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 전통 직업교육] ⑦ 이탈리아 무라노섬 유리공예 장인교육

천년역사 이어온 ‘유리의 섬’ 비밀수첩으로 제조비법 전수

지역내일 2008-07-31
유럽의 전통 직업교육 시리즈를 시작합니다. 이 연재를 통해 유럽의 장인정신과 지역 전통의 명맥을 이어나가기 위한 교육제도를 집중 조명할 것입니다. 유럽의 국가들은 현악기, 모자이크, 향수, 시계 등은 전통과 교육을 융합해 더 많은 부가가치를 창출해 나가고 있습니다. 이들 사례를 통해 우리나라에서도 전통문화를 잇는 것이 가치 있게 평가되고 이에 대한 체계적 관심과 교육, 지원이 이뤄지길 기대해 봅니다.
편집자 주

147년 전통 공예학교 운영 … 공방은 도제식 교육

유리는 ‘모래와 재로 만든 불사조’로 일컬어지는 인류 최고의 발명품 중 하나이다. 13세기 이탈리아 베니스 무라노(Murano)섬에서 최초로 유리공예품을 만들어 유럽에 공급하기 시작했다.
이 지역에서 유리공예가 명성을 떨치게 된 데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는 운하의 강바닥에서 나오는 자갈과 습지의 평원에 있는 소다석회의 조달이 용이했다. 둘째는 유리제조 비법을 지키기 위해 유리 장인들을 무리노섬에 모아놓고 섬밖으로 나가지 못하게 철저히 관리했다. 평생을 무리노섬에서 유리공예를 위해 몰두한 장인들의 희생 없이 명성을 얻기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무라노섬은 지금도 여전히 유리공예에 있어 독보적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가업을 물려받아 수십년간 활동하고 있는 장인들이 만든 유리공예품은 예술성이 뛰어나고 실용미가 넘친다. 무라노의 유리수공예 기술은 1000년이 넘는 역사를 갖고 있다. 경제위기 고비를 넘기며 지켜져 온 ‘유리의 섬’ 무라노의 유리수공예 전통은 세월과 함께 그 가치가 더욱 빛을 발하고 있다.
무라노에는 유리 관련 기업만 336개로 섬 전체 경제의 82%를 차지한다. 이 중 유리제조와 생산업체가 175개로 절반이 넘으며, 생산과 판매 모두 담당하는 기업은 57개, 판매업 전문기업은 77개다. 그 외에도 실내장식품 조립과 전등을 생산하는 기업이 22개 있고 유리박물관 등 연구기관도 있다.

◆유리 현대적인 활용에도 관심 = 1861년 개장한 ‘유리제조박물관’과 1862년 개교한 ‘유리제조미술학교’를 통해 유리공예의 전통을 계승 발전키고 있다. 특히 유리제조박물관 개장으로 고대의 유리제조 기술에 관련된 자료 사용과 유물 보관이 가능하게 됐다. 또 무라노섬의 경제와 문화를 재인식하고 보존하려는 의지를 굳히는 기회가 됐다.
유리제조미술학교는 1970년대까지 유리공예 장인들을 대상으로 작업과정에 도움이 되는 예술감각과 미술계획구상 능력, 미적 조화를 교육하는 공간이 됐다. 베니스시는 무라노의 유리제조 전통기술을 재조명하는 교육시설을 만든다는 목표아래 80년대 말 ‘무라노국제유리센터’(아바테 자네티 유리학교)로 재탄생시켰다.
핵심 교과는 유리제조장인 교육, 전통과 현대식 예술유리 제작기술 및 방법, 유리제조 산업 마케팅, 디자인교육 등이다. 또 초·중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유리실험반’은 학생들에게 유리의 세계를 이해하고 빛·색·재료라는 측면에서 유리특성을 실험을 통해 터득하도록 한다.
직업인을 위한 워크숍도 실행되며 전통기술전수 외에도 ‘유리’라는 성분 자체의 문화적 사회적 측면을 고려한 검토와 그 과학적 응용을 연구하는 연구소의 역할도 담당한다. 무라노국제유리센터의 교육방침과 목표의 특징은 무라노 지역문화가 현대생활에 실질적으로 기여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것이다. 즉 유리를 다룰 줄 아는 무라노 장인들의 노련함과 기법이 화학, 생물, 기술 전문가들의 실험 연구와 만나 공동의 연구결과를 얻어내는 방식이다.
국제유리센터는 ‘무라노유리실험연구소’와 더불어 유리성분의 개발에 획기적인 진보를 가져왔다. 이제 유리는 현대산업에 중요한 광학섬유, 절연재, 우주항공자재, 또 인공장기 제조와 같은 생명공학에 이용되고 있다.
현대 과학기술로 개발한 기계들은 유리공예 작업 환경도 크게 바꿔 놓았다. 과거에는 작업 중에 뿜어 나오는 연기로 숨을 쉬기 힘들었고 1500도가 넘는 불가마 옆에서 작업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지금은 연기흡수관이 따로 있고 절연재사용으로 작업장의 기온도 조절된다.

