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시론]쇠고기 문제의 본질

지역내일 2008-05-23
쇠고기 문제의 본질

이명박 대통령이 미국산 쇠고기 수입 문제로 격앙된 국민감정을 누그러뜨리기 위해 대국민 담화를 발표했다. 정부가 국민의 의견을 수렴하는 노력이 부족했다, 국민의 마음을 헤아리는 데 소홀했다는 지적도 겸허히 받아들인다, 국민 여러분께 송구스럽게 생각한다, 이런 말끝에 머리 숙여 사과하는 모습이 방영되었다.
새 대통령으로 취임한 지 100일도 못 되어 국민에게 머리 숙여 사과한 선례가 있는지 모르겠다. 어쨌거나 역대 최다 표차로 승리한 대통령이 벌써 그러지 않을 수 없게 된 현실은 매우 불행한 일이다.

‘잘못했다’는 말뿐, 국정쇄신 의지 안 보여
공사(公私)를 막론하고 사과를 하는 일은 과오를 인정하고 반성하는 행위다. 그러므로 당연히 그 잘못을 원상대로 돌려놓고 책임질 사람에게 책임을 묻는 조치가 따라야 한다. 그러지 않고 입으로만 “잘못했다”고 하면 사과의 진정성을 인정받기 어렵다. 이번 이 대통령 사과는 수사학으로 보면 그럴듯하게 들린다. 그러나 사과에 따라야 할 조치도 없고 국정쇄신 의지도 엿보이지 않아 진정성을 의심받고 있다. 그런데도 한미 자유무역협정을 이번 국회 회기 안에 통과시켜 달라는 부탁에 포인트가 맞추어졌다. 그러니 ‘안하느니만 못한 사과’라는 혹평이 나오는 것이다.
미국 쇠고기 문제의 본질은 광우병 위험에 대한 불안감이 아니다. 미국의 환심을 사려고 큰 선물을 주고도 그런 일 없다고 시치미를 떼다가 들킨 것이 문제의 출발이었다. 처음 의문이 제기됐을 때 사실대로 털어놓고 “초행길이라서 좀 큰 선물을 했다. 위생문제가 없도록 철저히 검역을 하겠다” “광우병 위험물질이 들어 있는 부위를 수입하게 된 것은 미처 몰랐던 착오였다. 시정하겠다” 이렇게 말했으면 좀 부글거리다가 가라앉았을 것이다.
미국 쇠고기를 처음 수입하는 것도 아니고 우리 자동차며 핸드폰을 제일 많이 사주는 나라의 쇠고기 수입재개 쯤 양해 못할 일도 아니다. 그런데 정부는 분명히 위험해 보이는 부위에 대해 ‘아무 문제가 없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병들어 일어서지도 못하는 ‘다우너 소’들이 도축장으로 끌려가는 영상이 TV에 나오는데도 위생에 문제가 없다니 미국 농무장관의 말이 아닌가 착각될 정도였다. “내가 내린 결정이니 불만이 있어도 따르라”는 식으로 받아들여질 수밖에 없었다.
그런 소의 고기가 학교 급식재료로 오를까봐 불안해 촛불시위를 주도한 학생들을 뒷조사까지 했다. 그러니 ‘신 공안정국’이라는 말이 나오는 것이다. “불법집회를 하면 엄단하겠다”는 권위주의시대식 엄포도 등장했다.
사는 사람이 갑(甲)이고, 파는 사람이 을(乙)의 입장인 것이 무릇 상행위의 질서다. 개인 간의 상거래가 다 그러하거늘, 국가 간의 무역이라고 다를 게 무언가. 소비자가 싫다면 그만이다. 싫은 물건을 사지 않는 것은 소비자의 권리이기도 하다. 사는 사람이 파는 사람 눈치를 보는 희한한 거래가 국민을 성나게 했는데도 정부는 미국 입장만 대변했다.
이명박 대통령은 취임 첫날 국립묘지를 방문해 “국민을 섬기겠다”는 약속을 방명록에 남겼다. ‘섬긴다’는 말에 감동한 국민은 그것을 변화의 조짐으로 받아들였다. 그런데 내각과 청와대 인사에서부터 국민의 기대는 허물어졌다. ‘고소영’ 내각이니 ‘강부자’ 내각이니 하는 비아냥거림을 말 만들기 재능에 뛰어난 사람들의 재치 정도로 인식했던 것 같다. 그렇지 않고는 어떻게 부동산 투기에 논문표절 의혹을 받는 사람들을 요직에 앉힐 수가 있는가.

사는 사람이 파는 사람 눈치보는 희한한 거래
사람의 마음이란 참 묘한 것이다. 그렇게 드세었던 도덕성 시비에도 불구하고 그를 대통령으로 선택하고 뒤이은 총선에서 보수층에게 대승리를 안겨준 민심이 이제 급속히 이 대통령과 집권여당을 이탈하고 있다. 인터넷 여론에는 벌써부터 ‘탄핵’이란 단어가 횡행하고 있다. 더 이상 국민의 염원을 외면하다가는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를 지경이다.
국민을 섬기겠다는 약속은 나라 일을 국민이 원하는 대로 하는 것이다. 이대통령도 지적했듯이 자신의 업적을 상징하는 청계광장에 촛불시위 인파가 몰려드는 것을 단순한 시위로 받아들여서는 안된다. 대운하 건설, FTA 비준, 공기업 개혁과 인사 등등 산적한 과제들을 풀어나가는 데 꼭 참고할 것은 다수 국민의 의사다. 이 평범한 진리를 깊이 새겨두기 바란다.

문창재 객원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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