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상제도 잘 이해하는 연구원이 특허출원 많아” … 부실보상은 기술유출로 이어질 수도
전문가들은 기술유출 사건이 끊이지 않고 있는 근본적인 원인의 하나로 지식재산을 중요하게 인식하지 못하는 사회 분위기를 꼽는다.
전 세계적으로 지적재산권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 보다 큰 부가가치를 생산하는 원동력은 지적재산권을 얼마나 많이 보유하고 있느냐로 결정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사회적으로 기술을 보호하고 우대하며 개발에 따른 합당한 보상이 주어지는 구조를 갖추지 못하고 있다. 단적으로 ‘기술문화가 없다’는 비판이 그것이다.
애니콜 한글 자판 입력 방식인 천지인을 발명한 삼성전자 차장인 최인철씨는 지난 5월 19일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서를 제출했다.
최씨는 진정서에서 “천지인 발명에 따른 적절한 보상을 해달라고 지난 2001년 회사를 상대로 소송을 냈는데 그 이후 합당한 이유 없이 인사상 불이익을 받고 있다”며 “삼성전자에 이를 시정권고 조치토록 해달라”고 주장했다.
천지인 방식을 둘러싼 분쟁은 조관현씨가 지난 2002년 삼성전자를 상대로 특허를 침해했다며 1000억원대 소송을 제기하면서 사회적 관심을 끌었다.
마침 조씨도 지난달 26일 소송을 취하하면서 천지인 발명 특허 분쟁은 사실상 삼성전자의 승리로 막을 내렸다.
삼성전자는 최씨의 천지인 특허 기술을 양도받아 1998년 10월 발명 특허 출원을 했지만 최씨가 받은 보상금은 21만원에 불과했다. 최씨는 1심에서 패한 후 항소를 했지만 회사와 합의가 이뤄져 소를 취하했다. 하지만 그 이후에도 회사로부터 불이익을 받고 있다며 국가인권위를 찾은 것이다.
삼성전자는 최씨의 소송이 있은 이후 직무발명에 대해 최고 1억5000만원 범위 내에서 보상하는 규정을 신설했다.
◆계속되는 직무발명보상금 소송 = 대기업은 물론 중소기업에서도 직무발명보상제를 시행하는 곳이 늘고 있다는 통계가 있지만 직무발명보상액을 둘러싼 분쟁은 계속되고 있다.
지난 4월 서울고등법원 민사4부(재판장 주기동 부장판사)는 옛 현대전자 연구원 문 모씨 등 6명이 하이닉스와 팬택앤큐리텔를 상대로 낸 직무발명보상금 청구소송에서 문씨에게는 1억9800여만원을, 3명에게는 1억 3000여만원을, 그 외 2명은 각각 64000여만원과 200여만원을 지급하라고 원고일부승소 판결했다.
문씨 등 현대전자 연구원들은 지난 96~99년 동영상 압축기술(MPEG4)을 개발했지만 그에 합당한 보상을 받지 못하자 소송을 냈다.
당시 하이닉스는 현대전자의 후신이고 팬택앤큐리텔은 현대전자에서 분사한 현대큐리텔을 인수하면서 하이닉스와 영업 양수도 계약을 체결했었다.
문씨 등은 펜택앤큐리텔에 대해서도 직무발명보상금 지급의무가 발생한다고 주장해왔고 이에 대해 재판부는 일부 책임이 있다고 판단했다.
영업 양수 계약을 했더라도 직무발명에 대한 채무는 별도로 부담해야 한다는 취지의 판결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재판부는 “2001년 4월 30일 양도기준일 전에 발생하는 보상금은 피고 하이닉스가, 양도기준일 후에 발생하는 보상금은 피고 팬택이 부담하기로 한 것으로 보는 것이 당사자의 의사에 부합하는 합리적인 해석”이라고 밝혔다.
지난해 8월에도 서울고법은 홍 모씨가 T사를 상대로 낸 직무발명보상금 청구소송에서 7500만원을 지급하라는 1심 판결을 그대로 인정했다.
재판부는 “홍씨가 원래 스마트카드 비즈니스모델에 관한 아이디어를 최초로 착안한 점, 약 5개월 동안 계속적으로 아이디어를 구체화하는 연구개발을 해 온점 등 여러 사정을 종합해 볼 때 직무발명자로서 회사에 대해 정당한 보상금을 청구할 권리를 갖는다”고 말했다.