◆규율 엄격, 말없는 복종 필요 = 유리공예 장인이 되기 위한 훈련은 학교보다는 작업장에서 이뤄지는 경우가 많다. 유리공예 장인들은 1000년이 넘게 유리제조에 필요한 재료들의 양과 성분을 비밀 수첩에 가득히 채워 기록하고 보존해 오고 있다. 컴퓨터와 화학이 발전한 현재도 연금술사의 신비에 가까운 그들의 비법은 수제자를 통해 계속 이어지고 있다.
무라노 최연소 ‘마에스트로 베트라이오’(유리수공예 장인)인 마르코 세구조(34)는 어릴 적부터 학교수업보다 조부와 부친이 일하던 유리작업장에 가는 것을 더 즐겼다. 방학에 틈틈이 시작했던 일이 16세에 직업으로 변했다. 그는 “여름 한 나절 밖의 온도보다 더 높은 작업장에서 일을 마치고 나서면 한 여름이 시원하게 느껴지기만 했다”고 회상했다. 그는 또 “이 직업은 배움의 끝이 없다”면서 “유리라는 물질을 마음대로 다룰 수 있는데 흥분을 느낀다. 짧은 시간에 마쳐야 하는 동작, 깨지지 않게 신경을 집중해야 하고 정확한 지점에서 불어야 하는 것, 그 모두가 하나둘 익숙해질 때의 만족감이란 다른 무엇과 비교할 수가 없다”고 말했다.
60여년을 유리수공으로 보낸 비토리오 페로는 “작업장에서 일하는 장인과 보조인들이 금방 배우게 되는 첫 번째 규칙은 말수를 최소한으로 줄이며, 눈빛 하나로 모든 걸 이해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13세에 작업장 심부름꾼으로 일을 시작했다는 그는 “내가 매일 해야 하는 일 중 하나가 아침과 오후, 하루 두 번 주점에 가서 ‘마에스트로’가 마실 포도주를 사오는 것이었다. 마에스트로는 작업 중 남은 자투리 유리를 녹여 만든 컵에 본인은 한 컵, 조수에게는 반 컵, 잡일꾼에게는 더 조금 따라주곤 했다”고 기억했다. 규율은 엄격했고 무조건 말없이 복종하는 것이 절대 조건이었다.
60년 경력의 페로 장인은 “진짜 유리공예 장인은 일을 하면서 만들어질 뿐”이라고 강조했다 .

유리공예품 어떻게 만들어지나
마술같은 손놀림에 절로 감탄
21세기에도 하나하나 입으로 불어만드는 전통방식 고수

경력이 많은 유리공예 장인들의 작업을 보고 있으면 마술같은 손놀림에 감탄하게 된다. 녹은 유리는 젤리같이 혹은 녹은 설탕처럼 흘러내릴 것만 같은데 쉴 새 없이 돌려대는 쇠막대기 끝에서 기계로 만든 것보다 더 모양이 일정하고 완벽한 접시로, 병으로 변해간다. 장인이 쇠막대기 구멍으로 불어대면 투명한 유리는 비눗방울처럼 부풀어간다. 정확한 힘과 팔 동작으로 원하는 모양대로 만들어진 유리를 가볍게 내려치면 병 주둥이가 깨끗이 잘리면서 작품이 완성된다.
현재 무라노에 있는 유리제조 아틀리에는 100여 개 남짓된다. 대부분 2~3명의 장인들이 전통적인 기법으로 작업을 하고 있는 소규모 공방이다. 이곳에서 나이 지긋한 노인들이 재래식 화로 옆에서 연신 땀을 흘리며 혼신의 힘을 다해 유리 공예품들을 만드는 풍경을 쉽게 볼 수 있다.
액체와 고체의 중간 상태로 점성이 높은 유리 반죽을 1500도 가량의 고온에서 가열한다. 이들은 아직도 ‘칸네’라고 하는 긴 대롱을 통해 입김을 불어넣는 전통 제조 방식을 고수하고 있다. 가위 하나만 손에 쥐고 빠르고 정확한 손놀림으로 눈 깜짝할 사이에 아름다운 형상을 만들어내는 장인의 손놀림은 한마디로 예술이다.
베니스 무라노 유리의 가장 큰 특징은 뚜렷한 형태와 화려하고 선명한 색채다. 프랑스에서 수입한 ‘사비아’란 모래를 1200도 화덕에 끓인 후 색소를 적절히 배합해 색깔을 낸다. 검정색은 망간, 파랑색은 코발트, 노란색은 카드뮴, 초록색은 산, 빨강색은 금을 색소로 넣는다. 이 곳 유리는 크리스탈과 유리의 장점만을 이용해 납을 섞는 크리스탈 보다 투명도가 높으면서 강도는 일반 유리보다 훨씬 강하다.
무라노 유리 제품으로는 관광객을 위한 기념 소품에서부터 유리 화병 등의 장식용품, 귀걸이나 시계 등 액세서리, 대형 샹들리에 같은 조명기구까지 다양하다. 가격대 역시 몇 천원부터 수백만 원대를 호가하는 제품까지 천차만별이다.
무라노 유리 공예품들은 대부분 수작업으로 만들어진다. 최근에는 유리 표면에다 조각을 하는 기술이 개발되고 있다. 무라노 유리가 1000년의 명성을 이어가는 것은 끊임없는 기술개발 덕분이다.

