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 직접민주주의 길 열었다
유승삼 (언론인)
촛불 집회가 거둔 가장 큰 성과는 비민주적이고 무능한 우리나라 대의민주주의를 보완할 직접 민주주의의 새로운 길을 열었다는 데 있다. 최근 최장집 교수는 촛불집회가 “민주주의 제도들이 무기력하고 그 중심적 매커니즘인 정당이 제 기능을 못 할 때 구원투수 같은 역할을 했다”고 높이 평가했다. 그러면서도 “직접 민주주의를 지향하는 운동적 민주주의관은 지나치게 유토피아적이어서 민주주의에 기여할 수 없다”고 비판하며 그 해결책은 대의민주주의의 강화에서 찾을 수밖에 없다고 운동정치를 폄하했다.
대의민주주의의 강화가 중요하다는 건 맞는 말이지만 직접 민주주의를 유토피아적으로 치부하는 것은 피상적 인식이다. 우리 현실에서 대의제 강화나 주장해서는 백년하청이다.
광우병 위험 쇠고기의 수입, 대운하, 의료보험 사영화, 무한경쟁의 교육체제 등등의 문제는 발등의 불인데 어느 세월에 대의정치가 강화되고 제대로 작동되기를 기다릴 것인가. 시급한 민생과제는 우선 운동정치를 동원해서라도 해결해 놓는 것이 올바른 순서일 것이다.
대의제, 절대적 제도 아니다
미국 쇠고기 수입의 추가협상이나마 이끌어낸 것도 정당이 아니라 촛불 집회 참가자들 아니었던가. 대의제 강화는 올바르고 근본적 처방이지만 당면 문제 해결책은 못된다.
최 교수를 비롯해 많은 사람들이 ‘현대 민주주의는 대의민주주의’라고 강조한다. 대의민주주의가 현실적 선택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직접민주주의의 중요성을 저평가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대의민주주의는 직접민주주의를 실천하는 데 따르는 공간적, 시간적 문제점을 극복하기 위한 방편이지 그 자체로 절대적 제도는 아니다.
우리나라 정치사에서 대의민주주의는 주로 기득권 세력의 지배수단이 되어왔다. 우리나라에서 국회의원이 어떤 사람들이며 어떤 과정을 거치고 어떤 수단을 써서 되었는가를 생각해보아도 대의민주주의가 기득권 유지의 수단이 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국민에 의해 선출되고 권한을 위임받았다는 명분을 내세워 권력자들이 무소불위의 권력을 누리며 자신을 선출한 국민 위에 오히려 군림해왔음은 우리가 잘 아는 사실이다.
대의민주주의는 바로 이러한 결함과 탈선의 위험성 때문에 세계적으로도 끊임없는 비판 속에 있다. 선진국들은 대의제의 보완으로 직접 민주주의적 요소를 여러 부문에 도입하고 있다.
재판의 배심제와 참심제, 검찰의 기소심사제, 주민투표제, 주민소환제, 입법청문회제도, 행정정보공개제, 옴부즈만제도 등이 그 대표적인 것이다.
대의민주주의가 직접민주주의 제도 및 그 요소에 의해 보강·견제·감시될 때 민주주의가 본래의 이상과 취지대로 작동될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물론 전 국민의 참여가 불가능하기에 대의민주주의 채택은 현실적으로 불가피한 차선책이라 하겠지만 그것으로 직접민주주의의 작동을 막으려 한다면 그것은 주객을 바꾼 것이다.
촛불 집회는 직접민주주의의 중요성과 그 필요성을 일깨워주는 새로운 관점을 제시해주었다. 이번 촛불 집회 같은 대규모 집회가 계속적으로 가능했던 것은 한국이 인터넷과 휴대전화 강국이기 때문이었다.
인터넷과 휴대전화 공간에서 독자적으로 콘텐츠를 생산해내고 그것을 교환하며 수평적 유대 관계를 형성한 얼굴 없는 집단이 오프라인에서 힘을 보여준 것이 바로 촛불 집회였다.
기술의 발달은 직접민주주의의 실천을 불가능하게 했던 시간적·공간적·비용면의 제약을 극복할 수 있는 가능성을 뚜렷이 보여주었다. 지난 2002년 노무현 대통령의 당선도 이런 새로 태동된 직접민주주의에 힘입은 것이다.
물론 앞으로도 이런 직접민주주의의 요소들이 대의민주주의를 대체하거나 압도할 수는 없다. 온라인 공간에서 조성되고 있는 움직임과 그 세력은 일정한 한계를 지니고 있다.
온라인 직접민주주의 수렴을
인터넷 공간에서 형성되는 ‘집단 지성’이 기성체제의 인식 수준을 벗어나는 독창성과 민주성을 지녔다지만 아직 인터넷 콘텐츠와 온라인 공간에서 조성되는 여론의 신뢰도가 낮은 것도 사실이다.
그럼에도 이번 촛불집회는 온라인 공간이 대의제로 선출된 권력과 국민 간의 직접적인 소통의 통로가 될 수 있음을 과시해 주었다. 사회의 위험성을 알리는 자명고, 민생의 문제를 권력에 알리는 신문고가 될 수 있음도 분명히 보여주었다. 직접민주주의 새 길이 열리고 있는 것이다.