국내 최초의 직무발명 보상금 지급 판결은 2003년 동아제약 무좀약 ‘이크라크나졸’ 발명 관련 사건이다. 당시 회사는 200억원의 이익을 벌었지만 연구원에게는 1인당 200만원만 보상했다. 법원은 연구원의 손을 들어주면서 회사측이 1억7000만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직무발명 장려, 기업 경쟁력과 연결 = 지난 2006년 서울대학교 대학원생인 최원주씨는 ‘특허생산 요인분석에 관한 연구’ 논문을 발표했다.
최씨는 논문에서 “직무발명보상제도의 의미와 규정, 절차 그리고 실제 집행된 선례 등에 대해 전반적으로 잘 인지하고 있는 연구자의 경우 그렇지 않은 경우보다 더욱 많은 특허 출원 경험이 있음을 알 수 있었다”며 “이는 보상제도에 대한 충분한 이해가 개인의 특허출원에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온다는 사실을 뜻한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직무발명보상제가 직원들의 특허출원을 장려하는 긍정적인 효과가 있다는 분석이다. 또한 다른 한편으로는 연구원에 대한 적당한 보상이 이뤄지지 않을 경우 기술유출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이다.
국정원이 조사한 바에 따르면 기술유출 동기를 보면 금전유혹과 개인영리 등 사리사욕에 의한 유출이 125건 중 90건으로 72%를 차지하고 있지만 처우·인사불만도 24건에 달할만큼 비중이 높다.
국정원 관계자는 “기업들은 연구원 대상 직무발명 보상제도를 확대하는 등 근무환경 개선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동아제약 사건과 LG전자 DVD사건 등 국내 직무발명 보상금소송 전문가로 알려진 김준효 변호사는 “기업들이 직무발명보상제를 한다고는 하지만 실제로 얼마나 잘 지켜지고 있는지는 의문”이라며 “보상이 제대로 이뤄져야 더 큰 발명이 나올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당장 지급해야 할 보상액이 아쉬워 소극적인 대응을 하는 기업의 자세가 바뀌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경기 기자 cellin@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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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들은 기술유출 사건이 끊이지 않고 있는 근본적인 원인의 하나로 지식재산을 중요하게 인식하지 못하는 사회 분위기를 꼽는다.
전 세계적으로 지적재산권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 보다 큰 부가가치를 생산하는 원동력은 지적재산권을 얼마나 많이 보유하고 있느냐로 결정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사회적으로 기술을 보호하고 우대하며 개발에 따른 합당한 보상이 주어지는 구조를 갖추지 못하고 있다. 단적으로 ‘기술문화가 없다’는 비판이 그것이다.
애니콜 한글 자판 입력 방식인 천지인을 발명한 삼성전자 차장인 최인철씨는 지난 5월 19일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서를 제출했다.
최씨는 진정서에서 “천지인 발명에 따른 적절한 보상을 해달라고 지난 2001년 회사를 상대로 소송을 냈는데 그 이후 합당한 이유 없이 인사상 불이익을 받고 있다”며 “삼성전자에 이를 시정권고 조치토록 해달라”고 주장했다.
천지인 방식을 둘러싼 분쟁은 조관현씨가 지난 2002년 삼성전자를 상대로 특허를 침해했다며 1000억원대 소송을 제기하면서 사회적 관심을 끌었다.
마침 조씨도 지난달 26일 소송을 취하하면서 천지인 발명 특허 분쟁은 사실상 삼성전자의 승리로 막을 내렸다.
삼성전자는 최씨의 천지인 특허 기술을 양도받아 1998년 10월 발명 특허 출원을 했지만 최씨가 받은 보상금은 21만원에 불과했다. 최씨는 1심에서 패한 후 항소를 했지만 회사와 합의가 이뤄져 소를 취하했다. 하지만 그 이후에도 회사로부터 불이익을 받고 있다며 국가인권위를 찾은 것이다.
삼성전자는 최씨의 소송이 있은 이후 직무발명에 대해 최고 1억5000만원 범위 내에서 보상하는 규정을 신설했다.