유리공예 전통 어떻게 지키나
고품질·신기술로 승부 건다
제품마다 복제 막는 ‘특별코드’ 부여

무라노의 유리공예는 경제위기 때문에 어려움을 겪어야 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그 중 17세기 무라노 장인들의 해외이주와 보헤미아(현 슬로바키아)와 영국의 크리스털 개발은 큰 타격을 입혔다. 하지만 무라노 유리공예는 특유의 우아함과 고품질, 신기술과 제품개발을 무기로 어려움을 극복했다.
또 십여 년 전부터 시장에 쏟아지는 중국유리제품도 무라노 유리공예에 위협이 됐다. 하지만 무라노는 이를 계기로 모방이 불가능한 천년 전통의 무라노식 예술유리 제작에 집중했다. 이와 함께 시장성을 넓힐 수 있는 대량생산이 가능한 소형 장식품을 제작했다. 의상 장식용 액세서리와 동물·식물모델 장식은 꾸준히 시장을 확보하고 있다.
무라노섬은 유리 관련업의 발달과 무라노 생산제품의 유일성을 보존하고 저질·저가의 복제품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베네토 지방법으로 무라노예술유리등록상표(Vetro Artstico Murano)를 제정했다. 무라노섬에서 전통기술을 응용해 제조된 제품에만 기준검사를 통해 상표와 특별 코드가 부여된다.
제품에 직접 쓰인 코드에는 제작소의 소재와 이름을 밝히는 정보가 기록돼 있다. 이 상표를 받는 기업은 현재 56개에 달한다. 오랜 역사를 가진 몇몇 제조업체들이 사라졌는데도 불구하고 상표를 획득하고자 하는 업체는 증가 추세다. 무라노 유리수공업조합은 수시로 소비자들과 구매업체와의 정보교환 서비스를 활성화해 소비자보호에 앞장서고 있다.
무라노 유리제조기업, 일반산업체, 수공예 장인조합, 지방 공공 및 민간단체들의 활동도 활발하다. 이들은 2003년 ‘무라노예술유리지부’(DVAM)를 유지하고 관련 업체가 새로운 계획을 실행시키는 데에 필요한 환경 관련법 마련을 위해 베니스 지방과 상공회의소의 자문을 요청했다. 유리산업 보호와 성장에 공공기관의 참여와 협조도 촉구하고 있다.

이탈리아 전명숙 통신원

Copyright ⓒThe Naeil News. All rights reserved.

위 기사의 법적인 책임과 권한은 내일엘엠씨에 있습니다.
<저작권자 ©내일엘엠씨,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제보

닫기
(주)내일엘엠씨(이하 '회사'라 함)은 개인정보보호법을 준수하고 있으며, 지역내일 미디어 사이트와 관련하여 아래와 같이 개인정보 수집∙이용(제공)에 대한 귀하의 동의를 받고자 합니다. 내용을 자세히 읽으신 후 동의 여부를 결정하여 주십시오. [관련법령 개인정보보호법 제15조, 제17조, 제22조, 제23조, 제24조] 회사는 이용자의 개인정보를 중요시하며,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개인정보보호법」을 준수하기 위하여 노력하고 있습니다.
회사는 개인정보처리방침을 통하여 회사가 이용자로부터 제공받은 개인정보를 어떠한 용도와 방식으로 이용하고 있으며, 개인정보보호를 위해 어떠한 조치를 취하고 있는지 알려드립니다.


1) 수집 방법
지역내일 미디어 기사제보

2) 수집하는 개인정보의 이용 목적
기사 제보 확인 및 운영

3) 수집 항목
필수 : 이름, 이메일 / 제보내용
선택 : 휴대폰
※인터넷 서비스 이용과정에서 아래 개인정보 항목이 자동으로 생성되어 수집될 수 있습니다. (IP 주소, 쿠키, MAC 주소, 서비스 이용 기록, 방문 기록, 불량 이용 기록 등)

4) 보유 및 이용기간
① 회사는 정보주체에게 동의 받은 개인정보 보유기간이 경과하거나 개인정보의 처리 목적이 달성된 경우 지체 없이 개인정보를 복구·재생 할 수 없도록 파기합니다. 다만, 다른 법률에 따라 개인정보를 보존하여야 하는 경우에는 해당 기간 동안 개인정보를 보존합니다.
② 처리목적에 따른 개인정보의 보유기간은 다음과 같습니다.
- 문의 등록일로부터 3개월

※ 관계 법령
이용자의 인터넷 로그 등 로그 기록 / 이용자의 접속자 추적 자료 : 3개월 (통신비밀보호법)

5) 수집 거부의 권리
귀하는 개인정보 수집·이용에 동의하지 않으실 수 있습니다. 다만, 수집 거부 시 문의하기 기능이 제한됩니다.
이름*
휴대폰
이메일*
제목*
내용*