대의민주주의는 민주주의의 필요조건일 뿐 충분조건은 아니다. 대의민주주의의 발전을 위해서도 직접민주주의 지속적인 수혈이 필요하고 그것이 가능함을 ‘촛불’은 일깨워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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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승삼 (언론인)
촛불 집회가 거둔 가장 큰 성과는 비민주적이고 무능한 우리나라 대의민주주의를 보완할 직접 민주주의의 새로운 길을 열었다는 데 있다. 최근 최장집 교수는 촛불집회가 “민주주의 제도들이 무기력하고 그 중심적 매커니즘인 정당이 제 기능을 못 할 때 구원투수 같은 역할을 했다”고 높이 평가했다. 그러면서도 “직접 민주주의를 지향하는 운동적 민주주의관은 지나치게 유토피아적이어서 민주주의에 기여할 수 없다”고 비판하며 그 해결책은 대의민주주의의 강화에서 찾을 수밖에 없다고 운동정치를 폄하했다.
대의민주주의의 강화가 중요하다는 건 맞는 말이지만 직접 민주주의를 유토피아적으로 치부하는 것은 피상적 인식이다. 우리 현실에서 대의제 강화나 주장해서는 백년하청이다.
광우병 위험 쇠고기의 수입, 대운하, 의료보험 사영화, 무한경쟁의 교육체제 등등의 문제는 발등의 불인데 어느 세월에 대의정치가 강화되고 제대로 작동되기를 기다릴 것인가. 시급한 민생과제는 우선 운동정치를 동원해서라도 해결해 놓는 것이 올바른 순서일 것이다.
대의제, 절대적 제도 아니다
미국 쇠고기 수입의 추가협상이나마 이끌어낸 것도 정당이 아니라 촛불 집회 참가자들 아니었던가. 대의제 강화는 올바르고 근본적 처방이지만 당면 문제 해결책은 못된다.
최 교수를 비롯해 많은 사람들이 ‘현대 민주주의는 대의민주주의’라고 강조한다. 대의민주주의가 현실적 선택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직접민주주의의 중요성을 저평가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대의민주주의는 직접민주주의를 실천하는 데 따르는 공간적, 시간적 문제점을 극복하기 위한 방편이지 그 자체로 절대적 제도는 아니다.
우리나라 정치사에서 대의민주주의는 주로 기득권 세력의 지배수단이 되어왔다. 우리나라에서 국회의원이 어떤 사람들이며 어떤 과정을 거치고 어떤 수단을 써서 되었는가를 생각해보아도 대의민주주의가 기득권 유지의 수단이 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국민에 의해 선출되고 권한을 위임받았다는 명분을 내세워 권력자들이 무소불위의 권력을 누리며 자신을 선출한 국민 위에 오히려 군림해왔음은 우리가 잘 아는 사실이다.
대의민주주의는 바로 이러한 결함과 탈선의 위험성 때문에 세계적으로도 끊임없는 비판 속에 있다. 선진국들은 대의제의 보완으로 직접 민주주의적 요소를 여러 부문에 도입하고 있다.
재판의 배심제와 참심제, 검찰의 기소심사제, 주민투표제, 주민소환제, 입법청문회제도, 행정정보공개제, 옴부즈만제도 등이 그 대표적인 것이다.
대의민주주의가 직접민주주의 제도 및 그 요소에 의해 보강·견제·감시될 때 민주주의가 본래의 이상과 취지대로 작동될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물론 전 국민의 참여가 불가능하기에 대의민주주의 채택은 현실적으로 불가피한 차선책이라 하겠지만 그것으로 직접민주주의의 작동을 막으려 한다면 그것은 주객을 바꾼 것이다.
촛불 집회는 직접민주주의의 중요성과 그 필요성을 일깨워주는 새로운 관점을 제시해주었다. 이번 촛불 집회 같은 대규모 집회가 계속적으로 가능했던 것은 한국이 인터넷과 휴대전화 강국이기 때문이었다.
인터넷과 휴대전화 공간에서 독자적으로 콘텐츠를 생산해내고 그것을 교환하며 수평적 유대 관계를 형성한 얼굴 없는 집단이 오프라인에서 힘을 보여준 것이 바로 촛불 집회였다.
기술의 발달은 직접민주주의의 실천을 불가능하게 했던 시간적·공간적·비용면의 제약을 극복할 수 있는 가능성을 뚜렷이 보여주었다. 지난 2002년 노무현 대통령의 당선도 이런 새로 태동된 직접민주주의에 힘입은 것이다.
물론 앞으로도 이런 직접민주주의의 요소들이 대의민주주의를 대체하거나 압도할 수는 없다. 온라인 공간에서 조성되고 있는 움직임과 그 세력은 일정한 한계를 지니고 있다.
온라인 직접민주주의 수렴을
인터넷 공간에서 형성되는 ‘집단 지성’이 기성체제의 인식 수준을 벗어나는 독창성과 민주성을 지녔다지만 아직 인터넷 콘텐츠와 온라인 공간에서 조성되는 여론의 신뢰도가 낮은 것도 사실이다.
그럼에도 이번 촛불집회는 온라인 공간이 대의제로 선출된 권력과 국민 간의 직접적인 소통의 통로가 될 수 있음을 과시해 주었다. 사회의 위험성을 알리는 자명고, 민생의 문제를 권력에 알리는 신문고가 될 수 있음도 분명히 보여주었다. 직접민주주의 새 길이 열리고 있는 것이다.
대의민주주의는 민주주의의 필요조건일 뿐 충분조건은 아니다. 대의민주주의의 발전을 위해서도 직접민주주의 지속적인 수혈이 필요하고 그것이 가능함을 ‘촛불’은 일깨워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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