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일꿈 7월24일

지역내일 2008-07-23
오동나무를 바라보며
이영호 우리은행 홍보실 계장

요즘 들어 우리 동네 오동나무가 제법 눈에 들어온다. 개체 수로 본다면 소나무나 아카시아나무 따위에 비할 수 없다. 하지만, 해바라기 입과 흡사하지만 제법 커다란 잎사귀 때문에 눈에 잘 들어오는 것 같다. 공해에 강한 품종이지만, 이상하게 우리 동네를 벗어나면 쉽게 볼 수 없는 나무가 바로 오동나무이다.
매일 아침 출근길에 오동나무 옆을 스쳐 지나간다. 오동나무를 눈 부릅뜨고 쳐다보기에는 시간이 부족하다. 그래도 출근길에 은행나무도 느티나무도 아닌 오동나무와 함께하는 것은 아무나 누리지 못하는 특별한 즐거움이다.
나의 출근길을 지켜주는 오동나무의 밑동은 제법 굵다. 하지만, 굵은 밑동에 어울리지 않게 기껏해야 건물 4층 높이밖에 안 된다. 얼핏 보면 다이어트가 필요한 비만 나무 같지만 굵고 늘씬한 소나무에서 엿볼 수 없는 소박함이 느껴진다. 낙락장송(落落長松), 독야청청(獨也靑靑) 같은 수식어를 붙일 수는 없지만, 오동나무는 마디마디에 서민의 삶과 애환이 스며든 익숙한 나무이다. 크게 주목받지는 못하였지만, 우리의 일상과 무척 관계가 깊은 그런 나무 말이다.
예부터 오동나무는 귀한 목재로 대접받아 왔다. 목재로서 오동나무는 무늬가 아름답고 재질도 연하면서 가볍고 뒤틀림도 없는 고급재료였다. 그뿐만 아니라 습기에도 강하고 불에 잘 견딜 수 있어서 목공들은 오동나무로 가구, 거문고, 가야금을 만들었다. 우리 눈에 잘 띄는 곳에서 오동나무는 우리의 삶과 깊은 관계를 맺어 왔던 것이다. 경북 북부지방에서는 집안에 오동나무를 심는 것을 금기하였다고 한다. 오동나무가 ‘관’의 재료로 사용되었기 때문이다.
긍정과 부정의 의미를 간직한 오동나무. ‘딸이 태어나면 오동나무 한그루를 심어라’라는 말을 들었다. 제법 두툼해진 오동나무를 잘라 딸 시집갈 때 혼수 가구의 재료로 삼으려고 그런 말이 나왔다고 한다. 제법 굵게 자란 오동나무를 패던 아비의 마음은 오늘날 면사포를 쓴 딸의 손을 놓아주는 아비의 마음과 다를 바가 없었을 게다.
동네 곳곳에 흩어진 오동나무들은 크기가 제각각이다. 제법 큰 녀석은 지름이 1미터는 될 정도지만, 갓 싹을 틔운 오동나무는 흡사 아파트 잔디밭에 있는 해바라기와 다를 바가 없다. 그래서일까? 오동나무를 처음 보았을 때 ‘외래종 해바라기가 아닐까?’라는 착각이 들었을 정도였다.
출근길에 만나는 오동나무는 동네 오동나무의 ‘큰형님’ 격이다. 작년만 하더라도 민가 울타리 근처에 있던 나무인데 지금은 허허벌판 위에 놓인 나무로 변한 채 나의 출근길을 맞이한다. 오동나무를 곁에 두고 있던 그 집은 한 달 전 즈음 폭격 맞은 것처럼 사라져 버렸다. 그곳이 1종 주거지역에서 2종 주거지역으로 편입되어 조만간 아파트가 들어설 예정이기 때문이다. 얼핏 보면 사람을 대신한 잡초와 콘크리트 찌꺼기로 뒤엉킨 황무지에서 오동나무가 터줏대감 노릇을 하는 것도 같다. 사람 향기를 그리워하면서 말이다.
본격적인 터파기 공사가 들어가면 그 오동나무도 더는 그곳에 뿌리내릴 수 없을 것이다. 옛 경춘선 철길 옆에 있던 오래된 밤나무가 토막 난 것처럼 지금 나의 출근길을 맞이하는 오동나무도 처참하게 토막 날 것이다. 운 좋으면 이름난 목수의 작품세계를 개척해 주는 희생양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반세기 이상 세월 동안 간직했던 서민의 애환은 되살아나지 못할 것이다.
어쩌면 오동나무가 많은 우리 동네의 자연환경 탓에 딸아이 아빠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친절하게도 이미 심어진 오동나무 - 아마도 씨앗이 바람에 날려 자연 발화한 듯한 - 덕분에, 오동나무를 심는 수고를 아낄 수 있었다. 느낄 수 없었지만, 아니 느끼지도 않으려 하였지만, 심심치 않게 보이는 오동나무 때문에 삶의 질이 향상되었던 것을 아닐까?
곧 출근길을 지켜주던 오동나무는 사라질 것이다. 출근길 빠르게 스쳐 지나가는 나무일지언정 그의 사라짐은 마음을 싸늘하게 만들지도 모른다. 마치 옛 경춘선 철길이 사라져 버린 것처럼...... 오동나무가 열매 맺을 때까지 출근길을 함께 해 준다면, 열매 몇 개를 받아서 내년 봄 야산 언덕에 심을 생각이다. 오동나무를 심어야 할 분명한 이유가 생겼기 때문이다. 그날을 꿈꾸다 보니 마음이 흐뭇해지는 수요일 저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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