정금액의 2~3배를 약정환율로 매도(Knock-in)해야 한다.
하락세를 보이던 환율이 최근 급등하면서 환율하락을 전망하고 KIKO 옵션계약을 했던 중소기업들은 수출로 벌어들인 달러화를 시장환율 수준보다 터무니없는 낮은 가격으로 매도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한 것이다.
중소기업들은 이 대목이 기업에게만 불리한 불공정한 내용이라고 주장한다. 은행이 손해볼 때는 자동해지 되지만 중소기업이 손해볼 때 중도해지 할 수 없도록 규정돼 있기 때문이다.
중소기업들은 “모든 보험계약이 중도해지가 가능한 것처럼 KIKO상품도 중도해지를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중소기업중앙회는 KIKO의 불공정 계약에 대해 문제를 삼을 계획이다. 중소기업중앙회 관계자는 “고문 변호사에게 문의한 결과 불공정 계약 사유가 될 수 있다는 의견을 들었다”면서 “피해기업들과 함께 계약의 불공정성을 면밀히 검토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중도해지 가능 해야 = 환헤지 피해 중소기업들은 사전위험 고지의무를 이행하지 않았다고 시중은행을 비난했다. 특히 상품에 대한 충분한 설명을 담지 않은 애매모호한 의향서가 계약서로 둔갑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중소기업들은 시중은행들이 환헤지 상품의 위험성을 제대로 알리지 않은 상황에서 상품을 팔아 큰 피해를 봤다며 이들 은행들을 공정거래위원회에 제소하기로 했다.
김상인 수산중공업 사장은 “주거래은행으로부터 KIKO를 권유받을 때 최악의 사태는 설명하지 않고, 오히려 환율변동에 따른 손해를 예방할 수 있는 최적의 상품으로 설명해 가입했다”면서 “지금 생각하면 환 방지가 아니라 오히려 해를 끼치는 상품”이라고 말했다.
유니폼 등을 생산해 연간 770만달러를 수출하는 A사는 상품에 대한 설명을 듣고 싶어 거래의향서에 날인을 했다가 낭패를 당했다. A사는 의향서 제출 후 2주가 지난 뒤에야 손실이 발생했으니 대금을 입금하라는 말과 함께 여러 위험부담을 설명하는 약정서를 동봉해 서명하라는 연락이 왔다. “위험 사유를 왜 진작 알리지 않았느냐”는 A사는 항의에 은행은 “ 의향서가 곧 계약서”라고 주장했다. 이 업체는 3개월간 손실 7000만~8000만원과 연체이자를 납입하라는 종용을 받고 있는 상태다.
의류제조업체 C사는 구두 거래 후 계약서를 검토해 보니 계약조건이 불공평해 해지를 요청했지만 불가능하다는 답만 들었다.
◆의향서가 곧 계약서 = 따라서 공동대책위는 “KIKO 상품 계약이 불공정하고, 시중은행들이 위험고지의무를 등한시 했다”면서 “은행들은 외화대출이나 상품 재설계, 중도해지 허용 등 중소기업을 도울 수 있는 방안을 제시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무역협회도 3일 환헤지 통화옵션 상품인 KIKO와 수출보험공사의 환변동보험 등 환헤지 관련 상품의 개선방안을 제안했다. KIKO의 경우 최소 약정금액을 내리고 환율 상승 시에도 중도 해지할 수 있도록 해 달라고 건의했다.
이에 대해 공정거래위원회는 KIKO에 대한 불공정거래 여부를 조사하기로 했다. 공정위는 “은행이 키코를 판매하는 과정에서 공정거래법과 약관법을 위반했다는 내용의 신고가 최근 서울사무소를 통해 들어와 우선 사실관계를 파악하는 등 조사를 벌일 계획”이라고 4일 밝혔다.
김상준 시장감시국장은 “은행이 중소기업에 상품을 판매할 때 우월적 지위를 남용했는 지와 상품설명 의무를 충실히 수행했는 지 등을 조사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형수 기자 hskim@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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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KO 불공정성 주장 … 공정위 조사 착수
중소기업들이 정부의 고환율정책에 분노하고 있다. 환율 변동으로 인한 피해를 줄이려 가입한 환헤지 상품이 정부의 고환율 정책으로 중소기업에게 독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환헤지 피해를 입은 중소기업들이 공동대책위원회를 구성하고 집단대응에 나설 태세여서 주목된다.
지난해 11월 코스닥시장에 상장, 주목받았던 USB형 통신 모뎀 부문 세계 1위 업체인 씨모텍은 최근 예상치 못한 환율급등으로 125억7870만원의 손실을 냈다.
이재만 대표는 홈페이지를 통해 “수출 비중이 80%를 넘는 상황에서 위험을 회피하기 위해 체결한 환헤지 거래가 성장 발목을 잡는 역풍으로 작용할 지 예측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특수장비를 수출하는 수산중공업도 지난해 말 계약한 옵션상품으로 올해 1분기만 자기자본의 8%에 해당하는 35억원의 손실을 보았다.
건설중장비 K사도 지난 3월부터 매달 3억원의 환차손을 보고 있다. 이 회사는 환율이 1000원대를 유지할 경우 올해 20억원 정도의 환차손을 예상하고 있다.
중소기업중앙회가 5월 27일부터 ‘수출중소기업 환헤지 피해상황 접수’를 실시, 현재까지 114개 업체의 피해사례 접수한 결과 총 1453억원의 평가손실이 발생했다. 업체당 평균 13억원의 피해를 본 것이다.