◆계속되는 직무발명보상금 소송 = 대기업은 물론 중소기업에서도 직무발명보상제를 시행하는 곳이 늘고 있다는 통계가 있지만 직무발명보상액을 둘러싼 분쟁은 계속되고 있다.
지난 4월 서울고등법원 민사4부(재판장 주기동 부장판사)는 옛 현대전자 연구원 문 모씨 등 6명이 하이닉스와 팬택앤큐리텔를 상대로 낸 직무발명보상금 청구소송에서 문씨에게는 1억9800여만원을, 3명에게는 1억 3000여만원을, 그 외 2명은 각각 64000여만원과 200여만원을 지급하라고 원고일부승소 판결했다.
문씨 등 현대전자 연구원들은 지난 96~99년 동영상 압축기술(MPEG4)을 개발했지만 그에 합당한 보상을 받지 못하자 소송을 냈다.
당시 하이닉스는 현대전자의 후신이고 팬택앤큐리텔은 현대전자에서 분사한 현대큐리텔을 인수하면서 하이닉스와 영업 양수도 계약을 체결했었다.
문씨 등은 펜택앤큐리텔에 대해서도 직무발명보상금 지급의무가 발생한다고 주장해왔고 이에 대해 재판부는 일부 책임이 있다고 판단했다.
영업 양수 계약을 했더라도 직무발명에 대한 채무는 별도로 부담해야 한다는 취지의 판결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재판부는 “2001년 4월 30일 양도기준일 전에 발생하는 보상금은 피고 하이닉스가, 양도기준일 후에 발생하는 보상금은 피고 팬택이 부담하기로 한 것으로 보는 것이 당사자의 의사에 부합하는 합리적인 해석”이라고 밝혔다.
지난해 8월에도 서울고법은 홍 모씨가 T사를 상대로 낸 직무발명보상금 청구소송에서 7500만원을 지급하라는 1심 판결을 그대로 인정했다.
재판부는 “홍씨가 원래 스마트카드 비즈니스모델에 관한 아이디어를 최초로 착안한 점, 약 5개월 동안 계속적으로 아이디어를 구체화하는 연구개발을 해 온점 등 여러 사정을 종합해 볼 때 직무발명자로서 회사에 대해 정당한 보상금을 청구할 권리를 갖는다”고 말했다.
국내 최초의 직무발명 보상금 지급 판결은 2003년 동아제약 무좀약 ‘이크라크나졸’ 발명 관련 사건이다. 당시 회사는 200억원의 이익을 벌었지만 연구원에게는 1인당 200만원만 보상했다. 법원은 연구원의 손을 들어주면서 회사측이 1억7000만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직무발명 장려, 기업 경쟁력과 연결 = 지난 2006년 서울대학교 대학원생인 최원주씨는 ‘특허생산 요인분석에 관한 연구’ 논문을 발표했다.
최씨는 논문에서 “직무발명보상제도의 의미와 규정, 절차 그리고 실제 집행된 선례 등에 대해 전반적으로 잘 인지하고 있는 연구자의 경우 그렇지 않은 경우보다 더욱 많은 특허 출원 경험이 있음을 알 수 있었다”며 “이는 보상제도에 대한 충분한 이해가 개인의 특허출원에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온다는 사실을 뜻한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직무발명보상제가 직원들의 특허출원을 장려하는 긍정적인 효과가 있다는 분석이다. 또한 다른 한편으로는 연구원에 대한 적당한 보상이 이뤄지지 않을 경우 기술유출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이다.
국정원이 조사한 바에 따르면 기술유출 동기를 보면 금전유혹과 개인영리 등 사리사욕에 의한 유출이 125건 중 90건으로 72%를 차지하고 있지만 처우·인사불만도 24건에 달할만큼 비중이 높다.
국정원 관계자는 “기업들은 연구원 대상 직무발명 보상제도를 확대하는 등 근무환경 개선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동아제약 사건과 LG전자 DVD사건 등 국내 직무발명 보상금소송 전문가로 알려진 김준효 변호사는 “기업들이 직무발명보상제를 한다고는 하지만 실제로 얼마나 잘 지켜지고 있는지는 의문”이라며 “보상이 제대로 이뤄져야 더 큰 발명이 나올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당장 지급해야 할 보상액이 아쉬워 소극적인 대응을 하는 기업의 자세가 바뀌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경기 기자 cellin@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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