이렇게 고환율은 견실한 중소기업들 경영을 악화시키는 요인으로 등장했다. 예상치 못한 환율급등이 환변동보험이나 KIKO 등 시중은행의 옵션거래 상품에 가입한 중소기업에게 막대한 환헤지 손실을 주고 있는 것이다.
조봉구 코막중공업 대표는 “고환율 정책으로 수출은 늘지만 오히려 중소기업들은 골병이 든다”면서 “정부가 거시정책을 안정적으로 운영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중소기업중앙회 관계자도 “정부의 인위적인 고환율 유지정책으로 수출기업들이 막대한 손실을 보고 있다”면서 “정부가 환위험을 불러온 장본인”이라고 성토했다.
◆중소기업 공동대응 나서 = 환헤지 피해 중소기업들은 3일 중소기업중앙회에서 ‘환헤지 피해기업 공동대책위원회’를 결성하고 공동대응에 나섰다.
이들은 시중은행의 옵션거래 상품인 KIKO의 불공정한 계약조건과 은행의 무분별한 판매행위를 성토하며 공정거래위원회에 제소할 계획이다.
KIKO상품은 환율이 일정 범위 안에서 움직일 경우 미리 약정한 환율에 약정금액을 팔 수 있도록 한 파생금융상품이다.
환율이 정해진 범위 아래로 떨어지면 계약이 자동 해지(Knock-out) 된다. 하지만 환율이 정해진 범위 이상으로 올라가고 만기환율이 약정환율보다 높으면 기업은 약정금액의 2~3배를 약정환율로 매도(Knock-in)해야 한다.
하락세를 보이던 환율이 최근 급등하면서 환율하락을 전망하고 KIKO 옵션계약을 했던 중소기업들은 수출로 벌어들인 달러화를 시장환율 수준보다 터무니없는 낮은 가격으로 매도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한 것이다.
중소기업들은 이 대목이 기업에게만 불리한 불공정한 내용이라고 주장한다. 은행이 손해볼 때는 자동해지 되지만 중소기업이 손해볼 때 중도해지 할 수 없도록 규정돼 있기 때문이다.
중소기업들은 “모든 보험계약이 중도해지가 가능한 것처럼 KIKO상품도 중도해지를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중소기업중앙회는 KIKO의 불공정 계약에 대해 문제를 삼을 계획이다. 중소기업중앙회 관계자는 “고문 변호사에게 문의한 결과 불공정 계약 사유가 될 수 있다는 의견을 들었다”면서 “피해기업들과 함께 계약의 불공정성을 면밀히 검토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중도해지 가능 해야 = 환헤지 피해 중소기업들은 사전위험 고지의무를 이행하지 않았다고 시중은행을 비난했다. 특히 상품에 대한 충분한 설명을 담지 않은 애매모호한 의향서가 계약서로 둔갑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중소기업들은 시중은행들이 환헤지 상품의 위험성을 제대로 알리지 않은 상황에서 상품을 팔아 큰 피해를 봤다며 이들 은행들을 공정거래위원회에 제소하기로 했다.
김상인 수산중공업 사장은 “주거래은행으로부터 KIKO를 권유받을 때 최악의 사태는 설명하지 않고, 오히려 환율변동에 따른 손해를 예방할 수 있는 최적의 상품으로 설명해 가입했다”면서 “지금 생각하면 환 방지가 아니라 오히려 해를 끼치는 상품”이라고 말했다.
유니폼 등을 생산해 연간 770만달러를 수출하는 A사는 상품에 대한 설명을 듣고 싶어 거래의향서에 날인을 했다가 낭패를 당했다. A사는 의향서 제출 후 2주가 지난 뒤에야 손실이 발생했으니 대금을 입금하라는 말과 함께 여러 위험부담을 설명하는 약정서를 동봉해 서명하라는 연락이 왔다. “위험 사유를 왜 진작 알리지 않았느냐”는 A사는 항의에 은행은 “ 의향서가 곧 계약서”라고 주장했다. 이 업체는 3개월간 손실 7000만~8000만원과 연체이자를 납입하라는 종용을 받고 있는 상태다.
의류제조업체 C사는 구두 거래 후 계약서를 검토해 보니 계약조건이 불공평해 해지를 요청했지만 불가능하다는 답만 들었다.
◆의향서가 곧 계약서 = 따라서 공동대책위는 “KIKO 상품 계약이 불공정하고, 시중은행들이 위험고지의무를 등한시 했다”면서 “은행들은 외화대출이나 상품 재설계, 중도해지 허용 등 중소기업을 도울 수 있는 방안을 제시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무역협회도 3일 환헤지 통화옵션 상품인 KIKO와 수출보험공사의 환변동보험 등 환헤지 관련 상품의 개선방안을 제안했다. KIKO의 경우 최소 약정금액을 내리고 환율 상승 시에도 중도 해지할 수 있도록 해 달라고 건의했다.
이에 대해 공정거래위원회는 KIKO에 대한 불공정거래 여부를 조사하기로 했다. 공정위는 “은행이 키코를 판매하는 과정에서 공정거래법과 약관법을 위반했다는 내용의 신고가 최근 서울사무소를 통해 들어와 우선 사실관계를 파악하는 등 조사를 벌일 계획”이라고 4일 밝혔다.
김상준 시장감시국장은 “은행이 중소기업에 상품을 판매할 때 우월적 지위를 남용했는 지와 상품설명 의무를 충실히 수행했는 지 등을 조사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형수 기자 hskim@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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